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이 사람 뇌에 전극을 심어 로봇 팔을 무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photo 피츠버그대 홈페이지
2012년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이 사람 뇌에 전극을 심어 로봇 팔을 무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photo 피츠버그대 홈페이지

만약 생각한 내용을 키보드에 쓸 필요 없이 바로 뇌에서 컴퓨터로 옮겨주는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 미래에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이미 실험은 시작되었다. 최근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의 닉 램지 교수팀이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뇌 임플란트 수술을 실시해 컴퓨터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초로 성공도 했다. 성공의 열쇠는 뇌-컴퓨터 연결(BCI·Brain-Computer Interface) 장치. 이 장치는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글을 쓰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두뇌에 전극 이식해 컴퓨터에 뇌파 전송

지난 11월 14일(현지시각), 미국의 뉴스 전문 방송국 CNN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에 걸린 하네케 드 브라우너(60)라는 네덜란드인이 ‘뇌 임플란트’ 수술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되찾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루게릭병’으로 잘 알려진 ALS는 발병 직후부터 운동세포가 파괴되면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브라우너씨가 ALS 진단을 받은 것은 2008년. 그는 온몸의 근육은 물론 기도까지 마비돼 목에 관을 뚫어서 호흡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였다. 사지가 마비되었으니 의사 전달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 방법은 눈을 깜빡이거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정도였다. 이런 상태에서 그가 램지 교수로부터 뇌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건 지난해 10월. 교수팀은 환자의 두개골을 열고 뇌의 운동피질 영역에 머리빗처럼 생긴 작은 전극을 이식한 후 환자 가슴에 이식한 무선 송신기를 이 전극과 연결했다. 이 송신기는 다시 외부의 태블릿PC와 연결돼 뇌 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신호가 컴퓨터로 보내지는 구조였다.

이를테면 환자가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단어를 하나씩 선택하면 문장이 완성되는 방식인데, 이때 환자는 생각만으로 단어를 쓸 수 있다. 마우스처럼 화면의 문자 위로 움직이는 사각형(마우스 포인트)을 보고 환자가 문자를 하나씩 클릭(선택)하면 단어와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손을 움직여 문자를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어떤 글자를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면 뇌에서 그에 반응하는 전기신호가 발생하고, 그 신호를 컴퓨터가 읽어들여 해석하는 것이다. 일명 뇌-컴퓨터 연결(BCI) 기술로, 전문가 없이 사용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뇌의 운동피질에 전극을 성공적으로 연결했다고 해서 금방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에서 발생하는 어떤 신호가 특정 움직임을 나타내야 한다. 가령 ‘사랑이라는 글자를 선택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머리 한쪽에서는 ‘오늘 뭘 먹을까’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때 발생하는 뇌파는 여러 신호가 합쳐지게 돼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사랑을 선택하라’는 명령과 관계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글자를 선택하는 전기신호를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짜 성공을 하는 것이다.

브라우너씨가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나서 이 시스템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 걸린 기간은 197일. 숨쉬기조차 힘든 전신마비 환자인 그가 집에서 혼자 자신의 뇌파로 태블릿PC에 영문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한 글자를 나타내는 데 30초 정도 걸려 대화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전문가들은 전신마비 환자들이 의사 전달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기술은 이처럼 뇌에 전극을 이식하는 임플란트만 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아직은 신호 해석의 정밀도가 떨어지고 속도도 많이 느리지만, 더 많은 전극을 이용해 뇌 임플란트를 더욱 빠르고 정교하게 만든다면 머지않아 상용화도 바라볼 수 있다.

BCI 기술은 척수를 다쳐 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미국 에모리대학의 필립 케네디 교수가 1998년에 처음으로 전신마비 환자의 머리에 뇌 임플란트를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했고, 이를 계기로 2008년 미국의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이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심어 로봇 팔을 무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2년에 똑같은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해 로봇 팔을 움직이는 데도 성공했다. 과학계는 이번에 성공한 램지 교수팀의 연구가 ALS는 물론이고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뇌-컴퓨터 연결 방식 다양

램지 교수팀이 연구한 시스템은 BCI 기술의 연구 중 일부다. BCI에는 전극을 뇌에 이식하지 않고 뇌파측정(EEG) 장치를 두피에 붙여 뇌파를 읽는 방식이나, 두개골 내부에 이식은 하지만 대뇌피질까지는 건드리지 않는 근적외선을 이용해 뇌 혈류를 읽어내는 방식 등 다양한 기술이 있다. 현재는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뇌파를 읽어서 컴퓨터나 로봇, 드론 등을 조작하는 EEG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워싱턴대학의 라제쉬 라오 교수는 자신의 머리에 뇌파측정 장치를 뒤집어쓰고 동료 교수의 팔을 들어올리는 실험에 성공했다. 동료 교수의 두피에는 뇌 운동피질을 전기적으로 자극하는 ‘자기 자극 장치(TMS)’를 붙여 특정 신호를 받으면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로봇이 아닌 다른 사람의 팔을 움직이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람이 팔과 다리를 움직여 어떤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뇌의 작용이 가장 중요하다. 뇌가 전기신호로 근육에 운동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인간이 운동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BCI는 인간의 뇌와 기계를 연결한 후 뇌 신경신호를 기계의 명령어로 변환해 다양한 운동 능력으로 바꾸는 기술인 셈이다.

현재 연구 중인 BCI 기술은 이처럼 뇌파나 뇌세포의 전기적 신호를 읽어서 그중 특정 패턴을 입력 신호로 읽어 들이는 형식이다. 마음을 읽는 기적의 장치는 아니라는 얘기다. 뇌 임플란트 수술이 대중화되려면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뇌의 어떤 부위에 어떤 형태의 전극을 이식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반대로 밖의 신호를 뇌에 전달할 수도 있어야 하며, 측정한 뇌 전기신호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게 해석해내는 기술이 중요하다.

이러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인간과 기계가 하나 되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시력이나 청력을 잃은 사람도 정상인처럼 생활할 것이다. 모든 문제점이 하루빨리 해결되어 여러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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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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