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문을 연 경기도 하남시의 스타필드 하남점.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해 9월 문을 연 경기도 하남시의 스타필드 하남점.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대통령선거일이던 지난 5월 9일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의 스타필드는 임시공휴일을 맞아 밀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스타필드 초입의 미사리경정장에서부터 늘어선 차량은 스타필드까지 이어졌다. 6200대의 차량이 동시 수용 가능한 옥내외 주차장은 점심시간에 이미 ‘만차’ 표시등이 켜졌다.

지난해 9월 들어선 스타필드는 지하 4층, 지상 4층 연면적 46만㎡의 초대형 복합쇼핑몰이다. 신세계가 미국의 쇼핑몰전문 개발기업인 ‘터브먼’과 합작으로 만들었다. 축구장 70개 크기의 단일건물에는 신세계백화점을 비롯 창고형 대형마트(이마트 트레이더스), 가전양판점(일렉트로마트), 영화관(메가박스), 워터파크(아쿠아필드) 등이 입점해 있다.

스타필드가 들어서기 전 주말쇼핑을 위해 서울 천호동의 현대백화점이나 잠실동의 롯데백화점까지 나가야 했던 하남 주민들은 더 이상 서울을 찾지 않는다. 정기휴무일이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달리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는 기본적으로 365일 연중무휴라 헛걸음할 일도 없다. 이로 인해 토·일·공휴일이면 스타필드 일대는 하남은 물론 서울, 심지어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에서 몰려든 차량들로 극심한 교통정체를 빚는다. 실제 스타필드는 지난 2월에는 개점 140일 만에 누적 방문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일평균 방문객 7만1000명을 연간으로 환산한 방문객 수는 약 2600만명에 달한다. 이날 역시 임시공휴일을 맞아 맛집들이 늘어선 1층 고메스트리트는 매장마다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사람과 자동차가 몰리면서 스타필드 주변 지역 상권도 살아났다. 원래 스타필드 바로 옆 유니온파크는 생활폐기물을 소각하는 쓰레기소각장과 오폐수처리장이 있는 곳이라 하남 토박이들은 꺼리던 곳이다. 스타필드 개점에 앞서 문을 연 ‘송추가마골’ 같은 기업형 대형 갈비집은 주말이면 갈비를 뜯는 가족 단위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복합쇼핑몰과 함께 대규모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하남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지난해 하남시 인구는 최초로 20만명을 돌파해 21만명에 이르렀다. 1989년 하남시로 승격된 이래 최대 경사(慶事)다. 2015년 956억원가량에 불과했던 지방세입도 지난해 1234억원으로 늘었다. 하남시는 올해는 1452억원가량의 지방세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남시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고양시 삼송지구 주민들도 요즘 들떠 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스타필드 고양점 개점을 앞두고, 하남시와 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스타필드 고양점은 지하 2층, 지상 6층의 연면적 36만㎡의 복합쇼핑몰이다. 2010년 개점 후 고양 지역 유통업계 맹주로 군림해 온 일산서구 대화동의 현대백화점 킨텍스점(8만7400㎡)보다 무려 4배가 넘는 크기다. 2015년 개점한 고양시 일산서구의 이마트타운 킨텍스점(연면적 10만㎡)보다도 3배 이상 크다. 게다가 삼송지구 남쪽의 원흥지구에도 올 연말(4분기 예정) 이케아 2호점과 롯데아울렛이 동시 출점 예정이다.

풍전등화 복합쇼핑몰

하지만 복합쇼핑몰은 5월 9일 대선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대형마트에 적용하던 월 2회 의무휴업을 복합쇼핑몰에까지 확대적용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회원수 700만명의 소상공인연합회는 복합쇼핑몰 입점에 앞서 ‘소상공인 사전영향평가제 도입’을 각 캠프에 요구해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 목소리가 크고 조직력이 강한 재래시장 상인들 눈치를 보느라 복합쇼핑몰 추가규제를 너도나도 공언해왔다.

