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 SK네트웍스 최신원 회장 /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 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 SK네트웍스 최신원 회장 /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 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 ⓒphoto 뉴시스

면세점 시장이 올해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관세청이 쥐고 있는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확보를 위해 삼성그룹·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과 롯데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맞붙었다. 지난 10월 4일 마감된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입찰에 이들 다섯 개 대기업이 특허신청서(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며 본격 경쟁에 돌입했다.

관세청이 이번에 추가로 허가할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영업권)은 총 4장이다. 대기업 몫 3장, 중소·중견기업 몫 1장이 배분될 예정이다. 즉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과 롯데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다섯 개 대기업이 3장의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놓고 싸우는 셈이다. 돌발 변수가 없다면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주인은 12월에 결정된다.

올해 초만 해도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 전쟁에 한화와 두산그룹도 가세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두 그룹 모두 지난해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권 입찰에 뛰어들어 관세청으로부터 신규 사업권을 따냈다. 이후 지난해 12월 한화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한화갤러리아면세점63’을, 두산은 지난 5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 두산면세점 매장을 여는 등 면세점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올해 추가될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입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여의도 한화갤러리아면세점63과 동대문 두산타워 두산면세점이 개장과 함께 심각한 실적 악화에 빠지면서 두 그룹의 부족한 면세점 운영 능력이 그대로 노출됐다. 서울시내 면세점 운영능력과 경쟁력 등에 문제가 떠오르며 결국 한화와 두산은 최근 문을 연 면세점의 영업활성화와 안정화를 이유로 이번 입찰 전쟁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5 대 3’ 낮아진 경쟁률

이렇게 되면서 그동안 7 대 3으로 예상돼왔던 이번 입찰 경쟁률이 5 대 3으로 대폭 낮아졌다. 이번에 특허권 확보에 실패할 경우 지난해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권 입찰에 탈락한 기업들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이유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될 12월까지 3달이나 남았지만 벌써 경쟁 기업들 간 대결구도와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가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전쟁에 뛰어든 대기업 5곳 모두 면세점 특허권을 자신들이 가져가야 한다는 나름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롯데와 SK가 특히 절박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롯데는 잠실롯데월드면세점 특허권 연장에 실패하며 이 특허권을 신세계에 뺏겼다. SK 역시 광장동 워커힐면세점의 특허권 만료를 앞두고 두산에 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뺏겼다.

결국 SK는 24년간 영업해온 워커힐면세점을 지난 5월 폐점했고, 롯데 역시 5000억~6000억원 가까운 연매출을 올리던 알짜 잠실롯데월드면세점을 지난 6월 폐점했다. 롯데와 SK는 영업이 중단된 롯데월드면세점과 워커힐면세점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하는 상황이다. 롯데와 SK는 폐점한 잠실롯데월드면세점과 워커힐면세점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등을 내세우며 신규 면세점 특허권을 어떻게든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

롯데는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면세점 업계 부동의 1위다. 그런 롯데가 지난해 서울시내 면세점 운영 경험이 전혀 없던 신세계에 특허권을 뺏기며 체면을 구겼다. 여기에 신동빈 회장이 검찰의 수사까지 받고 있다. 신 회장으로선 그의 경영권 기반이 돼주고 있는 일본 주주들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할 상황이다. 잠실 롯데월드면세점이 지난해 특허 재승인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신격호·신동주 vs 신동빈 회장 간에 벌어진 신씨 오너 간 경영권 다툼과 이 과정에서 고착화된 ‘롯데=일본 기업’ 이미지다. 또 검찰 수사 과정에서 롯데그룹과 신씨 오너들의 불법성 짙은 각종 행위들이 드러나며 여론도 악화됐다.

지난해 11월 잠실 롯데월드면세점 특허권을 신세계에 뺏긴 후 신동빈 회장이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99%가 나 때문”이라고 했을 만큼 신 회장 스스로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이로 인해 롯데에 잠실롯데월드면세점 특허권 확보는 검찰 수사에 대한 대응만큼이나 중요한 그룹 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이를 보여주듯 면세점 입찰 신청이 시작된 지난 10월 4일 오전 9시, 롯데는 그 어느 기업보다 일찍 도착해 가장 먼저 신청서 접수에 나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전쟁이 롯데그룹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면세점 특허권 전쟁 3라운드에서 롯데가 살아남느냐, 다시 추락하느냐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업계 1위인 롯데의 면세점 특허권 재확보 여부에 따라 시장 판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SK그룹도 롯데만큼 다급하다. SK그룹은 지난 5월 광장동 워커힐면세점이 폐점하면서, 면세점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돼버렸다. SK그룹에 12월 결정될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이 얼마나 절박한지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관세청의 면세점 특허권 입찰 신청이 마감된 다음 날인 10월 5일, SK그룹은 조선·동아·중앙일보와 경향·한겨레신문 등 주요 일간지 1면 모두에 ‘SK워커힐면세점이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라는 대형 광고를 같은 크기로 전격 게재했다. 주요 일간지는 물론 경제신문들 1면에도 똑같은 광고를 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SK, 공격적인 광고전

