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시안에 완공된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공장. ⓒphoto 삼성
지난해 중국 시안에 완공된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공장. ⓒphoto 삼성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버스’에 장착해오던 삼성SDI의 차량용 전기 배터리 탑재를 전면 중단시켰다. 삼성SDI는 그동안 중국 1위 버스·트럭 제조사인 중국 위퉁(宇通)과 10위권 트럭 제조사 포톤(福田) 등 10여개 자동차 기업에 중국 시안공장에서 만든 차량용 전기 배터리를 납품해왔다. 하지만 이들 중 전기버스를 생산하는 중국 업체들이 삼성SDI의 전기버스용 배터리 사용을 중단해버렸고, 이로 인해 삼성SDI 전기버스용 배터리 납품 역시 전면 중단돼버렸다. 지난 7월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한 SUV 전기자동차를 생산해오던 중국 ‘장화이기차(JAC)’가 삼성SDI의 ‘중국 정부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 업체 탈락’을 이유로 삼성SDI 배터리 탑재 SUV 전기자동차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는 사실은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전기버스를 생산하는 중국의 다른 자동차 업체들까지 삼성SDI 배터리 탑재를 중단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는 삼성SDI의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공장 관련 취재 중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SDI 측 역시 “현재 중국 자동차 기업에 공급하던 전기버스 탑재용 삼성SDI의 전기 배터리 납품이 중단된 상태”임을 인정했다.

전기버스용 삼성SDI 배터리가 전면 납품 중단된 이유는 장화이기차와 달리 보조금 지급 중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전기버스용 배터리의 납품 규모 역시, 자동차 1800여대분의 배터리가 납품 중단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화이기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수억달러를 투자해온 삼성SDI(사장 조남성)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 폭발과 화재 위험성을 내세워 ‘차량용 삼원계 전기 배터리(리튬 배터리의 한 종류)를 탑재한 전기버스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내용은 지난

2월쯤 언론을 통해 한국에 알려졌다. 이 내용이 알려지며 중국 자동차 기업에 삼원계 배터리를 납품해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실제 ‘삼성SDI 등 한국 기업의 전기버스용 배터리 납품을 중단시켰다’거나 ‘납품을 중단시킬 예정’이라는 내용은 그동안 확인된 적이 없다.

시안공장에서 생산해 중국 자동차 기업들에 공급해오던 삼성SDI의 전기버스용 전기 배터리 납품이 전면 중단된 사실은 기자의 이번 취재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1~2월 중 납품 전면 중단 가능성 커

삼성그룹은 지난해 10월, 2억달러를 들여 산시성 시안에 삼성SDI의 차량용 전기 배터리 공장을 완공했다. 2020년까지 시안 공장의 전기 배터리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총 6억달러를 쓴다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SDI는 이 시안공장에서 차량용 전기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는데, 주력 생산 제품 중 하나가 전기버스용 배터리로 알려져 있다. 이 시안공장에서 생산된 전기 배터리 대부분을 중국 자동차 기업들에 납품해왔다. 삼성SDI는 현재 중국 시안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용 배터리를 구체적으로 몇 곳의 중국 자동차 기업에 납품하는지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고객사(중국 자동차 기업)가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한 중국 기업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6만여대의 상용차를 판 중국 1위 버스·트럭 제조사 위퉁(宇通)과 중국 내 10위권 트럭 업체 포톤(福田) 등 10여개 중국 자동차 기업에 차량용 전기 배터리를 납품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자동차 기업에 공급되던 전기버스 탑재용 삼성SDI의 전기 배터리 납품이 정확히 언제부터 중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삼성SDI 측은 “정확한 납품 중단 시점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올 1월 말에서 늦어도 2월 중순부터 납품이 전면 중단됐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중단 언급’이 알려진 시점이 지난 1월 말에서 2월 중순이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연 4만대에 이르는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시안에 짓는 등 대규모 친(親)중국 투자를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왜 자신들이 생산하는 전기버스에 삼성SDI의 전기 배터리 탑재를 전면 중단한 것일까.

