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쇄빙선인 러시아의 ‘NS 50 Years of Victory’. 원자력 추진 2만5000t급이다.
세계 최대 쇄빙선인 러시아의 ‘NS 50 Years of Victory’. 원자력 추진 2만5000t급이다.

지금 세계는 쇄빙선 건조 경쟁이 치열하다. 지구온난화로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북극을 정복하기 위해 독일·일본·영국·중국 등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1만t급 이상의 쇄빙선을 2020년경 완성하여 연구용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거대한 쇄빙선으로 꽁꽁 언 바다를 뚫고 들어가 그들이 북극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극은 자원의 ‘보물창고’다. 두꺼운 얼음 밑에 지하자원과 생물자원이 묻혀 있다. 미국 지질자원조사국(USGS)에 따르면, 북극 해저의 석유·가스 매장량이 세계 전체 매장량의 25%에 이른다.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는 미래 에너지자원 메탄하이드레이트도 막대할 뿐 아니라 망간·니켈·금·구리 같은 금속광물도 엄청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다 보유 러시아, 연구 최고 독일

북극은 또 새로운 물질을 지닌 생물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이를테면 영하 30~40도에도 견디는 북극 생물의 몸 안에는 천연 결빙방지물질이 들어 있는데,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이용하여 저온수술이나 천연부동액으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신약 개발에 쓰일 특이한 물질 발견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보물창고’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만년빙과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한 탓에 지금까지 북극해를 개발하기에는 생산단가가 너무 높았다. 남극은 대륙인 반면 북극은 연중 얼어 있는 얼음바다다. 얼음의 두께도 2~5m 정도로 평균 1m 정도인 남극에 비해 훨씬 두껍다.

이렇듯 고요하기만 했던 얼음바다를 세계의 뜨거운 관심거리로 요동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지구온난화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두꺼운 해빙(海氷)이 녹으면서 접근하기 힘들었던 북극권 자원과 항로에 문이 열린 것이다. 지금 세계는 북극의 급격한 기후변화 연구와 천연자원 수송을 위한 북극해 항로 개발,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얼음을 깨고 나가는 배’ 쇄빙선(ice breaker)이다. 쇄빙이라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먼저 얼음을 밀어붙여 깨뜨릴 수 있는 ‘강력한 엔진’이다. 마치 씨름에서 밀어치기를 하듯, 엔진의 추진력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얼음을 깨면서 저항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배의 무게로 얼음을 눌러 깰 수 있는 ‘튼튼한 선체’다. 얼음 두께가 단지 밀어치기로 깨지지 않을 정도로 두꺼울 경우 쇄빙선이 아예 얼음 위에 올라가 체중으로 눌러 깨뜨려야 한다. 그러려면 배의 무게가 무거울 뿐 아니라 무게중심을 쉽게 옮기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얼음 덩어리와 부딪쳐도 끄떡없고 표면에 얼음이 달라붙지 않도록 배의 앞부분은 매우 두꺼운 강철판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편 북극에 진출하려면 북극의 영유권을 가진 나라들의 옵서버 자격을 얻어야 한다. 남극은 어느 국가의 땅도 아닌 ‘자유의 땅’이지만 북극은 미국·캐나다·러시아·노르웨이 등 8개 국가가 영유권을 갖고 있는 ‘남의 땅’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극이사회의 정식 옵서버 자격을 얻어 북극 항로와 자원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영국·프랑스·중국·일본 등 12개국이다.

북극 탐사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이미 총 36척의 쇄빙선 함대를 운용 중이다. 이 중 16척이 북극 전용이다. 또 원자력 추진기관을 장착한 세계 최대의 2만5000t급 쇄빙선(NS 50 Years of Victory)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11척의 쇄빙선을 추가 건조해 북극 연구에 사활을 걸 계획이다.

독일도 북극 전용 쇄빙선 건조에서 앞서가고 있는 나라다. 현재 독일이 보유하고 있는 쇄빙선은 1척(폴라르슈테른·Polarstern 1)에 불과하지만 연구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 건조 중인 쇄빙선은 2만7000t급의 초대형 ‘폴라르슈테른 2’. 연구용 쇄빙선 중 가장 큰 규모로, 3m 이상의 두꺼운 얼음을 깰 수 있다. 북극해 연안에서 멀리 벗어나 북극 깊숙하게 들어가려면 2m 이상의 얼음층을 안전하게 깰 수 있어야 한다. 최대 승선 인원은 130명. 2020년 출항이 목표다.

중국의 1만t급 연구용 쇄빙선 ‘쉐룽’.
중국의 1만t급 연구용 쇄빙선 ‘쉐룽’.

중국 2호 건조, 한국도 1만t급 건조 예정

영국은 한 번에 60일까지 연속 항해가 가능한 ‘D. 애튼버러경호’를 건조 중이다. 2m 두께의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5000t급 연구용 쇄빙선이다. 2019년 취항이 목표이고 최대 90명이 승선 가능하다. 항해 중 쇄빙선에 탑재된 잠수정이나 수중로봇, 드론 등을 내보낼 수도 있다. 북극 전담 쇄빙선 6척을 보유하고 있는 캐나다 역시 2020년 취항을 목표로 일곱 번째 쇄빙선을 건조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북극을 향한 관심도 뜨겁다. 세 나라 가운데 극지를 향한 포문을 가정 먼저 연 것은 일본이다. 1982년 남극용 쇄빙선 ‘시라세’를 만들어 일찌감치 극지탐사에 나섰다. 그런데 홋카이도를 보유한 일본은 지리적으로 북극과 가깝다. 현재 홋카이도를 북극 항로의 모항으로 지정해 개발하고, 같은 이름의 1만2700t급 북극 관측용 쇄빙선을 건조해 북극 탐사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2021~2022년경 취항이 목표다.

중국은 북극 항로 개척에 운명을 걸고 있을 정도다. 현재 중국은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도입한 1만t급의 연구용 쇄빙선 ‘쉐룽(雪龍)호’를 이용해 남극을 32차례, 북극을 6차례 탐사했다. 그러나 2014년 쉐룽호가 두꺼운 얼음에 갇히며 조난을 당하자 지난해부터 직접 1만3990t급의 제2 쇄빙선을 건조 중이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쇄빙선을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2019년 취항이 목표다. 만약 제작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조선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는 셈이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6950t급 쇄빙선 ‘아라온호’를 보유하고 있다. 쇄빙선 치고 작은 편이다. 사실 북극과 인접한 여러 국가에서 운영하는 1만~2만t급 쇄빙선 상당수는 연구용이 아니라 사람이나 짐을 옮기는 운송용이다. 아라온호의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1m 이하 두께의 얼음만 깰 수 있는 데다 70% 이상을 남극에서 지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북극 연구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 따라서 우리도 북극 전용의 ‘제2 쇄빙선’을 건조할 예정이다. 1만2000t급 쇄빙선으로, 아라온호가 1m 두께의 얼음을 시속 5.5㎞로 깬다면 제2의 쇄빙선은 같은 속도로 2m 두께의 해빙을 깨며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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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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