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74호]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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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잠실은 되고 은마는 안 되고? 서울시의 이상한 ‘용도’ 잣대

▲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주변 항공사진. 학여울역 사거리(사진 아래)를 중심으로 은마아파트(서북쪽), 미도아파트(남서쪽), 서울무역전시장(동남쪽)이 보인다. photo 조선일보 최순호 기자
서울 영동대교 남단에서 일원터널까지 이어지는 영동대로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넓은 길이다. 도로 폭 70m, 왕복 최대 14차선으로 광화문 세종대로(폭 100m)에 이어 두 번째로 넓다. 지난 6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기본계획안(案)’ 발표를 전후로 ‘영동대로 천지개벽 수준의 개발계획 확정’이라는 현수막도 영동대로 곳곳에 내걸렸다. 서울시는 영동대로변 서울무역전시장(세텍)을 대규모 전시컨벤션센터로 조성하는 계획을 검토 중임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가건물로 있는 세텍 부지를 양재천 건너편 서울동부도로사업소, 그 맞은편 SK 코원에너지 부지와 합쳐 대규모 전시컨벤션센터로 통합개발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학여울역 일대는 삼성역 일대 코엑스를 능가하는 서울 최대 전시컨벤션센터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속도를 내는 영동대로 개발과 달리 영동대로 주변 ‘용도지역’은 요지부동이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동대로변의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다.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은마아파트 일대는 오는 2021년까지 전시컨벤션센터로 바뀌며 확 달라진다. 은마아파트와 접한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은 향후 신설 예정인 경전철 위례신사선이 통과할 예정이고, 수도권광역급행전철(GTX-A)이 지나갈 가능성도 높다. 강남을 지역구 국회의원인 전현희 의원실에 따르면, 향후 신설 예정인 대모산터널 역시 용인서울고속도로 종점인 헌릉IC에서 영동대로로 연결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처럼 ‘땅의 성격’이 급변할 예정이지만 세텍과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학여울역 일대는 여전히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여 있다. 때문에 개발수요가 집중되는 학여울역 일대를 ‘준주거지역’ 내지 ‘상업지역’으로 종(種)상향해 좁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엑스처럼 바뀔 학여울역 일대
   
   은마아파트 주민들 역시 오래전부터 학여울역 일대를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제3종 일반주거지역은 ‘중고층주택 중심의 주거지역’이고, 준주거지역은 ‘주거기능을 위주로 이를 지원하는 일부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지역’을 뜻한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르면,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건폐율과 용적률이 각각 50%, 250%, 준주거지역의 경우 건폐율과 용적률이 각각 60%, 400%를 적용받는다. 여기에 임대주택을 포함시킬 경우 인센티브를 적용받아 제3종 일반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의 용적률은 각각 50%와 100%가 늘어난 300%와 500%로 상향 조정된다.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의 연면적(총면적)을 뜻하는 용적률은 높아질수록 한정된 토지를 좀 더 밀집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한 종상향 요구에 대해 서울시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월 18일 제14차 도시계획위원회 안건으로 올라온 이 일대 종상향을 통한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심의조차 않고 돌려보냈다. 정비계획안은 은마아파트 재건축 부지 24만여㎡ 중 학여울역과 접한 1만㎡를 현행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1단계 상향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 측은 새로 지어올릴 총 30개동 가운데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한 곳에 최고 층수 49층 4개동을 배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서울시는 은마아파트가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해, 서울시 ‘2030 서울 도시기본계획’이 정한 바에 따라 최고 35층까지만 허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강남구청 주택과의 한 관계자는 “미심의 사유를 해소해야 정비계획안을 다시 올릴 수 있다”며 “정비계획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종상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은마아파트가 자리한 학여울역 일대는 종상향 요건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왕복 11차선 영동대로와 왕복 9차선 남부순환로가 교차하는 서울 동남부의 교통요지고,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이 지나간다. 학여울역은 향후 경전철 위례신사선이 개통되면 더블역세권으로 변한다. ‘역세권(학여울역)으로서 간선도로(영동대로·남부순환로)와 접할 것’이란 서울시 용도지역 조정기준을 채우고도 넘친다.
   
   오히려 이 같은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지하철역과 같은 도시기반시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일부 주민들만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학여울역은 사거리에 있음에도 출입구가 한 곳밖에 없어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학여울역의 일평균 이용객은 서울 시내 3호선역 가운데 가장 적은 6529명에 불과하다. 바로 옆 대치역(2만3068명), 대청역(2만627명)의 절반도 안 된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아파트 5단지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서울시는 지난 9월 6일 제16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잠실역 사거리와 접한 일부 지역을 현행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하는 잠실 주공 5단지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사실상 통과시켰다. 서울시 도시계획과의 한 관계자는 “형식은 ‘보류’지만 사실상 통과됐다고 보면 된다”며 “수권 소위원회에 위임해 세부사항을 마무리 지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잠실역과 접한 일부 지역은 최고 50층 높이의 주상복합 신축이 가능해졌다.
   
