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뉴호프 산부인과의 존 장 박사가 유전적으로 세 부모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다. ⓒphoto 이영완
지난 4월 미국 뉴호프 산부인과의 존 장 박사가 유전적으로 세 부모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다. ⓒphoto 이영완

지난 11월 3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세 부모 체외수정’이란 시술로 유전병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엄마의 유전자에 결함이 있을 경우 아이에게 유전병으로 대물림될 수 있는데,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팀과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은주 박사팀이 이 문제의 해결법을 찾았다. 그들이 제시한 유전병 차단 방법은 무엇일까.

핵심은 미토콘드리아 바꾸는 기술

지난 4월 6일 세계 최초로 엄마가 둘, 아빠가 한 명인 ‘세 부모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아브라힘 하산. 생후 7개월째인 하산은 현재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하산의 엄마는 원래 중추신경계 질환인 ‘리 증후군’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중추신경계를 악화시키는 이 병 탓에 지난 10년간 아이를 네 번 유산했고 어렵게 얻은 두 명의 아이도 6세, 8개월 만에 모두 숨졌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계속 아이 낳기를 원했다. 아이에게만은 유전병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리 증후군은 세포의 핵이 아닌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유전된다. 인체에서 세포핵 외에 유일하게 유전자인 DNA를 가지고 있는 기관은 미토콘드리아다. 인간 DNA의 99%가 세포의 핵 속에, 나머지 1%가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과 다른 두 가지의 특성이 있다. 세포의 중앙에 위치한 핵 유전자(DNA)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자식에게 유전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만을 통해 아들과 딸 모두에게 전달된다. 정자의 미토콘드리아가 후손에게 전해질 수 없는 이유는, 난자와 정자가 만날 때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정자의 꼬리가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최근엔 정자의 미토콘드리아가 스스로를 부수는 작용, 즉 ‘자가 파괴’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속의 핵이 아닌 핵 바깥 부분의 세포질에 별도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핵 속의 유전자와는 다른 유전자(DNA)를 가지고 있다. 별도의 유전자를 가진 미토콘드리아는 마치 한집에 딴살림을 차린 셋방살이 손님처럼 행동한다. 주인집(핵)의 명령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일하고, 자기들만의 프로그램대로 번식한다.

미토콘드리아는 몸속에 들어온 영양분과 산소를 호흡해 사람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90%를 생산하는 세포 안의 소기관으로, 세포의 발전소 역할을 한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에 문제를 안고 태어난 아기는 세포의 에너지가 부족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와 근육이 약화되거나 시각장애, 심장쇠약 등의 증세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 일찍 죽는다.

미토콘드리아는 핵 DNA보다 10배쯤 돌연변이율이 높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서열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730여가지 유전병이 발생하는데, 이를 ‘미토콘드리아 질환’이라고 한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엄마의 난자를 통해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달된다.

하산 부모의 출산을 맡은 미국 뉴욕 ‘새 희망 출산센터’ 의료진은 이 유전병을 해소하기 위해 ‘세 부모 체외수정법’을 선택했다. 세 부모 체외수정법은 한마디로 결함 있는 친모 난자의 미토콘드리아를 건강한 다른 여성의 미토콘드리아와 바꾸는 기술로, 먼저 미토콘드리아가 정상인 다른 여성에게서 난자를 기증받는다. 기증받은 건강한 여성의 난자는 핵이 제거된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 결함이 있는 아이 엄마(하산 엄마)의 난자에서 핵만 빼내 정상인 다른 여성의 난자에 주입한 뒤 이를 아이 아빠(하산 아빠)의 정자와 수정해 친모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 의료진은 모두 5개의 건강한 난자를 제공받아 친모의 난자핵으로 바꿨고, 시험관 안에서 아빠의 정자와 수정했다. 그중 하나의 수정란만 정상적으로 엄마의 자궁에 착상해 하산이 태어난 것이다. 물론 난자 기증자는 신원을 법으로 철저히 보호받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조차 나중에 난자 기증자에 관한 정보를 요구할 수 없고 난자를 기증한 여성 또한 어머니로서의 권리가 없다.

복제 속도 비슷한 유전자 골라 시술

태어난 아기는 생물학적으로는 한 명의 아버지와 두 명의 어머니를 두게 된다. 핵 DNA는 부모로부터, 미토콘드리아 DNA는 난자를 기증한 여성으로부터 물려받는다. 99.8%의 유전 형질을 원래의 부모에게 물려받고, 약 0.2%만 난자 기증자에게서 물려받는다. 2만여개의 유전자 중 미토콘드리아가 담당하는 유전자는 37개(0.0019%) 정도로, 중요한 특성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유전자는 배아의 핵에 들어 있고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원’에 불과하므로 유전적 문제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외모나 체형, 성격 같은 일반적 유전 형질 또한 미토콘드리아 DNA와는 관계가 없어 아기는 부모를 닮는다. 반면에 친모의 미토콘드리아로부터 전해지는 각종 유전병을 피할 수 있다.

하산이 태어나고 나서 의료진은 아기의 미토콘드리아를 검사했다. 그 결과 앞으로 유전적 질환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핵을 꺼내는 과정에서 친모의 결함 미토콘드리아가 1% 정도 섞여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세 부모 체외수정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전병 위험이 남아 있다며 시술을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미탈리포프 교수팀과 서울아산병원의 강은주 박사팀이 이 유전병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공동 연구팀의 실험에서 세 부모 체외수정법으로 얻은 수정란 중 하나는 기존 환자의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원인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DNA)의 복제 속도에 있었다. 만약 기증받은 정상인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보다 환자(친모)의 유전자 복제 속도가 더 빠르면, 핵 이식 과정에 섞여 들어간 약 1%의 미토콘드리아가 분열을 거듭해 정상을 누르고 증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난자와 기증받은 정상인 난자의 유전자를 미리 조사해 서로 비슷한 복제 속도를 가진 것만 선택하면 ‘세 부모 아이’ 출산 시술의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에는 매년 15명 정도가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 이번 연구로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이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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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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