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내 대우조선해양 부지, 현재 재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내 대우조선해양 부지, 현재 재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마곡지구는 서울에서 가장 큰 공사판이다. 강서구 마곡동과 가양동 일대 336만㎡ 곳곳에서 공사용 크레인이 돌아가고 신축건물들이 우후죽순 올라가고 있다. 한데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 인근 가장 알짜배기 땅은 유독 망치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해당 부지는 9호선 마곡나루역과 인접하고 식물원, 습지생태원, 호수공원 등을 갖춘 마곡중앙공원(서울식물원)을 품고 있어 마곡의 노른자위 땅으로 꼽혀왔다. 지금은 어른 키보다 조금 높은 회색 공사가림막으로만 둘러싸여 있다.

알짜배기 땅이 방치된 까닭은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후폭풍 탓이다. 이 땅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2013년 매입한 땅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 땅에 약 7000억원을 투입해 차세대 선박 개발을 위한 다목적 예인수조 등 해양연구시설을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양플랜트 사업부실과 분식회계 등으로 존폐위기에 몰린 대우조선해양이 부지를 다시 토해내면서 공중에 붕 떠버린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 14일, 이 땅에 대한 처분공고를 냈다. 마곡산업단지 12개 필지, 6만1232㎡에 달하는 땅을 재매각한다는 공고였다. 지난 4월 28일 1차 처분공고에 이은 2차 처분공고다. 앞서 1차 처분공고 때 “해당 부지를 사겠다”고 나선 업체는 1개가 고작이다. 이마저도 부지 전체가 아닌 부분 매입하겠다는 것이어서 부적합했다. 지난 6월 2일에는 서울시청에서 투자설명회도 개최했지만 아직까지 부지를 사겠다는 매수자는 없다. 서울시 마곡사업추진단의 이병수 마곡사업과장은 “블록 단위로 매각하기로 2차 공고를 냈는데, 아직까지 인수 의향을 밝힌 기업은 없다”며 “매각 금액이 2000억원 정도 되는 큰 금액이고 갑자기 나오니까 대기업들도 심사숙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서울시의 마곡지구 개발에 급제동이 걸렸다. 마곡지구는 서울시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이다. 목동신도시와 김포공항 사이에 위치한 땅으로, 오랫동안 도시기본계획상 개발유보지로 묶여 방치되어 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월드컵 주경기장 후보지를 놓고 마포구 상암지구와 최종 접전을 벌였으나 고배를 마시고 첨단 연구개발(R&D) 단지 등 자족도시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마곡은 서울시의 최대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서울시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왔다.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 등이 공동개발하는 위례신도시와 달리 마곡은 서울시 단독으로 개발 중이다. 사업 시행 주체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공사(옛 서울도시개발공사) 등 중앙 공기업과 지방 공기업이 공동으로 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에서 단독으로 맡고 있다.

이 중 문제가 생긴 대우조선해양 부지는 6만여㎡에 달한다. 한창 공사 중인 LG그룹 ‘사이언스파크’(17만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부지다. 대규모 부지의 매각 작업이 장기화되면 전체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각종 제약조건 탓에 당장의 매각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서울시는 해당 부지 입주 업종을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녹색기술(GT), 나노기술(NT) 분야의 25개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다. 입주 기업은 건축 연면적의 50% 이상을 연구시설로 확보해야 한다. 심지어 자금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조차 건축면적의 40% 이상을 연구시설 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연구개발 비용부터 줄이고 보는 불경기에 대규모 연구개발 시설을 지을 기업이 마땅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마곡지구는 김포공항 인근에 위치해 있어 고도제한 등으로 인해 수익성 확보에 결정적인 고밀도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시 마곡사업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 시설 비율 50%나 고도제한은 변동된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선언으로 경기전망도 더욱 불투명해졌다. 결과적으로 매수 희망자가 해당 부지를 확보한다 해도 경기전망 등으로 인해 착공 일자를 잡기도 쉽지 않아졌다. 현재 마곡지구 내 산업시설용지로 지정된 72만㎡ 가운데 그간 분양된 면적은 61.9%인 45만㎡ 정도에 불과하다. 입주 예정인 90개 기업 중 실제로 착공한 기업은 LG사이언스파크를 비롯해 31곳에 그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부지 맞은편에 중앙연구소를 짓고 있는 롯데그룹 역시 최근 형제 간 경영권 분쟁에 이은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인해 일정대로 완공할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개발 일정이 늦어지면서 당초 입주 예정이던 신세계 이마트 역시 착공 시기를 못 잡고 있다. 이마트 홍보팀의 이경환 과장은 “부지는 확보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개발할지 내부적인 결론이 안 났다”며 “자연히 착공 시기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2008년 수변도시 계획은 물거품

마곡지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 차례 유탄을 맞은 적이 있다. 2007년 12월 마곡지구 개발에 착수한 직후였다. 당초 서울시는 서남물재생센터(하수종말처리장)와 인접해 있는 마곡지구에 페리터미널과 요트마리나 등이 들어서는 워터프런트를 만들어 한강과 연결시키는 수변도시로 계획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탓에 국제현상공모까지 내걸었던 수변도시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 결과 마곡지구의 중심인 마곡나루역은 배를 탈 나루터가 없음에도 ‘나루’라는 지명이 붙은 희한한 이름을 가진 지하철역이 됐다.

마곡 개발이 차질을 빚으면서 서울시에도 비상이 걸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같이 마곡 개발의 큰 축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서울시는 대우조선해양이 부지 처분 결정을 내린 직후인 지난 5월 11일, 마곡중앙공원의 이름을 ‘서울식물원’으로 명명하는 등 마곡 가치 끌어올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듬해인 2012년 마곡개발과를 마곡사업추진단으로 격상시키는 등 마곡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2013년에는 건축 및 도시계획 전문가들로 마곡조성자문단을 꾸리고, 2014년에는 마곡에서 현장 시장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문제가 되는 대우조선해양과 마곡 입주계약을 체결한 것도 2013년 박원순 시장 때다. 박원순 시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고재호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과 마곡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마곡은 주요 입주예정 기업들이 투자를 늦추면서 지금은 오피스텔만 가득한 ‘벌집촌’으로 전락할 처지다. 실제 마곡지구에는 분양면적 30㎡ 이하의 초소형 주거용 오피스텔들만 빼곡히 들어차고 있다. 독신자들이 몰리는 오피스텔의 과잉공급으로 마곡지구 전체가 슬럼화할 것이란 우려도 팽배하다.

교통여건 개선도 늦어지고 있다. 2014년 5월 마곡지구 입주민들의 요구로 9호선 마곡나루역을 개통했지만 정작 출퇴근 시간이면 지옥철로 변하는 9호선 증차가 이뤄지지 않아서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원래 마곡나루역은 급행전철 정차가 가능한 정차역으로 설계되고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입주 등이 늦어지면서 완행전철만 정차하고 있는 실정이다. 9호선 마곡나루역과 환승역이 될 공항철도 마곡역(가칭) 개설도 오는 2017년 12월쯤에나 이루어질 예정이다. 서울시 마곡사업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마곡은 조성원가에 땅을 팔고 있기 때문에 땅값이 싸다”며 “대우조선해양 이외에 다른 기업들은 전혀 문제가 없이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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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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