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주완중 조선일보 기자
ⓒphoto 주완중 조선일보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이 정몽구 회장의 자녀인 오너 3세들, 특히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과 현대커머셜 정명이 고문, 현대이노션 정성이 고문에게 최근 몇 년간 ‘이상한’ 현금 배당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정의선씨 등 정몽구 회장 자녀들에게 노골적으로 ‘배당금 몰아주기’를 벌여온 정황이 짙다. 정(鄭)씨 오너가가 특정 계열사를 동원한 새로운 형태의 편법 재산 증식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2013년부터 2015년 배당까지 현대차그룹 몇몇 계열사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너 3세인 정의선 부회장과 정명이·정성이 고문의 지분이 많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마치 약속을 한 것처럼 일제히 현금 배당성향을 대폭 증가시켰다. 반면 같은 기간 정의선·정명이·정성이씨 남매의 지분율이 낮거나, 보유한 지분이 없는 상당수 계열사들은 현금 배당 성향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주 조금 인상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정의선·정명이·정성이씨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현대비앤지스틸 같은 일부 계열사는 흑자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일반주주에게 주던 현금 배당조차 2015년 갑자기 중단해 버린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 11월 23일 대신경제연구소가 ‘거버넌스 리포트(Governance Report) 현대자동차그룹’을 내놨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30대 그룹 평균 현금 배당성향(2015년 기준)을 26.9%라고 밝혔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의 총 현금 배당성향은 이보다 낮은 19.6%에 불과했다. ‘배당성향’은 배당성향이 높을수록 주주에게 이익을 많이 돌려줬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은 30대 그룹 평균보다 배당성향이 7.3%포인트나 낮다.

이렇게 일반주주들과 이익을 나누는 데 인색한 현대차그룹이지만, 유독 정의선 부회장과 정명이·정성이씨 등 정몽구 회장 자녀에게는 후하다 못해 노골적인 ‘퍼주기식 배당금 몰아주기’를 벌인 의혹이 짙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배주주(정의선)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지분 23.3%)와 이노션(2.0%)의 현금 배당성향이 각각 42.5%, 32.9%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현대글로비스 퍼주기 배당 의혹

기자는 현금 배당성향이 19.6%에 불과한 현대차그룹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현금 배당성향 혜택을 어떻게 누릴 수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정 부회장은 상장사 기준으로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전체 경영권 장악을 위한 정의선 부회장의 현금 창구로 사실상 사금고라는 비판이 크다.

정의선씨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23.29%다. 최대주주다. 재미있는 건 2013년 이후 현금 배당성향의 폭발적증가세다. 2013년과 2014년 현대글로비스의 현금 배당성향은 각각 16.2%와 13.0%였다. 그런데 2015년 배당성향이 갑자기 43% 가까이 폭증했다. 더 이상한 부분이 있다. 배당성향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기순이익이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의 당기순이익은 3472억7720만원이고 2014년에는 5762억7767만원이었다. 그런데 현금 배당성향을 갑자기 폭증시킨 2015년 현대글로비스의 당기순이익은 2645억4041만원밖에 안 됐다. 2014년과 비교해 수익이 절반 이하로 추락했고, 2013년 대비 76%밖에 안 됐다. 정의선씨가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는 수익은 폭락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금 배당성향과 총 배당금만큼은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이다.

정의선씨가 현대차그룹 지배를 위해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현대위아, 현대엔지니어링 등 6곳이다. 이들 계열사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정의선씨가 이들로부터 챙긴 총 배당금이 656억6100만원이다. 그런데 정씨는 656억6100만원 중 현대글로비스 단 한 곳에서만 261억9687만원을 챙겼다. 2015년 정씨가 챙긴 총 배당금 중 약 40%를 자신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 한 곳에서 가져간 것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낮은 배당성향과 무관하게, 정의선씨는 자신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 단 한 곳의 현금 배당성향만 높여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배당금 형태로 한 번에 챙겨 가는 것이다.

기자의 취재 결과 이 ‘배당금 몰아주기’가 정 부회장에게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정의선씨 친누나인 현대이노션 정성이 고문과 현대커머셜 정명이 고문에게도 똑같은 일이 현대차그룹에서 벌어졌다. 정성이씨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현대이노션(지분율 27.99%)의 최대주주다. 현대이노션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당기순이익이 줄었다. 그런데 역시 배당금과 배당성향만큼은 폭증했다.

2013년 총 배당금 72억원, 9%대이던 현금 배당성향이 2014년 126억원과 22.86%로 급증했다. 2015년에는 각각 180억원에 32.88%까지 폭증했다. 2년 만에 현금 배당성향을 265.3% 이상 폭증시킨 것이다. 배당에 인색한 현대차그룹에서 유독 정성이씨가 최대주주인 현대이노션만큼은 그룹 계열사 평균보다 13.3%포인트나 높은 현금 배당성향을 책정한 것이다.

정몽구 회장 차녀 정명이씨도 마찬가지다. 정명이씨는 현대차그룹 내 현대커머셜의 최대주주다. 자신이 33.33%, 남편 정태영 사장 16.67% 등 총 50%의 지분을 갖고 있다. 2013년 현대커머셜의 현금 배당성향과 총 배당금은 각 47.3%와 173억원이었다. 이것을 2015년 69.1%와 370억원으로 급증시킨 것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평균보다 정성이씨가 최대주주인 현대커머셜의 현금 배당성향이 무려 49.5%포인트나 높다. 정명이씨는 남편 정태영씨와 함께 현대커머셜 총 배당금 370억원 중 50%인 185억원을 챙겨갔다.

현대글로비스 “배당 몰아주기 답하기 곤란”

기자는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최근 현금배당 성향을 확인해 봤다. 정의선씨의 지분이 전혀 없는 HMC투자증권은 2014년 61.4%이던 현금 배당성향을 2015년 26%로 대폭 낮췄다. 특이한 건 HMC투자증권은 2014년 66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이 2015년 무려 504억원으로, 흑자폭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역시 정의선씨 지분이 전혀 없는 현대비앤지스틸의 2014년 배당성향은 5.14%였다. 그런데 2015년 38억원 흑자에도 배당성향이 0%, 즉 아예 배당을 중지해 버렸다. 정의선씨의 지분이 1.74%인 2014년 기아차의 배당성향은 16.7%다. 이것이 2015년 17.7%로 달랑 1%포인트만 올랐다. 현대차그룹 최대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의 2014년 배당성향은 16.6%였고, 2015년 19.9%로 불과 3.3%포인트 인상됐다. 현대건설과 현대모비스도 2014년 각각 17.8%와 13.4%이던 현금 배당성향이, 2015년 20.2%와 19.4%로 조금 인상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현대글로비스는 “배당성향은 매출 등 실적 결과에 의한 것으로 안다”며 “주주친화책과 정부의 경제 활성화 배당 장려 차원에서 한 부분”이라고 했다. 현대글로비스에 “비상식적 현금 배당성향과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배당금 몰아주기라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현대글로비스 홍보담당 강성곤 차장은 “설명하거나 답하기 힘든 내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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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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