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마카오에 초호화 카지노 호텔 ‘윈 팔레스’가 문을 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재벌 스티브 윈이 마카오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초호화 카지노다. 마카오반도에 있던 기존의 윈 카지노보다 훨씬 더 크고 호화로운, 1706개 객실을 갖춘 카지노 호텔이다.
윈 팔레스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카지노 호텔이 올라가고 있다. 스티브 윈의 맞수인 셸던 아델슨 라스베이거스 샌즈 회장이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신축 중인 초호화 카지노 호텔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명물인 파리스호텔과 같이 실물 크기의 50% 사이즈인 ‘짝퉁’ 에펠탑을 세운 ‘파리지앵’ 카지노로 9월 13일 개관 예정이다. 우리와 같은 중추절(中秋節·추석) 연휴를 앞두고 엄청난 중국인 ‘두커(賭客·도박관광객)’들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도박시장 마카오를 잡기 위한 미국 카지노 재벌들의 경쟁이 뜨겁다. 주인공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전설인 스티브 윈과 셸던 아델슨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격돌한 바 있는 두 카지노 재벌은 이미 마카오에서도 한 차례 격돌한 바 있다. 각각의 대표작인 윈 마카오와 베네치안 마카오를 통해서다. 윈 팔레스와 파리지앵이 모두 개관하면 양자 간의 마카오 2차 대전이 불가피하다.
윈 팔레스로 포문을 연 스티브 윈은 ‘윈’이란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카지노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플라밍고호텔로 라스베이거스를 개척한 마피아 벤저민 ‘벅시’ 시겔, 시저 팰리스와 서커스서커스의 제이 사르노, 전설적인 카지노 사냥꾼인 MGM 그랜드의 커크 커코리언과 같은 반열에 있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계의 대부(代父)다. 올해로 74세인 스티브 윈은 1942년 빙고게임장을 운영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동산 중개업 등으로 벌어들인 돈을 밑천 삼아 1973년 라스베이거스의 골든너겟호텔을 인수하면서 업계 최연소로 카지노시장에 들어섰다.
셸던 아델슨의 선공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지, 트레저아일랜드, 벨라지오, 윈, 앙코르 등 초호화 카지노 호텔은 모두 스티브 윈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전설적인 카지노 호텔들이다. 특히 스티브 윈은 미라지의 화산쇼, 트레저아일랜드의 해적쇼, 벨라지오의 분수쇼 등으로 라스베이거스를 단순 도박장에서 쇼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한 명소로 재탄생시켰다. 스티브 윈은 2002년 마카오 정부가 카지노 독점체제를 허물고 시장을 외국 업체들에 개방해 과점체제로 바꾸자 셸던 아델슨 등과 함께 도박장 개설허가권을 따냈다.
하지만 마카오 시장에서 좀 더 행동이 빨랐던 것은 셸던 아델슨이다. 올해 83세인 셸던 아델슨은 1933년 미국에서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택시기사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신문판매를 시작으로 사탕자판기 등 별별 사업을 다 벌이다가 1979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Comdex)’를 개최하며 전시컨벤션 사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를 통해 라스베이거스는 단순 도박도시에서 전시컨벤션 산업도시로 거듭났다. 이후 노후한 라스베이거스 샌즈 호텔을 인수한 후 허물고 재건축해 초호화 베네치안호텔로 탈바꿈시킨 카지노 업계의 살아 있는 거물이다.
마카오에 최초의 라스베이거스식 카지노를 선보인 것도 셸던 아델슨이다. 2004년 마카오반도에 샌즈 카지노를 열면서다. 마카오 정부로부터 독점권을 부여받아 사실상 마카오 카지노를 지배해온 리스보아 카지노의 스탠리 호에 맞서는 최초의 시도였다. 스탠리 호가 1962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40년간 독점해온 마카오의 카지노는 1000실 미만 중소규모 개별 호텔 내 골방에서 도박을 하는 형태와 비슷했다. 반면 셸던 아델슨이 도입한 라스베이거스식 카지노는 탁 트이고 개방된 공간에서 하는 소위 ‘대형마트’ 형태의 메가 카지노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마카오에 안착한 셸던 아델슨은 코타이스트립에 집중 투자를 결정하며 또 한 번 지형을 바꾼다. 코타이스트립은 마카오반도 아래의 콜로안섬과 타이파섬 사이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다. 오래된 역사 유적들과 크고 작은 주택들이 밀집한 마카오반도에서는 대형 개발지를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코타이스트립은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어 초대형 건물을 신축하기가 쉽다. 또 주택지와 멀찌감치 떨어져 카지노 입점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마카오의 관문인 마카오 국제공항도 타이파섬의 해상을 매립해 만들었다.
이 매립지를 카지노 호텔들이 집중한 라스베이거스스트립과 같이 만들기로 결정한 셸던 아델슨은 2007년 코타이스트립 한가운데에 베네치안 카지노를 세웠다.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안 카지노를 거의 그대로 본뜬 복사판이었다. 3000개 객실의 초대형 호텔과 800개 게임테이블을 갖춘 초대형 라스베이거스식 카지노다. 일례로 지난 40년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리스보아 카지노는 모두 합쳐 2362실에 불과하다. 셸던 아델슨이 아내와 여행 중 반했다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풍광을 그대로 본뜬 베네치안 카지노는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 두커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마카오가 2007년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 도박도시로 떠오른 것도 베네치안 카지노 덕분이다.
