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자본의 한국 자본 빼먹기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상당수 유명 외국계 기업과 자본들이 한국에서 번 돈 대부분을 해외로 유출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투기성 헤지펀드는 물론 외국 기업이 지분을 100% 소유한 한국 법인, 심지어 한국 기업과 제휴 또는 합작 형태로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까지 한국 자본 빼먹기에 뛰어들고 있다.

외국계 기업과 자본들이 한국에서 번 돈 대부분을 해외로 빼내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한국 법인을 동원한 ‘비상식적 고배당’은 아주 고전적 수법이다. 한국 법인이 자신들의 상호나 상표를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로열티(royalty)’를 챙겨가고, 기술 및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각종 사용료’를 뜯어가는 방법도 애용되고 있다. 때로는 실체와 성격이 모호한 ‘경영자문료’ 명목으로 한국에서 번 수익 대부분을 챙겨가기도 한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 본사가 홍보와 마케팅을 해줬으니 한국 법인도 그 비용을 내라”며 ‘국제마케팅비’ 명목의 돈을 뜯어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번 돈의 100% 전액을 해외로 빼가는 게 애교로 비쳐지는 상황까지 벌어질 정도다. 비상식적 배당은 물론 로열티와 경영자문료 같은 명목으로 한국에서 번 수익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해외로 빼가는 외국계 기업들도 부지기수인 상황이다.

408억 벌자 500억 배당 뜯어간 로렉스

고가시계로 알려진 스위스 국적의 ‘로렉스(Rolex)’를 보자. 로렉스는 지난 2002년 한국 법인인 ‘한국로렉스’를 만들었다. 한국로렉스의 지분 100%를 스위스에 있는 로렉스홀딩스SA(Rolex Holding SA)가 갖고 있다.

기자는 한국로렉스의 실태를 확인해 봤다. 한국로렉스가 2016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408억2176만원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배당금이 500억원이었다. 한국로렉스가 2016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벌어들인 순수익보다 91억7824만원이나 많은 배당금이 스위스에 있는 로렉스홀딩스SA로 송금됐다는 말이다.

한국로렉스 측에 “한국에서 당기순이익으로 408억원을 번 회사가 외국에 있는 모(母)기업 한 곳을 위해 배당금 500억원을 책정해준 이유”를 물었다. 한국로렉스 측은 “면세점 사업 매출이 증가했고, 한국에 축적된 경영성과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독일계 자동차 기업 BMW도 2017년 한국에서 ‘먹튀’ 수준으로 이익을 빼가는 대표적 외국계 기업이다. BMW의 한국 법인인 BMW코리아는 22년 전인 1995년 만들어졌다. BMW 측은 BMW코리아의 모기업도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BMW는 흔히 다임러-벤츠, 폭스바겐과 함께 독일 국적의 자동차 회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BMW코리아의 모기업은 독일 기업이 아니다. 독일계 기업 BMW가 네덜란드에 만들어놓은 BMW홀딩스(BMW Holding B.V)가 바로 BMW코리아의 모기업이자 지분 100%를 소유한 유일 주주다.

BMW코리아 사실상 취재 거부

기자가 BMW코리아 상황도 확인해 봤다. 역시 상식적이지 않은 사실들이 드러났다. BMW코리아가 지난해 한국에서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366억1763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이 회사 역시 한국에서 번 수익보다도 많은 370억원의 배당을 감행했다. BMW코리아는 370억원의 배당금을 독일의 BMW가 네덜란드에 만들어놓은 BMW홀딩스에 전액 송금했다. BMW 측이 밝힌 액면배당률은 무려 251.02%이다, 배당성향도 101.04%나 된다.

BMW코리아 측에 취재를 요청했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기자의 취재 요청에 대해 “(BMW코리아의) 언론 담당자를 연결해줄 수 없다”며 “취재 요청 메모를 남기면 우리 쪽에서 기자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BMW코리아 측 요구대로 취재 요청 메모를 남겼다. 하지만 BMW코리아는 기사 마감 시간까지 취재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외국으로 빼가는 외국계 기업으로 지멘스(Siemens)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멘스는 독일에 본사를 둔 전기·전자 기업이다. 사실 지멘스는 가스와 풍력발전, 에너지 개발과 전력 송배전 사업, 영상과 의료·공장자동화, 심지어 부동산 임대업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 확장에 나선 대표적 독일 기업이다.

