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66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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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반도체 제국을 만든 3代의 결단

하주희  everhope@chosun.com  

▲ 경기도 평택 고덕산업단지 내 289만㎡ 부지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단지. 건물 높이가 25층 아파트와 비슷한 80m에 달한다. 단일 생산라인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라인이다. photo 삼성전자
‘한민족 세계 제패, 월드베스트 정신으로 해냈습니다.’
   
   1994년 8월 삼성은 256메가 D램 개발 성공 소식을 전했다. 세계 최초였다. 신문 전면광고에는 구한말 태극기를 넣었다. 김광호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적어도 D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한·일 관계가 평등했던 구한말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발표장의 기자들은 박수를 쳤다.
   
   
   삼성전자, 반도체 세계 1위
   
   지난 7월 7일 삼성전자는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60조원, 영업이익 14조원의 실적을 거뒀다. 전기 대비 매출은 18.69%, 영업이익은 41.41% 증가했고 전년 동기 대비는 매출 17.79%, 영업이익은 71.99% 증가했다.’
   
   숫자만 보면 무슨 얘기인가 싶다. 의미는 단순하다. 올해 2분기, 삼성전자가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는 얘기다. 1993년 이후 단 한 해도 반도체 세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인텔사를 제쳤다. 꼭 23년 전 광고까지 내걸며 염원한 ‘세계 제패’를 올해 비로소 이룩한 셈이다. 태극기가 아니라 UN기라도 내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축배는 없었다. 최대한 조용히 낭보를 발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다섯 달 넘게 구속 수감 중이다.
   
   기업 광고에 구한말 태극기가 등장한 배경에는 삼성의 반도체 창업 초기 에피소드가 깔려 있다. 시간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경기도 부천에서 ‘한국반도체’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미국 모토로라의 반도체연구소 출신인 재미공학자 강기동 박사와 사업가 이상규 캠코 회장이 함께 세웠다. 창업 비용은 100만달러. 국내 최초의 전공정 반도체 회사였다. 12월 6일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회장은 한국반도체 지분의 절반을 사들인다. 기업 차원의 투자가 아니었다.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들였다. 당시만 해도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확신이 없었다. 1978년 남은 지분마저 삼성에 넘어가며 한국반도체는 삼성반도체로 재탄생했다. 회사 운영은 쉽지 않았다. 트랜지스터 정도를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자체 설계기술이 없었던 탓이다. “삼성반도체로 발령 나면 퇴직하겠다.”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다.
   
   1980년 1월, 삼성반도체는 삼성전자에 흡수됐다. 그해 이병철 회장은 친분이 있던 일본 NEC의 고바야시 고지 회장에게 부탁을 했다. “삼성반도체를 둘러보고 문제점을 지적해달라.” 당시 NEC는 도시바, 히타치와 함께 반도체업계 세계 최정상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일본이 오일쇼크에도 거뜬히 버틴 데는 바로 이들 반도체 기업 덕이 컸다. NEC의 직원들이 한국에 왔다. 삼성반도체의 가능성을 예감한 탓일까. 이들이 부천 공장을 둘러보고 돌아간 후, NEC는 자문과 협력을 일절 거절했다. 이병철 회장의 비서팀장을 지낸 정준명씨가 언론에 털어놓은 말이다.
   
   “삼성은 당시 NEC·산요와 손을 잡고 TV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NEC는 반도체 기술을 주지 않았다. 이병철 회장이 NEC 회장을 찾아가면 만나주지 않거나 다른 얘기만 했다. 같이 골프를 칠 때도 반도체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선대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기술 자립’을 결심했다.
   
   
▲ 1983년 삼성이 개발에 성공한 64K D램. 지난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
   
   1982년 4월, 이병철 회장은 미국으로 향했다. 보스턴대학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건희 부회장도 함께였다. 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곳곳의 반도체 공장을 둘러봤다. “(우리가) 늦었다.” IBM, GE, HP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이병철 회장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에게 처음으로 반도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그 중요성을 설파한 이가 바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유학생이던 20대 손 회장의 ‘천재성’을 알아본 이 회장은 사위인 정재은 현 신세계 명예회장에게 특명을 내렸단다. “손군이 삼성에 어떤 도움이 될지 살펴봐라.” 삼성의 손정의 영입은 현실화되진 않았다.
   
   1983년 2월 8일, 마침내 삼성이 선전포고를 했다.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겠다.”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이었다. 반도체 전쟁의 막이 올랐다. 1차 목표는 64K D램이었다. D램(Dynamic random-access memory)은 휘발성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다.
   
