ⓒ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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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성장하는 데 기여한 기업인들이 성공 이야기를 지금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지요.”

지난 1년6개월 동안 주간조선에 ‘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을 연재해 온 소설가 고정일씨의 말이다. 고정일씨는 2014년 12월 29일자 ‘우국의 경영 파천황 이용익 상편’을 시작으로 2016년 6월 13일자 ‘동원산업 김재철 3편’에 이르기까지, 총 25명의 창업자·경영자를 다룬 ‘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을 주간조선에 연재해왔다. 이 연재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25명의 경영인들이 어떻게 거상이 됐는지, 또 그들이 일군 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펼쳐놓은 글이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중구 지하철 6호선 약수역 근처에 위치한 동서문화사 사무실에서 고정일씨를 만났다. 고씨는 현재 동서문화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고씨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이어졌던 연재를 마치고 나니 시원한 면은 있다”며 “막상 연재를 마치면서 ‘열심히 잘 썼다’는 생각보다 ‘이 이야기가 후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고정일씨는 ‘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 연재 초기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조선 최고의 무역상으로 불렸던 거상(巨商) 임상옥과 조선 후기 보부상의 왕으로 불린 이용익 등 조선시대 경영인, 또 박승직과 박흥식 등 일제강점기 기업인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리고 이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LG그룹을 만들어낸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씨 등의 성공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했다. 여기에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사이자 IT 투자사인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씨의 이야기까지 연재했다.

조선 창조경영인 25인의 땀

약 200년 전인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총 25명 경영인의 이야기를 연재해온 고씨. 그는 수많은 기업인과 자본가들 중 이들 25명의 이야기를 연재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연재의 주인공이 된 이들 25명에 대해 “기업을 일구고 부를 쌓은 이들 중에서도 나라의 성장을 함께 고민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며 “현재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큰 기업을 만들고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해도 사업보국(事業報國)에 대한 뜻을 찾기 힘든 경영인은 연재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고씨는 자신이 연재한 25명의 경영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이용익’을 꼽았다. 이용익은 조선 후기 보부상을 통해 부(富)를 일궈내며 ‘보부상의 왕’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이후 고종의 재정담당을 맡아 조선 내 친일파들과 일본의 노골적 침략에 맞섰다. 프랑스와 러시아 등지에서 일본의 조선침략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기도 했고, 자신이 모은 돈을 조선인의 미래를 위한 교육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조선 후기 경영자들, 특히 보부상을 하며 부(富)를 모은 이용익은 애국에 대한 열망이 큰 인물이었다”며 “자신이 번 돈을 사람들에게 내놓을 줄 아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주간조선에 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을 갑자기 연재한 것이 아니라, 20여년 전부터 경영자들의 자료를 모아오면서 구상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자료를 모으고 글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눈에 들어오고 기억에 남게 된 조선 창조경영인이 바로 이용익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850년대 태어난 100년도 훨씬 전의 인물인 이용익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논문은 물론 각종 서적과 역사적 일화, 야사들을 수집했다. 고씨는 기자에게 ‘고종 황제의 충신 이용익의 재평가’(조익순·해남) 등 자신이 이용익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고씨는 이용익에 대해 “조국을 향한 애국심은 물론, 국민을 위한 교육에 자신이 가진 것을 투자할 줄 아는 자본가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 시절 이용익이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부를 어떻게 세상에 돌려줘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는 게 고정일씨의 이야기였다.

고정일씨는 “1960~198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며 기업을 일군, 현대 한국 기업계의 1세대 경영인들은 ‘피와 땀’의 소중함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이 생각했던 피와 땀의 소중함이 결국 작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됐고, 크게는 국가에 대한 책임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며 “그들이 가졌던 이런 책임감에서 시작된 기업들이 지금의 현대, 삼성, LG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기업 1세대 경영인들이 가졌던 이런 책임감이 결국 한국 경제 성장에 주요한 요인이 돼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타까운 경영자들도 있다고 했다. 오직 자신의 부만을 위해 기업을 경영한 사람들이 바로 그가 ‘안타까운 경영자’로 표현한 사람들이다. 그는 몇몇 재벌 총수의 실명을 직접 언급하며, 그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왜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지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베풀지 않는 기업인, 연이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기업인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애국심’과 ‘책임감’이라고 했다. 이런 기업인 중 대표적인 사람인 몇몇 기업인에 대해, 특히 근로자의 정당한 근로 대가인 임금을 착취해 자신의 배를 불린 이도 있고, 나라에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이들이 있다고 했다.

재벌 2~3세들의 문제

고씨는 ‘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을 연재하며 그들의 자식 세대인 현재의 재벌 2~3세들에 대해 실망감이 컸다는 점도 말했다. 그는 “현재의 재벌 2~3세들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그냥 가진 사람들”이라며 “이 점이 이들에게 피와 땀의 소중함, 책임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등을 전혀 갖지 않게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맹점인 ‘탐욕’에 대해 말하며 “자본주의에서 탐욕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현재 한국에서 재벌 2~3세로 불리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탐욕적인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재벌 2~3세들은 돈이 너무 많아서 공부를 안 한 것 같다”고 했다.

고씨는 “만약 현재 재벌 2~3세들이 이끌고 있는 SK그룹이나 롯데그룹 등의 경영인들에 대한 글을 연재하자고 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 대부분의 재벌 2~3세들에게는 기업인으로서 국가와 사회, 국민에 대한 헌신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안 그래도 가진 게 많은 재벌 2~3세들인데 욕심만 더 커지고 있다”며 “탈세를 저지르고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등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오만함만 키워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고정일씨는 “‘피와 땀’ 그리고 ‘책임감’과 ‘애국심’의 의미를 지금의 재벌 2~3세들이 조금이라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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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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