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62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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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비닐 먹는 애벌레 플라스틱 공해 해결할까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 최근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사실이 발견된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하며 일정한 온도를 가하면 물렁물렁해져 어떠한 모양이든지 손쉽게 만들 수 있어 생활용품에서부터 가전, 건축, 자동차,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환경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敵)이다. 석유·석탄·천연가스 등을 원료로 한 플라스틱은 열에 의해 조금씩 분해되기는 하지만 잘 썩지 않아 매립할 경우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의 분해 기간이 걸린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하게 연구를 진행해 왔다.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최첨단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해 보급도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조차 뾰족한 대안이 없던 상황에서 최근 플라스틱을 갉아먹고 이를 분해할 수 있다는 애벌레가 발견돼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이 애벌레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벌집 밀랍 먹는 애벌레 발견이 단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는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 주인공은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SIC) 소속의 페데리카 베르토치니(Federica Bertocchini) 연구원. 부업으로 양봉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벌집 안의 밀랍(wax)이 줄어들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벌집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게 아닌가. 원래 꿀벌부채명나방은 벌집에 알을 몰래 낳는데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벌집에 기생하며 밀랍을 먹고 자란다. 꿀벌부채명나방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과 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한다.
   
   베르토치니는 벌집을 뜯어먹는 이 애벌레들을 잡아 비닐봉지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이튿날 보니 비닐봉지가 여기저기 구멍이 나 누더기가 돼 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애벌레들을 실험실로 가지고 온 것이 연구의 계기가 되었다는 게 베르토치니의 설명이다.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가 먹어치운 봉지의 재질은 폴리에틸렌(PE). 가볍고 질겨 포장재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이다. 폴리에틸렌 비닐봉지는 매년 전 세계에서 1조개(1인당 매년 평균 230개)가 사용되고 있는 상황. 이 중 재활용되고 있는 경우는 26%에 불과하다. 36%는 여기저기서 태워져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고, 38%는 쓰레기 매립장 혹은 산과 강, 바다 등에 버려져 토양을 질식시키거나 바다로 떠내려가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중이다. 폴리에틸렌은 가장 분해되기 어려운 플라스틱 중 하나다.
   
   베르토치니는 실험실로 가지고 온 애벌레를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연구진과 함께 정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애벌레가 폴리에틸렌을 얼마나 분해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한 것. 연구원들은 애벌레 100마리를 폴리에틸렌 비닐봉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40여분 뒤 상당한 크기의 구멍이 1~3개 정도 났고 12시간 후에는 폴리에틸렌 92㎎을 분해해 비닐봉지 무게가 6분의 1 정도로 줄었다. 분해하기 힘들다는 폴리에틸렌 비닐봉지를 갉아먹으며 소화시키고 있음에도 애벌레의 내장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는 어떻게 질긴 플라스틱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일까. 베르토치니의 설명에 의하면, 벌집을 구성하는 밀랍은 고분자 화합물로 일종의 ‘천연 플라스틱’이나 다름없다. 밀랍의 화학구조(중합체 사슬 구조)가 폴리에틸렌과 크게 다르지 않아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 애벌레는 벌집의 밀랍을 소화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화학구조의 비닐봉지를 말끔히 먹어치웠다는 것이다.
   
   이를 바라본 연구원들은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를 이용하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수한 세균과 곰팡이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존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사례와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의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비교해 봤다. 그 결과 가장 최근 발견된 분해 능력이 뛰어난 세균은 하루에 ㎠당 0.13㎎의 플라스틱을 분해한 반면, 연구원들이 애벌레를 으깬 뒤 비닐봉지에 바른 실험에서는 하루에 ㎠당 5.52㎎의 플라스틱을 분해했다. 최고의 플라스틱 분해 세균보다 40배 이상 뛰어난 분해 능력이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최근 실렸다.
   
   
   분해효소를 찾아라
   
   여기서 이런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애벌레가 비닐봉지를 잘게 쪼개먹은 후 다시 그대로 배설한다면 결국 ‘미세플라스틱 공해’라는 문제가 그대로 남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는 비닐봉지의 주성분인 폴리에틸렌을 먹은 뒤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렌글리콜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화학적 구조를 변형시키지 않은 채 그저 먹어치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폴리에틸렌 플라스틱의 중합체 사슬을 깨뜨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에틸렌글리콜은 부동액에 주로 사용하는 물질로,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쉽게 분해된다.
   
   다만 애벌레 체내의 어떤 효소가 폴리에틸렌을 분해하는지는 아직 밝히지 못한 상태이다. 연구원들은 애벌레들이 플라스틱의 화학적 연결을 끊는 무언가를 분비하는데, 그 물질(효소)이 애벌레의 침샘이나 장내 공생세균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가 크게 주목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저온에서 상당 기간 생존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 가격도 매우 싸다. 번식 또한 쉬운 편이다.
   
   곤충이나 새를 비롯한 일부 동물들이 가끔씩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무해한 성분으로 분해해 다시 환경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를 플라스틱 쓰레기 제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애벌레의 효소를 규명하고 분리해내는 일이 관건이다. 그래야만 그 효소를 대량생산하여 환경파괴의 주범인 플라스틱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그리고 산업적 규모로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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