복합쇼핑몰 월 2회 의무휴업이 신정부 정책에 반영되면, 올해 개점을 앞둔 스타필드 고양점(삼송), 롯데아울렛 고양점(원흥)도 모두 그 대상이 된다. 향후 개점 예정인 스타필드 안성점, 청라점(인천), 창원점을 비롯해 롯데몰 송도점(인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진건점(남양주)이 모두 규제 대상이다. 가구전문 복합쇼핑몰로 현재 경기도 광명에 이어 고양(원흥)에서 한국 2호점 개설을 추진 중인 이케아 역시 영업규제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특히 대도시 외곽에 입지한 이들 점포는 주말 영업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월 2회 일요일 의무휴업이 강제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서울시와 롯데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복합쇼핑몰(상암 롯데몰) 개설을 두고 4년간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소지도 있다. 이에 유통업체들은 점포 개점 시기를 뒤로 미루거나, 수익성이 의문시되는 일부 점포의 경우 점포 개설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스타필드 고양점만 오는 8월경 개점 예정으로 안성, 청라 등은 아직 첫 삽도 안 뜬 상태”라며 “고양점 외에는 아직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정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롯데자산개발 홍보팀의 한 관계자도 “롯데몰 송도점은 당초 2018년 개관 예정이었는데 현재로서는 미정”이라고 했다. 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2019년 남양주 진건점 개점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지금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간 복합쇼핑몰은 비(非)서울 지방 성장을 이끌어왔다. 경기도 하남을 비롯해 교외형 복합쇼핑몰이 들어선 곳은 쇠퇴하는 다른 지방도시들과 달리 활력이 돈다. 복합쇼핑몰이 모습을 바꾼 대표적 도시가 경기도 광명시다. 한때 세계 최대 유령역으로 불리던 KTX 광명역 인근에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2012)를 비롯 이케아(2014), 롯데프리미엄아울렛(2014) 같은 복합쇼핑몰이 대거 입주하면서 수도권의 쇼핑 명소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선암~소하)가 개통된 이후로는 교통여건도 대폭 개선됐다. 요즘은 강남·서초·송파 주민들까지 광명으로 몰려들 정도다.

덕분에 광명시의 지방세 징수액 역시 2010년 1067억원에서 지난해 1664억원으로까지 증가했다. KTX 광명역 인근에 집중적으로 들어선 복합쇼핑몰이 광명시 세수증가의 일등 공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코스트코코리아와 이케아코리아는 광명 입주와 함께 한국 본사까지 광명에 두면서 세수증가에 톡톡히 일조했다. 광명시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트코코리아와 이케아코리아가 광명시에 지방세로 납부한 금액은 각각 17억원과 14억원가량.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등 막대한 연관 고용 효과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2011년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과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 자유로를 끼고 불과 5㎞ 거리에 들어선 경기도 파주 역시 대표적 수혜 도시다.

이는 비단 수도권뿐만 아니라 비(非)수도권 지방도시도 마찬가지다. 경남 김해 장유신도시의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역시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시작된 연휴에 인파로 북적였다. 2008년 들어선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김해점은 국내 유통업계 1위 롯데가 만든 프리미엄아울렛 1호점이다. 경남 최대 복합쇼핑몰로 영화관(롯데시네마), 워터파크(롯데워터파크)까지 갖추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덕분에 바로 옆 대도시인 부산과 창원은 물론 멀리는 진주까지 지방도시 쇼핑객을 빨아들인다. 김해에서 성공한 롯데는 경기도 파주(2011), 이천(2013), 광명(2014)으로 북상했다가 2014년 재차 부산 기장군에도 프리미엄아울렛을 개설했다.

지방 젊은 소비자들 열광

사실 서울에는 온갖 형태의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국내 복합쇼핑몰의 원조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 잠실에 들어선 롯데월드다.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국내 최초 할인점인 이마트 창동점이 들어선 이후 대형마트도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지금도 상당수 지방도시에는 쇼핑몰로 변변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입점브랜드조차 제대로 못 갖춘 중소형 백화점과 마트가 고작이다. 그보다 작은 도시 주민들은 주차장도 제대로 없고 카드 사용도 눈치를 봐야 하는 재래시장을 찾는 수밖에 없다. 특히 유아를 동반한 여성 고객의 경우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에서 보편화된 수유실이나 가족화장실, 유모차 대여는 차라리 먼 나라 이야기에 가까웠다.

차량 접근이 편한 고속도로 가까운 곳에 수천 대 규모의 대형 주차장까지 갖춘 복합쇼핑몰이 줄줄이 들어서니 서울의 살인적인 집값에 내몰려 지방에 거주하게 된 30~40대 젊은 소비자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다양한 식당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서울 사람들은 느끼기 힘든 매력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윤모씨는 “지방 식당에는 아기의자가 없는 곳도 태반”이라며 “주말에 자녀들을 데리고 시간을 때우기에는 복합쇼핑몰이 최고”라고 했다.

한국에서 교외형 복합쇼핑몰이 첫 개설된 것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이다. 신세계가 미국의 부동산 개발기업인 사이먼과 합작해 경기도 여주에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을 개점하면서다. 사이먼은 미국의 유명 프리미엄아울렛인 첼시프리미엄아울렛을 소유한 부동산 개발회사다. 신세계의 미국식 교외형 복합쇼핑몰 국내 도입은 백화점과 마트 일색이던 국내 유통업계에 일대 충격파를 던졌다. 급기야 신세계의 교외형 프리미엄아울렛 개점에 맞서 유통업계 1위 롯데가 이듬해 한국형 프리미엄아울렛으로 응전(應戰)에 나서면서 지방에 복합쇼핑몰 개설 열풍이 불었다.

