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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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탄탄하고 건실한 기업, 또 아직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기업을 찾아내는 작업이 바로 가치투자입니다. ‘한국 시장에 그런 기업이 정말 남아 있을까’ 싶지만, 찾아보면 있습니다. 이런 기업을 찾는 것이 투기가 아닌 진짜 투자입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대표적 가치투자가이자 워런 버핏 연구가로 불리는 이민주(50)씨가 꺼낸 투자 이야기다. 이민주씨는 주식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논리적인 투자가로 유명하다. 특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시장과 투자 지식을 전하는 투자 교육에 열정적인 투자가이다. 세계 최고의 투자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투자법을 모티브로 직접 ‘버핏연구소’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재무제표와 각종 투자지표 보는 법 같은 기본적인 투자 지식을 전하고 있다.

한국의 가치투자가이자 투자교육가로 알려진 이민주. 그가 일반 투자자와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독특한 투자가로 불리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기자 출신 투자가라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이민주씨는 한 신문사에 몸담았던 기자였다. 기자였던 그가 지금은 인정받는 가치투자가이자 투자교육가로 변신한 것이다.

2000년대 후반 기자에서 투자가로 변신한 이민주씨는 2010년대 초부터 가장 논리적인 투자가 중 하나라는 평을 받으며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그가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투자 포트폴리오가 높은 투자 성과를 보이며 그의 논리적 투자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가고 있다. 이민주씨는 2013년부터 실제 주식계좌를 이용하는 투자는 아니지만 가치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표준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이 표준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며 발굴한 주식 중 40여개 종목의 매도를 완료했다. 이 표준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주식을 평균 8개월 이상 보유했고, 연 23% 정도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치투자가 이민주씨를 최근 서울 광화문 근처 파이낸스센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치투자의 시작은 재무제표와 CEO

2000년대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각광받았던 투자법 중 하나가 ‘가치투자’였다. 하지만 가치투자를 앞세웠던 투자자들과 유명 펀드들의 수익률 추락, 또 기업들의 분식 등 회계 부정과 허위공시, 주요 기업 오너 및 경영진의 기업 범죄와 부도덕성이 드러나며 기업 가치 훼손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 가치투자가 쉽지 않은 시장’이라는 인식이 싹트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민주씨 역시 한국 시장에서 몇몇 기업과 산업의 가치가 갑작스럽게 훼손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 가치투자가 힘들거나 불가능한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재무제표와 기업 CEO를 꼼꼼히 분석하고 살펴보면 가치투자를 가로막는 상당한 걸림돌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한국의 회계기준은 미국보다 더 타이트하게 규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기업이 발표하는 보고서와 재무제표를 CEO가 반드시 확인하고 서명해야 할 정도입니다. CEO가 퇴임 후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지요. 이런 재무제표를 세세히, 또 꼼꼼히 살펴보면 향후에라도 기업 가치 훼손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이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민주씨는 대우조선해양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과거 작성된)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기업 가치와 관련해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2008년 이후 영업 현금 흐름이 단 한 번도 ‘+(플러스)’였던 적이 없습니다. 영업 현금 흐름은 기업이 실제로 벌어들이는 현금 다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2008년부터 ‘+’가 된 적이 없다는 건 기업 가치에 따른 투자를 할 때 분명 의심했어야 할 부분이지요.”

이민주씨는 기업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CEO에 대해서도 냉철한 검증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평가와 검증이 기업의 현재는 물론 미래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했다. “기업 가치 훼손의 결정적 이유인 분식회계 같은 기업범죄는 사실 CEO가 저지르는 게 대부분이지요. 이런 이유로 CEO의 경력과 그가 살아온 인생을 반드시 평가·검증해봐야 합니다. 범법자라 해서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을 이끄는 CEO는 무거운 책임과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CEO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떤 평을 받고 있는지가 그 기업의 가치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지요. 범죄 이력이 있고 부도덕하다고 평가받는 CEO보다, 누구나 인정할 만큼 도덕적인 CEO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게 현실적인 분석입니다.”

