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44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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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에너지 독립 선언 트럼프의 속셈은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키스톤XL 등 송유관 사업 재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트위터
비즈마크(Bismarck)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주도(州都)이다. 노스다코타주에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아 주도의 이름이 독일의 철혈재상으로 유명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의 성을 따서 만들어졌다.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국 중부 지역 최북단에 있는 노스다코타주의 면적은 18만2990㎢로 한반도의 80%나 되지만 황량한 오지이기 때문에 인구는 73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다코타라는 지명은 인디언인 다코타족에서 유래했는데 다코타족은 수족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이 최근 들어 셰일오일 덕분에 각광을 받고 있다. 독일계 이민자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에 환경오염을 이유로 추진이 중단된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사업에 대한 재협상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사업은 노스다코타에서 일리노이까지 모두 4개주와 50개 카운티를 연결하는 길이 1886㎞의 송유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공사비만 38억달러(4조2000억원)에 달하는 이 사업으로 노스다코타 북부 바켄 지역에서 생산된 셰일오일을 인디애나까지 하루 최대 57만배럴을 수송할 수 있다. 송유관 건설은 현재 미주리강 저수지 335m 구간을 제외하고 완성됐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지 못한 것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인디언 보호구역인 노스다코다의 스탠딩록 구역을 지나는 송유관이 수족의 성지(聖地)를 파괴하고 식수원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마지막 구간의 건설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추진해온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ETP)’는 강 밑바닥에 땅굴을 뚫어 식수원 오염과 문화유적 훼손 우려를 피할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ETP의 이사 출신인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를 에너지장관으로 임명해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환경오염을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던 ‘키스톤XL 송유관’ 사업도 재협상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키스톤XL 사업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총 길이 1897㎞의 송유관을 통해 미국 텍사스주 정유시설까지 수송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사업 규모가 80억캐나다달러(7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 송유관은 네바다주의 환경보호 지역(샌드힐)을 지나게 돼 있어 그동안 환경파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업이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송유관이 건설되면 하루 83만배럴의 원유가 미국으로 흘러들어 오면서 미국 내 유가 하락과 함께 미국산 정유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로 2만8000~4만2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건설되는 송유관을 미국산 철강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까지 내렸다. 에너지산업과 철강산업을 동시에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캐나다 에너지 기업인 트랜스캐나다(TransCanada)는 미국 국무부에 이 사업의 재개를 요청하는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고, 미국 국무부는 이를 검토해 적어도 60일 내에 승인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변경으로 미국에서 대대적인 셰일오일과 유전 개발이 적극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월 20일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6대 국정기조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가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America First Energy Plan)’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에너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들과 미국의 적대국 등 외국산 석유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겠다면서 50조달러(5경8800조원) 가치로 추정되는 셰일오일과 가스 및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적극 시추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에너지 생산 확대로 거둬들인 수입은 도로나 교량, 학교 등 공공 인프라를 새로 짓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이 같은 정책 방향이 미국의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국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은 말 그대로 ‘에너지 독립’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 텍사스주에 있는 미국 석유회사 아파치의 셰일오일 추출 시설. photo 아파치닷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OPEC에 대한 석유 의존을 끊고 에너지 독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리처드 닉슨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외국산 원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공언해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미국이 “석유에 중독돼 있다(addicted to oil)”면서 중동산 석유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미국에 대한 OPEC의 원유 수출 물량은 되레 10%나 늘었다. 미국이 중동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해온 이유도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라크전쟁이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대의명분은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 대통령 축출이었지만 진짜 목적은 풍부한 석유 자원 때문이었다. 이라크전쟁을 기획한 폴 울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은 “이라크는 석유라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자서전 ‘격동의 시대’에서 “이라크전쟁은 석유를 얻기 위해 일으킨 것”이라며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석유 공급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위협적인 존재가 후세인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지난 20세기에 벌어진 숱한 전쟁과 분쟁은 대부분 석유와 관련이 있다. 특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차지하기 위해 각종 분쟁에 개입해온 것이 사실이다. 저명한 지정학자인 윌리엄 엥달은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은 언제나 막대한 원유와 가스 매장지가 있거나 중요한 송유관이 통과하는 곳”이라면서 “석유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지적했다. 석유는 21세기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상품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독립 정책은 앞으로 미국의 대(對)중동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경우 이라크전쟁 때처럼 중동 지역에 무리수를 둬가며 개입할 소지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동 지역이 국제 유가에 계속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석유 수송로 보호 등의 정책은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셰일오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지난해 11월 15일 텍사스주 퍼미언 분지 울프캠프 지구에서 셰일오일 200억배럴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일 광구로는 최대인 노스다코타 셰일오일 매장량의 3배에 달한다. 시가로 따지면 9000억달러 규모다. 석유회사인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의 스콧 셰필드 최고경영자(CEO)는 퍼미언 분지 일대에는 750억배럴의 셰일오일이 매장돼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최대 유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유전에 버금가는 양이다. 퍼미언 분지 일대에는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 아직 많아 추가 발굴 가능성도 높다. 미국 곳곳에선 셰일오일이 속속 발견되고 있고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채굴할 수 있는 양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원유 매장량이 세계 양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보다 많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르웨이 에너지컨설팅 업체인 라이스타드에너지는 미국의 가채매장량(Recoverable reserves)을 2640억배럴로 추정했다. 가채매장량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시추가 가능한 원유 매장 규모를 말한다. 석유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산유국 경제의 장기 건전성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쓰인다. 사우디는 2120억배럴, 러시아는 2560억배럴이다. 미국의 가채매장량 추정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바로 셰일오일 때문이다. 미국의 가채매장량은 3년 전만 해도 러시아나 사우디보다 훨씬 적었다. 실제로 미국의 원유 매장량 중 절반 이상이 셰일오일이다.
   
