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그룹본사(왼쪽)와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그룹본사(왼쪽)와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롯데가(家) 사위가 재벌의 특수관계인에게 적용되는 공정거래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 운영해온 회사의 지분을 차명으로 소유해왔다고 실토했다. 그는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주간조선은 롯데그룹 오너가 사위의 이 같은 발언이 담긴 육성녹음 파일을 입수했다. 롯데가 사위가 문제의 발언을 한 시점은 2015년 2월로 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녹음 파일에 등장하는 롯데그룹의 차명 위장계열사는 2011년 9월 설립된 ‘브이앤라이프(V&Life)’로,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인 신영자(75)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의 사위 양성욱(47)씨가 실소유자였다. 양씨는 신영자 이사장의 둘째 딸인 장선윤 롯데호텔 전무의 남편이다. 양성욱씨는 2011년 브이앤라이프를 만든 후 롯데마트와 내부거래를 해왔다. 그러다 2012년 주간조선 취재로 이 회사가 롯데 오너가의 특수관계인이 소유한 위장계열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양씨는 주간조선에 자신이 소유한 이 회사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입수한 녹음 파일에서 당시 그의 이 같은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는 제3자에게 팔았다는 이 회사 지분을 차명으로 전환해 소유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녹음 파일에 담긴 양씨의 발언은 2015년 양씨가 차명으로 소유했던 브이앤라이프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는 지분 매입자인 A씨에게 회사의 실소유 관계를 설명하면서 문제의 발언들을 했다. 녹음 파일에는 2015년 2월 양씨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의 한 영업점에서 A씨와 나눈 대화가 담겨 있는데 전체 2시간30분이 넘는 내용 중 문제의 발언은 4분20여초가량 이어진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성욱 : 우리나라의 공정위에서 정한 건데, 비상장회사는 재벌가 지분이 20% 이하여야…. 제가 하는 회사들(브이앤라이프)이 제 지분 20%부터는 롯데에 편입해야 된다. 롯데로 편입하면 불편한 점이 굉장히 많다.

A씨 : 그렇지요.

양성욱 :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지금 우리 회사(브이앤라이프) 경우는 차명으로 돌려놨다. 그것도 공정위랑은 이야기를 해놓았는데 차명으로….

A씨 : 그렇죠.

양성욱 : 어차피 (공정위에 위장계열사의 지분을 차명 소유하고 있음을) 얘기는 하고 네고(negotiation·협상)는 해놓은 상태…. ‘재벌가들이 사업을 확장하면 안 된다’는 그런 분위기…. 그래서 공정위 쪽에서… 청와대도 그렇고, 저한테 명령을 내렸고….>

이 대화에 따르면,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씨가 브이앤라이프 지분을 차명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대화에서 양씨는 “차명으로 돌려놨다”고 한 후 “그것도 공정위랑은 이야기를 해놓았는데”라고 말했다. 브이앤라이프 지분을 차명으로 전환해 불법으로 소유·관리하고 있는 사실을 공정위에 “이야기해놓았다”는 의미로 들린다. 특히 양씨는 대화에서 “네고는 해놓은 상태”라는 발언도 한다.

이 대화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이앤라이프가 롯데그룹의 위장계열사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2011년 9월 만들어진 브이앤라이프는 2012년까지 신영자씨의 딸인 장성윤 롯데호텔 전무가 소유했던 ‘블리스’라는 회사와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운영됐다. 블리스는 프랑스 빵집인 ‘뽀숑’을 운영하던 롯데그룹 편입 계열사였다. 하지만 블리스와 사무실을 함께 쓰던 브이앤라이프는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정체불명의 회사였다. 당시 브이앤라이프는 독일제 물티슈를 수입해 롯데마트 등을 통해 팔았다. 롯데그룹과 내부거래를 하며 돈을 번 위장계열사였다.