   반도체는 크게 둘로 나뉜다. 인간의 ‘기억’ 기능을 대신해주는 메모리 반도체와 ‘연산’을 대신해주는 비메모리 반도체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거개는 시스템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는 다시 램(Random Access Memory·RAM), 롬(Read Only Memory·ROM),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로 나뉜다. 램은 정보를 기록했다 지울 수 있는 휘발성 메모리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필수적으로 장착된다. 롬은 한 번 기록한 후엔 읽기만 가능한 비휘발성 메모리다. 흔히 ‘CD롬’이라 부르는 저장수단이 그 예다. 플래시 메모리는 램과 롬의 중간 형태다.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남아 있다.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 등에 쓰인다.
   
   64K D램은 손톱 크기의 칩에 약 8000자 분량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메모리다. “마치 자전거를 만드는 철공소에서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라는 주문과 같을 정도였다. 그 누구도 삼성이 64K D램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았다.”
   
   64K D램 개발팀원의 회상이다. 삼성전자 40년사에 실려 있다. 당시 선두업체들은 64K를 넘어, 다음 단계인 256K D램 개발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일본·미국의 기업과 삼성의 기술 격차는 약 10년. 삼성엔 시간이 없었다. 기존 챔피언들이 4K, 16K, 32K 순으로 순서를 밟아 기술을 발전시킨 과정을 그대로 따라할 순 없었다. 마이크론과 설계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 6명의 연구원을 미국 현지로 보냈다. 이 중엔 이윤우 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있었다. 이들은 산업스파이 취급을 받으면서도 극적으로 반도체 설계도를 입수했다. 문제는 그 후였다.
   
   반도체 공정은 상당히 까다롭다. 반도체 하면 하얀 방진복을 입고서 원판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근로자의 모습을 흔히 떠올린다. 이 실리콘 원판이 웨이퍼(wafer)다. 반도체의 재료다. 웨이퍼는 본래 2겹으로 된 얇은 비스킷을 말한다. 흔히 ‘웨하스’라 부르는 과자명은 웨이퍼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거다. 문제는 웨이퍼로 완제품을 만드는 공정이 300단계도 넘는다는 사실이다. 설계도 설계지만 이 공정 과정을 어떻게 효율화하느냐에 사업의 성패가 좌우된다. 작게는 장비 배치, 크게는 공정 순서, 사용 약품 등 공정과정에 기업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레시피’라 부른다. 반도체 공장의 출입 통제가 엄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업계 ‘선수’라면 작업장을 훑어보는 것만으로 상당한 노하우를 챙겨나갈 수 있다.
   
   6개월 만에 삼성은 64K D램 개발에 성공한다. 기술 격차는 단숨에 2~3년으로 줄었다. 곧바로 흑자로 연결되진 않았다. 첫 흑자를 내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나마 소요시간이 단축되어 그 정도였다. 경기도 기흥 공장을 지을 때다. “6개월 안에 완성하라.” 이병철 회장의 지시였다.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서 환히 불을 켜고 24시간 공사를 했다. 동원된 연인원 26만명. 보통 18개월 이상 걸리는 공사였다. 꼭 6개월 만인 1984년 3월 말 완공했다. 장비를 들여오는 것도 문제였다. 공장까지 길이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거액의 반도체 포토 장비를 운송하지 못할까 발만 굴렀다. 포토 장비는 진동에 민감하다. 잘못하면 옮기다 망가질 수 있다. 왕도는 없었다. 삼성은 4㎞ 도로를 반나절 만에 포장했다.
   
   
▲ 1987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3라인 기공식에 참석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 회장(맨 오른쪽)과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참석한 마지막 공식행사다. photo 삼성전자

   세 번의 위기를 세 번의 기회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지금 당장 적자라도 반드시 투자를 계속해야만 미래에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다. 라인 하나를 짓는 데 최소 10조원이 든다. 지난 7월 4일 낸드 플래시를 첫 출하한 삼성전자 평택 1라인의 경우 15조6000억원이 들어갔다.
   
   반도체 신화에 ‘오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게 이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이 조 단위의 투자를 선제적으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반도체사업부는 ‘돈먹는 하마’였다. 1986년까지 누적적자 2000억원. 1986년 삼성그룹 전체의 이익은 1200억원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적자 보전을 위해 통신에 붙였다가 전자에 붙였다가 하면서도 반도체 부문을 필사적으로 유지했다. 삼성전자 출신의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기술인들에게 이병철 회장은 ‘신’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진대제 전 장관에게 삼성반도체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꼽아달라고 했다. 그는 세 가지 장면을 들었다. 역시 첫 장면은 ‘도쿄선언’이다.
   
