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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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붓는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의 천문학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초부터 7월 11일 현재까지,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이 사들인 주식 규모가 벌써 9조6923억1200만원(순매수액)을 넘어서고 있다. 같은 기간 총 8조6111억9410만원어치가 넘는 한국 주식을 팔아치운 기관투자자들과 비교하면,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투자가 얼마나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 상반기에만 10조원 가까운 자금을 한국 시장에 쏟아부으며 주가지수 급등을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자들. 이런 외국인투자자들이 조만간 ‘투자한 자금 상당액을 회수해 한국을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 주식시장을 이탈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빼낸 자금 대부분을 중국 시장에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까지 힘을 받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 이탈 전망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든 것은 지난 6월 21일부터다. 이날 중국A주(중국 상하이와 선전 시장에 상장돼 위안화로 거래되는 중국인 전용 주식시장)의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이 확정됐다. 중국A주의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은 글로벌 투자자금의 중국 주식시장 투자비중 확대를 의미한다. 이렇게 글로벌 투자자들의 중국 주식시장 투자비중이 증가하게 되면, 그 증가 규모만큼 한국과 대만, 러시아, 멕시코 등 기존 20여개 주요 이머징마켓의 외국인 투자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 품은 MSCI 신흥시장 지수

MSCI 신흥시장 지수란 미국계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사(社)가 작성해 발표하는 글로벌 주가지수 중 하나다. 이머징마켓에 투자하고 있는 글로벌 자금들의 투자 벤치마크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수로, 특히 글로벌 인덱스펀드와 ETF들이 투자처와 투자 비중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쓰고 있다.

현재 확인된 중국A주의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 시점은 2018년 5월부터다. 우선 중국A주로 상장된 222개 주식이 편입될 예정으로 시가총액의 약 5%에 해당하는 규모가 MSCI 신흥시장 지수로 새롭게 편입된다. MSCI에 따르면 이것은 MSCI 신흥시장 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총 비중 중 약 0.73%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를 내년 5월부터 중국A주로 채우게 되면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비중은 2~3%가량 줄어들게 된다. 현재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비중은 15% 초반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12~13%대로 줄어들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적게는 30조원에서 40조원 이상의 외국인투자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을 빠져나가 중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 NH투자증권의 경우 중국A주의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에 따른 외국인들의 한국 시장 이탈 규모가 최대 40조원대 중반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중국A주가 MSCI 신흥시장 지수에 편입되는 내년 5월 이후 1~2년 사이에 이같은 규모의 자금이 한국 시장을 빠져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취재에 응한 시장전문가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정도에 걸쳐 한국 시장에서 이 정도 자금을 빼내 중국 주식시장의 투자 규모를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중국A주가 MSCI 신흥시장 지수에 편입되는 내년 5월 이후 1~2년간으로만 한정하면 외국인투자자들의 자금이탈 규모는 얼마나 될까. 적게는 1조원대 후반에서 많게는 4조원대에 이르는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을 이탈할 수 있다는 전망이 크다.

향후 5~10년 최대 40조 이탈 가능성도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외국계 시장 전문가는 “중국A주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글로벌 자금의 투자 의지가 컸던 게 사실”이라며 “중국A주 중 중·대형주를 중심으로 글로벌 자금의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 한국 주식시장을 빠르게 이탈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구조상 주가지수의 등락과 유사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운용되는 인덱스펀드와 ETF 자금이 먼저 이탈하게 된다”며 “문제는 중국 주식시장 상황이 지금보다, 혹은 한국 시장보다 더 좋아지게 될 때”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인덱스펀드와 ETF는 물론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공격적 투자 성향의 액티브형 펀드들까지 중국 투자를 단기간에 늘리게 됩니다. 이때 글로벌 투자자들 입장에서 투자금의 유동화와 이탈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한국 시장에서 중국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외국인투자자들의 자금이탈 규모가 단기간에 3조~4조원 이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투자증권 강동철 연구원은 “외국인투자자들의 자금이 단기적으로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이탈할지 규모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다만 이탈 비중 정도는 전망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인덱스펀드처럼 정해진 투자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외국계 자금이 중국A주의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 직후 가장 먼저 한국을 이탈해 중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이탈 가능성이 큰 외국인투자자들의 전체 자금 중 5분의 1 정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시장을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되는 나머지 5분의 4 정도의 외국계 자금은 주로 액티브형 펀드”라며 “펀드 매니저의 판단과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처와 투자비중이 조정되는 액티브형 자금의 한국 이탈 시점을 지금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A주의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이 한국 주식시장에 예상보다 더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7월 10일 헨리 페르난데스 MSCI 회장이 공개적으로 “내년부터 한국으로 유입되는 MSCI 신흥국 지수 추종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헨리 페르난데스 MSCI 회장은 이날 현재 중국A주 시가총액의 5% 정도로 결정돼 있는 MSCI 신흥국 지수 포함 비중이 점진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중국A주 편입 대상으로 알려진 222개 주식 외에도 향후 230여개 중국A주식을 추가로 편입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이렇게 되면 전체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차지할 중국A주의 비중은 지금껏 예상돼왔던 것보다 커지게 된다. 그만큼 외국인들의 한국 시장 이탈 규모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외국계 시장 전문가는 “피델리티와 블랙록 같은 세계적인 투자 자본들이 MSCI와 FTSE 측에 오랫동안 지수 편입을 강하게 요구했을 만큼 중국 주식시장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투자처로 꼽힌다”며 “결국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중국A주가 차지할 비중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17년 한국 주식시장 강세장의 주역은 단연 외국인투자자들이다. 이런 외국인투자자들을 향해 중국 주식시장이 본격적으로 유혹하고 있다. 중국 시장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한국 주식시장만의 매력을 더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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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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