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photo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photo 연합

그가 아직 정식으로 집권하진 않았지만 벌써 세계 경제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제45대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70)가 꺼내들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정책과 운용 방향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선 기간 내내 주장해온 경제 정책과 운용 방향은 단순하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다. 큰 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켰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 기존 경제 정책과 협상은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앞으로 전개될 트럼프노믹스 폭풍 속으로 거세게 휘말려들 가능성이 크다.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의 주요 기업들과 산업계가 특히 심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5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전체 교역액 중 한국을 포함해 중국, 멕시코, 독일, 일본 등 5개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무려 43%에 이른다. 트럼프는 이 5개국에 대해 이미 “미국과 가장 불공정한 교역을 하고 있다”고 지목한 상태다. 더구나 이 5개국 중 한국과 독일,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친 대미 무역 흑자에 대한 불만과 함께, 미국의 재정 투입이 상당한 군사·방위 문제와 관련해 ‘안보무임승차론’까지 제기했을 정도다.

“자유무역협정이 미국 일자리를 없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정식 집권 후 한국과 미국 사이에 가장 민감한 사안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은 ‘한·미 FTA’ 전면 재검토 또는 재협상이다. 한국이 직접 개입된 자유무역협상은 아니지만 미국과 캐나다·멕시코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미국과 일본 주도로 칠레·호주·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이 참여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전면 재검토 및 재협상 역시 한국 산업계와 주요 기업들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자유무역협정들이 미국 제조업 공장을 해외로 빠져 나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의 입장이다. 한 세기 가까이 미국 산업과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 붕괴를 초래하는 데 자유무역협정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시대에 미국 제조업 재건과 일자리 확충을 위해 현재 발효됐거나 협상 중인 자유무역협정 모두 재검토하거나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극단적으로는 일부 자유무역 체제에서 탈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한국 산업계와 주요 기업들에 가해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의 대미 수출 수익성을 높여준 한·미 FTA가 졸지에 바람 앞의 등불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만약 한·미 FTA가 협정 정지 상태에 빠질 경우 향후 5년 동안 한국은 총 269억달러에 이르는 수출 손실과 24만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미 FTA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철강·자동차·전자전기·섬유 등의 산업을 중심으로 NAFTA 지역 멕시코와, TPP 지역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시설을 만들어왔다. 관세 혜택과 통관 절차 간소화 효과 등을 기대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상 대미 수출 기지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내건 경제 정책은 이들 지역에 부여됐던 관세와 통관 절차 혜택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 당선자의 강경한 목소리 역시 한국 산업계와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미국 내 제조업 관련 일자리 550만개가 사라졌는데 이 중 4분의 1이 중국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특히 미국으로 유입되는 모든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을 때리면 한국이 더 아픈 상황

2015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무려 3657억달러(유진투자증권)에 이른다. 전체 무역수지 적자의 49.6%가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당선자 입장에선 중국에 대한 무역 규제와 압박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석유화학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부품 소재·섬유·전자 등 각 산업별로 한국 기업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중국 투자를 진행해왔다. 중국을 주요 제품 생산 기지로 활용해 미국과 유럽 등지의 주요 교역국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강경한 주장은, 중국에 수출 생산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 주요 기업들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해외 유력 금융사와 경제연구소들은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한국 경제를 강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대표적이다. 지난 11월 10일 노무라증권은 ‘트럼프가 아시아에 의미하는 것’이란 보고서를 통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주요국 중 한국의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트럼프의 당선 전까지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2%로 전망했다. 하지만 당선 직후인 지난 11월 10일 2017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1.5%로 기존보다 무려 0.5%포인트나 낮췄다. 트럼프 당선 이후 아시아 국가 중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가장 크게 하락시킨 것이다.

대책 없는 현대·기아차 충격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산업이다. 한·미 FTA와 또 북미 국가 간 체결·발효된 NAFTA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봐온 것이 바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산업이다.

