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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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시장에는 공룡으로 불리는 자본이 있다. ‘펀드(Fund)’다. 수많은 펀드들 중에서도 특히 운용자금이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펀드들은 연기금 등과 함께 투자시장에서 가장 막강한 자본으로 꼽힌다. 이런 거대 펀드들이 ‘샀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산 주식과 채권 같은 투자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이들이 ‘팔았다’는 이유로 주식과 채권 가격이 하락하는 일 역시 종종 벌어진다. 자본시장의 유동성에 특히 민감한 한국에서 많게는 조원 단위로 운영되고 있는 공룡펀드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말이다.

한국에는 이런 공룡펀드들이 얼마나 있고, 또 이들의 수익률은 어떨까. 기자는 한국 시장에서 (운용)설정액이 1조원을 넘는 초대형 공룡펀드들의 실태를 확인해 봤다.

사실 공룡펀드라는 표현은 공식적인 게 아니다. 투자금을 수천억원 이상 끌어모아 거대해진 초대형 펀드들을 지칭해 언론과 시장 관계자들이 붙인 일종의 별칭이다. 기자는 편의상 설정액을 기준으로 투자금 규모 ‘1조원’ 이상인 펀드를 공룡펀드로 분류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월 26일까지 한국 투자시장에 존재하는 설정액 1조원 이상 공룡펀드는 총 9개(ETF로 불리는 상장지수펀드 제외)다. 이 9개 공룡펀드 중 5개가 ‘주식형 펀드’다. 그리고 3개는 한국 또는 외국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이고, 나머지 1개는 ‘채권혼합형 펀드’다. 또 9개 공룡펀드 중 1개가 직장인들의 퇴직 후를 위한 성격을 갖고 있는 ‘퇴직연금펀드’였다.

2조8769억짜리 한국 최대 공룡펀드

현재 한국 투자시장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룡펀드는 신영자산운용에서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 신영밸류고배당자(주식)C형 펀드다. 2003년 5월 만들어진 장수펀드이기도 하다. 1월 26일 기준으로 신영밸류고배당자(주식)C형 펀드의 규모는 무려 2조8769억2000만원을 넘는다. 이 펀드에 이어 2위 공룡펀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자1(채권)종류A 펀드다. 이 펀드는 주로 외국 채권에 투자하고 있는 해외채권형 펀드로, 규모가 1조8508억6600만원에 이른다. 설정액 기준 1위 펀드와 2위 펀드의 덩치 격차가 무려 1조260억원을 넘는 상황이다.

이들에 이어 3위 공룡펀드는 KB자산운용의 KB퇴직연금배당40자(채혼)C형 펀드다. 11년 전인 2006년 1월 직장인들의 노후자금 마련 성격으로 만들어진 퇴직연금 펀드다. 이 펀드는 채권혼합형 펀드로 규모가 1조6882억5300만원에 이른다. 4위 공룡펀드는 한화단기국공채(채권)종류C형 펀드다. 주로 단기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로, 설정액이 1조5995억8400만원을 넘는다.

공룡펀드 5위는 KB자산운용이 만든 KB밸류포커스자(주식)클래스A형 펀드다. 끌어모은 자금을 주로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일반주식형 펀드로 규모가 1조4251억9600만원에 이른다. 이 뒤를 잇고 있는 6위 공룡펀드는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1(주식)종류A형 펀드다. 2013년 7월 시장에 등장했으니 운용된 지 이제 약 3년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설정액 1조원이 넘는 공룡펀드 9개 중 메리츠코리아1(주식)종류A형 펀드가 가장 늦게 만들어진 막내다. 그럼에도 이 펀드로 모여든 투자자들의 돈(설정액)이 1조3835억9200만원을 넘어설 만큼 인기펀드로 알려져 있다.

공룡펀드 7위는 한국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1(주식)C형 펀드다. 시장에서 장기투자 펀드로 알려져 있는 주식형 펀드로, 규모 역시 1조2183억8600만원에 육박할 만큼 거대하다. 8위 공룡펀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플러스자1(채권)종류A형 펀드다. 외국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1조2102억3000만원 규모의 펀드다. 규모 1조원 이상 9개 펀드 중 마지막 9위 공룡펀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만든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2(주식)A형 펀드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상장된 계열사의 주식에 분산해 투자하는 그룹주 투자펀드다. 1조163억4000만원 규모다.

공룡펀드 9개 중 4개 수익률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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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며 투자시장의 큰손으로 대접받고 있는 공룡펀드들. 그 거대한 몸집만큼 수익률도 좋았을까.

공룡펀드들의 수익률은 제각각이다. 1월 26일을 기준으로 지난 1년 수익률이 6%를 넘어서는 펀드가 있는가 하면, 무려 -24.6% 이상 폭락한 덩치값도 못하는 펀드도 있다. 이들 9개 공룡펀드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확인 결과 9개 공룡펀드 중 1년 동안 투자금을 까먹지 않고 플러스 수익률을 올린 펀드는 5개다. 반대로 투자금을 까먹은 마이너스 펀드도 4개나 된다.

