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75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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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인구 100만 돌파 용인을 바꾼 것은?

▲ 경기도 용인시청과 시의회가 입주해 있는 용인시 문화복지행정타운과 용인경전철(오른쪽). photo 용인시청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살아서는 충북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경기도 용인에 묻힌다는 말이다. 지금의 서울특별시장에 해당하는 한성판윤을 지낸 최유경이 남겼다는 8자(字) 덕분에 용인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음택(陰宅) 명당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선친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한 뒤 용인 땅에 자리 잡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용인에 가족묘를 조성한 뒤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가까이는 최순실 스캔들의 주인공인 최순실씨의 부친 영생교 교주 최태민씨도 용인 땅에 묘를 썼다. 멀리는 구(舊)한말 한·일병합 결정에 자결한 민영환, 조선조 개국공신인 조광조,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의 묘도 각각 용인시 기흥구, 수지구, 처인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랬던 음택 명당 용인이 양택(陽宅)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9월 1일, 인구가 100만명을 돌파하면서다.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주민등록인구(100만54명)라서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101만6453명에 달한다. 실제 지난 9월 9일,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의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은 쇼핑을 나온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2005년 죽전사거리에 들어선 이마트 죽전점 옆에 2007년 개관한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매출 5400억원 규모의 대형 백화점이다. 2015년 현대백화점 판교점(성남시 분당구) 개관 전까지 경기도 최대 규모 백화점이었다. 이날도 주말을 맞이해 용인은 물론 바로 옆 성남과 수원에서까지 몰려온 쇼핑객들로 가득했다. 기흥역에서 에버랜드까지 오가는 용인경전철(용인에버라인)은 2013년 개통 당시 “공기만 태우고 다닌다”던 비아냥과 달리 승객들도 제법 보였다.
   
   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하고 100만 인구를 돌파한 기초지자체로는 용인시가 수원시(119만), 창원시(105만), 고양시(104만)에 이어 전국에서 4번째다. 이 중 창원의 경우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창원·마산·진해 3개 도시의 인위적 행정구역 통·폐합을 통해 100만 인구를 돌파한 경우다. 인위적인 행정구역 통·폐합 없이 자력으로 인구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그만큼 상징적이다. 수원과 창원은 오래전부터 시였고, 각각 경기도와 경상남도 도청소재지인 터라 인구 100만명 돌파가 큰 의미를 가지기는 어렵다. 그만큼 용인의 100만 돌파는 남다른 주목을 끈다.
   
   용인은 인구 100만명을 돌파한 속도 면에서도 돋보인다. 1992년 군에서 시로 승격한 고양시가 인구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2014년으로 22년이 걸렸다. 용인은 1996년 시로 승격한 지 21년 만에 인구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고양의 기록을 1년 정도 앞당겼다. 2002년 인구 50만명을 돌파한 이래 100만명에 도달하기까지는 불과 1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구 100만명은 원칙적으로 도(道)와 같은 광역자치단체인 ‘광역시’로 승격 가능한 기준이다. 울산은 1997년 인구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경남도에서 독립해 울산광역시로 승격했고, 현재 인구 105만명의 창원시도 경남도로부터 독립해 창원광역시 승격을 추진 중이다. 용인시 공보관실의 한 관계자는 “광역시 승격보다는 수원, 고양과 함께 ‘100만 이상 도시 사무특례’를 적용받아 중앙정부로부터 행정권한을 좀 더 넘겨받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시 측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을 돌파하면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사무특례’를 적용받는다. ‘사무특례’를 적용받게 되면 용인시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업무가 늘고 공무원 조직도 키울 수 있다. 자체적으로 지역개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고, 지자체장은 50층 이하 연면적 20만㎡ 이하 건축물 인허가권을 갖게 된다. 지자체장 아래 부시장도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나 ‘제2부시장’을 신설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법안이 제출돼 있는 ‘특례시’의 대우를 사실상 누리게 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이방무 자치분권과장은 “특례시는 아직 없지만,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에 따라 100만 이상 도시에 특례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용인의 인구 100만명 돌파는 조금 뒤늦은 감이 있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용인은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한반도의 중심축에 해당했다. 일제가 경부선 철도 부설을 앞두고 1892년 실시한 1차 노선 조사 때 유력히 검토된 노선도 서울~용인~청주~상주~대구~밀양~부산 노선이었다. 하지만 이 노선의 경우 속리산(해발 1058m)을 통과해야 해 공사 난이도가 높고 공기(工期)도 오래 걸리고, 청주·상주 등 기존 대고을 유림(儒林)들의 철도 부설에 대한 반발도 심했다. 결국 경부선은 용인을 비껴나 수원~천안~대전을 지나 비교적 낮은 추풍령(해발 220m)을 넘는 노선으로 확정됐고, 용인은 국토의 중심축인 경부선에서 벗어나 버렸다.
   
