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49호] 2017.03.20

폭발하는 간편식시장

사례1
   
   40대 초반 직장맘 박소영씨는 주말에 마트에 가면 냉동볶음밥을 수두룩하게 담는다. 브랜드와 종류는 매번 바뀐다. 새우볶음밥·낙지볶음밥·해물볶음밥·소고기볶음밥은 이미 식상해서 스테이크볶음밥·치킨깍두기볶음밥·버터간장장조림밥을 사봤다. 아이들이 “레스토랑보다 맛있다”며 극찬한 ‘치킨새우도리아’도 담았다. 냉동볶음밥의 용도는 두 가지. 쑥쑥 커가는 아이들의 간식용이자 비상시 식사대용이다. 빵보다 든든하면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아이들 스스로도 차려먹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밥보다 많은 부재료’를 표방한 영양 만점의 볶음밥들이 앞다퉈 출시돼 식사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일주일에 박씨 가족이 소비하는 냉동볶음밥은 10봉 정도. 한 달 평균 냉동볶음밥 구입 비용만 10만원이 넘는다.
   
   
   사례2
   
   50대 초반 주부 손지희씨는 지난 설 명절에 차례상을 차리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재료를 사와서 일일이 손질해 조리하는 대신 새로 출시된 간편식을 대거 활용했기 때문이다. 모듬전, 동태전, 오색꼬치전과 같은 냉동제품은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끝이고, 산적과 동그랑땡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내기만 하면 됐다. 삼색 나물 역시 마트에서 사왔고, 수육은 팩 포장된 냉장제품을 이용했다. 떡국은 시판하는 사골육수에 떡을 넣고 끓여냈다. 손씨는 지난 정월대보름에도 마트에서 파는 ‘오곡나물밥 세트’로 대신했다. 갓 지은 오곡밥에 고사리, 취나물, 도라지, 호박나물, 곰취나물이 골고루 들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했다.
   
   
   사례3
   
   나홀로족인 30대 중반 박주철씨는 요즘 ‘혼밥’이 서럽지 않다. 편의점과 마트에 가면 간편식 천국이라 데우기만 해도 근사한 상차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물이 꼭 있어야 하는 박씨의 식성도 혼밥족으로 사는 데 문제없다. 사골국밥, 미역국밥, 짬뽕국밥과 같은 국밥만도 수십 가지인 데다가 김치찌개, 삼계탕, 육개장, 된장찌개, 부대찌개 등 소포장된 1인용 찌개도 널렸다. 한때는 라면에서 골라 먹는 재미를 찾았지만 박씨는 요즘 라면 구매가 부쩍 줄었다고 한다.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1조6720억원대. 2011년 1조1067억원에서 무려 51.1%나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식품외식산업전망대회는 올해 트렌드로 ‘가정간편식’을 꼽았고, 지난 2월 23일부터 4일간 ‘2017년 가정간편식 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식품업체들은 가정간편식을 통해 불황을 돌파하겠다며 저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덕분에 올해 밥상은 ‘도시락 전쟁’에 이어 ‘간편식 전쟁’이 치열하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컵밥, 국밥과 같은 ‘복합밥’시장이다. 시장 규모는 340억원. 연 40% 성장세로 쑥쑥 크는 중이다. 복합밥시장을 두고 CJ제일제당과 오뚜기가 경쟁이 치열하다. CJ제일제당이 복합밥시장의 73%를 차지하면서 주도권을 거머쥔 모양새다. 오뚜기는 26%를 차지하면서 무섭게 따라붙고 최근엔 샘표까지 복합밥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컵밥 판매량은 1635만개가 넘는다. 국민 3명당 1명꼴로 컵밥을 사먹었다는 얘기다. 간편식을 ‘3분 요리’ 수준으로 알던 소비자는 대형마트에 가면 입이 떡 벌어진다. 대형마트에 가면 진열대 한 코너의 절반을 컵밥이 차지한다. 2000원대 컵밥의 종류만 열거해도 숨이 찰 정도다. 나카사키짬뽕밥·상하이짬뽕밥·진짬뽕밥·부대찌개밥·사골곰탕국밥·사골미역국밥·육개장국밥·콩나물해장국밥·순두부찌개국밥·황태국밥 등 국밥만 10종이 넘고, 강된장보리비빔밥·고추장나물비빔밥·김치참치덮밥·햄버그덮밥·제육덮밥·오삼불고기덮밥·춘천닭갈비덮밥·레드커리덮밥·옐로커리덮밥 등 덮밥의 종류도 10종이 넘는다.
   