그는 “투자에 앞서 재무제표와 CEO에 대한 공부와 체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 두 요소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면 투자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두 요소를 체크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기른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치투자로 수익을 낼 수 있다”며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런 기본적인 투자 요소 체크를 통해 실제 수익을 내고 있는 가치투자자들이 상당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공부 안 하는 가치투자가는 안 돼

그런데 문제는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했다”고 말하는 일반 투자자들 중에도 꽤 많은 이들이 여전히 “가치투자가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게 한국 시장의 현실이다. 이민주씨는 한국 시장에서 가치투자가 잘 안 되는 현실과 관련해 “투자자들이 정말 투자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가치투자’든 다른 방식의 투자든, 그 투자에 맞는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데 투자를 위해 열정적으로 공부한 후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최소한 자신이 투자할 기업의 PER(주가수익비율)가 어느 정도이고, PBR(주가순자산비율)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또 적어도 ROA(총자산순이익)와 ROE(자기자본이익률)가 PER·PBR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수익을 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지표나 투자 포인트를 말하거나 분석하면 그때부터 어려워하는 게 현실입니다. 오히려 ‘기관’이나 ‘주포’ 같은 것에 주목하는 게 현실입니다. 실상 그렇게 투자한 후 손실이 발생하게 되면 ‘내 투자는 잘못되지 않았는데 기관과 세력 때문에 잘 안 됐다’거나 ‘주포가 있어야 했다’ 같은 식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건 가치투자가 아닙니다.”

이민주씨는 “이런 분들이라면 직접 주식 투자를 하는 것보다, 펀드나 투자자문사를 이용한 간접 투자에 나서는 게 오히려 나은 투자법일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이민주식 가치투자에서 주식의 저평가와 고평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 요소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우선은 PER와 PBR를 보고 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기업을 제조·금융·수주 등 총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눕니다. 이렇게 기업의 종류를 나눈 후 금융의 경우 PBR, 제조의 경우 PER가 낮은 기업들을 골라내지요. 이렇게 골라낸 기업들을 대상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재무제표와 CEO 등 경영진의 혁신성·도덕성을 꼼꼼히 확인하고 평가하는 겁니다.”

이민주씨는 “가능하면 시장이 성장하는 산업과 기업을 살피고, 일회성 비즈니스 모델로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은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직장인이 다른 투자자들보다 좀 더 쉽게, 잘할 수 있는 투자방법도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요지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과 관련된 기업이나 산업을 분석하고 연구하라는 것이다. 가장 잘 알 수 있는 분야인 것은 물론이고, 많은 시간을 따로 들이지 않더라도 산업과 관련 기업들을 누구보다 더 꼼꼼하게 잘 분석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MBA·워런 버핏·투자가

이민주씨는 어떻게 투자가로 변신했을까. 그는 2005년 미국 퍼듀대 MBA 과정을 시작했다. 수업을 따라가기조차 버겁던 영어 스트레스 속에서 졸업을 위해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난 2007년 3월 졸업을 위한 과정을 모두 마쳤다. 이민주씨는 “졸업을 앞두고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공부와 영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며 “그렇게 안도가 되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기자로서 뭔가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MBA 졸업을 코앞에 둔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이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가 매년 5월에,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립니다. 여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취재 허가를 받았지요. 그리고 정말 운 좋게 현장에서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났고, 인터뷰 기회까지 얻었지요.”

실제 이민주씨는 당시 워런 버핏과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당시 워런 버핏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다”며 “그런 논리성과 합리성이 그가 말하는 가치투자의 핵심이었다”고 했다. 이민주씨는 워런 버핏은 물론 그가 말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투자, 즉 가치투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2007년 9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워런 버핏과 그의 투자법을 공부하고 연구했다. 특히 공부와 연구를 위한 방법으로 그는 워런 버핏과 버핏의 투자법에 대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8년 첫 책 ‘워런 버핏 한국의 가치투자를 말하다’가 나왔고, 이후 ‘워런 버핏처럼 재무제표 읽는 법’을 내놨다. 10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되자 이민주씨는 기자와 투자가, 둘 중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2009년, 결국 그는 투자가의 삶을 선택했다.

그렇게 투자가의 삶을 시작한 후 재무제표 분석 같은 일반 투자자들을 위한 기본적 투자 교육까지 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이민주씨는 “가능하다면 투자가로서 한국의 버크셔해서웨이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그때까지 워런 버핏이 살아 있다면, 그때 워런 버핏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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