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 ⓒphoto AP·뉴시스
금리 인상 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 ⓒphoto AP·뉴시스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지난 3월 15일 연준이 기존 0.5~0.75%이던 미국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0.75~1%로 조정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이후 3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그런데 이 같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한국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한국의 시중금리 급등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회복 자신감이 불러온 기준금리 인상이 자칫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돼 버린 ‘한계가구’의 붕괴를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졌던 양적완화로 2015년 이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져 있다. 반면 약 5년 동안 이어진 3차례의 양적완화 효과로 예상보다 빠르게 미국의 경기가 회복됐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미국 정부와 연준이 관리 가능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특히 고용시장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며 미국 경제에 자신감이 붙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비농업 부문 임금 산업계 종사자 통계(Non-farm Payroll)’에 따르면 미국 내 농업을 제외한 산업 전반의 고용이 23만5000여명 증가했다. 예상치였던 20만명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이런 고용 증가는 실업률 안정을 불러왔다. 지난 2월 미국 실업률은 연준의 관리 목표인 4.8%보다 낮은 4.7%였다.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물가 역시 상승률마저 1.9%로 관리 기준인 2%를 밑돌았다. 미국의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면서 인플레이션 관리가 가능한 지금을 미국 연준이 최적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회복 상황과 이에 따른 연준의 판단이 한국 경제에는 자칫 충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수년 동안 반복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정책 오판과 실기, 또 현오석·최경환·유일호 기재부 장관으로 이어진 박근혜 정부 경제컨트롤타워들의 미숙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경제 운영으로 인해 지금의 한국 경제, 특히 서민경제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다.

사실상 시한폭탄이 돼버린, 1344조원(2016년 말 기준)을 훨씬 넘은 가계부채 상황이 한국 서민경제의 부실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의 시중금리, 특히 금융사들의 대출금리 급등을 부채질할 가능성마저 키우고 있다. 특히 3월 15일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앞으로 3~4개월마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의 시중금리 인상 압력이 더욱 커져버린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는다고 해도 시중은행 등 각종 금융사들이 대출 등 시중금리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 금융사들이 외부조달 금리 부담 악화와 자금 유출 같은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선제적 리스크관리 필요성을 내세워 금융사들이 결국 가계 관련 대출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한국 금융사들의 대출금리 인상을 불러온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2015년 12월 미국 연준이 0~0.25%이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0.25~0.5%로 조정하자, 2016년 이후 시중은행들은 개인 고객들의 거래 비중이 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각종 대출금리를 야금야금 올려왔다. 특히 시중 금융사들은 한국은행이 한국의 기준금리를 전혀 변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만 제기되면 그 시점마다 주택담보대출 등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대출 상품 금리를 어김없이 올려왔다.

기자가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어떻게 급등시켜왔는지 확인해 봤다. 2016년 6월 기준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의 ‘10년 만기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KB국민은행 2.91%, KEB하나은행 2.92%, NH농협 3.06%, 신한은행 2.96%, 우리은행 2.87%였다. 이랬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지난해 12월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자 폭등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주요 시중은행들의 ‘10년 만기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KB국민은행 3.18%, KEB하나은행 3.21%, NH농협 3.4%, 신한은행 3.34%, 우리은행 3.25%로 치솟았다. 2016년 6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한국의 기준금리는 1.25%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 2016년 12월 미국의 기준금리만 0.25%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한국 주요 시중은행들의 각종 대출금리 인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가까운 시간 내에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이전보다 더 빠르고 큰 폭으로 가계 대출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인 2017년 3월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상황을 보자. KB국민은행 3.49%, KEB하나은행 3.32%, NH농협 3.58%, 신한은행 3.48%, 우리은행 3.38%에 이른다. 2016년 6월과 비교하면 불과 8개월여 만에 KB국민은행 0.58%포인트, KEB하나은행 0.4%포인트, NH농협 0.52%포인트, 신한은행 0.52%포인트, 우리은행 0.51%포인트 등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폭등했다.