트럼프는 지난 3월 미시간 프라이머리를 통해 미국 자동차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만든 포드에 대해 “미시간주 고용 문제 악화를 불러온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이 기폭제로 작용해 “(미국 국적 기업이 만든) 멕시코산 자동차에도 35%의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NAFTA를 무력화시키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뿐 아니다. 한·미 FTA 중 자동차산업을 거론하며, 미국인 일자리 10만개가 사라지고 자동차산업 관련 무역적자만 160억달러(2015년 기준)에 이를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한·미 FTA를 통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입 관세는 4년 이내 무관세 조치를 받게 된다. 하지만 한·미 FTA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트럼프의 향후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따라 기존 내용이 충분히 수정되거나, 극단적으로는 폐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당장 한국의 현대·기아차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영업을 하는 주요 11개 자동차 기업 중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자동차의 비중이 가장 낮은 곳 중 하나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중 52.9%만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영업하는 11개 자동차 기업들의 평균 미국 현지 공장 자동차 생산 비율인 67.2%보다 매우 낮은 수치다. 특히 기아자동차의 경우 미국 생산량이 10%인 반면 멕시코 공장 생산량은 11%에 이른다. 한국 공장의 생산량은 48%나 된다.

완성차만이 아니다. 자동차부품 산업계와 기업들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한 멕시코로 한국의 자동차부품 기업들 역시 함께 뛰어들었다. 생산 공장을 짓고, 천문학적 설비투자를 감행했다. 기자의 취재 결과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모듈과 범퍼·램프, 현대위아는 엔진과 TM케이스, 현대파워텍은 변속기, 현대아이모스는 시트 생산시설을 멕시코에 만들었다. 또 성우하이텍과 동원금속, 동희, 세종공업 등 현대·기아차 부품 협력사들 역시 멕시코 투자를 감행한 상태다.

이들 외에 넥센타이어 역시 미국으로 수출되는 타이어 전량을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어 관세율 인상 시 손실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LG전자 수익성 악화

IT 관련 기업들 역시 충격이 클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 중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미국 국적 기업에 국한된 친기업 정책’이다. 트럼프와 그 경제참모들은 미국 국적 기업에 한해 법인세를 낮추는 정책 방향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또 환경규제를 풀어 미국 기업들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향도 제시돼 있다. 이를 통해 미국 IT기업, 특히 제조 분야인 하드웨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TV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16년 2분기 기준 각각 30.2%와 29.3%에 이른다. 이 덕분에 삼성전자 전체 매출 중 미주지역 매출이 무려 34.4%에 이른다. 이 비중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발생한 갤럭시노트7 폭발 사태로 인해 미국 시장에서 악화된 불량제품 이미지까지 겹치게 되면 트럼프 집권 이후 삼성전자가 받게 될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북미지역(사실상 미국) 매출이 LG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9%나 된다. 미국 내 스마트폰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이 본격화되면 주력 사업인 TV 등 디스플레이와 백색가전 제품의 미국 시장 가격 경쟁력까지 훼손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이후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 역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트럼프와 그 경제 참모들의 에너지 정책 핵심은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 완화다. 이 같은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통해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트럼프의 의중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는 탄소세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부분이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기간 중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여러 번 언급했다. 현재 미국의 에너지산업 특성상 굴뚝산업 성향이 강하고 제조업 연관성이 큰 화석연료 산업과, 한국·독일·중국 등 해외 기업 의존도가 큰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동시에 지원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자리 확충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고비용 체계인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해 보조를 확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석유·석탄·천연가스 산업의 보조금이 확대될 경우 신재생에너지 산업, 특히 태양광 산업의 충격이 클 수 있다.

방산·제약·헬스케어는 시장 확대 기회

암(暗)이 있으면 명(明)도 존재한다. 트럼프 집권 이후 한국 산업계와 기업 중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곳도 있다. 군수·방위산업계가 대표적이다. 당장 트럼프는 대선기간 중 한국과 일본·독일에 대해 안보무임승차론을 거론하며 방위분담금 증액을 주장해왔다. 한국·일본·독일뿐 아니라 다른 동맹국에 대해서도 방위비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동안 미국이 부담해온 동맹국 주둔 미군에 대한 국방비를 감소시키겠다는 의미다. 그 감소분만큼 동맹국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맹국들의 경우 무기 구입과 정비, 군수물자 구입 등의 부담이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군수·방위산업계와 관련 기업들엔 시장 확대 기회인 셈이다.

대선 기간 중 트럼프가 오바마케어 폐지와 약가 규제 무효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점은 제약산업과 헬스케어산업의 시장 확대 기회로 언급되고 있다. 특히 제약업체들의 수익성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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