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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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시장이 그동안 기업에 선택사항이었다면 앞으로는 필수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장기 정체 상태를 못 벗어나는 주요 원인은 수출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구조조정하면서 성장률이 10%대에서 6%대까지 하락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수출이 갈 데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안은 할랄입니다.”

“중동의 변화도 주목해야 합니다. 중동 시장이 석유·건설·플랜트 등 하드웨어에서 관광·IT·유통 등 소프트웨어 쪽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대내외적인 상황이 맞물려 있는 곳이 바로 할랄시장입니다.”

지난 8월 8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 위치한 한국할랄산업연구원에서 만난 장건 원장은 앉자마자 할랄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말을 쏟아냈다. 연구원 내 강의실에는 ‘화장품 업체를 위한 할랄 인증 및 할랄시장 교육’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프로젝트를 연구원 측이 맡아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장 원장은 정부의 할랄산업 육성 방침이 발표된 후 할랄시장을 향한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연구원도 바빠졌다고 했다.

한국할랄산업연구원은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리서치, 교육, 할랄 인증 컨설팅 등에 나서고 있다. 할랄컨설턴트 과정과 할랄통상전문가, 할랄심사원, 할랄지도사 등 민간 자격증 과정을 통해 할랄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충북 오송에서 화장품 인증 관련 국제 세미나도 개최한다. 장 원장은 경제학자 출신이다. 15년 전 한국외국어대학 중동이슬람권 문명권 연구팀의 연구교수로 참여하면서 중동경제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중동경제 전문가인 장 원장이 바라보는 할랄시장은 어떤지 들어보았다.

“중동 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할랄시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랄은 식품뿐만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한국 산업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장입니다. 일단 인구를 보세요. 인구가 바로 마켓입니다. 더구나 중동 등 이슬람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습니다. 그 방대한 시장을 놓칠 수는 없지요.”

장 원장은 할랄을 산업이 아닌 종교로 접근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슬람은 무조건 테러와 결부하는 오해의 시선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할랄 도축장을 만들고 할랄 산업단지를 만들면 무슬림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도축장을 만들어도 무슬림 인력은 10명이면 족합니다. 도축 외에 포장, 해체 작업 등은 무슬림일 필요가 없습니다. 할랄산업을 키우면 무슬림 공화국이 될 것이다? 어불성설입니다. 할랄산업은 우리 기업을 키우고 수출을 늘리는 일입니다. 무슬림 관광도 막을 이유가 없죠. 중국 시장이 지고 있는데 관광산업을 위해서도 이들을 유치해야 합니다. 무슬림들이 내는 헌금인 자카트가 IS 테러자금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하는데 지나친 비약입니다. 무슬림에게 할랄은 종교를 넘어 삶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할랄산업 강국인 태국을 보세요. 무슬림 공화국이 됐나요? 네덜란드는 로테르담에 할랄 전용 항만까지 있습니다.”

중동 사람들 “한국 화장품 최고”

장 원장은 할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이해가 부족하다면서 언론이 나서서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주문을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장 원장은 할랄산업 중에서도 특히 화장품산업에 대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 원장이 얼마 전 만난 UAE 측 관계자도 “한국 화장품이 최고다. 수출 좀 해 달라”는 요청을 하더라는 것.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 관광객의 쇼핑 리스트 1, 2위가 ‘화장품과 김’이라는 것이 장 원장의 설명이다. 식품의 경우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화장품은 빠른 시간에 시장을 장악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만큼 이미 기반도 조성돼 있는 셈이다.

“조만간 화장품 쪽에서 성공모델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탈렌트화장품, 대덕랩코, 한불화장품 등 한국 화장품업계도 할랄 인증을 받거나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 많습니다. 국내 화장품들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입니다. 국내 업계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까지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할랄 수출 환경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식품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UAE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스시의 경우 10년 동안 기반조성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 요리 시식회 등을 자주 열어 한식을 친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에 할랄시장 진출을 위한 첫 관문은 할랄 인증이다. UAE, 말레이시아 등이 할랄 인증을 국가적 산업으로 키우면서 화장품, 바이오 등 산업 전반으로 인증 범위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슬림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최우선 기준은 할랄 인증 여부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만 해도 소비자의 61%가 화장품 구입 때 할랄 인증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 장 원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나라마다 할랄 인증 기관이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차인증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레이시아 자킴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관세 장벽인 셈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이 없다 보니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크다.

국제인증을 받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할랄 공장 인증을 받는 데만 1500만~2000만원이 들고 제품별 인증은 또 별도로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화장품의 경우 일단 생산라인에 대한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고 품목별로 알코올이나 콜라겐 등 동물성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은지 등 할랄 인증을 또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인증만 받는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일단 품질이 기본이다. 연구원 측 통계에 따르면 국내 할랄 화장품 수출액은 2014년 1200억원, 관광객과 국내 체류 무슬림 매출액이 1200억원 규모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전문 인력 등 할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중국·일본처럼 SOC 투자 등을 통해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길도 닦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할랄 랩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알코올 저감기술 개발과 같은 연구가 한쪽에선 이뤄지고 한쪽에선 상용화하고 두 축으로 가야 합니다.” 장 원장은 우리나라 산업을 도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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