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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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일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한진해운. 한국 최대이자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몰락하며 세계 물류시장이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자칫 ‘청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며 전 세계 항만에서 한진해운 소속 선박의 화물 선적과 하선은 물론 입출항이 거부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선박이 압류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이 항구에 입항하지 않는 ‘선박 유랑 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진해운을 이용하던 국내외 수출입 기업들이 발을 구르는 실정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가 세계 물류시장의 체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한진해운의 몰락이 물류시장만 뒤흔들고 있는 게 아니다. 주식시장 역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직후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주가가 폭등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한진해운 관련성이 부각되며 주가가 추락한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주식시장의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현대상선 주가 4일 만에 37% 폭등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사태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라이벌이었던 현대상선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직후 현대상선의 주가가 치솟았다. 현대상선 주가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징후가 있던 8월 29일만 해도 주당 691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진해운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대한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밝힌 8월 30일 7430원으로 급등하기 시작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8월 31일 9330원까지 폭등했다. 또 법정관리 다음 날인 9월 2일에는 9440원까지 올랐다. 불과 4일 만에 2530원, 37%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현대상선은 수십 년 동안 한진해운과 경쟁해온 또 다른 국적 해운사다. 올 2~3월까지만 해도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 계열사로, 부채비율만 1만1000%(3월 말 기준)를 넘어서며 한진해운보다 더 힘들다는 평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현대상선이 쓰러지고 한진해운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5~6개월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현 회장 일가와 현대그룹이 사재 출연과 현대증권 등 주력 계열사 매각을 통해 5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등 자구안 이행에 나서며 채권은행단을 설득했다. 결국 채권은행단이 현대그룹의 회생 노력을 받아들이며 현대상선 정상화 지원에 나섰다. 8월 유상증자 등을 거쳐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의 관리 회사로 편입돼 사실상 회생에 성공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대상선이 회생에 성공한 직후 한진해운은 바로 몰락했다. 두 회사가 비교되며 현대상선의 가치가 시장에서 더 부각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당장 정부와 산업은행 등에서 한진해운의 핵심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하는 방안이 언급되고 있다. 또 수출입 기업들 사이에서 사실상 마비상태로 치닫고 있는 한진해운의 영업 물량과 영업망에 현대상선 선박을 투입해 처리하자는 구상까지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의 영업 물량과 매출 등 실적이 축소되는 만큼, 반대로 향후 현대상선의 영업량과 매출 등 수익성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이 현대상선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팬오션과 흥아해운 등 중소형 해운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와 함께 일부 중소형 해운사들의 주가 역시 폭등했다. 한진해운이 주도하던 아시아와 미주 노선의 판세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이들의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한진해운 몰락 후 장거리 노선인 미주 노선에선 대형 해운사인 현대상선의 반사이익이 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중·단거리 노선인 아시아 노선에서는 중소형 해운사들이 추가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기대가 몇몇 중소형 해운사들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흥아해운이 대표적이다. 흥아해운은 연근해 아시아 노선에 주력하는 대표적인 중소형 해운사다. 한진해운의 영업이 어려워질수록 연근해 노선에 주력하는 흥아해운의 반사이익과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한진해운 법정관리 직전과 직후 흥아해운의 주가가 급등했다. 8월 29일 1220원이던 주가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8월 31일 1415원으로, 그리고 법정관리 개시 다음 날인 9월 2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1900원까지 올랐다. 불과 4일 만에 무려 56%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중견 해운사인 팬오션 역시 마찬가지다. 8월 29일 3430원이던 주가가 9월 2일 3915원까지 오르며, 4일 만에 14% 이상 급등했다.

대한항공 폭등·한진 폭락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 해운사들의 주가만 급등한 게 아니다. 조양호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한진그룹의 또 다른 주력기업 대한항공의 주가 역시 급하게 상승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주가 상승 이유는 간단하다. 계열사에 대한 추가 지원 부담이 줄었다는 점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의 최대주주(지분 33.23%)다. 이로 인해 조양호 회장 등 조씨 오너가를 대신해 유상증자와 채권매입 등에 동원되며 부실기업인 한진해운을 지원해왔다. 그런데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이런 지원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최대 3800억원대까지 추정되고 있는 손실을 인식해야 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손실보다 오랫동안 대한항공을 억눌러온 한진해운 지원 리스크 탈피가 주가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 8월 29일 2만9100원이던 주가가 채권단의 한진해운 추가지원 포기 선언이 있던 8월 30일 3만1100원으로 뛰었고, 법정관리가 시작된 9월 1일에는 3만4550원으로 상승했다. 다음 날인 9월 2일에는 3만5000원까지 급등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슈가 터진 지 불과 4일 만에 한진그룹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주가가 20% 이상 폭등한 것이다.

그런데 상승하던 대한항공의 주가가 지난 9월 5일부터 제동이 걸렸다. 한진그룹의 한진해운 지원 소식이 나오면서다. 부채비율이 1080%(6월 기준)나 되는 대한항공이 이번에도 지원에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렇듯 최근 대한항공의 주가는 사실상 한진해운의 생사와 지원 방향에 따라 요동치며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진그룹의 한진칼 역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지원 부담이 줄어들며 주가가 오르고 있다. 8월 29일 1만7950원이던 주가가 9월 2일 2만600원까지 올랐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 상당수 한진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오르고 있지만 딱 한 곳, 한진해운과 함께 폭락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진이다. 8월 30일만 해도 3만7550원이던 주가가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시작된 9월 1일 3만1700원으로 추락했다. 9월 6일 현재 2만9250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8월 30일 이후 5일 만에 22%나 폭락했다.

원인은 사업구조 때문이다. 한진의 주력 사업은 항만 하역과 물류 사업이다. 올 상반기 한진의 영업이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하역사업이다. 한진해운이 힘들어질수록 실적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가 한진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8월 30일부터 시작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사태가 육·해·공 운송 기업들은 물론, 각종 물류 관련 기업의 주가까지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도 한진해운 지원 움직임에 따라 갈피를 잡지 못하며 출렁이는 상황이다. 한진해운 사태가 주식시장에 또 어떤 충격과 돌발 상황을 만들어낼지 예의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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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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