   “삼성은 기로에 서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인가, 비메모리 반도체인가. 메모리라면 D램으로 갈 건가, S램으로 갈 건가. 이병철 회장은 D램을 택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절체절명 선택의 순간은 그 후에도 다가왔다. 4M D램을 개발할 때의 일이다. 메모리 용량이 늘어나면서 정보 저장공간인 셀(cell)을 늘리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이 개발됐다. 스택(stack)과 트렌치(trench)였다. 스택은 아파트처럼 복층으로 셀을 쌓는 방식이고, 트렌치는 지하로 파내려가는 방식이다.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손해는 걷잡을 수 없다. IBM, 도시바와 같은 기존 업체들은 이미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상황이었다. 연구진에서는 스택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워낙 엄청난 선택이라 누구도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이때 이건희 회장이 ‘스택으로 간다’고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의 결정적 순간이다. 후에 이 회장 자신도 이렇게 술회했다. “내 자신도 스택 방식이 맞을 것이라는 감은 있었지만, 100% 확신은 못 한 상태였다. 운이 좋았다.”(1999년 서울대 강연) 실제 도시바와 NEC는 트렌치 방식에서 뒤늦게 스택으로 선회하느라 업계 1위 자리를 놓쳤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진대제 전 장관의 말이다.
   
   “반도체면 반도체, 벽지면 벽지, 관심 항목이 생기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분이다. 일본의 전문가를 만나 묻는 식이었다. 16M D램을 개발할 때 일이다. 8인치 웨이퍼 투자를 둘러싸고 삼성 내부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잘못 선택하면 한순간에 망할 수 있다. 1조원이 날아간다. 실무진들이 이건희 회장 앞에서 토론을 했다. 토론을 본 이 회장이 최종 선택을 내렸다.”
   
   진대제 전 장관은 세 번째 순간으로 1990년 7월 어느 날을 꼽았다.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먼저 16M D램 완제품을 선보였다. 일본 회사들보다 서너 달 빨랐다.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은 순간이었다.”
   
   이후부터는 삼성의 시대였다. 64M D램 세계 최초 개발(1992), D램 시장 세계 1위(1992),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1993), 1G D램 세계 최초 개발(1996), 낸드 플래시 메모리 세계 1위(2002), 세계 최초 30나노 64G 플래시 개발(2007), 기록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은 44.8%다. 전 세계인들이 올해 구입한 컴퓨터,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에 삼성 반도체가 쓰인 셈이다.
   
   오너체제만이 할 수 있는 선제적 투자가 반도체 신화의 주춧돌이었다면, 대들보는 ‘기술력’이었다. 연구실과 생산 현장을 가리지 않고 기술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 예가 ‘수요공정회의’다. 이윤우 부회장이 기흥연구소에 있던 시절 만든 정례 회의다. 이건희 회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삼성에는 천재급 인재는 없어도 준천재급 인재는 세 명 있다.”
   
   세 사람이 바로 이윤우 부회장, 진대제 전 장관, 황창규 사장이다. 박재근 교수의 설명이다.
   
   “연구소에서 제품을 개발하면, 공장에서 생산했다. 문제는 연구소에서 하던 공정을 공장에서 안 썼다. 연구소의 레시피가 공장에는 공유가 안 됐다는 얘기다. 매주 수요일 연구 인력과 공장 인력이 모였다. 아예 제품이 개발될 때부터 제조부문도 함께 진행 상황을 공유하라는 의미였다. 결론이 날 때까지 끝장 토론을 했다. 진대제·황창규·권오현 등의 기술 전문가들이 모두 수요공정회의를 거쳤다. 이런 식으로 수율을 빨리 올릴 수 있었다.”
   
   수율은 생산물 중 양품(良品)의 비율을 뜻한다. 불량률의 반대다. 수율을 높이는 만큼 생산원가가 낮아진다.
   
   수요공정회의는 이후 삼성그룹 전체로 퍼졌다. 진 전 장관은 “공유와 토론이라는 고급 기업문화가 그룹으로 퍼졌다. 우리도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는 반도체사업부의 자신감도 함께 그룹 전체로 번졌다.”
   
   반도체산업에서 어찌 보면 기술 개발보다 중요한 게 ‘대량생산 체제’ 확립이다. 이런 식이다. 새로운 기술에 먼저 투자해 개발한 다음, 상용품을 가장 먼저 내놓는다. 많은 양을 비싸게 팔아치워 투자비용을 재빨리 회수한다. 후발주자가 생산체제를 확립할 즈음엔 가격을 확 낮춘다. 선발주자가 가격을 낮추지 않아도, 시장에 전체 공급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격이 자동으로 내려간다. 조금만 대량생산에 늦어도 손해를 볼 수 있다. 이게 바로 반도체 사이클이다. 예전엔 보통 4년 주기로 반복됐다.
   
