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라하브라의 한 월마트 점포 앞을 월마트 근로자가 지나가고 있다. ⓒphoto AP
미국 캘리포니아 라하브라의 한 월마트 점포 앞을 월마트 근로자가 지나가고 있다. ⓒphoto AP

미국은 지금 지각변동 중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그가 뒤흔들고 있는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먹고사는 경제 이야기, 특히 그중에서도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소매시장 이야기다.

미국 소매시장의 전통적 강자는 월마트이다. 이 양판점이 미국을 지배한 것이 30년을 넘는다. 매출 1위, 고용 1위, 성장률 1위…. 월마트의 위력은 곧 미국 소비의 위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월마트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다. 2016년 월마트는 미국 내 154개, 해외 115개 등 세계적으로 총 269개의 점포 문을 닫았다. 2017년 1월, 월마트는 200만개 이상의 제품에 대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고객들에게는 2일 내 배달 조건으로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여파가 몰고 올 파장은 어떤 것일까?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2017년 미국 소매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백화점과 독립 브랜드들의 점포 수는 다음과 같다. JC페니 130~140개, 메이시스 18개, 시어스앤K마트 150개, HH그레그 88개, 아베크롬비앤피치 60개, 크록스 160개, 더리미티드 250개, 웨트실 171개, 아메리칸어패럴 110개, BCBG 120개, CVS 70개, 패밀리크리스천 240개.(이상 출처 : www.clark.com)

대략 1550여개의 점포가 사라질 예정이다. 미국 소매시장은 조용하게 그러나 천지개벽 수준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이 변화 뒤엔 온라인 거장 아마존이 있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이제 없는 것이 없는, 게다가 연회비만 내면 무료배송까지 해주는 거대한 소매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마존의 위력은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 항공기를 제작하는 회사들의 가장 큰손이라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매출 면에서 보면 여전히 월마트는 아마존보다 월등하다. 2015년 아마존의 매출이 61조6200억달러인 반면 월마트는 353조1080억달러로 거의 5.5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숫자를 2014년과 비교해 보면 왜 월마트가 긴장하는지 그 이유를 할 수 있다. 아마존은 49조3530억달러어치를 팔았고, 월마트는 343조6240억달러어치를 팔았다.(미국 내 매출에 한함) 월마트가 기어가는 듯한 성장을 하고 있는 반면 아마존은 훨훨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성장구조가 아니라 비용구조이다. 월마트가 전국의 5000여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들어가는 임대료,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엄청난 반면 아마존은 물류센터만 운영하면 되므로 수익 구조 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쯤되면 월마트가 무료배송을 늘리면서 점포 수를 줄여가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오픈마켓 업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 ⓒphoto AP
세계 최대 온라인 오픈마켓 업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 ⓒphoto AP

스마트폰 주문과 무한 반품 허용

사실 아마존이 월마트의 표면적인 변화의 배경이라면, 좀 더 근원적인 배경은 스마트폰과 무한 반품의 허용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아마존의 강력한 후원자다. 한국의 까다로운 대금결제 과정과는 달리 미국 결제시스템은 대단히 간편하다. 그런데 고객들이 이런 간편한 시스템으로 물건을 마음대로 주문할 수 있는 이유는 조건 없는 반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품의 이유도 다양하다. 사이즈가 안 맞아서 반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색상이 스마트폰 화면과 달라 보이기 때문에 반품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품한다고 해도 모두 반품을 받아준다. 이런 반품은 단순히 제품을 교환해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불도 가능하다. 그러니 고객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주문하고, 따라서 온라인은 더욱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소매시장의 온라인화는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 고용시장의 변화이다. 미국 쇼핑몰은 대체로 흔히 앵커숍이라 불리는 백화점과 이 백화점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를 따라 들어선 점포들로 구성된다.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는 구조이다. 이런 이름 있는 백화점들을 앵커숍이라고 부른다. JC페니, 메이시스, 시어스, 딜리아드와 같은 백화점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런 백화점들이 쇼핑몰로부터 철수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몰을 찾는 고객들이 줄어들게 되고 몰에 입주해 있는 독립 매장들도 타격을 입는다. 온라인시장의 성장으로 오프라인시장이 줄어들고, 줄어든 오프라인시장으로 인해 온라인시장이 더욱 가파르게 성장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지금 많은 백화점들이 문을 닫고, 쇼핑몰에 입주해 있는 독립 매장들이 철수하는 것이 바로 그 결과다. 그런데 비숙련 근로자들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소매업체들이다. 월마트 한 곳이 문을 닫을 때마다 수백 명이 직업을 잃는다. 이전 같으면 비슷한 다른 백화점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다른 곳도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둘째, 백화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벤더에 미치는 영향이다.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만약 지금까지 거래해 온 업체가 전국에 1000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그 1000개 혹은 특정 규모 이상의 점포에는 반드시 제품을 전시해야 하기 때문에 필수 발주량이 대규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점포 수가 500개로 줄어든다면 필수 발주량 규모도 줄어든다. 대신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출고할 수 있는 정도의 필수운영 재고만 발주할 것이다. 즉 이전과 같은 대량 주문은 사라지고 소량으로 자주 발주할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브랜드파워가 있는 업체들은 물류센터마저 벤더들에게 전가하여 그 비용을 줄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양상은 부품을 정시 제공해야 하는 자동차·전자업체와 같은 대형 제조업에서나 있던 형태였으나, 이제는 완제품 판매 중심의 소매업체도 피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셋째, 오프라인 매장의 성격 변화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매장은 물건을 고르면서 비교해 보기도 하고 의류의 경우는 직접 입어 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쇼핑의 중심지였다. 매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직원이 나와서 취향을 묻고 그에 맞춰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매장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온라인의 보조역할만 하는 매장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예를 들면 주문한 물건을 환불하거나 교환할 때, 혹은 특정한 아이템의 경우 픽업하는 장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소매 거점형 물류센터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물류의 세계화이다. 이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얼마든지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꼭 미국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완제품 상태의 제품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공장에서 미국의 소비자로 직접 배송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간 물류단계를 축소하여 유통 재고비용을 줄임으로써 원가를 줄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런 미국 소매시장의 판도 변화를 빨리 읽고 여기에 먼저 적응하는 사람들이 더 큰 기회를 포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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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통신
황효현 경기텍스타일뉴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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