스티브 윈의 추격
사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한 수 아래로 처졌던 셸던 아델슨이 베네치안을 앞세워 신흥 시장인 마카오의 판을 뒤흔들자 스티브 윈은 비상이 걸렸다. 스티브 윈은 2006년 마카오반도에 윈 마카오를 건설하면서 뛰어들었다. 마카오 카지노를 40년간 지배해온 스탠리 호의 리스보아 카지노 바로 앞이었다. 베네치안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라스베이거스의 윈 카지노를 그대로 본뜬 복사판이었다. 스티브 윈의 주특기인 분수쇼도 카지노 앞에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윈 바로 뒤에 자매호텔인 앙코르까지 세워서 윈, 앙코르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스티브 윈의 마카오 투자는 좀 뒤처진 감이 있었다. 마카오 카지노 산업의 주도권은 셸던 아델슨이 코타이스트립에 집중한 이후 기존의 마카오반도를 떠나 코타이스트립으로 넘어간 상태다. 베네치안의 성공에 따라 스탠리 호의 외아들인 로렌스 호가 하얏트, 하드록호텔 등으로 구성된 ‘시티 오브 드림’ 카지노를 세웠다. 다른 한편에는 홍콩의 부동산 재벌 뤼즈허(呂志和)가 베네치안 카지노와 맞먹는 갤럭시 카지노를 세우는 등 마카오 카지노의 주도권은 이미 코타이스트립으로 옮겨간 상태다. 마카오 반도의 카지노는 후지고 한물간 취급을 받았다.
베네치안 카지노의 성공 이후에도 셸던 아델슨은 구획정리가 잘된 코타이스트립에 투자를 집중하는 ‘올인’ 전략을 택했다. 베네치안 카지노 바로 남쪽에 최고급 포시즌호텔로 구성된 ‘더 플라자’ 카지노를 세웠다. 베네치안 카지노 동쪽에는 쉐라톤, 콘래드, 홀리데이인, 세인트레지스 등 세계적 브랜드의 호텔들로 구성된 ‘샌즈 코타이 센트럴’을 개척했다. 홍콩섬에서 마카오반도를 거치지 않고 코타이스트립으로 직접 들어오는 고속페리선도 띄웠다. 9월 13일 개관 예정인 파리를 본뜬 파리지앵 카지노는 더 플라자 카지노의 남쪽에 들어서는 대형 카지노다. 셸던 아델슨이 코타이스트립의 핵심 요지를 완벽하게 접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윈 팔레스는 마카오 시장에서 한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은 스티브 윈이 신흥지역인 코타이스트립에 처음 도전하는 야심작이다. 하지만 마카오에서 기존의 구도를 반전시키기에 여러 형세가 녹록지 않다. 우선 경쟁이 치열하다. 마카오 카지노를 40년간 독점해온 스탠리 호의 외아들인 로렌스 호는 코타이스트립에 할리우드를 테마로 한 ‘스튜디오 시티’란 대형 카지노 호텔을 지난해 10월 열었다. 초대형 카지노 호텔 한가운데를 뻥 뚫어서 돈을 버는 것을 뜻하는 ‘8’자를 새긴 건물이다.
이 밖에 리스보아 카지노를 운영해온 스탠리 호의 SJM은 윈 팔레스의 바로 옆에 기존 리스보아보다 한 단계 위의 ‘리스보아 팔레스’란 신규 카지노 호텔을 오는 2017년 선보인다. 윈 팔레스를 직접 겨냥한 토종 카지노다. 미국계 MGM 역시 오는 2017년을 목표로 코타이스트립에 새 카지노 호텔을 한창 신축 중이다.
반면 중국과 마카오 당국의 정책에 따라 사업환경은 녹록지 않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반부패 사정 이후 마카오를 찾는 두커는 현저하게 감소한 상태다. 실제 6개 허가권자들이 운영하는 마카오 내 35개 카지노의 지난해 매출은 288억달러(약 32조3000억원)에 그쳤다. 2013년 450억달러(약 50조5000억원)로 정점을 찍은 직후 2014년 439억달러(약 48조5000억원)로 하락한 데 이어 3분의 1 가까이 급락한 수치다. 반부패 정책에 따라 마카오에서 사용하는 신용카드 등의 모니터링이 강화됐다. “마카오의 카지노 의존도를 줄이라”는 중국 당국의 방침에 따라, 신규 카지노의 경우도 카지노 테이블의 수량 허가가 과거에 비해 훨씬 까다로워졌다.
불야성 마카오 최후의 승자는
실제 스티브 윈의 윈 팔레스는 새로 개관하며 카지노 테이블 쿼터를 따내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감독 당국에서 100테이블밖에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 이에 윈 팔레스는 기존의 마카오반도에 있던 윈·앙코르 카지노에서 250테이블을 떼와서 350테이블로 윈팔레스를 열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스튜디오 시티 카지노 역시 당초 400테이블을 목표로 개장했으나 마카오 정부에서 200테이블만 허가해줬다. 올 초 50테이블을 추가로 늘려 250테이블을 확보할 수 있었다.
카지노는 테이블 수가 많고 손님들이 북적댈수록 소위 ‘배당률(당첨률)’을 높일 수 있어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구조다. 일례로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영업성적이 저조한 것도 절대적인 규모가 작아서다.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서울 워커힐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경우 테이블 수가 90개에 불과해 구멍가게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셸던 아델슨이 베네치안 카지노를 앞세워 판을 뒤집을 정도로 인기를 끈 것도 규모가 크고 잭팟이 잘 터진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마카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스티브 윈은 “터무니없고 웃긴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
반면 셸던 아델슨은 “나의 마카오 도박업 면허는 특혜지 권리가 아니다”고 말하며 줄곧 당국에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여왔다. 또한 셸던 아델슨은 동양적인 풍수(風水)를 중시하는 데 반해 스티브 윈은 풍수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스티브 윈과 셸던 아델슨은 사석에서는 ‘친구’라고 부르는 사이지만 마카오 도박업에 대한 태도는 180도 다르다. ‘불야성(不夜城)’ 마카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