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삼성전자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사장)이 갤럭시노트7을 공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삼성전자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사장)이 갤럭시노트7을 공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들고 다니는 비싼 폭탄’ 등 조롱거리로 전락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갤럭시노트7이 사상 최악의 스마트폰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단종됐다. 지난 8월 2일 뉴욕에서 첫 공개 후 8월 19일 공식 판매를 시작했지만 한국과 미국, 중국,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결국 지난 10월 11일 전 세계 소비자들과 휴대폰과 이동통신시장의 조롱과 비난을 견디지 못한 삼성전자가 생산과 판매를 모두 중단했다. 갤럭시노트7이 약 두 달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갤럭시노트7은 사라졌지만 삼성전자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10월 7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 당시 49조원이라던 매출은 47조원으로, 7조8000억원이라던 영업이익은 5조2000억원으로 12일 급히 수정했다. 4분기 실적 역시 좋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만 갤럭시노트7 폭탄에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협력사들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갤럭시노트7 개발과 제조를 위해 삼성전자에 각종 부품을 납품했다. 또 삼성전자로부터 상당한 양의 갤럭시노트7 부품을 주문받아 놓은 상태다.

지난 10월 17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관련 협력사들에 “납품받은 부품과 주문한 부품 재고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원·부자재와 생산단계에 있는 반제품에 대해서는 공정 원가를 계산해 보상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트7 폭탄 먹은 삼성전기·삼성SDI

이런 상황에서 일반 협력사들 이상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기업들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관련 삼성그룹 부품 계열사들과 범삼성가 기업들이다. 이들도 갤럭시노트7 제조에 필요한 상당량의 부품을 삼성전자에 공급했다. 또 갤럭시노트7이 삼성전자의 주력 판매 스마트폰이라는 점 때문에 삼성전자의 생산·판매 스케줄에 맞춰 갤럭시노트7용으로 공급하려던 부품과 원·부자재 등 재고까지 쌓아둔 곳들도 많다.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기가 대표적이다. 삼성전기는 갤럭시노트7 전용 카메라모듈과 메인기판, 와이파이(WIFI) 통신모듈, 적층형세라믹콘덴서(MLCC) 등 각종 부품을 만들었다. 상당한 양의 갤럭시노트7 부품을 삼성전자에 이미 공급했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을 주력으로 판매한다는 점 때문에 각종 부품의 재고와 부품 생산을 위한 원·부자재까지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현재 갤럭시노트7에 들어가던 부품은 생산하지 않고 있다”면서 “갤럭시노트7용으로 생산하던 부품은 갤럭시S7과 S6 부품 생산으로 돌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삼성전기 관계자는 “카메라 모듈과 기판, 통신모듈은 갤럭시노트7 전용 부품으로 나왔었다”며 “(갤럭시노트7 전용 부품은) 생산이 중지됐다”고 밝혔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납품한 전체 스마트폰 부품 중 갤럭시노트7용으로 생산한 부품 비율과 규모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갤럭시노트7 생산·판매 중단으로 발생한 부품 생산 손실과 실적(매출·영업이익) 손실 관련 내용이 지금은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갤럭시노트7용으로 납품 및 주문받은 부품과 재고, 또 부품 생산을 위한 원·부자재와 반제품’에 대한 삼성전자의 보상 문제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완제품으로 공급한 부품과 (이미) 주문받은 부품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보상하지 않겠냐”면서도 “(갤럭시노트7용 부품 제작을 위해 마련해 놓은) 원자재와 반제품 상태의 재고, 또 갤럭시노트7 판매량을 예상해 선발주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을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보상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와) 협상 중인 상태”라고 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갤럭시노트7 관련 실적 악화에 대해 “사실 계산은 잘 안 된다”며 “3분기 실적보다 올해 4분기 실적이 나와 봐야 (갤럭시노트7 사태로 악화된 실적 규모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에 가장 심하게 타격받은 삼성그룹 부품 계열사는 단연 삼성SDI다. 지난 9월 2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의 폭발 이유가 ‘삼성SDI가 납품한 배터리 때문’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삼성SDI를 갤럭시노트7 폭발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부품에서 삼성SDI의 배터리를 뺐다. 또 삼성SDI의 배터리가 들어간 갤럭시노트7을 중국 기업 ATL의 배터리가 들어간 갤럭시노트7으로 고객들에게 교환해 줬다. 삼성SDI에 대한 대외 신뢰도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SDI의 한 직원은 “삼성전자 측 조치가 삼성SDI의 실적 악화를 불러올 것은 분명하다”면서 “그런데 실적 악화보다 계열사와 계열사 구성원들의 사기를 이런 식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삼성SDI가 아닌 다른 기업이 만든 배터리가 들어간 갤럭시노트7을 고객들에게 교환해줬는데, 이것도 폭발하지 않았냐”며 “(삼성)SDI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미국 하와이에서 폭발한 갤럭시노트7. ⓒphoto 뉴시스
미국 하와이에서 폭발한 갤럭시노트7. ⓒphoto 뉴시스