‘스타필드’ 역시 교외형 복합쇼핑몰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스타필드는 이름부터 호주와 미국의 유명 복합쇼핑몰 ‘웨스트필드’ 느낌이 강하다. 웨스트필드는 신세계와 합작한 터브먼의 경쟁사이기도 한데 브랜드 로고와 입지전략, 매장구성에서 거의 유사하다. 신세계 입장에서 선진 쇼핑몰의 앙꼬만 벤치마킹해 현지화한 셈이다. 과거 지하철역과 연계해 점포를 개척하는 일본식 출점 방식으로 롯데가 국내 유통시장을 제패했다면, 지금은 신세계가 고속도로와 대형주차장에 기반한 미국식 출점 방식으로 유통업계를 이끄는 모양새다. 지금은 유통업계 3위인 현대백화점까지 김포(2015), 인천 송도(2016)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연이어 개설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인천 송도신도시의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해 4월 문을 연 인천 송도신도시의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첩첩규제 가로막힌 유통선진화

유통업계가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아닌 복합쇼핑몰을, 그것도 소비수준이 높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 연이어 출점하는 것은 첩첩규제를 피해서다. 가장 큰 족쇄는 ‘유통산업 발전’이란 미명(美名) 아래 정치권과 각급 지방자치단체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유통산업발전법’이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조항이 신설됐고 영업시간도 제한을 받았다. 전북 전주시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는 둘째·넷째 일요일 의무휴업을 단행했고 같은 해 3월 서울시도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과 새벽시간(0~8시) 영업금지를 조례에 넣었다. 이 같은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행정소송으로까지 번져 2015년 11월 대법원 판결로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된다. 대다수 소비자가 아닌 특정계층(중소상인)의 기득권(영업권) 보호를 위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가로막고 소비자 편익을 침해하는 반(反)시장적 판결인 탓이다. 영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업계 자율적으로 월 1회 휴무일을 정해 쉬는 백화점과도 달리 대형마트는 일률적으로 월 2회 휴무를 강제당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지역의 휴무일은 둘째·넷째 일요일로 고정돼 있다. 상당수 소비자들은 자유로운 주말쇼핑을 할 수 없어 불만이 크다. 맞벌이 부부들의 퇴근 후 심야쇼핑과 같은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같은 대형마트 입지규제와 영업시간 규제가 복합쇼핑몰로까지 확대되면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온다. 정회상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는 “지난 5년간 대형마트 매출은 21% 감소했고 동시에 재래시장은 13%가 감소했다”며 “복합쇼핑몰로 영업규제를 확대할 경우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안 좋은데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한 후 그 혜택이 골목상권에 돌아갔다는 증거가 없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쇼핑 불편을 가중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출점규제와 영업규제에 맞선 유통업계는 복합쇼핑몰의 대안으로 365일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온라인·모바일 쇼핑몰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롯데나 신세계 같은 유통기업들은 ‘롯데닷컴’이나 ‘SSG(신세계) 닷컴’ 같은 온라인 쇼핑몰을 모두 자사 백화점, 마트와 연동해둔 상태다. 실제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이 시행된 후 의류와 잡화는 물론 무거운 쌀과 물 같은 생필품까지 모바일 쇼핑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집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물건이 배달되니 나갈 일이 없다. 정회상 교수는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은 서로 경쟁 대상이 아니다”라며 “영업규제는 결국 둘 다 죽이는 정책”이라고 했다.

결국 사람이 나가지 않으니 시중에 돈이 안 풀린다. 결과적으로 복합쇼핑몰 규제를 주장한 중소상인들은 얻은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복합쇼핑몰 규제를 약속한 정치인들만 상인들의 표를 얻었을 뿐이다. 오정근 교수는 “재래시장도 보호를 해야겠지만 월 2회 의무휴업 확대 같은 방법밖에는 없는가 고민해야 한다”며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현대화하는 유통산업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 후기 시전상인들은 난전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막기 위해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휘둘렀다. 하지만 결국에는 난전과 보부상에게 시장을 빼앗겼다. 5일장에 기반한 보부상 역시 상설시장에 설 자리를 빼앗겼다. 보부상의 자리를 빼앗았던 상설시장 상인들이 ‘전통시장’으로 행세하면서 신유통업태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결국 복합쇼핑몰 추가규제는 새로 출점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유통산업은 발전이냐 퇴보냐의 기로(岐路)에 놓여 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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