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쑹장구의 다룬파 쓰징점. ⓒphoto 이동훈
중국 상하이 쑹장구의 다룬파 쓰징점. ⓒphoto 이동훈

지난 9월 23일 찾아간 중국 상하이 외곽 쑹장(松江)구의 한 대만계 대형마트 다룬파(大潤發). 오는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이어지는 국경절, 중추절 8일 연휴를 앞두고 매장은 미리 귀향선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명절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매장 앞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란 표어와 함께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 물결 일색이었다. 쇼핑을 마친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판 카카오톡 웨이신(微信)의 QR코드로 모바일 결제를 한 뒤 매장 앞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무료 셔틀버스 제공은 한국에서는 규제로 금지된 서비스다. 쑹장구에 사는 주부 양(楊)모씨는 “영업시간도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로 넉넉하고 무료 셔틀버스가 있어서 쇼핑하기가 편리하다”고 말했다.

다룬파는 한국 유통기업의 무덤이 된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외국계 대형마트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 롯데마트의 유력 인수 후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국계 마트가 중국 당국의 눈 밖에 난 롯데마트를 인수해 갈 가능성이 낮은 터라, 자연히 대만계 다룬파는 최근 중국에 남은 이마트 5개 매장을 인수해 간 태국계 CP그룹의 대형마트 로터스와 함께 유력 인수 후보로 꼽힌다. 롯데마트는 현재 중국에 112개의 매장(99개 마트, 13개 슈퍼)을 갖고 있다.

경영 상태도 좋다. 다룬파는 이마트와 같은 1997년 중국 시장에 뛰어들어 프랑스계 카르푸와 미국계 월마트를 매출, 매장수, 시장점유율 모든 항목에서 제치고 승승장구 중이다. 카르푸와 월마트는 각각 1995년, 1996년 중국에 진출한 선발주자다. 다룬파는 지난해에도 932억위안(약 16조원)의 매출을 거두며 전년 대비 4.2% 성장했다. 다룬파의 자매회사인 ‘오샹(歐尙·Auchan)’의 매출액 180억위안(약 3조원)까지 합하면 중국 대형마트 시장의 압도적 1위다. 선발주자인 월마트(766억위안), 카르푸(504억위안)를 월등히 추월한다. 다룬파(368개)와 자매사인 오샹(78개)을 합친 점포수도 446개로, 487개의 점포를 보유한 토종마트 용후이(永輝)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에서 다룬파가 성공한 비결은 중국과 한 뿌리인 대만계란 점을 십분 활용한 덕분이다. 다룬파의 모기업인 대만 룬타이(潤泰)그룹은 1943년 상하이에서 출범한 방직기업이 모태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하면서 함께 대만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방직업이 점차 쇠락길에 접어들자 업종전환을 모색하다가 유통업에 뛰어든 경우다. 다룬파가 대만 1호점으로 세운 타이베이 외곽 타오위안현의 핑전(平鎭)점은 방직공장터에 세운 점포다. 이후 다룬파는 1998년 7월, 상하이 1호점 개점을 시작으로 중국 시장에도 복귀했다.

다룬파는 중국과 같은 뿌리라는 민족 감정을 이용해 사드로 휘청이던 롯데마트에 일격을 날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난 2월, 국방부와 롯데가 사드배치를 위해 경북 성주 롯데스카이힐골프장의 부지 교환 계약을 체결한 직후, 다룬파는 중국 전역의 매장에서 롯데 상품을 모조리 빼버렸다. 종업원들이 롯데 상품을 빼는 장면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롯데 이미지에 타격을 가했다. 반대로 다룬파는 민족기업, 애국기업이란 칭호를 들으며 반사이익을 톡톡히 거두었다. 실제 기자가 찾아간 쑹장구의 다룬파 매장에서도 그간 잘 팔리던 롯데 상품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다룬파의 이런 강경책에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다룬파가 중국 시장 1위로 부상한 것은 2009년이다. 그전까지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대형마트는 프랑스계 카르푸였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때 프랑스 파리에서 티베트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수차례 성화가 꺼지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이후 카르푸의 대주주가 달라이 라마의 후견인이란 소문이 돌면서, 중국인들은 카르푸 불매운동과 함께 매장 앞으로 달려가 대대적 시위를 벌였다. 이를 계기로 기세가 꺾인 유통업계 공룡 카르푸를 제치고 무명의 다룬파는 단숨에 중국 시장 1위로 부상했다.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라

철저한 상권 분석을 통해 상권 변화 흐름을 잘 탄 것은 다룬파의 최대 성공비결이다. 중국은 상권 변화가 극심하다. 지난해 15개 주요 소매업체 중 738개 점포가 문을 닫고 1000개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을 정도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1선 도시의 알짜 요지는 자금력과 덩치를 앞세운 카르푸와 월마트가 선점한 상태였다. 후발주자 다룬파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라’는 전략에 따라 3~4선 도시를 적극 공략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실제 다룬파와 오샹은 446개 전체 매장 중 매장 면적 기준으로 45%가 3선 도시, 22%가 4선 도시에 있다. 또 소득수준이 낮은 현지주민들을 위해 무료주차, 무료운반(대형가전), 무료수선, 무료보관 등 각종 무료서비스도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도입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매대진열이나 상품구성도 철저히 중국 현지화했다. 신선식품 비중을 극대화한 것은 다룬파의 성공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인은 매일매일 식재료를 구입해서 당일날 즉석에서 요리해 먹는 방식을 선호한다. 자동차를 끌고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냉동식품을 구입한 뒤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는 서구인들이나, 반찬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조금씩 꺼내 먹는 한국인들과 식습관 자체가 다르다. 중국은 아직 서구 선진국에 비해 1인당 주거면적이 작고, 냉장고 크기도 작아서 식품을 사봤자 보관할 데도 없었다.

특히 중국 소비자들은 깔끔하게 포장한 채 매대에 올려진 상품을 선호하는 서구 소비자와 달리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고르는 것을 선호한다. 쌀과 달걀 같은 것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다룬파는 매장 내 신선식품 비중을 대폭 늘렸다. 코트라 다롄(大連)무역관에 따르면, 다룬파는 신선식품이 상품 총 진열면적의 30~40%를 차지한다. 또 매장 1층에 신선식품을 배치했다. 경쟁기업인 월마트나 카르푸의 경우 신선식품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적을 뿐만 아니라 매장 2층이나 지하에 진열한 경우가 많았다. 기자가 찾은 매장 역시 1층 신선식품, 2층 공산품의 매장 구조를 택하고 있었다. 2층으로 먼저 올라가 공산품을 산 뒤 1층으로 내려와 신선식품을 구입해 나오는 동선(動線)이다.

유통업에 대한 노하우는 2001년 프랑스계 대형마트 오샹과의 합작을 통해 해결했다. 1961년 설립한 오샹은 업력만 50년이 넘는 업체다. 오샹과 제휴 후 다룬파는 중구난방이던 대형마트 브랜드를 ‘다룬파’와 ‘오샹’ 2개로 통일했다. 지금은 다룬파가 368개 매장, 오샹이 78개 매장을 중국에 거느리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2개 브랜드지만, 지난해부터는 단일구매를 통해 상품구매 단가를 낮추는 등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역 간 매장 교환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점포를 밀어주는 등 사실상 단일경영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당분간 중국에서 다룬파의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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