현재 삼성SDI가 생산·판매하는 자동차용 전기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다. 삼성SDI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상당수 차량용 전기 배터리 기업들도 삼원계 전기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국적의 차량용 전기 배터리 기업 중 70% 정도는 ‘LFP 방식의 전기 배터리’를 생산·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량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크게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니켈·카드뮴·망간을 이용한 양극재를 사용한 것이 삼원계 배터리다. 반면 리튬인산철을 사용해 양극재를 만든 것이 LFP 배터리다. 일반적으로 삼원계 배터리가 LFP 배터리에 비해 압축률과 에너지 밀도가 높아 효율성이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photo 삼성SDI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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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홍콩 전기버스 폭발이 빌미

이런 상황에서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가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폭발했다. 사실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의 화재도 몇 건 보고된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홍콩에서 터진 삼원계 배터리 장착 버스 폭발은 그동안 보고됐던 LFP 배터리 장착 전기버스의 화재와는 그 양상이 사뭇 달랐다. 당시 전기버스의 폭발 강도와 전소 속도가 LFP 배터리 장착 전기버스의 화재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을 보인 것으로 중국 당국이 판단한 것이다.

2차전지·태양광 관련 기업 정보제공업체인 SNE리서치의 2월 1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LFP 배터리 장착 전기버스의 경우 보통 10~15분 정도 화재가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발생한 삼원계 배터리 장착 전기버스 폭발) 화재는 워낙 빨리 진행돼 소방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12m 길이의 버스를 모두 태우고 뼈대만 남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중국 언론이 ‘폭연(爆燃)’으로 표현할 정도의 폭발과 화재로 버스가 수초도 되지 않아 화염에 휩싸였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포함돼 있다.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의 화재보다,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가 훨씬 빠른 속도로 타버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당시 폭발한 버스는 평가·검증을 마치고, 2016년 초 출시돼 대부분 대중교통용으로 공급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버스 폭발에 주목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다가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호주의 정책’이 작용했다는 시각도 크다. 앞서 말했듯 중국 국적의 차량용 전기 배터리 기업 약 70%가 LFP 배터리를 만들고 있다. 중국 전기 배터리 기업들도 삼원계 배터리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아직 한국과 일본 기업의 기술력에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중국 국적의 차량용 전기 배터리 기업들이 삼원계 배터리 기술을 완전히 습득해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출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업계 분위기와 여론을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의 삼원계 배터리 탑재 전기버스의 보조금 중단이 보호주의 정책의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 있다. 재미있게도 지난해 12월 폭발한 전기버스의 삼원계 배터리가 중국산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올 1월 말 중국 정부가 “중국의 삼원계 배터리 개발이 늦고, 버스에 사용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이유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곤 “높은 안전 기준과 평가 방법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 평가 기준이 마련되기 전에는 삼원계 리튬 전지를 적용한 버스를 신에너지 차량 목록에 올리는 것을 중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초 중국 정부가 꺼내든 이러한 입장은 직접적 표현을 자제했을 뿐 ‘삼원계 배터리 탑재 전기버스에 대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임을 공식화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높은 안전 기준과 평가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혀왔던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올해 중순 돌연 “일부 삼원계 배터리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새로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상급 정부 기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전기버스 가격의 최대 약 80%를 구매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현재 중국에서 판매되는 전기버스의 가격에서 전기 배터리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정도다. 전기버스를 생산하는 중국 자동차 기업이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가격 경쟁력을 잃는 구조다. 보조금을 받기 힘든 삼원계 배터리 탑재 전기버스를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삼성SDI 납품 중단 규모 함구

삼성SDI 측은 이번 납품 중단에 따른 매출액 감소와 영업 손실 규모에 대해 “대외비”라며 함구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납품 중단된 전기버스 탑재용 배터리의 일부를 현재 전기 승용차용으로 돌려 납품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납품이 전면 중단된 전기버스용 배터리 전량을 삼성SDI가 (전기)승용차용으로 돌려 중국의 다른 자동차 기업들에 모두 납품하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 말한 중국 ‘장화이기차(JAC)’처럼 삼성SDI가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 업체’에서 탈락한 것을 이유로, 중국 자동차 기업들 중 일부에서 삼성SDI 배터리를 장착해오던 전기승용차 생산까지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중국 자동차 기업 중 삼성SDI 전기승용차용 배터리까지 납품받지 않는 상황에서 전기버스용 배터리 전량을 승용차용으로 전환해 납품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SDI 관계자는 “노력 중이고 더 이상은 대외비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안전성’을 내세운 중국 정부, 특히 중국의 자국 기업 보호주의 정책까지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버스용 배터리까지 납품 중단되며 삼성SDI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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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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