   
▲ 서울 용산에 있는 이마트 식품매장을 찾은 한 여성 고객이 가정간편식으로 가득 채워진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다. photo 이마트

   신세계 피코크, 3년간 6배 성장
   
   간편식은 더 이상 여행길에 비상용으로나 먹는 음식이 아니다. 가정간편식이 밥상을 차지하는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김밥·햄버거·샌드위치·즉석섭취도시락과 같은 즉석섭취식품은 물론 컵밥·국밥·수프·국과 같은 즉석조리식품, 샐러드·간편과일과 같은 신선편의식품도 가정간편식에 포함되는데 종류와 비중이 점점 커지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 중 즉석섭취식품의 비중이 59.3%로 가장 높고, 이어서 즉석조리식품(34.9%), 신선편의식품(5.7%)이 차지한다. 즉석조리식품의 세계도 심오하다. 전골·수육은 물론 유산슬, 해물누룽지탕, 마늘깐풍기, 육즙가득 난자완스 등 고급 중식당의 요리를 옮겨온 메뉴도 많다. 가격은 천차만별. 1000원대 후반의 컵밥에서부터 1인분에 1만원이 훌쩍 넘는 즉석조리식품도 꽤 된다.
   
   가정간편식의 수요와 영역이 증가하면서 식품업체들의 공장 라인 변화도 두드러진다. 롯데푸드는 지난 1월 가정간편식 전용 평택공장을 준공했다. 앞으로 롯데푸드의 간편식 생산능력은 50%가량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빙그레는 올 상반기 냉동식품을 중심으로 가정간편식시장에 재도전하고, spc삼립 또한 올해 중으로 가정간편식시장에 본격 뛰어들 전망이다. spc그룹은 지난해 5월 350억원을 투자해 충북 청주에 ‘종합 식재료 가공센터’를 설립했다. 오리온도 농협과 합작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오리온은 2017년 말 완공을 목표로 경남 밀양에 공장을 짓고 있다.
   
   롯데는 간편식 위주의 브랜드 ‘쉐푸드’를 강화하고 있고, 신세계 또한 2013년에 론칭한 자사 브랜드 ‘피코크’를 통해 간편식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피코크’는 업계의 화제다. 2013년 론칭 첫해 34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이듬해에는 두 배 수준인 750억원을 기록하더니 2015년 1340억원, 2016년 19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피코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정용진의 피코크’ ‘정용진도 먹는 피코크’로 통한다. “피코크를 주력 계열사로 키울 것”이라는 정 부회장은 피코크의 신제품 출시를 하나하나 챙긴다고 한다.
   
   식품업체의 강자 CJ제일제당은 기존 브랜드를 활용해 가정간편식시장을 강화하고 있다. 한식브랜드로 자리 잡은 비비고 브랜드파워를 등에 업고 비비고 새우볶음밥·비비고 닭가슴살볶음밥·비비고 취나물볶음밥 등을, CJ가 운영하는 한식뷔페 계절밥상을 살려 계절밥상 깍두기볶음밥·계절밥상 곤드레나물밥 등을, 빕스(VIPS)의 유명세에 힘입어 빕스 치킨볶음밥·빕스 스팸김치볶음밥 등을 내놨다. 샘표, 대상 청청원, 풀무원도 신제품을 족족 출시하며 간편식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차별화도 눈에 띈다. ‘닭’을 주력으로 하는 하림은 안동식 찜닭볶음밥·춘천식 닭갈비볶음밥을, 동원은 ‘하루도정 신선쌀’이라는 브랜드 아래 버터간장 장조림밥·달래간장 취나물밥·강된장 우렁쌈밥과 같은 요리에 가까운 복합밥을 내놨고, 유기농브랜드 올가홀푸드는 유기농 쌀로 만든 나물밥을 선보였다. 박소영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냉동볶음밥을 데우면 부스스했는데, 최근엔 탱글탱글한 밥알이 한 알 한 알 살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아이들에게 먹일 밥 종류가 많아져서 좋다”고 말했다. 냉동볶음밥의 진화는 ‘가마솥 직화방식’ 덕분이다. 가마솥에 쪄낸 후 밥알 한 알 한 알을 개별 급속냉동하는 기술을 적용하면 고슬고슬하고 차진 볶음밥이 된다.
   
