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셀트리온 홈페이지
ⓒphoto 셀트리온 홈페이지

대형 기업들의 코스닥시장 탈출 열풍이 거세다. 지난 7월 10일, 당시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2위였던 카카오가 코스닥을 떠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8월 중순, 이번에는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 셀트리온의 코스닥 이탈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 8월 16일 기준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13조3026억원에 이른다. 같은 날 기준 시가총액 6조7866억원으로 코스닥 2위인 셀트리온헬스케어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이고, 시가총액 3조585억원으로 3위에 올라 있는 메디톡스와 비교하면 무려 4.5배 가까이 큰 덩치를 가진 코스닥 최대 기업이 셀트리온이다. 셀트리온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코스닥시장의 독보적 1위이다.

이 같은 셀트리온의 코스닥 이탈 가능성이 8월 초부터 시장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떠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만큼 셀트리온의 코스닥 이탈 가능성이 커져 있다. 이미 올해 7월, 시가총액 7조원짜리 넘버2 기업이던 카카오(옛 다음카카오)가 코스닥시장을 떠난 상황에서 13조원이 넘는 시가총액 1위 셀트리온마저 코스닥시장을 떠나게 되면 코스닥의 몰락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주식시장 관계자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특히 우량기업이나 대기업 계열 코스닥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들의 코스닥시장 이탈 가속화에 촉매작용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일반 주주들이 먼저 요구

현재 셀트리온의 코스닥시장 이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머지않은 시점에 셀트리온이 코스닥 이탈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셀트리온의 코스닥 탈출 작업을 회사와 최대주주가 아닌 일반 주주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을 탈출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자’는 일반 주주들의 커져버린 요구를 셀트리온 측이 무시하기 쉽지 않다는 게 주식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 셀트리온이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시장으로 가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꽤 오래전부터 떠돌았다. 특히 올해 4월 카카오가 코스닥 탈출을 공식 선언한 직후, 또 지난해 7월 당시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3위이던 동서와 알짜기업 한국토지신탁이 코스닥을 떠난 직후에도 셀트리온의 코스닥 이탈 가능성이 시장에서 언급됐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가능성 차원이었던 게 사실이다. 구체적 계획이나 요구들이 나온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 10일 카카오가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로 이전한 직후부터 셀트리온의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 “우리도 코스피시장으로 떠나자”는 목소리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또 카카오의 주가가 코스피로 이전한 후 급상승하면서 일반 주주들을 중심으로 셀트리온의 코스닥 탈출과 코스피 이전 요구가 본격화됐다.

결국 지난 8월 7일 저녁, 다수의 일반 주주들이 셀트리온 측에 ‘(코스닥 상장사인 셀트리온의) 코스피 이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요청’을 공식 제기했다. 당시 코스피 이전을 위한 일반 주주들의 임시주주총회 소집 요구가 무려 6241건(주주 동의서 파일 기준)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셀트리온 일반 주주들의 이런 목소리가 시장에 알려지며, 다른 주주들 역시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다.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 2016년 기준 매출액 6700억원대에, 영업이익 2497억원짜리 기업이 굳이 코스닥시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셀트리온 측은 현재 불거지고 있는 코스닥 이탈, 코스피 이전 상장 이슈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반 주주들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한 지 9일이 지난 8월 16일 아침까지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셀트리온 측에 일반 주주들이 제기하고 있는 코스닥 이탈과 코스피 이전 상장 요구와 관련한 질문을 하자, 셀트리온 홍보담당 주인선 과장은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주주들이 회사에 코스피 이전 상장 요구를 해온 시점(날짜) 역시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주인선 과장은 단순한 사실 관계를 묻는 질문들에도 역시 답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심지어 “저희 코멘트를 (기사에) 인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구까지 했다. 셀트리온 측은 기자의 취재가 끝난 직후인 8월 16일,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급하게 “(일반 주주들이 요구해온) 임시주주총회 소집 결의를 위한 이사회 승인 절차를 즉시 진행하겠다”는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셀트리온 “우리 말을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