   기존의 ‘1핵(核) 5부도심’ 체제를 ‘3도심 7광역중심’으로 재편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2030 서울플랜)에 따르면 은마아파트가 속한 강남은 ‘3도심’(한양도성·여의도영등포·강남) 중 하나고, 잠실은 ‘7광역중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상 도심보다 한 단계 아래의 ‘광역중심’(잠실)의 종상향에 동의한 마당에, 그보다 한 단계 위의 ‘도심’(강남)에서 종상향에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생활권계획추진반의 한 관계자는 “아직 강남의 범위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는 ‘땅의 해결사’ ‘로비의 귀재’라고 불린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1979년 지어올린 아파트다. ‘아파트지구’로 지정된 잠실 주공 5단지와 달리 은마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은 박정희 정부가 영동개발을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단행하며 도입한 ‘아파트지구’가 아니었다. ‘영동 제2지구’(강남구에 해당) 경계 바로 남쪽으로는 당초 지금과 같은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 없었다. 작고한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에 따르면, 정태수 회장은 과거 상습침수지였던 이 일대 부지를 헐값에 매입해 28개동 최고 14층 4424가구의 아파트를 지어올렸다. 서울시 주도로 탄천 제방이 정비되면 이 일대가 홍수에서 해방되면서 금싸라기 땅으로 변할 것을 내다보고 단행한 투자였다.
   
   
▲ 1979년 준공 초기 은마아파트 전경. 주변 논밭이 아직 남아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의 작품
   
   결국 허허벌판 논두렁에 들어선 은마아파트는 영동개발과 맞물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정태수 회장은 은마아파트에서 벌어들인 돈을 밑천 삼아 은마아파트 바로 남쪽에 지정된 개포지구에 미도(美都)아파트(2435가구)까지 지어올리며 ‘강남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개포지구는 전두환 정부 때 ‘주택 500만호(戶)’ 건설공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한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 첫 적용된 ‘택지개발지구’다. 정태수 회장은 국내 최고 부촌(富村) 중 하나인 대치동과 개포동 일대를 만든 ‘디벨로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대치동의 상징으로 각광받던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 후 40년 가까이 된 터라 노후화가 심각하다. 지하주차장조차 없어 3.3㎡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값비싼 강남 땅을 주차장으로 낭비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수년간 주차면적을 늘린답시고 애꿎은 놀이터와 화단 면적을 줄여 주차장을 만들어왔다. 복도식 아파트로 카드식 출입문과 같은 방범시스템도 없는 등 시설이 열악하다. 하지만 강남8학군과 대치동 학원가를 동시에 끼고 있는 주변환경 덕분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선호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 측이 제안한 최고 49층 재건축안에 따르면, 현행 4424가구의 아파트는 6054가구로 1630가구가 늘어난다. 이 중에는 소형 임대아파트도 862가구가 포함돼 있다. 학여울역 일대를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할 경우 수요가 몰리는 강남 지역 신규 아파트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신규 공급주택을 늘려 재건축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려는 기존 아파트 주민들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하고, 강남지역 새 아파트에 입주하길 원하는 대기자들의 수요도 만족시킬 수 있다.
   
   재건축 공사기간 동안 기존주택이 철거되면 일시적으로 전월세 아파트가 줄어들어 전월세난을 촉발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강남 지역 전월세 아파트를 신규 공급하는 효과도 있다. 진입장벽이 높은 금싸라기 강남 땅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상향에 따른 개발이익은 공공기여 강화와 올 연말로 유예가 끝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을 통해 충분히 환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8·2부동산종합대책에서 서울 강남구가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데는 수요자들의 강남아파트 선호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생활여건이 좋은 서울 강남 아파트에 입주하고자 하는 수요는 많은데 각종 재건축 규제로 신규아파트가 적시에 공급되지 않아서다. 지난해 3월 분양한 서울 강남구 개포 주공 2단지(래미안 블레스티지), 지난해 8월 분양한 개포 주공 3단지(디에이치 아너힐즈)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은마아파트보다 주변 기반시설이 좋지 못한 데도 불구하고 각각 33.6 대 1, 100.6 대 1의 기록적인 평균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을 앞둔 개포 시영 재건축(래미안 강남포레스트) 역시 비슷한 청약경쟁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기수요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으로, 강남 새 아파트를 원하는 탄탄한 실수요가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 신규 강남 아파트에 목이 말랐다는 방증이다.
   
   기존 주택(4424가구)을 제외하고도 1630가구의 아파트를 추가 공급할 수 있는 은마아파트 49층 재건축안은 강남 아파트 공급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학여울역 일대의 종상향을 통한 은마아파트 49층 재건축안은 관할 구청인 강남구청 측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강남구청 측은 서울시의 제3종 일반주거지역 35층 강요가 주민재산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줄곧 주장해왔다. 시장이 이길지, 규제가 이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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