SK는 SK네트웍스를 내세운 SK그룹 장자 SK네트웍스 최신원 회장이 이번 입찰전을 주도하고 있다. 아버지 고(故) 최종건 회장이 마지막으로 벌인 사업이 광장동 워커힐호텔 인수였다. 이로 인해 최신원 회장은 워커힐호텔과 연계된 워커힐면세점 사업에서 쉽게 손을 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 시각이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면세점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두산그룹에 밀려 워커힐면세점 특허 재승인에 실패하면서 최신원 회장은 물론, 사촌인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 SK 최씨 오너들의 자존심이 많이 구겨진 상태다.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서울 강남권 도심에 시내 면세점을 열겠다’고 밝힌 4곳의 경쟁 기업과 달리, SK는 폐점 상태인 서울 강북권 동부 외곽 광장동 워커힐면세점을 다시 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SK는 경쟁 기업들이 현재 서울 도심권에 운영 중인 시내 면세점에 대해, 광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법주차 등 교통대란과 저가 쇼핑 관광 이미지, 화장품과 명품 일색’이라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면세점 특허권 확보를 위해 공격적 전략을 들고나온 것이다. SK의 이 전략이 어떻게 작용할지도 이번 면세점 입찰 전쟁의 주요 포인트가 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롯데와 SK만큼이나 애가 타는 곳으로 꼽힌다.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전쟁 3라운드에 발을 들여놓은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과 롯데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과 달리 유일하게 서울시내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고, 서울시내 면세점을 한 곳도 갖고 있지 않다. 지난해 입찰에서도 탈락했을 만큼 면세점 경쟁에서 참패해왔다. 이는 현대백화점 정지선 총괄회장에 대한 평가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이번 입찰전 역시 현대백화점그룹에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삼성그룹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다시 손을 잡은 5촌 정몽규 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과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삼성동 무역센터에 면세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역시 삼성동 현대아이파크타워에 면세점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범현대가 정씨 오너들 간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삼성동에는 이미 롯데그룹이 오래전부터 시내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관세청이 현대백화점그룹과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모두에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주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입찰에서 이들 모두 면세점 특허권을 따게 되면 삼성동, 특히 무역센터를 중심으로 400m 안에만 시내 면세점이 3개가 된다. ‘관세청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구설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이 문제는 사실 현대백화점그룹만의 고민은 아니다.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도 마찬가지다.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은 지난해 7월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 전쟁 1라운드 당시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서울 용산역 HDC신라면세점 특허권을 따냈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 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차지하겠다며 다시 뛰어들었다. 이런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에 관세청이 다시 특허권을 줄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더구나 이 두 기업이 연합한 용산 HDC신라면세점은 실적 악화 등이 불거지고 있다. 애초 기대한 것보다 운영상태 또한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 빠져 있다.

삼성동에 면세점 3개나 들어설까

신세계그룹 역시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이미 관세청으로부터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따낸 곳이다. 서울시내 면세점 경험이 전무했던 신세계가 특허권을 따면서 지난해 시장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더구나 그렇게 따낸 면세점 사업권으로 지난 5월 문을 연 서울 중구 신세계 면세점은 부실한 경영 실적이 드러나고 있다. 벌써 175억3500만원(반기 기준)의 영업적자를 냈을 만큼 부실한 면세점 경영능력이 드러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신세계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에 또다시 서울시내 면세점을 만들겠다고 신청서를 낸 것이다.

신세계 역시 혈족 간 면세점 전쟁을 벌이고 있다. 범현대가의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 vs 현대산업개발그룹 정몽규 회장의 구도처럼, 범삼성가의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vs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내외종 간 대결 구도다. 서울시내 면세점을 둘러싼 혈족 간 대결에 관세청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도 관심이 커지는 부분이다.

삼성·현대산업개발그룹 연합군과 롯데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이 뛰어든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전쟁 3라운드. 재벌가의 자존심 싸움판이 된 이번 면세점 전쟁 3라운드에서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 유통업계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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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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