지난 8월 3일 코스닥 지수 상황. ⓒphoto 뉴시스
지난 8월 3일 코스닥 지수 상황. ⓒphoto 뉴시스

일반주주들이 코스닥 이탈과 코스피 이전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셀트리온 측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코스닥 이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코스닥시장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량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코스닥을 탈출하는 상황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일반 주주들까지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 이전 상장을 요구하고 나서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도대체 왜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주주들까지 코스닥시장을 떠나자고 하는 것일까. 코스닥은 외형상 코스피와 함께 한국 주식시장의 양대 시장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코스닥을 향하는 시선과 평가는 코스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주식판의 마이너리그’로 통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기업 오너(혹은 대주주)나 경영진에 의한 내부자 거래와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작전과 투기 세력에 의한 비정상적 거래 역시 심심치 않게 적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전히 잊을 만하면 회계부정과 횡령·배임 같은 기업범죄 소식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상장을 위한 심사와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조차 의심케 할 만큼 부실기업들까지 상장돼왔고, 이런 부실기업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투자자들과 주주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사례들 역시 부지기수다. 이런 악순환이 근절되지 않고 이어지면서 우량기업들과 대기업 계열사들이 하나둘 코스닥을 떠났다. 코스닥시장은 ‘마이너리그’와 ‘2류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더 고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우량기업들과 투자자들의 불만을 키웠다. 주주들 사이에서 ‘우량기업임에도 코스닥 상장사라는 이유로 주가가 저평가가 돼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스닥이 아닌 코스피 상장사라면 기업 가치를 지금보다 더 좋게 인정받을 수 있고, 주가 역시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게 주주들의 인식이다.

특히 최근 코스닥을 이탈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런 인식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카카오를 보자. 코스닥시장에서 마지막 거래일이던 7월 7일 카카오 주가는 10만1600원이었다. 이것이 코스피 이전 직후 짧은 조정기를 거쳐 조금씩 상승해, 7월 31일에 주가가 12만원까지 올랐다.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로 옮긴 지 불과 15일(거래일 기준) 만에 18.1% 이상 주가가 급등했다. 이후 북한 리스크가 불거지며 주가가 하락했지만 8월 16일 현재 11만4500원으로 여전히 코스닥에 있을 때보다 12.7%나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코스닥 탈출 코스피 이전 기업 주가 급등

카카오만이 아니다. 2008년 11월 당시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로 코스닥을 상징하던 네이버 역시 코스피 이전 이후 기업 가치가 급성장했다. 시가총액 변화가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코스닥을 떠나기 직전인 2008년 11월 말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5조9000억원이 조금 안 됐다. 이랬던 네이버의 시가총액이 코스닥을 이탈해 코스피시장에 안착한 지 약 9년이 흐른 2017년 8월 16일 무려 25조9416억원으로 불어났다. 주가로 평가한 기업 가치가 340% 가까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네이버는 코스피시장 전체 상장 기업 중에서도 시가총액 6위에 오를 만큼 몸값이 급등했다.

네이버와 같은 해인 2008년 코스닥을 탈출해 코스피로 떠난 아시아나항공과 LG유플러스(당시 LG텔레콤) 역시, 코스닥에 상장돼 있던 때와 비교해 각각 639%와 176%(8월 16일 기준)나 시가총액이 증가했다. 2010년과 2011년 코스닥을 이탈해 코스피로 옮긴 무학과 신세계푸드, 하나투어 등도 코스닥을 떠난 후 시가총액이 100% 이상 급증했다. 물론 한국토지신탁처럼 코스닥 이탈 후 코스피로 이전한 기업 중에도 시가총액이 오히려 줄어든 기업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반 주주들은 물론, 기업들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코스닥에 상장된 우량기업과 대기업 계열사들, 또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들이 코스닥을 이탈하는 핵심 이유는 결국 기업의 가치를 더 높게 재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의 현실은 기관과 외국인투자자들에 비해 개인투자자 비중이 월등히 크고, 투기성이 특히 강한 시장”이라며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관과 외국인투자자들이 코스닥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결국 중장기 투자가 가능한 대규모 자금 유치와 안정적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이런 현실을 코스닥 상장 기업들과 주주들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코스피 16% 오를 동안 1%도 못 오른 코스닥

현재 코스닥시장의 현실은 답답함 그 자체다. 2017년 한국 주식시장은 ‘불이 붙었다’고 할 만큼 활황이다. 지난해 12월 29일 2026.46포인트로 폐장했던 코스피 지수는 8월 16일 현재 2348.26포인트로 321.8포인트나 올랐다. 상승률이 15.88%나 된다. 7월 24일에는 지수가 2451.53포인트까지 오르며 연초 대비 21%나 급등했을 만큼 초강세장을 연출하며 투자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하지만 코스닥의 상황은 코스피와 전혀 다르다. 지난해 12월 29일 631.44포인트로 폐장했던 코스닥 지수가 8월 16일 현재 634.91포인트다. 8개월 반 동안 불과 3.47포인트, 즉 0.55%밖에 상승하지 못했다. 코스피 지수가 8개월 반 만에 16% 가까이 상승할 동안 1%조차 못 오른 현실이 코스닥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 주주들까지 나서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로 이전하자는 목소리를 키우는 이유”라며 “코스닥에 상장된 우량기업들과 대기업 계열사들, 또 이들 기업 주주들을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이 짙다”고 했다.

코스닥시장은 1996년 7월 ‘한국의 나스닥(NASDAQ)’이란 거창한 구호를 앞세워 문을 열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량한 기업들과 주주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을 만큼 미국 나스닥과는 비교 불가능한 상태다. ‘왜 우량기업들과 주주들이 코스닥을 등지고 있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키워드

#증시
조동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