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국채수익률 등 시장금리가 급등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은 1981년 11월 이후 장기적으로 하락했던 금리가 상승 추세로 전환된 것인지, 아니면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한 일시적 상승인지를 분석하기 바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역시 시중 금리가 트럼프의 당선 이후 오르고 있다. 이 같은 시중 금리 상승세가 앞으로도 더 지속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 정책들이 실현되는 데는 현실적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 점으로 인해 미국의 금리는 향후 다시 하락할 가능성 역시 높다. 한국의 금리 추세도 이와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저축률이 투자율을 계속 넘어서고, 기업의 자금 수요가 둔화되면서 은행권의 채권 매수 가능성이 늘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금리 상황 역시 중장기적으로는 하락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다.

기대만큼 되기 힘든 트럼프 경제의 한계

트럼프의 정책은 ‘총수요를 부양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출 면에서 국내총생산(GDP)은 민간 소비와 투자, 정부 지출, 순수출을 합한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결국 GDP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문을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의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해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다음으로 소득세를 인하해 소비를 부양하고, 법인세를 내려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수입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미국 국내 산업과 기업들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정책이 현실화하려면 미국의 수요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증가해 총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금리는 향후 기대되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선반영한다. 트럼프가 계획하고 있는 총수요 부양책으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최근 미국의 시중 금리가 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 7월, 1.36%까지 하락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미국의 국채(10년) 수익률이 최근에는 2.36%까지 급등했다. <표 1 참조>

문제는 트럼프가 그동안 공언했던 이런 경제 정책들이 실제 현실화돼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향후에도 계속 높아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선 정부 부문부터 살펴보자.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꼽혔던 것이 기업의 과잉투자와 가계의 과소비였다. 1997년 말에 국내총생산(GDP)의 141%였던 민간 부문 부채가 2007년에는 186%로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작되자마자 기업은 빠르게 투자를 줄였고 가계 역시 부채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소비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와 고정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5% 안팎으로 높은 만큼 민간 부문이 위축되면서 미국의 경제가 침체된 것이다. 2008~2009년, 2년 동안 미국은 실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더 이상의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려 경기를 부양했다. 이와 함께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과감한 통화정책도 병행했다. 이 결과 2010년 이후 미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부실해졌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이 높아졌다. 2007년 63%이던 부채 비중이 2012년 이후 100%를 넘어섰다. 2016년 2분기에는 105%를 넘었다. 이 점은 트럼프 정부가 구상해놓은 경제 정책을 실현시키기에는 향후 재정 지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또 미국 의회 역시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표 2 참조>

정부의 부채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GDP를 늘려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민간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증가해 정부의 지출이 줄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가계와 기업은 아직도 부채를 축소하는 과정에 있다. 먼저 GDP의 69%를 차지하고 있는 가계 소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낮다. 미국의 가구 실질소득이 2015년에 5만6516달러로 전년보다 5% 늘었다. 하지만 아직도 5만7909달러이던 1999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실질소득의 감소로 인해 가계는 금융회사에 돈을 빌려 소비를 늘려 왔다. 올해 들어 금리가 11%에 이르고 있는 신용카드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에 너무 앞서가는 주가 하락이 발생하는 등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게 되면 도리어 민간의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도 조심스럽게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자금 상황을 보면 2015년부터 기업들이 시중 자금 보유 주체로 돌아섰다. 기업들이 금융사에서 빌려 쓴 돈보다 저축한 돈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세계 무역시장 둔화, 인구고령화에 따른 소비위축 등으로 인한 설비투자 감소 등이 기업들의 자금 확보가 많아진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이미 공급과잉 상태에 있어 투자가 자연스럽게 위축된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초과공급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늘거나 공급을 줄여야 한다. 가계가 부실해졌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 이를 해소할 가능성은 낮다. 공급 측면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이다. 산업은 존재하지만 해당 산업 내의 기업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수급의 균형을 맞춰갈 것이다. 즉 트럼프가 기대하는 만큼 투자가 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 큰 것이다.

이런 점들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 성장이나 물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시장금리가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돈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가계와 기업

미국의 시중 금리가 급등하면서 한국의 금리와 환율도 크게 상승했다. 돈은 속성상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미국 금리가 높아지면 우리 금융시장으로 들어왔던 돈이 다시 미국으로 회귀하고 국내 투자자금도 미국 내 자산을 더 사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국고채(10년) 수익률도 지난 7월 1.36%에서 최근 2.18%로 상승했고, 원 ·달러 환율 역시 1090원에서 1180원까지 급등했다. 앞의 전망과는 달리 미국 경제성장률 혹은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게 되면 한국의 금리가 오를 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가계부채 이자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가 안정될 조짐을 보여준다면 한국의 금리는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 경제의 전체적 상황을 보면 저축률이 투자율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자금이 남아돌고 있는 상황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자 부진이 이어지면서 한국에서는 총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리고 이후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돼왔다. 앞으로도 저축률과 투자율의 차이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표 3 참조>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주식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가계 부문의 금융자산 역시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고용 지속성에 대한 불안심리가 높고 기대수명은 늘고 있다. 가계 부문이 미래의 소비를 대비해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즉 저축을 늘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 부문 역시 여전히 투자 환경이 개선된 것으로 보기 힘들다. 보호무역 강화를 내건 트럼프의 경제 정책상 한국 기업들의 투자 환경을 밝게 보기 힘들다.

사실 트럼프가 계획하고 있는 경제 정책 때문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의 많은 산업 영역에서 초과공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수요의 증가로 해소하기는 힘들다. 공급 측면에서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투자 환경이 더욱 불확실해진 상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한국의 기업들이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이 51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514조원이나 되는 이 돈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권의 채권 매수가 확대될 수 있고, 금리 역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은행은 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가계와 기업에 대출을 해주거나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한다. 최근 우리 경제 현황을 보면 가계의 보유 자금이 늘고 있다. 또 기업의 자금 부족 규모 역시 크게 줄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의 자금 부족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9% 정도였지만 올해 2분기에는 0.9%로 낮아졌다. 앞으로 기업이 자금 공급 주체로 전환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주식보다는 채권을 더 많이 사게 될 것이다.

1990년대 말 일본의 경제 상황이 바로 이러했다. 한국 경제가 일본 상황을 뒤따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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