   하지만 용인은 1976년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일대의 야산을 매입해 ‘자연농원’을 조성하면서 전국적 지명도를 얻게 된다. 자연농원의 후신인 삼성에버랜드는 세계 10대 테마파크에 들어가는 국내 유일의 테마파크다. 에버랜드처럼 용인의 성장은 삼성이 낙점한 이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인시 기흥구 일대를 반도체 생산단지로 낙점한 것도 이병철 회장이다. 1983년 일본 도쿄에서 이병철 회장이 삼성의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 ‘2·8 도쿄선언’ 직후, 반도체 생산기지로 낙점한 곳이 바로 지금의 용인시 기흥구다. 기흥사업장 착공 당시만 해도 용인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청정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경부고속도로변에 있어 서울과 가까워 고급 인재를 유치하기에도 유리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찍은 용인
   
   이병철 회장은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낙점하면서 ‘기흥(器興)’이란 이름에도 적지 않은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릇 기(器) 자에 흥할 흥(興) 자를 쓰는 기흥이란 이름이 규소(실리콘)로 만드는 반도체 소자인 ‘웨이퍼에서 성공한다’는 뜻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기흥’이란 말처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은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단지로 거듭났다. 용인시 세정과에 따르면, 지난해 용인시가 지방세로 거둔 세수는 약 1조4485억원. 이 중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용인시에 납부한 각종 명목의 세금만 921억원에 달한다. 921억원 가운데 법인지방소득세만 500억원가량이다.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경우도 지난해 65억원의 세금을 용인시에 납부했다. 용인시 세정과의 한 관계자는 “관내 기업 중 삼성의 위상이 가장 높다”고 했다.
   
   용인시 기흥구 일대가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되면서 그 사이에 있는 용인시 수지구 일대도 대규모 택지로 변모했다. 노태우 정부 때 분당(성남시), 일산(고양시), 평촌(안양시), 산본(군포시), 중동(부천시) 등 ‘5대 신도시’가 서울 도심에서 20㎞ 외곽에 조성된 직후다. 1989년 지금의 용인시 수지구 일대가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에 의해 ‘수지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됐고, 1998년에는 바로 옆 수지구 죽전동도 ‘죽전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돼 대규모 주거단지로 개발된다. 인구 100만명 돌파를 주도한 곳도 용인의 원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처인구가 아닌 기흥구와 수지구다. 용인시 인구 100만명은 기흥구 42만명, 수지구 35만명, 처인구 23만명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대규모 택지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난개발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난개발 문제가 불거진 것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부터다. 김영삼 정부는 전임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공약’ 달성을 위한 ‘5대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조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 당시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전 대구광역시장)과 박승 건설부 장관(전 한국은행 총재)이 주도한 신도시 건설은 수도권 주택 대량공급을 통해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한 공이 있다. 반면 김영삼 정부는 단시간에 주택이 대량으로 지어지면서 촉발된 건설자재난과 바닷모래를 사용한 부실공사 같은 부작용에 더욱 주목했다. 급기야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집권과 동시에 ‘신도시 건설 일시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수도권 주거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공급은 반드시 필요했고, 그 방편으로 ‘준(準)농림지’ 제도를 도입해 과거 농지로 묶여 있던 곳도 개발 필요가 있으면 아파트 등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자 견제받지 않는 선출직 지자체장과 지방 건설업자들이 작당해 논두렁 위나 야산을 절개해 짓는 나홀로 아파트 인허가를 남발했다.
   
   결국 서울과 1시간 거리의 용인에는 ‘미니 신도시’들이 대거 등장한다. 경부고속도로변에 늘어선 수지·죽전·신봉·성복·상현·흥덕·보라지구 등이다. 영동고속도로변으로도 마북·동백·구성지구와 같은 ‘미니 신도시’들이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달려 있다. 용인시에 따르면 택촉법을 적용받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지구만 모두 12곳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용인시는 민선 1기 윤병희 전 시장 이래 역대 시장들이 건설인허가와 인사비리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받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들 ‘미니 신도시’ 택지지구는 체계적으로 계획된 기존의 1기 5대 신도시와 달리 도로, 철도, 학교,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함께 들어서지 않아 상당한 사회문제를 야기해왔다. 수지·죽전 같은 택지지구는 용인에 들어섰지만 사실상 분당의 기반시설을 이용할 심산으로 조성된 택지지구다. 용인시를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구간이 만성정체를 빚는 까닭도 고속도로 연변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린 이들 ‘미니 신도시’ 탓이다.
   
   당초 예상을 깨고 서울과 더 가까운 성남시(인구 97만명)보다 용인이 한발 앞서 인구 100만명을 돌파한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정찬민 용인시장은 “전국에서 4번째로 인구 100만 대도시에 진입한 것은 용인시 발전에 큰 이정표를 갖게 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며 “앞으로 100만 대도시에 걸맞게 자족 기반을 구축하고 제2의 도약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2005년 시청과 시의회 등이 입주하는 ‘아방궁’급 문화복지행정타운을 조성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용인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새로 지은 용인시청이 서울시청보다 좋더라”라고 해서 비판여론에 불을 댕겼다. 여론의 질타에 용인시 측은 “인구 120만명 시대를 내다보고 지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호화청사’라고 질타를 맞은 용인시청이 선견지명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날도 머지않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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