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공시가 드러나 퇴출 위기에 놓인 중국원양자원의 한국 시장 상장 당시 모습. ⓒphoto 뉴시스
허위공시가 드러나 퇴출 위기에 놓인 중국원양자원의 한국 시장 상장 당시 모습. ⓒphoto 뉴시스

중국 국적 기업들의 한국 자본시장 진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특히 한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던 중국 기업들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 진출해 있는 중국 기업들의 신뢰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신뢰 상실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는 허위공시와 회계부정 의혹들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터진 ‘중국원양자원의 허위공시 사건’은 한국 시장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신뢰성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중국 국적 기업들의 신뢰성 문제는, 최근 한국 주식시장과 투자자들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중국원양자원의 허위공시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 “일부 중국 국적 기업의 실적 등 재무상태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로 인해 2010년대 초 한국 주식시장에 불거졌던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한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중국 국적 기업, 헝셩그룹의 공모주 청약 미달 사태는 한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고민은 물론 한국 투자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중국 기업의 신뢰성 문제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 헝셩그룹은 지난 8월 8~9일까지 한국의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한국 시장 상장을 위한 400만주 규모의 주식을 공모했다. 하지만 0.77 대 1이라는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올해 한국에서 진행된 공모주 청약에서 미달 사태가 벌어진 건 헝셩그룹이 유일할 만큼 중국 기업들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비쳐지고 있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에서 중국 국적 기업들의 신뢰성 문제에 불을 붙인 것은 앞서 언급한 ‘중국원양자원’이다. 중국원양자원은 2009년 5월 한국 시장에 상장한 중국 기업이다.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시장 1세대 중국 기업’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코스피(KOSPI) 시장에 상장된 유일한 중국 기업으로 유명하다. 2010년대 초 중국인들의 참치 등 각종 생선 섭취 증가 이슈가 커지며 성장성이 부각됐고, 이 덕분에 한국의 펀드들이 선호하는 중국 기업으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이랬던 중국원양자원이 지난 4월부터 한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심상치 않은 공시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4월 14일 느닷없이 ‘웰시포커스리미티드라는 홍콩 기업이 차입금 620만달러·이자 20만6800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73억3300여만원)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공시를 내놨다. 4월 20일에는 ‘자신들이 차입금을 제때 갚지 못해 자회사인 연강신의안수산유한공사의 지분 30%가 가압류됐다’는 공시까지 내놨다.

그런데 중국원양자원의 이 공시들이 ‘허위’라는 이야기가 한국 시장 투자자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투자자들이 ‘중국원양자원의 허위공시’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지난 7월 중국원양자원이 한국 주식시장과 투자자를 상대로 내놨던 공시들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렇게 되자 한국거래소가 지난 7월 27일 중국원양자원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고, 같은 날 투자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 기업 투자에 유의하라”고 안내했다. 지난 7월 말 이 같은 중국원양자원의 허위공시 사태가 불거지며, 최근 2~3년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잠잠했던 중국 기업들의 신뢰성 문제가 급하게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특히 과거 한국 주식시장과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중국 기업의 사례들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2008년 12월 한국 시장에 상장됐다가 회계부정 사건과 감사법인의 감사의견 거절 등이 이어지며 결국 2012년 9월 상장폐지로 퇴출된 연합과기 사건, 또 2010년 9월 상장됐지만 역시 회계 문제를 일으켜 감사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을 거절당해 2012년 10월 퇴출된 성융광전자 등 그동안 한국에서 문제를 일으켜온 중국 국적 기업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00억원대에 이르는 한국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고섬 사태’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중국고섬 사태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중국고섬은 2011년 1월 25일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그런데 상장한 지 불과 37일(거래일 기준) 만인 2011년 3월 22일에 주식거래가 강제로 정지됐다. 한국에 상장되기 전 중국고섬이란 회사는 이미 심각한 자금부족 상태에 빠져 있던 불량기업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런 사실이 중국고섬의 한국 주식시장 상장 과정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상장심사를 한 한국거래소가 이 같은 사실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승인을 해준 것이다. 결국 상장 두 달 후인 2011년 3월에서야 중국고섬이 한국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제출했던 회계자료와 실제 은행잔고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중국고섬은 상장된 지 불과 37일 만에 주식거래가 강제 정지되는 한국 주식시장 역사에 전무후무한 불명예 기록을 남겼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결국 2013년 10월 한국 주식시장에서 퇴출됐다. 이 사건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극도로 악화됐다.

차이나 리스크에 고민하는 중국 기업

하지만 중국고섬 사태 이후에는 한국 시장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투자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차이나 리스크’가 차츰 해소되는 듯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 7월 중국원양자원 허위공시 사건이 드러나며,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 ‘차이나 리스크’가 또다시 부각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부각된 ‘차이나 리스크’의 직격탄을 한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고스란히 맞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 기업의 한국 주식시장 상장은 한국 자본시장의 세계화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외국 국적 기업들을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는 ‘옥석 가리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 기업들이 한국에 상장을 추진할 때, 해당 기업의 건전성 등을 사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시스템이 부실한 게 현실이다.

중국 기업의 상장을 주관하는 상당수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증권사들이 벌이는 허술한 실사를 정밀하게 찾아내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또 상장 신청 기업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한국거래소의 검증 능력 역시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문제를 일으켜온 불량기업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상장할 수 있게 반복적으로 승인해준 사례가 한국거래소의 떨어지는 검증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국 시장에 상장을 준비하는 중국 기업들 역시 중국원양자원 사태 이후 나타나고 있는 한국 투자자들의 분위기를 의식하는 상황이다. 자사주나 최대주주·경영진이 소유한 주식의 거래를 일정기간 유예하는 ‘보호예수’ 기간을 통상의 두 배인 2년으로 늘리거나, 회계자료를 2중으로 검증받는 식으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중국 기업들에는 한국 투자자들 사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차이나 리스크’가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은 약 4~6개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상장 심사 단계에 있는 기업만 3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한국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중국 기업의 신뢰성 문제를 뚫고 상장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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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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