이런 지멘스는 꽤 일찍 한국에 현지법인을 세워 진출했다. 지멘스가 한국에 처음 상륙한 건 1950년대다. 한국전쟁 직후 재건사업에 뛰어들어 화학공장과 시멘트공장, 발전설비 사업 수주로 한국 시장에서 수익을 챙겼다. 한국 사업을 확장하던 1989년 8월, 지멘스(Siemens Ltd. Seoul) 한국법인을 만들었다. 독일의 지멘스AG가 지멘스 한국법인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지멘스의 연간 사업결산은 12월이 아닌 매년 9월에 한다. 현재 확인되고 있는 지멘스 한국법인의 2016년 결산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9월 말까지의 현황이다. 기자가 확인해 본 결과 이 기간의 당기순이익은 249억9815만원이 조금 안 됐다. 그런데 지멘스 한국법인은 2015년의 당기순이익과 이익잉여금을 적용해, 2016년 독일에 있는 지멘스AG 단 한 곳에 무려 465억원의 배당금을 보내줬다. 2016년 한 해 동안 지멘스 한국법인이 번 수익보다 무려 215억185만원이나 많은 돈을 모(母)기업이자, 유일한 주주인 독일의 지멘스AG에 배당금이라며 빼줬다는 의미다.

사실 지멘스의 이런 비상식적 배당은 2016년에만 벌어진 게 아니다. 2015년 지멘스 한국법인 당기순이익은 517억5403만원이다. 이때도 직전 연도인 2014년 당기순이익과 이익잉여금을 적용해 배당금을 550억원으로 결정하고 2015년에 이 돈 전액을 독일에 있는 지멘스AG에 보내줬다. 2015년 지멘스 한국법인이 1년 동안 번 돈보다 32억4597만원이나 많은 돈이다.

2014년도 비슷하다. 이때 배당금으로 지급한 돈이 510억원이었고, 2013년 역시 지멘스 한국법인이 독일 지멘스AG에 배당금이라며 500억원을 지급했다. 지멘스는 매년 자신들이 한국에서 번 수익보다 더 많거나, 혹은 수익과 비슷한 규모로 배당금을 책정해 다음 해(사업 결산 기준)에 이 돈 전액을 모기업이자 유일한 주주인 독일 지멘스AG 한 곳에 몰아줬다.

필립모리스, 한국서 번 수익 100% 해외로

그런데 한국로렉스나 BMW코리아, 지멘스가 벌인 비상식적 배당보다 더 심한 곳도 있다. 미국계 담배회사로 알려진 ‘필립모리스코리아(Philip Morris Korea)’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1989년 한국 법인을 만들어 한국에 정식 진출했다. 그동안 미국계 기업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hilip Morris International)이 필립모리스코리아의 모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필립모리스코리아의 법적 주인은 미국 기업이 아니다.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 스위스에 만들어둔 필립모리스 브랜드(Philip Morris Brands Sarl)라는 또 다른 자회사다. 필립모리스 브랜드는 현재 필립모리스코리아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한국로렉스나 BMW코리아와는 또 다른 방법을 동원해 한국에서 번 수익의 사실상 전액을 외국으로 빼가고 있다.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곳곳에 또 다른 자회사(계열사)들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필립모리스코리아로 하여금 세계 곳곳에 만들어놓은 필립모리스의 외국 자회사(계열사)들과 ‘담배상표 사용’ ‘법무·재무·HR 용역’ 등의 명목을 내세워 각종 계약을 맺게 했다. 이렇게 맺어놓은 계약을 근거로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세계 곳곳에 만들어진 필립모리스의 외국 자회사(계열사)들에 고액의 로열티와 수수료를 지급해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필립모리스코리아가 한국에서 번 수익 상당액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16년에만 지급수수료와 로열티 계약을 앞세워,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외국 소재 자회사인 필립모리스 글로벌 브랜드와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심지어 필립모리스 필리핀 등에까지 총 711억600만원을 줬다. 2015년에는 지급수수료와 로열티라며 외국 소재 필립모리스 자회사들에 총 698억6600만원을 보냈다. 2015년과 2016년,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지급수수료와 로열티 명목으로 미국의 필립모리스가 만들어둔 외국 소재 자회사들에 보낸 돈만 무려 1409억7200만원이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14년에도 필립모리스 글로벌 브랜드 등 총 3개 외국 소재 계열사에 로열티라며 674억5900만원을 보냈고, 2013년에는 670억7300만원을 보냈다. 그전에도 매년 지급수수료와 로열티 명목으로 한국에서 번 수익 중 수백억원 이상을 외국에 있는 필립모리스 계열 회사들에 보냈던 사실이 확인됐다.