삼성전자와 한배 탄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은 갤럭시노트7의 폭발까지 확인되면서 삼성SDI 내 일부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삼성SDI의 실적은 참담하다. 2015년 59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1분기와 2분기 영업적자가 무려 7038억원과 542억원에 이르고 있다. 갤럭시노트7은 삼성SDI의 3분기는 물론 특히 4분기 실적을 어닝쇼크 수준으로 추락시킬 폭탄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삼성전기·삼성SDI와는 조금 다른 입장을 보이는 삼성그룹 부품 계열사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에 갤럭시노트7 전용 5.7인치 곡면디스플레이를 납품했다. 현재 갤럭시노트7 전용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은 중단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언론홍보 담당 김호정 부장은 “갤럭시노트7용이 아니라 다른 제품용으로 전환해 생산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호정 부장은 “삼성전자도 갤럭시S7과 (중저가제품인) A8 비중을 높여 갤럭시노트7의 공백을 메우겠다고 하지 않느냐”며 “우리도 그쪽 패널을 공급한다”고 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갤럭시노트 시리즈 부품 생산량을 묻자, 김 부장은 “유연생산 체제라서 재고가 많지 않다”며 “그 부분도 (삼성전자로부터) 다 보상이 되고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밖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적 관련 질문에 김 부장은 “다른 제품이 그(갤럭시노트7)만큼 팔리기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영향은 있지만, 다른 제품 생산을 늘리면서 대응하는 거다”라며 “(삼성)전자랑 우리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만들어 놓았거나 이미 납품한 갤럭시노트7 디스플레이에 대해 삼성전자로부터 다 보상받기로 돼 있다는 말인지”를 묻자, 삼성디스플레이 김호정 부장은 “이미 지난주(10월 17일)에 공식적으로 다 발표했잖아요. 삼성전자에서”라고 했다. “아직 결정되거나 확정된 내용이 없다”거나 “협상 중”이라고 밝힌 다른 계열사와는 다른 의미의 말을 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다른 삼성그룹 부품 계열사와는 다른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최대주주인 삼성전자의 지분율이 84.8%에 이른다. 더구나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부회장직)가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표이사(사장직)까지 겸직하며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특이한 구조다. 이런 이상한 지배구조 속에서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와 한배를 타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와의 보상 협상과 관련해 다른 계열사와는 조금 다른 입장을 언급했던 김 부장에게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표이사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점이 (부품 관련) 보상 문제 협상에 영향을 미쳤냐”고 질문하자, 그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며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바로 보상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협상이 됐는지 안 됐는지 확인해 봐야겠다”며 앞서 한 말과는 다른 말을 하기도 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솔씨앤피 등 범삼성가도 비상

삼성그룹 계열사 외에 범삼성가 중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부품을 납품한 기업들도 있다. 삼성그룹 방계인 한솔그룹의 계열사 한솔씨앤피가 대표적이다. 한솔씨앤피는 모바일·IT 기기용 코팅재 업체로, 갤럭시노트7용 펜과 투명 커버를 납품한다. 삼성전자가 협력사에 납품·주문 물량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시름을 놓기는 했지만, 주식시장에서 특히 큰 충격을 받고 있다. 갤럭시노트7 판매가 시작된 8월 초만 해도 주당 1만7000~1만8000원대이던 주가가 갤럭시노트7 폭발 후 떨어졌고, 생산·판매 중단이 결정된 10월 11일에는 1만3850원으로 폭락해 버렸다.

한솔씨앤피의 삼성전자 의존도는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80%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장 전문가는 “현재 납품됐거나 주문해 놓은 부품에 대한 삼성전자의 보상보다, 향후 갤럭시노트7으로 기대됐던 매출과 이익 기대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게 이 회사에는 더 큰 충격이다”라고 했다. 그는 “갤럭시노트7 폭발과 단종이 한솔씨앤피에 대한 투자 심리를 지워 버렸고, 이 충격이 꽤 오래갈 수 있다”며 “범삼성가 기업이고 더구나 협력사 입장에서 삼성전자에 적극적인 보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시장 관계자는 “한솔씨앤피의 갤럭시노트7 관련 납품 규모가 삼성 계열사들에 비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삼성 계열사보다는 충격이 덜하지 않겠냐”는 점을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위탁 조립업체로 알려진 한솔테크닉스 역시 갤럭시노트7 관련 범삼성가 기업으로 꼽혔었다. 하지만 한솔씨앤피와 달리 한솔테크닉스는 베트남 법인을 통해 저가스마트폰 갤럭시J의 일부 조립 물량을 위탁받는 것으로 알려지며 충격을 털어내는 분위기다. 하지만 갤럭시노트7 폭발 여파로 삼성전자의 위탁물량 축소 가능성 제기와 베트남 계열사 채무보증 이슈가 겹치며, 8월 2일 대비 현재 주가는 약 30% 곤두박질쳤다.

‘폭탄 폰’이라는 사상 최악의 스마트폰으로 확인된 갤럭시노트7이 삼성그룹 부품 계열사와 범삼성가 기업에 여전히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충격파가 지난 3분기보다 다가올 4분기와 내년 1분기까지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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