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LG그룹은 지난해 4월 국내 최대 농자재기업인 동부팜한농을 인수했다. 인수가는 4200억원. LG그룹의 동부팜한농 인수에 재계는 의아한 눈길로 바라봤다. 사양산업으로 간주돼온 1차 산업 농업에 수천억원의 베팅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명에서 ‘동부’를 떼어내 ‘팜한농’으로 바꾼 후 스위스계 글로벌 농업기업인 신젠타 한국법인 대표를 지낸 김용환씨를 대표로 영입했다.

김용환(58) 대표는 국내 최고의 농업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서울대 농대 출신으로 신젠타코리아 대표를 거쳐 제주대 석좌교수로 있었다. 신젠타 재직 시절에는 북한의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해 북한의 삼일포협동농장 등지를 수차례 드나들기도 했다. 그런 김 대표에게 LG의 새 성장엔진인 농업 부문을 과감히 맡긴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무식(無食)한 나라’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AI(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으로 사실상 괴멸 상태에 있는 국내 농정에 도움이 될 만한 사례들이 많았다.

지난 2월 1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입주해 있는 팜한농에서 만난 김용환 대표는 국내 농업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소신을 피력했다. 한때 농정 당국자들 사이에서 한국형 농업의 모델로 과대평가된 ‘쿠바형 농업’의 실상을 구체적인 수치로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각광받는 유기농(오가닉)의 허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꼬집었다. 김 대표는 “지구 최대의 유기농 농장은 아프리카”라면서 “멀리 아프리카가 아니라 북한만 봐도 유기농으로는 절대 늘어나는 인류를 먹여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농업이 사양산업이란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근거로 미국의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의 말을 소개했다. 세계인구는 점점 늘어나 2050년이면 100억명을 돌파하는데 (농사가 가능한) 지구는 단 하나뿐이란 것이다. 결국 늘어나는 수십억 인류를 먹여살리려면 농업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화와 첨단화만이 한국 농업의 살길”이란 것은 그의 소신이기도 하다.

실제 한국 농업의 실상은 심각하다. 5000만 인구 가운데 농업인구는 5%에 불과하다. 그중 65세 이상 고령 농부가 40%에 달한다. 40대 이하 농민은 불과 10% 정도다. 결국 “미래 농사는 기계가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식량이 부족해 굶어죽지 않으려면 온갖 정치적 보호 속에서 성역화된 농업에도 제조업 혁신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 글로벌 농업기업들은 농업에 ICT(정보통신기술)와 빅데이터를 접목해 정밀농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1위 농기계 회사인 존디어를 비롯한 농기계 회사들은 트랙터 등 농기계에 GPS(위성항법장치)와 IOT(사물인터넷)를 접목했다. 국내는 아직 초보 단계지만 농촌진흥청 등 농정당국에서도 ‘흙토람’이란 농업토양정보시스템(ASIS)을 출시하는 등 농업과 ICT, 빅데이터 접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축적한 토양 정보에 기반해 적합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팜한농도 지난해 강원도 평창과 경북 구미에서 각각 배추와 콩을 대상으로 ‘드론’을 활용해 작물보호제(농약)를 살포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 대표는 “드론을 활용해 불과 20분 만에 약 1만㎡(3000여평)를 커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무인헬기는 프로펠러가 돌 때 아래로 내뿜는 수직풍 때문에 토양도 날아가 제대로 된 농약살포가 힘들었다. 드론은 그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드론이든 무인헬기든 나이 든 농부가 직접 농약통을 짊어지고, 농약을 뿌리다가 농약에 노출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 국내 농업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1953년 설립된 한국농약(한농)이 모태인 팜한농은 국내 시장에서는 작물보호제(농약) 1위, 비료 2위의 기업이다. 하지만 매출 기준 국내 1위라지만 세계 순위는 30위권 정도에 그친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해외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10%를 조금 넘는 정도다. 김 대표가 팜한농으로 이적한 후 가장 공을 들일 부분도 해외시장 공략이다. 대표적으로 과거 내수시장만을 겨냥해 만든 ‘파란들’ ‘모두랑’ ‘공중전’ 등의 토속적인 제품명을 점차 해외시장에서 통할 이름으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한글 이름이 쉽고 국내 농부들한테는 잘 와닿지만, 해외시장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글로벌 농업기업인 신젠타에서 축적한 경험과 인맥을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다. 그는 “LG화학, LG전자, LG유플러스(통신), LG CNS(시스템 통합)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LG는 국내 어떤 대기업보다 농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적합한 여건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강원도 평창에서 시연한 드론을 활용한 농약 살포. ⓒphoto 팜한농
지난해 6월 강원도 평창에서 시연한 드론을 활용한 농약 살포. ⓒphoto 팜한농

“일관된 농정이 필요하다”

그는 “농정에도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이웃 일본의 경우 계약재배 면적을 늘리고 산지(産地) 유통망을 강화하는 식으로 농업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태풍과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채소 가격이 2배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결국 이는 농가 안정과 생활물가 안정으로 이어진다. 반면 한국은 이런 계약재배 확대, 산지유통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한때 배추 가격이 16배 급등락하기도 했고, 가격 급등락에 따라 농민들이 애써 경작한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뉴스도 매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최근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일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계답(畓)을 정리하는 일은 불가피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절대농지 해제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인들이 주로 소비하는 끈적끈적한 ‘자포니카종 쌀’의 경우, 세계 곡물시장에서 유통되는 물량이 10% 남짓에 불과하다. 유통물량이 워낙 작아 자연재해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으면 가격급등락이 큰 특수성이 있다. 또한 한국의 경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북한 급변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경우 농업생산성이 워낙 떨어져서 급변사태에 우리가 먹여살리거나 중국 동북(東北) 3성(省)의 쌀을 가져다 먹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모범으로 제시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연간 쌀소비량이 적다. 아베 신조 총리는 농업개혁의 일환으로 쌀농가에 대한 농업보조금을 중지하고, ‘쌀산업’에 머물던 기존의 농정 패러다임을 ‘논산업’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특정작물인 ‘쌀’에 초점을 맞추던 정책을 무슨 작물이든 길러낼 수 있는 ‘논’으로 주안점을 바꾼다는 얘기다. 생산기반(논)을 유지하면서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쌀재배로 전환할 수 있게 하려는 일석이조 포석이다. 김용환 대표는 “농정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긴 호흡을 갖고 꾸준히 나가야 한다”며 “농업도 이제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첨단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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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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