2012년 당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양씨 소유 회사 브이앤라이프와 부인 장선윤씨 소유 회사 블리스가 함께 쓰고 있는 사무실 모습. ⓒphoto 조동진
2012년 당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양씨 소유 회사 브이앤라이프와 부인 장선윤씨 소유 회사 블리스가 함께 쓰고 있는 사무실 모습. ⓒphoto 조동진

위장계열사 들통나자 차명으로 전환

주간조선은 2012년 ‘롯데家 3세 사위의 회사는 위장계열사?’ 기사를 통해 양성욱씨가 2011년 9월부터 ‘브이앤라이프(V&Life)’라는 위장계열사를 만들어 운영해왔고, 롯데그룹 최대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롯데마트를 동원해 이 회사의 매출을 올려준 사실을 고발했다. 이 보도 후 양성욱씨 측은 기자에게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브이앤라이프 지분을 넘겼다”며 “이 회사 지분을 더는 갖고 있는 게 없다. 운영에도 이제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앞서 녹음 파일 대화에서 보듯 이 같은 해명은 거짓이었다. 위장계열사를 자신과는 관계없는 회사처럼 꾸며 차명으로 운영해온 것이다. 그가 브이앤라이프의 지분을 차명으로 소유하기 위해 빌린 이름은 자신의 어머니 서모씨와 자신의 경리직원 허모씨 등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주간조선이 별도로 입수한 브이앤라이프 주식 양수 양도 계약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 당시 브이앤라이프와 블리스가 6층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표지판. ⓒphoto 조동진
2012년 당시 브이앤라이프와 블리스가 6층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표지판. ⓒphoto 조동진

기자는 녹음 파일에 나온 “차명” “공정위” 운운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양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씨는 “브이앤라이프라는 회사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이어 녹음 파일에서 “공정거래위원회·청와대 등을 언급한 이유”를 묻자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결국 문제는 양씨가 ‘공정위’와 ‘청와대’를 왜 언급했느냐는 부분이다. 실제 공정위 등 권력기관이 당시 양씨의 차명 위장계열사 지분 소유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줬다면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공정위에서 재벌기업과 재벌 오너일가가 숨겨둔 위장계열사 적발과 행정 조치를 담당하는 곳은 경쟁정책국의 기업집단과다. 이곳에서는 재벌기업과 오너일가의 위장계열사가 드러나면 해당 재벌그룹과 실소유주, 재벌그룹의 동일인(사실상 그룹 총수)에 대해 시정 요구 등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차명 소유와 운영, 일감몰아주기 같은 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는 롯데 오너일가 소유의 위장계열사를 검찰에 고발한 적이 있었다. 2015년 노골적 일감몰아주기 문제를 일으킨 ‘유기개발’과 ‘유니플렉스’ 등 4곳을 롯데그룹 위장계열사로 규정해 검찰에 고발했었다. 당시 검찰에 고발된 위장계열사 4곳의 실소유주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 또 신 총괄회장과 서미경씨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이었다.

기자는 공정위 측에 “서미경씨 소유의 위장계열사 이외에, 신동빈·신영자씨나 롯데그룹 오너가의 다른 사람이 소유한 위장계열사나 차명 위장계열사의 존재에 대해 공정위가 파악하거나 조치를 취한 게 있는지”를 물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2015년 파악한 서미경씨 소유 4개 위장계열사 외에 공정위가 파악하거나 처리한 롯데그룹 위장계열사는 모른다”고 했다. 이후 기자는 주간조선이 입수한 녹음 파일에 등장하는 양성욱씨 발언을 그대로 알려준 뒤 공정위에 사실 여부를 물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은 ‘(양씨가 롯데그룹 위장계열사를 차명으로 불법 소유한 사실을 알면서도 공정위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거나 네고를 했다는) 그런 일은 없는 것 같다’”며 “지금 상황에서 공정위가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은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시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말을 들어 보니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했다”며 “만약 (양씨가 말한 내용이 맞고) 그렇다면 (공정위의) 비위이고, 문제가 있는 불법 행위다. 업무 처리가 그런 식으로 되기 어렵다는 게 지금 확인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양성욱씨 발언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고도 했다.

현재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박근혜·최순실씨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고, 신영자 이사장은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와 수십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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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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