필립모리스코리아가 한국에서 번 수익을 해외로 빼가는 데는 비상식적 초고배당도 동원됐다. 2015년의 경우 필립모리스코리아의 당기순이익은 1917억7109만원이었는데 이 당기순이익 전부를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필립모리스코리아의 주주는 스위스 소재 필립모리스 브랜드라는 기업 단 한 곳뿐이다. 결국 2015년 결정한 배당금 1917억7109만원을 필립모리스코리아가 2016년에 필립모리스 브랜드 단 한 곳으로 전액 송금한 것이다.

2015년과 2016년만이 아니다. 2014년에도 필립모리스코리아는 당기순이익 1432억3546만원 전부를 배당금으로 결정했고, 다음 해인 2015년에 스위스의 필립모리스 브랜드에 전액 송금했다. 2013년 역시 1407억5264만원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하자 전액 배당금으로 결정한 후 스위스 계열사로 고스란히 송금했다. 필립모리스코리아 측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순수익의 100%(배당성향 100%)에 해당하는 초고액 배당을 한 이유”를 묻자 필립모리스 관계자는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순이익의) 100%를 (스위스에 있는 필립모리스 브랜드에) 배당금으로 주는 건 ‘미국에 있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 정한 지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명동 아디다스 매장. ⓒphoto 뉴시스
서울 명동 아디다스 매장. ⓒphoto 뉴시스

아디다스, 국제마케팅비까지 매년 빼가

스포츠의류·신발 브랜드인 아디다스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에 본사가 있는 아디다스가 한국에 본격 진출한 건 1997년이다. 당시 아디다스코리아 지분 51%를 갖고 있던 독일의 아디다스AG는 2006년 나머지 지분 46% 전량을 인수했다. 현재 아디다스코리아의 주주는 독일의 아이다스AG 단 한 곳으로, 여기서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아디다스코리아 역시 이해하기 힘든 비상식적 배당을 수년째 벌이고 있다. 2016년 아디다스코리아의 당기순이익은 1070억6731만원이었는데 이해 배당금이 무려 1500억원(중간배당과 연말배당 포함)이었다. 2016년 아디다스코리아가 한국에서 번 당기순이익보다 배당금이 429억3269만원이나 더 많은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디다스코리아는 배당금 전액을 독일의 아디다스AG 단 한 곳에 보냈다.

2015년에도 비슷했다. 당기순이익이 1087억5070만원이었는데 독일 아디다스AG에 준 배당금이 900억원이었다. 2014년과 2013년에도 각각 당기순이익의 70%가 넘는 500억원과 700억원의 배당금을 독일 아디다스AG 한 곳에 줬다.

아디다스코리아는 배당금보다 더 손쉽게 한국에서 번 돈을 외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아디다스코리아는 ‘상표사용료와 국제마케팅비를 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독일의 아디다스AG는 물론, 이 회사의 특수관계사인 리복UK 등 외국에 만들어진 또 다른 세 개의 계열사에 매년 1000억원 이상의 돈을 꼬박꼬박 줘 온 사실도 확인됐다.

이렇게 한국을 빠져나간 돈의 규모가 놀라웠다. 2016년에는 상표사용료와 국제마케팅비를 합쳐 무려 1388억6474만원, 2015년에는 1235억8091만원을 독일 등 외국 소재 계열사들에 지급했다. 2013년과 2014년에도 같은 명목으로 각각 1114억3541만원과 1021억2555만원을 해외 계열사들에 준 게 확인됐다. 최근 4년 동안 상표사용료와 국제마케팅비로 아디다스코리아가 독일 등 외국 소재 계열사 3곳에 준 돈만 4760억660만원이 넘는다.

외국 기업 먹튀에 속수무책

독일계 자동차 기업 포르쉐코리아가 2016년 한국에서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34억3358만원. 그런데 배당금이 이보다 약 두 배쯤 되는 60억3669만원이었다. 이 돈 전액을 외국 소재 주주에게 보냈다. 포르쉐코리아는 2015년에도 비상식적 배당을 했다. 이들뿐 아니다. 미국 담배회사가 한국에 만든 BAT코리아, 스위스 시계 회사 스와치그룹코리아, 코카콜라, 한국암웨이 등 한국에 진출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배당금과 로열티, 각종 자문비와 수수료 명목으로 한국에서 번 수익을 그대로 외국으로 빼가고 있는 실정이다. 꼼수가 동원된 ‘먹튀’ 수준의 비상식적 행태가 외국계 자본에 의해 벌어지고 있지만 기업윤리와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 외에는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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