   셰일오일은 혈암(頁巖)이라 부르는 단단한 암석층에 있는 석유를 말한다. 셰일오일은 채굴이 어려운 데다 개발비도 만만치 않아 방치됐으나 새로운 채굴 기술이 개발되면서 전통적인 에너지인 원유를 뛰어넘는 에너지로 급부상했다. 셰일오일 채굴에 사용하는 기술은 수압파쇄와 수평시추다. 수압파쇄는 수직으로 뚫은 시추공에 물과 모래, 화학물질 등을 섞은 혼탁액을 고압으로 지하에 투입해 암석층에 균열을 일으켜 원유를 뽑아내는 공법이다. 수평시추는 채굴 파이프를 암석층에 수평으로 삽입해 유전의 표면적을 최대화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미래의 에너지로만 여겨졌던 셰일오일의 대량 채굴이 가능해지면서 저유가 시대가 열렸다. 게다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은 2014년부터 채굴원가가 비싼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을 죽이기 위해 저유가 정책을 펴는 등 치킨게임을 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은 생산비용을 크게 낮추면서 살아남았다.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비용은 배럴당 23.35달러까지 낮아졌다. 결국 OPEC 회원국 13개국이 지난해 11월 30일 12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러시아를 비롯해 비OPEC 산유국 11개국도 같은 해 12월 10일 55.8만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OPEC은 감산 조치에 따라 국제유가가 크게 오를 것을 기대했지만 국제유가는 배럴당 50~6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원유 수요가 대폭 증가하더라도 셰일오일이 다른 유전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원유 경쟁력은 이미 셰일오일>육상유전>해상유전>알래스카유전 순으로 재편됐다고 말할 수 있다.
   
   
   스윙 프로듀서 역할 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에너지 독립은 결코 달성하기 쉬운 목표는 아니다. 미국은 세계 석유의 30%를 소비하는 세계 최대 석유소비국이자 원유수입국이다. 미국은 하루 900만배럴이 넘는 원유를 생산하면서도 하루 700만배럴 이상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원유 대부분은 사우디 등 중동 지역에서 들여오고 있다.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셰일오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미국 최대 석유회사인 엑슨모빌 등 주요 석유 기업들도 트럼프 정부의 이런 정책에 호응해 셰일오일 생산량을 크게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유전 개발에 열을 올리느라 셰일오일 생산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미국의 주요 석유회사들은 셰일오일의 경쟁력이 높아지자 자국의 유전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또 트럼프 정부가 알래스카와 북극해 유전 개발을 허용할 경우 원유생산량은 더욱 증가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에너지 독립이란 목표를 달성할지는 미지수지만 셰일오일 생산량이 대폭 늘어날 경우 2025~2035년께 에너지 독립이 실현될 수도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자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2035년이면 제로가 되리라고 전망한 바 있다.
   
   미국의 에너지 독립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미국의 원유수출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EI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월에서 11월까지 하루 평균 52만7000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미국은 올해 하루 평균 80만배럴의 원유를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 이는 리비아와 카타르, 에콰도르, 가봉 등 기존 4개 산유국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생산한 규모다. 미국은 2015년 12월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40년 만에 해제함으로써 에너지시장에서 다른 산유국들을 본격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원유 수출 증가는 시장점유율의 확대를 의미한다. 미국은 원유 수출 증가에 따라 앞으로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스윙 프로듀서란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자체적인 원유생산량 조절을 통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산유국을 말한다.
   
   OPEC은 1970년대 전 세계 산유량의 절반을 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지만 현재 시장점유율은 4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1960년 9월 창설된 OPEC은 그동안 국제유가를 조정해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앞으로 OPEC의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할 경우 스윙 프로듀서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미국 씨티그룹 원자재 리서치 부문의 에드워스 모세 대표는 “OPEC이 더 이상 스윙 프로듀서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셰일오일이 글로벌 원유시장의 수급 균형을 좌우할 최대 요인”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전 세계의 석유 패권을 차지할 것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무튼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 군사 개입 없이도 석유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에너지 독립 정책의 진짜 속셈은 미국의 석유 패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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