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일 중국산 SUV가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인공은 중국 베이치인샹(北汽銀翔)차가 출시한 SUV ‘켄보600’. 베이치인샹은 중국의 5대 자동차 회사인 베이징차(北汽)와 충칭의 오토바이 회사인 인샹(銀翔)실업이 합작한 자동차 회사다.

한국의 중한자동차는 베이치인샹에서 ‘S6’라는 모델명으로 충칭에서 생산해 중국 전역에 판매 중인 SUV를 국내에 들여와 ‘켄보600’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켄보600’은 중국산 SUV가 국내 SUV시장에 첫 도전하는 차종이라 그 결과가 주목된다. 켄보600은 국내 경쟁차종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 최대 무기다. 배기량 1500㏄의 ‘켄보600’의 시중 판매가격은 1999만원부터 2099만원 사이에 책정됐다. 국내 경쟁차종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차 투싼(1600㏄)은 2240만원, 기아차 니로(1600㏄)는 2335만원, 르노삼성 QM3(1500㏄)는 2195만원, 쌍용차 티볼리(1600㏄)는 2060만원에 가격이 책정돼 있다. 배기량과 편의사양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모두 2000만원을 넘어간다. ‘켄보600’만 1999만원의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단순 사양만 놓고 보면 ‘켄보600’은 별로 흠잡을 데는 없다. 경쟁차종인 현대차 투싼과 비교했을 때 가솔린 엔진을 쓰는지라 최고출력과 최대토크 등 힘과 복합연비는 조금 달리지만 전장, 전고, 축간거리 등은 오히려 더 여유가 있다. 5개 색상으로 출시됐는데 외관상 드러나는 디자인 역시 국산 경쟁차종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자동차 성능에 크게 개의치 않고 가격이나 넉넉한 실내공간 등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는 그럭저럭 통할 것으로 보인다. 중한자동차는 그간 베이치인샹에서 출시되는 미니트럭(CK미니트럭)과 미니밴(CK미니밴) 등을 국내에 수입·판매해왔다. 중한자동차의 이강수 대표는 “올해 판매목표는 3000대”라고 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베이치인샹은 지난해 중국에서 4만대가량의 S6를 판매했다.

중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을 야금야금 파고들고 있다. 이미 버스와 화물용 트럭 등 상용차(商用車)시장에서 중국산 자동차는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자동차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12년 1067대에 불과하던 중국산 수입 신차는 지난해 2222대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인천공항이나 제주도 등지에서는 선롱(申龍) 등 중국 브랜드를 단 중소형 버스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경기도 의정부, 동두천, 포천, 연천, 강원도 철원 등지의 벽오지 노선버스 가운데도 선롱버스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선롱버스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버스업체다. 이 업체는 2013년부터 한국에 중소형 버스를 수출한 이래 무려 550여대를 판매했다.

중한자동차의 당병모 부회장(왼쪽 두 번째)과 이강수 대표(세 번째)가 지난 1월 18일 수입 출시한 중국 베이치인샹차의 SUV ‘켄보600’을 소개하고 있다.
중한자동차의 당병모 부회장(왼쪽 두 번째)과 이강수 대표(세 번째)가 지난 1월 18일 수입 출시한 중국 베이치인샹차의 SUV ‘켄보600’을 소개하고 있다.

235배 폭증한 중국산 트럭

버스나 트럭 등 영업용 차주 입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자동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공사현장과 택배차량 등 틈새시장을 치고 들어오는 중국산 트럭의 성장세는 경이적일 정도다. 2012년 4대가 들어오는 데 그쳤던 중국산 트럭은 2016년 942대로 235배가량 폭증했다. 매년 한 번도 성장세가 줄어든 적이 없다. 가격경쟁력은 역시 최대 무기다.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 상용차 1위 베이치푸톈(北汽福田·포톤)차의 2.5t, 3.5t 트럭은 가격이 각각 3800만원, 3960만원에 불과하다. 경쟁차종인 현대차 마이티 2.5t, 3.5t 트럭의 4656만원, 4766만원에 비해 1000만원가량 싸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푸톈자동차는 2015년 픽업트럭 ‘툰랜드’를 국내에 선보이기도 했다.

중국 자동차 업계는 중국 정부의 ‘이시장 환기술(以市場 換技術)’ 정책을 통해 외국 자동차 업계의 기술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시장을 내어주고 기술을 교환한다’는 전략적 자동차 육성책으로, 외산차의 경우 자국 자동차 생산업체와 합작으로만 중국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 ‘이시장 환기술’ 정책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일례로, 국내에 들여오는 베이치인샹이나 베이치푸톈의 모회사는 베이징자동차다. 베이징자동차는 현대차와 함께 중국에서 ‘베이징현대차’를 합작생산하는 중국 측 파트너다. 베이징차의 경우, 현대차 외에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도 합작생산을 하고 있다. 베이징차 입장에서는 현대차와 벤츠차의 장점만 취사선택해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 현대차의 자동차 제조기술이 베이치인샹이나 베이치푸톈에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품질이나 사후서비스 측면에서는 중국산 자동차에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 것도 사실이다. 경북 경주에 본사를 둔 금아버스는 12대의 선롱버스를 운행한다. 금아버스의 한 관계자는 “운전기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엔진룸이 앞에 있고, 좌석 스프링이 안 좋아 승차감이 국산 버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를 커버하기 위한 사후서비스(AS)망 역시 아직 국산차나 다른 외산차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이는 주로 중국산 자동차를 들여오는 곳이 영세한 수입상이기 때문이다. 국내 버스시장에서 현대차를 위협했던 선롱버스 역시 수입판매상이 수차례 바뀌는 내홍을 겪었다. 현재 선롱버스를 취급하는 에빅오토모티브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측 문제로 지금은 선롱버스를 판매하지 않는다”며 “기존에 팔린 차량의 정비 업무만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판매망이나 사후서비스망을 제대로 정비할 경우 국산차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켄보600’ 출시를 앞둔 중한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12월 국내 판매망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를 통해 서울 4곳을 비롯해 전국에 31개 판매대리점망을 구축했다. SUV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민 중국산 자동차가 한국 상륙에 성공할 경우 국내 자동차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와도 정면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저가 가전제품으로 시작해 한국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한 중국 전자업체들이 어느새 삼성, LG와 경쟁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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