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배당은 하지 않으면서 최순실 소유 재단에 거액을 낸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GS건설(왼쪽부터). ⓒphoto 뉴시스·GS건설 홈페이지
주주 배당은 하지 않으면서 최순실 소유 재단에 거액을 낸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GS건설(왼쪽부터). ⓒphoto 뉴시스·GS건설 홈페이지

최순실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나는 단초를 제공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이 두 재단은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실소유주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이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거액을 받아낸 통로 역할을 한 곳이다. 이 두 재단에 거액을 낸 기업, 특히 상장기업들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건넨 상당수 기업들은 살아 있는 정권과 그 주변 청와대 참모진의 강압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을 바라보는 시장과 투자자들의 시선은 시간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정권으로부터 어떤 형태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가가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에 두 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미르·K스포츠재단에서 드러난 불법 기부의 이면에 우리 기업들이 수십 년째 반복해오고 있는 끈적한 ‘정경유착’의 추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장과 투자자들 사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기업에 대한 비난 기류가 강해지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은 철저히 무시해왔던 일부 상장기업들이, 불법적 권력인 비선실세가 소유한 미르·K스포츠재단에는 거액의 돈을 아무렇지 않게 건넨 사실이 드러나서다.

전경련을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낸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기업은 총 53곳이다. 이들이 낸 돈만 총 773억원에 이른다. 총 773억원을 건넨 기업들 중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44곳이다. 뜻밖에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자금을 건넨 44개 상장기업 중 지난해 주주들에게 단 한 푼도 배당할 수 없다며, 배당을 거부했던 기업이 5곳이나 됐다. 배당을 거부했던 5개 상장기업 중에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10억원의 거액을 건넨 기업도 있다.

주주들에게는 단 1원의 배당금도 줄 수 없다면서, 미르·K스포츠재단에는 거액을 기부한 5곳은 대한한공, GS건설,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GS글로벌이다. 구체적으로 대한항공 10억원, GS건설 7억8000만원, 금호타이어 4억원, 아시아나항공 3억원, GS글로벌 2억5000만원을 각각 기부했다.

5년째 배당 0원 대한항공, 최씨 재단엔 10억

먼저 대한항공을 보자. 대한항공은 주식시장에서 ‘주주에게 특히 짠 기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기자의 확인 결과 대한항공은 2010년 1주당 500원(보통주 기준)을 배당한 이후 2011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 적자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동안 주주 배당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당기순이익은 적자지만 장사를 해 벌어들인 수익, 즉 영업이익은 거의 매년 엄청난 규모의 흑자를 기록해왔다. 참고로 2014년 영업이익이 3953억원에 이르렀고, 지난해인 2015년 영업이익은 무려 8831억원이나 됐다.

90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올린 기업의 당기순이익이 적자라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장사로 번 돈 모두가 어디론가 새나갔다는 의미다. 오너와 경영진이 기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어쨌든 2011년부터 주주들의 배당 요구를 거부했던 대한항공이 최순실씨 소유의 미르재단에 10억원을 건넸다.

시장과 주주들이 대한항공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2015년 적자를 이유로 배당을 거부했던 대한항공이 오너이자 대표이사인 조양호 회장에게는 급여라며 무려 27억500만원이 넘는 돈을 지급했다. 역시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지 않았던 2013년과 2014년에도 대한항공이 조양호 회장에게만큼은 각각 27억3500만원과 26억2800만원을 급여라며 꼭꼭 챙겨줬다. 이런 이유로 대한항공이 오너인 조양호 회장과 비선실세 최순실을 챙기다가, 추가로 돈을 요구하던 최순실과 이에 불만을 표시한 조양호 회장 사이가 틀어지며 한진그룹에 ‘탈’이 난 게 아니냐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흑자에도 불구하고 주주 배당을 거부해 투자자들의 원성을 산 기업이다. GS건설은 지난해 영업이익은 1221억원이고 당기순이익은 295억원이었다. 하지만 주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배당을 거부했다. GS건설도 투자자들 사이에 짠물 배당으로 꽤 악명이 높은 곳 중 하나다. 2012년 1주당 250원(보통주 기준)을 배당한 후 지금껏 배당을 하지 않고 있다. 2013년 당시 GS건설은 해외사업 부문의 대규모 손실이 드러났다. 이것이 회사 전체를 적자에 빠뜨리며 배당 거부의 이유가 됐다. 이렇게 배당을 중지한 후 GS건설은 2014년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2015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런 흑자에도 주주 배당을 계속 거부해왔다. 이런 GS건설이 최순실씨 소유의 미르·K스포츠재단에는 7억8000만원을 쾌척했다.

GS건설의 최대주주(지분율 10.89%)이자 대표이사는 허창수 회장이다. 청와대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로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주도한 게 전경련이다. 바로 이 전경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GS건설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허창수 회장이다. 허창수 회장의 이런 신분 때문인지 GS그룹은 GS건설 등 총 8개 계열사가 두 재단에 무려 42억원을 건넸다.

현재 GS건설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다. GS건설의 분식회계 의혹에 그동안 정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현재 주주들이 직접 소송에 나선 상황이다.

전경련 허창수 회장의 GS건설도 거액

GS그룹의 또 다른 상장 계열사 GS글로벌 역시 지난해 배당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순실 소유 재단에 2억5000만원을 그냥 줬다. GS글로벌은 지난해 당기순적자였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 GS글로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89억원에 이른다. 주당 85원을 배당한 2013년에 비하면 100% 이상, 2014년보다는 24% 가까이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이런 기업이 주주 배당은 외면한 채 최순실씨 소유 재단에만 거액을 건넨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4억원을 건넨 금호타이어와 3억원을 건넨 아시아나항공 역시 마찬가지다.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 역시 주주 배당에 인색하기로 악명이 높은 기업이다. 금호타이어는 2007년 주당 300원을 배당한 이후 2015년까지 8년 동안 주주들에게 배당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2007년 주당 150원을 배당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고 있다. 주주들은 철저히 무시한 채 최순실에게만큼은 통 크게 거액을 건넨 것이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773억원이라는 거액을 낸 기업들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청와대와 숨은 실세 최순실의 기세에 잘못된 행위임을 알면서도 거액을 건넸을 수 있다. 그럼에도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준 기업들을 향하는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정권에 상납한 것’이라거나 ‘주주들의 뒤통수를 친 배신’이라는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같은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낸 돈의 대가성 여부는 분명하게 가려져야 한다. 가뜩이나 미약한 주주 권리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또다시 무너졌음이 여실히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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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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