지난 1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가장 좋은 투자 성적을 올린 펀드는 한국에서 가장 큰 공룡펀드인 신영밸류고배당자(주식)C형 펀드다. 설정액이 2조8769억2000만원이 넘을 만큼 압도적인 규모로 시장 영향력 역시 상당하다. 주로 투자자에게 고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주식을 매매해 안정적 수익을 노리는 펀드로 알려져 있다. 이 펀드의 지난 1년 수익률은 6.03%로 공룡펀드들 중 가장 높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일반주식형 펀드’, 또 좀 더 세밀한 비교가 가능한 ‘배당주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보다도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 전체 일반주식형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5.72%이고, 전체 배당주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5.74%다. 그러니 일반주식형 펀드의 평균보다 0.31%, 배당주 펀드 평균보다는 0.29%쯤 나은 수익률을 지난 1년 동안 보인 것이다. 이 펀드의 지난 6개월 수익률은 0.82% 정도이고, 가장 최근인 지난 한 달 동안은 1.61%의 수익률을 올렸다.

공룡펀드 중 지난 1년 수익률 2위는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자1(채권)종류A형 펀드다. 해외채권형 펀드로 1년 수익률이 5.13%다. 얼핏 양호해 보이는 듯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지난 한 해 해외채권 펀드 시장의 수익률이 높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수익률을 올렸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가 있다. 1월 26일을 기준으로 지난 1년 전체 ‘해외채권형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이 6.66%에 이른다. 그러니 이 펀드는 수익률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사한 유형의 펀드들보다 평균보다 수익률이 1.53%나 더 낮은 것이다.

좀 더 세밀한 분석을 위해 이 펀드와 투자 대상과 방식이 더 비슷한 전체 ‘글로벌채권펀드’들의 평균 수익률과도 비교해 봤다. 전체 글로벌채권펀드들의 지난 1년 평균 수익률은 5.12%다. 그러니 비교 대상인 글로벌채권펀드들보다 1년 평균 수익률이 불과 0.01%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평균 수준의 투자 성적을 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 펀드의 지난 6개월 수익률은 -0.35%로 추락하며 저조했고, 가장 최근인 지난 한 달 수익률은 0.57%였다.

1년 평균 수익률 3위 역시 해외채권형 펀드인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플러스자1(채권)종류A 펀드다. 지난 1년 5.01%의 수익을 올렸다. 이 펀드 역시 단순 수익률은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한국에서 판매돼 운용 중인 비슷한 유형의 펀드 평균 수익률보다는 상당히 낮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들 뒤를 이어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2(주식)A형 펀드가 1년 평균 수익률 4%로 4위다. 이 펀드는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가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2016년 하반기부터 주력 투자처인 삼성전자의 주가 폭등을 발판으로 수익률이 회복되고 있다. 이 점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 급등이 본격화된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꼭 한 달 동안의 수익률이 4.48%에 이른다는 점이다. 최근 한 달간 수익이 지난 1년간 나빴던 수익률을 회복시켜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화단기국공채(채권)종류C형 펀드는 1년 수익률 1.29%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간신히 모면했다.

시장영향력 크지만 운용 효율성 떨어져

그런데 이들보다 더 형편없는 수익률로 투자자들을 괴롭게 만드는 공룡펀드들이 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해 투자금을 까먹은 것이다. 특히 설정액이 1조3835억9200만원에 달하는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1(주식)종류A형 펀드의 추락은 심각한 상황이다. 1월 26일 기준으로 지난 1년 수익률이 -24.61%를 넘는다. 지난 1년 동안 1억원을 투자했다면 손실액이 2461만원에 이른다는 의미다. 이 펀드는 2015년 한 해 동안 20%를 훌쩍 넘는 수익률로 투자자들로부터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거꾸로 -24%가 넘게 수익률이 추락하며 투자자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

KB자산운용의 KB밸류포커스자(주식)클래스A형 펀드 역시 지난 1년 평균 수익률이 -4.05%에 불과하다. 설정액이 1조4251억9600만원이나 될 만큼 거대한 덩치로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정작 투자 실력인 수익률만큼은 한심한 상황이다. 이 펀드는 최근 한 달 수익률 역시 -1.81%에 육박할 만큼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 KB자산운용의 KB퇴직연금배당40자(채혼)C형 펀드 역시 -1.46%로 덩치값도 못하는 공룡펀드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1년 수익률만 저조한 것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알려진 채권혼합형 퇴직연금 펀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 수익률마저 -1.04%에 이를 만큼 저조했다.

시중 자금이 1조원 이상 몰려든 공룡펀드들은 그 규모만으로도 시장영향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작은 규모의 펀드들보다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력이 크다.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큰돈을 움직이다 보니 자금을 운용하는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 속도와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운용과 투자 효율성에서 약점이 있다는 의미다. 시장이나 투자한 투자처의 상황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약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2016년은 공룡펀드들에 쉽지 않은 해였다. 하지만 2017년 투자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예측이 쉽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1조원이 넘는 공룡펀드들이 약점을 극복하고 강점을 더욱 부각시키며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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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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