   
▲ CJ제일제당이 지난 3월 7일 출시한 ‘프레시안 볶음밥’을 먹는 직장인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로 간편밥시장은 더욱 커지고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photo CJ제일제당

   편리함·맛·건강까지
   
   간편식의 성장은 라면 소비에도 영향을 끼쳤다.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해오던 라면시장은 2014년 들어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13년 최초로 2조원대 규모를 넘어서며 몸집을 키워가던 라면시장은 2014년 들어 1조9700억원 규모로 2%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소비심리 위축도 한 원인이지만 ‘국민 먹거리의 세대교체’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라면이 간편식시장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는 모양새다. 같은 기간 밥이 들어간 간편식 소비량은 2013년 7만4000t 수준에서 9만8000t 수준으로 32%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간편식시장의 해외 동향이다. 우리나라 간편식시장은 쑥쑥 커가지만 해외 시장은 반대다. 전 세계 간편식시장 규모는 15년 기준 763억달러로 2011년 844억달러에 비해 9.6%포인트 감소했다. 이유가 뭘까. 이에 대해서는 1인 가구 비중이 상당한 일본과 유럽 등에서는 이미 간편식이 자리를 잡은 이유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1인 가구가 가정간편식시장의 주요 고객일까. 우리나라는 올해로 1인 가구 520만 시대를 맞았다. 그중 41%는 하루 평균 두 끼를 혼자서 먹는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1인 가구가 간편식시장의 중요한 한 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면 얘기가 좀 다르다. 간편식 소비 특성을 보면 20~30대보다 40대, 미혼자보다 기혼자의 구매빈도가 높았다. 나홀로족보다 기혼자가 더 많이 구매했다는 통계다. 신세계 피코크의 타깃 역시 비슷하다. 피코크 측은 “피코크의 주요 고객은 1~2인 가구가 아닌 바쁘고 요리를 잘 못하는 주부”라고 밝혔다. 주부들 사이에는 “피코크 찌개와 코스트코에서 파는 새우냉동볶음밥, 곤드레나물밥은 잇 아이템”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피코크의 ‘진한 육개장’은 2016년 한 해 동안 55만개, ‘차돌박이 된장찌개’는 42만개가 팔렸다.
   
   문제는 건강이다. 레토르트 식품이 많은 간편식은 나트륨 함량이 높아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연맹이 시중에서 판매순위가 높은 18종의 가정간편식을 조사한 결과, 새우볶음밥과 육개장의 나트륨 함량이 성인 1일 권장 나트륨 함량의 평균 37%, 56%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그릇만 먹어도 하루 권장량의 절반 정도를 섭취하는 셈이다. 개중에는 1일 권장 나트륨의 7%에 달하는 제품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간편식이 나트륨 폭탄은 아니다. 건강을 생각한 가정간편식도 점점 느는 추세다. MSG 무첨가, 무방부제, 무색소 제품이 속속 출시되고 국내산 재료만 사용한 제품, 저염식을 표방한 제품도 있다.
   
   간편식은 1인 가구 증가, 소비패턴의 변화 등 트렌드를 등에 업고 나날이 진화 중이다. 간편식의 다양화는 소비자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고, 조리시간을 확 줄여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밥상의 혁명이라 할 만하다. 편리함과 맛, 건강까지 갖춘 간편식시장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아직 시장 초기단계인만큼 개선점도 많다. 영양성분 표시 관련,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가정간편식은 원재료 및 조리방법에 따라 영양성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제품공정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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