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의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명동의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4월,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1번가에 한 일본계 특급호텔이 문을 열었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 본사를 둔 민영철도회사(사철·私鐵)인 ‘니시테츠(西鐵)’가 개관한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이다. 일본과 가까워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산에는 도요코인 등 일본계 호텔이 제법 진출해 있다. 하지만 철도를 본업으로 하는 철도회사가 한국의 지방도시에까지 호텔을 세운 것은 ‘니시테츠’가 처음이다.

니시테츠는 앞서 2015년 서울 명동에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을 개관하면서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옛 명동 제일백화점이 있던 엠플라자의 7층부터 22층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호텔이다.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의 한 관계자는 “일본인 고객의 비중이 70% 정도로, 많을 때는 80% 정도 됐다”며 “일본인이 많이 찾는 명동 롯데호텔이나 로얄호텔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명동에서 한국 호텔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니시테츠가 부산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서일본철도주식회사의 약칭인 니시테츠는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기 전인 1908년 창업한 사철(私鐵)이다. 규슈 후쿠오카의 니시테츠후쿠오카(텐진)역을 중앙역으로 모두 106㎞의 선로를 이용해 열차를 운행 중이다.

니시테츠와 같이 규슈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JR규슈’ 역시 오래전부터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JR규슈는 1987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국철민영화 조치 이후 규슈를 기반으로 출범한 철도회사다. JR규슈는 한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해운업에 적극적이다. 1991년부터 후쿠오카~부산 간 국제쾌속여객선 비틀호를 운항하고 있다. 현재 후쿠오카~부산, 히타카츠(대마도)~부산 간 두 개 노선을 운항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한국 미래고속과 공동운항하던 것을 중단하고 단독으로 한국 시장을 개척 중이다.

철도회사들의 치열한 경쟁에 득을 보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 일본 소비자들이다. 치열한 서비스 경쟁은 한국 철도 이용객들로서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공기업인 코레일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국 철도는 ‘느려터진 공룡’에 가깝다. 니시테츠나 JR규슈처럼 철도와 호텔, 철도와 선박을 연계한 사업 전개는커녕 철도역을 활용한 호텔업 진출도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서울 수서역을 기반으로 한 SRT 운행으로 촉발된 운임 인하, 셔틀버스 운행, 철도마일리지 도입 등 서비스 경쟁도 도로 물거품이 될 위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에서 철도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코레일의 자회사로 출범시킨 SRT 운영사 ‘SR’을 코레일과 재통합할 뜻을 내비치면서다. 한술 더 떠 문재인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철도시설공단(KR)을 재통합해 옛 철도청 국영철도(국철) 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대선 직전인 지난 5월 1일,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이 한국노총과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하여 양 기관의 유사 중복업무에 따른 재정낭비를 해소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는 ‘정책협약 12대 과제’에 서명한 사실도 드러났다.

옛 철도청을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옛 고속철도건설공단)으로 나눈 소위 ‘철도 상하 분리’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막대한 철도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단행한 조치다. 최근 철도정책을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은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상하 분리를 되돌려 사실상 옛 철도청 체제로 돌아가는 수순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선진 철도기업들이 철도를 기반으로 부대사업을 병행하며 수익기반 강화는 물론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과 정반대다. 국영철도 체제를 고수하는 국가는 북한과 중국 같은 극소수 사회주의 국가에 불과하다.

니시테츠의 경우 본업인 철도 외에도 부대사업인 버스와 택시업도 한다. 고속버스는 물론 관광버스, 일반버스까지 운행한다. 철도·버스에 더불어 호텔업까지 교통과 숙박을 연계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철도의 수지가 나쁠 때는 버스가, 버스의 수지가 나쁠 때는 철도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구조다.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 중 니시테츠 여행이라고 있는데 이곳에서 한국 호텔 객실을 판매한다”고 했다. 철도와 버스, 선박과 호텔을 연계한 사업구조는 일본의 대부분 철도회사가 채택하는 구조다. 니시테츠는 12곳, JR규슈는 10곳의 호텔을 거느리고 있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에 기반한 JR니시니혼(西日本)도 8개 호텔을 운영 중이다.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는 “일본 철도회사들은 평균적으로 수익의 30~40%를 부대사업으로 올린다”고 했다.

JR규슈가 운항하는 한·일 간 국제쾌속여객선 비틀호.
JR규슈가 운항하는 한·일 간 국제쾌속여객선 비틀호.

교통·호텔 연계 시너지 효과

반면 코레일이나 후발 사업자인 SR은 버스면허가 없어 버스업 진출을 통한 시너지 창출은 꿈도 못 꾼다. 코레일은 지난 1월 서울 사당역과 경기도 광명역 간을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도입할 때도 노선 개설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를 통해 광명시로부터 ‘한정면허’를 발급받은 뒤 겨우 노선을 개설할 수 있었다.

전국 주요 대도시의 알짜 요지를 철도역이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숙박기능과 결합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보다 못한 구조다. 일제강점기 때는 부산·서울·평양·신의주에 철도와 숙박을 연계한 ‘철도호텔’이 있었다. 지금도 철도강국 일본은 대도시 주요 역사가 모두 호텔이나 백화점과 같은 상업시설과 결합돼 있는 구조다. 도쿄역 역시 르네상스 양식의 구(舊) 역사를 메이지시대 때의 원래 모습에 가깝해 복원해 2012년 최고급 호텔로 재개관했다. 서울역은 호텔과 결합은커녕 노숙자들이 우글거리는 우범지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우리는 일본 철도와 같은 해외 진출은 아직 꿈도 못 꾼다. 국토부 측은 “국토부는 철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며 “앞으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송밀도가 떨어지는 산간벽지에는 철도 대신 공영버스나 공영택시를 투입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합리적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확보 차원에서도 집 앞까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버스나 택시가 철도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이용상 교수는 “우리나라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상 운송업에만 국한하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견만 수렴할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 철도강국 일본의 사례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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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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