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75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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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6·25 실종자를 유족품으로… ‘SNP 마커’가 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DNA 포렌식 연구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8일~9월 2일, 세계적 권위의 국제법유전학회(ISFG)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렸다. 이 개막 강연에서 국제실종자위원회(ICMP) 토머스 파슨스 법과학국장(미국)은 날로 발전하는 DNA 분석이 대규모 재난 피해자나 난민, 세월호와 같은 사고 실종자의 신원 확인에 쓰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DNA 분석은 과거 사건 현장의 범인을 찾는 목적으로 쓰여왔지만 최근에는 신원불명의 사망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기술로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실종자위원회에 따르면 2001년 미국 9·11 참사, 2004년 인도양의 쓰나미 등 대형재난에서 발생한 실종자 중 ‘DNA 분석’으로 신원 확인을 한 경우가 2만건이나 된다. 올해의 경우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들어온 난민·이주민 12만명 중 물에 빠져 숨진 2400명의 신원 확인도 DNA 감식으로 이뤄졌다.
   
   현재 DNA 분석 기술은 눈동자와 머리카락, 피부 색깔까지 추정할 수 있는 단계이다. DNA 분석은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특정 염기서열의 위치 표지(marker)로 비교한다. 이를 ‘DNA 마커’라 하는데, 하나의 세포에 수십만 개씩 있다. DNA 마커는 개인의 지문처럼 고유하여 개인 식별이나 친자 확인을 하는 데 유용하다.
   
   개인별 DNA의 특징을 나타내는 마커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짧은 반복서열(Short tendem repeat·STR)’이고, 다른 하나는 ‘단일염기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zm·SNP)’ 마커다. 보편적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 마커로 활용되는 것은 STR이다. STR 마커는 사람의 염색체 안 유전자의 길이가 차이 나는 특성을 이용한다.
   
   가령 12번 염색체의 ‘CSF1PO’ 부위를 예로 들어보자. CSF1PO의 경우 ‘AGAT’의 네 염기서열의 반복 횟수는 7~15번으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사람 유전자에는 수백 가지의 STR 마커가 존재해 여러 개를 확인할수록 개인 식별 확률이 높아진다. 보통 STR을 최소 13개 이상 조합해 비교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구별한다. STR은 1991년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의 톰 캐스기 교수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핵심 STR을 20개로 확장해 신원 확인에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읽어낼까?
   
   특정 염기서열을 식별하는 제한효소로 DNA 이중사슬을 자르면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긴 조각 또는 짧은 조각이 생긴다. 이 DNA 조각들을 전류가 흐르는 젤(한천 젤) 끝에 놓고, 전류를 따라 조각들이 젤을 통과하게 만드는 모세관 전기영동(CE)법으로 STR의 길이 차이를 읽어낸다. 젤에는 DNA가 통과할 수 있는 구멍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부모와 자식 사이가 맞는지, 현장 증거물이 용의자의 것이 맞는지 비교하는 데 STR 마커를 사용해왔다. 1995년에 일어났던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2003년 대구의 지하철방화사건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도 DNA 분석이 일등공신이었다.
   
   

   3~4촌 이상 친척도 확인 가능
   
   STR은 부모 자식이나 형제 사이처럼 직계 가족에서만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촌수가 3촌이나 4촌으로 멀어지면 분석이 어렵다. 오랜 기간 자연에 방치된 백골 상태의 실종자나 전사자 등의 신원 확인도 거의 불가능하다. 수십 년 된 실종자의 유골 속 유전자는 조각으로 분해돼 길이가 아주 짧아져 있기 때문에 STR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단일염기다형성(SNP) 마커다. SNP는 STR보다 훨씬 짧은 염기서열로, 사람마다 길이는 같은데 염기 구성에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인간이 가진 염기서열 약 30억개 중 다른 사람과 다른 염기 변이를 뜻한다. 인간은 DNA 중 99.9%가 같고 단 0.1%가 다르다. 즉 30억개 가운데 300만개의 염기가 달라 눈과 피부색, 인종, 생김새, 체질, 질병의 감수성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를 활용해 개인 식별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 활발해진 SNP 마커 분석은 염기서열 하나만 봐도 ‘깨진’ DNA의 완전 해독이 가능하다. 이는 STR보다 유골의 유전자를 2.5배 세밀하게 읽어내기 때문이다. STR의 분석 정확도가 10의 32제곱 정도라면 SNP는 10의 80∼90제곱 정도로 높다.
   
   국제법유전학회에서 토머스 파슨스 법과학국장이 강조한 것이 바로 이 SNP 마커다. SNP는 훼손 상태가 심한 오래된 유골이나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 화재, 테러로 훼손된 DNA도 감식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친부, 친모는 물론 3촌, 4촌 이상의 거리가 먼 친척의 신원 확인도 가능하다. 신원 확인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것은 부모자식 관계에서 벗어난 방계혈족까지 찾아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6·25 전사자 중 115명 신원 확인
   
   SNP 마커 분석은 유해 발굴과 유가족 인계사업에서 각광받을 전망이다. 현재 우리 국방부는 6·25 전사자 유가족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유해 발굴 감식단’을 통해 국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유족의 품으로 돌려주려는 것.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2015년 말까지 1만314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 SNP 마커로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에 안긴 전사자는 1% 수준인 115명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 비율이 낮은 걸까? 물론 유해가 70년 가까이 방치돼 DNA가 심하게 훼손되기도 했지만 전사자 부모는 물론 자손도 고령화로 세상을 떠나 친자, 친부 수가 급격히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땅속에서는 13만구에 달하는 전사자 유골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남아 있는 6·25 전사자 가족들의 고통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SNP 마커는 제주 4·3사건 유해 발굴, 이산가족 상봉, 미아 찾기 사업 등에도 적용되고 있다. 제주 4·3사건 유해 발굴 사업에서는 21구의 유해를 발굴하여 16구의 유해를 유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나머지 5구는 현재 가족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각종 전쟁, 학살, 사고 현장에 적용될 DNA 분석 글로벌화가 진행 중이다. SNP는 그들의 신원을 찾아주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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