   
▲ 2010년 5월 17일 이건희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이재용 부회장(왼쪽 네 번째)이 삼성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했다. photo 삼성전자

   인재 유출을 막아라
   
   1980~1990년대는 반도체 업계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이후 몇 차례의 반도체 사이클과 전략적 실수를 거치며 기존의 강자들은 모두 탈락했다. 지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는 4개의 기업만이 남아 있다.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다. 이병철 회장의 요청을 거절했던 NEC의 D램 사업은 그 후신인 엘피다가 2012년 법정관리를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선발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삼성은 여러 이점도 함께 누렸다. 세계 어느 기업보다 신규 설비를 먼저 구매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기계업계에서는 최초 구매자에게는 설비를 싸게 공급해주는 관례가 있다. 장비업체도 현장 테스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장비 사용 노하우를 초창기에 쌓고, 장비업체는 장비를 개선할 수 있다.
   
   2000년대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되며 반도체 수요는 급팽창했다. 시장에 4개의 기업만 있으니, 공급이 갑자기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수퍼사이클’의 시대가 시작됐다. 반도체 장기 호황시대다.
   
   삼성반도체 앞에는 장밋빛 미래만 있을까. 일단 단기적으로는 장밋빛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 요소들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전 국가적으로 반도체 전쟁에 나섰다. 2015년 6월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국산화에 10년간 1조위안(약 16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수단으로 ‘중국 국가 시스템반도체 산업육성기금’을 활용한다. 일명 ‘빅펀드’로 불린다. 중국 재정부와 국영 기업이 출자했다.
   
   
▲ 1994년 8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256메가 D램 개발 성공을 전하며 일간지에 낸 광고.

   월드베스트 시대의 과제
   
   중국 반도체 업계는 기술을 얻어내기 위해 몸이 달아있다.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 협력을 제안(삼성전자·SK하이닉스)했다가 거절당한 후엔 아예 기존의 반도체 기업을 사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해 5월엔 중국 기업이 독일 반도체장비 업체 아익스트론을 6억7000만달러(약 7490억원)에 인수하려 했다. 독일과 미국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어 인수는 무산됐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인수가 저지되자, 이제는 핵심 인재를 영입하는 작전을 쓴다. 한국의 인력을 빼내간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진짜 문제는 ‘대만 기술인력’이라고 박재근 교수는 말했다.
   
   “대만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하던 인력이 거의 조직 그대로 중국으로 넘어갔다. 대만 마이크론 얘기다. 기술인력 60여명이 한 번에 허페이 창신으로 옮겼다. 마이크론에서 제소한다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중국의 굴기도 굴기지만 만약 이런 일들이 계속돼 마이크론이 망하면 더 큰 문제다. 시장엔 사실상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만 남게 된다. 중국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가장 큰 시장이다. 독과점으로 걸고 넘어질 게 명백하다.”
   
   중국의 부상 외에도 한국 반도체 업계 자체의 문제도 있다. 바로 인력 부족이다. 해마다 배출되는 반도체 전공 석·박사급 인력은 300여명이다. 반도체 인력 수요를 따라가기엔 어림도 없다고 교수들은 지적했다. 기업들은 내년 입사 인력까지 선점하려 각 대학 반도체학과를 두드린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들의 진학 기피다. 반도체의 기술 수준, 특히 한국 기업의 기술 수준은 매우 높기 때문에 학부 졸업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석·박사를 졸업해야 실력 발휘가 가능하다. 긴 수학 기간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진학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지원 부족이다. 지난해 정부 예산 중 반도체 부문 R&D 신규 예산은 0원이었다.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이 끝나면 연속 사업을 새로 진행하지 않았으니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예산이었던 셈이다. R&D 예산이 줄어드니 학계 연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는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이 알아서 R&D를 해야 할 것’이라는 방침이었다. 시장 상황에 무지한 탓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에 치중해 있다. 전 세계 차원에서 보면 메모리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시스템 반도체다. 시스템 반도체는 앞으로 폭발적 성장이 확정되어 있다.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의 모든 것이 시스템 반도체와 연관되어 있다.
   
   이병철부터 이재용까지 3대 기업인이 40년간 이룩한 ‘반도체 월드베스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라성 같던 반도체 챔피언들도 몇 번의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신흥국 한국에 1등 자리를 뺏겼다. 월드베스트 시대를 어떻게 연장해 나갈지, 그 어느 때보다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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