美 0.5%p 올리자 은행은 이자 0.58%p 올려

2016년 6월 한국은행이 한국의 기준금리를 1.25%로 조정한 이후 2017년 3월 현재까지, 9개월 동안 한국의 기준금리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반면 미국은 2016년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0.5%포인트 인상했다. 즉 한국 기준금리는 전혀 변하지 않아도,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그 인상 시점에 맞춰 가계 대출 중에서도 가장 손쉽게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품으로 꼽히는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빠르게 폭등시킨 것이다. 더 눈에 띄는 점이 있다. 기막히게도 2016년 6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KB국민·KEB하나·농협·신한·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인상 폭(0.4~0.58%포인트)이 미국 연준이 단행한 기준금리 인상 폭(0.5%포인트)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한국 금융사들의 시중금리, 특히 대출금리 인상 현상이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은 더욱 짙다. 앞서 말했듯 재닛 옐런 미국 연준 의장은 “앞으로 3~4개월에 한 번씩 미국의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한국 시중은행의 현실에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라고 해봐야 결국 대출금리를 더 올리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크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밝힌 대로 3~4개월 간격으로 올해 2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실제로 올리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당장 약 200만~220만가구로 추정되는 한국의 한계가구들이 이 상황을 버티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 한계가구란 ‘처분 가능 소득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40%를 넘고,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를 말한다. 쉽게 말해 버는 돈의 40% 이상을 금융사 빚을 갚는 데 쓰고 특히 가진 돈보다 빌린 돈이 더 많은 가구를 일컫는다.

이런 한계가구는 시중금리가 1%만 올라도 자칫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특히 고금리로 악명 높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 이용자와 대부업체에 빚을 진 가구의 경우 미국 기준금리 인상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제2금융권의 대표적 금융사인 저축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 속도와 폭이 이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10.66%였다. 이것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직후인 지난 1월 11.75%로, 단 1개월 만에 평균 1.09%포인트나 폭등했다. 저축은행 대출 1억원이 있는 가구라면 2017년부터는 2016년보다 이자를 100만원 이상 더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계가구로 분류되는 이들의 실제 대출이자 부담은 이보다 더 클 수 있다.

금리 1% 인상 한계가구 부담 136만원 증가

최근 시중금리가 1% 상승하면 한계가구의 이자 부담이 135만9000원으로 늘어난다는 한국은행 자료가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중순 한국신용평가는 ‘은행권 가계대출 진단’ 보고서를 내놨다. 한신평은 부채가 있는 전체 1086만3554가구를 조사해 이 중 19.9%를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에 몰릴 수 있는 한계가구로 분류했다. 5가구 중 1가구가 사실상 금융사에 빚 갚기조차 버거운 한계가구에 몰려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2013년 당시 17.6%로 조사됐던 한계가구보다 무려 13.07%나 증가한 수치다. 한신평은 매달 소득에서 생계비를 제외하면 대출원리금 상환이 힘든 가구를 한계가구로 규정했다. 처분가능 소득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40%를 넘고,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라는 한계가구의 일반적 정의와는 기준이 조금 다르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한국 서민경제가 지금 위험수위에 있음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더 오르면 금융사들의 자금 회수 욕구와 이에 따른 대출금리 인상 속도 및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변동금리 대출 사용자와 다중채무자, 저소득·저신용자들의 한계가구 편입이 급증할 수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이들 한계가구의 규모가 통제하기 힘든 수준까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경기는 위축되고, 부동산 등 자산버블 붕괴와 침체가 이어지면 소득의 상당 부분을 빚 갚는데 지출하고 있는 한계가구들이 그대로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만약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유출 상황과 물가상승 압력을 못 이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 한계가구들은 더욱 위험한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들의 채무상환 불이행과 불량 채권 급증 사태가 불거지면 금융사들도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금융사의 위기가 자칫 다른 산업으로 전이돼 더 큰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정이고 위기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재 드러나 있는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와 서민경제 상황이 위험수위를 넘어서 있다. 지난 3월 20일과 21일 기자는 서울 종로와 중구, 강남 일대 시중은행 등 금융사에서 상담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외 없이 “소득은 늘지 않는데 빚만 늘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지난해 12월과 올 3월에 이어 3~4개월 후로 예정된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걱정도 털어놓았다.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한국 경제 역시 마땅한 대책조차 찾지 못한 채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상황이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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