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주 차타누가의 물류센터에서 아마존 직원들이 판매 의뢰가 들어온 배송 상품들을 분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국 테네시주 차타누가의 물류센터에서 아마존 직원들이 판매 의뢰가 들어온 배송 상품들을 분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뉴욕 맨해튼 59번가는 뉴욕의 명물 센트럴파크로 들어가는 입구다. 59번가 동·서 공원 입구는 시간당 60달러(1인 기준)를 받는 삼륜자전거(pedicab) 투어로 북적인다. 더불어 이곳은 경쟁 관계인 두 글로벌 IT기업 간의 보이지 않는 격전장이기도 하다. 동쪽 입구 근처에는 애플 매장이, 서쪽 입구에는 아마존닷컴(이하 아마존)의 서점이 있다. 애플 매장은 내년 11월 개점을 목표로 현재 리모델링 중이다. ‘아마존북스’로 불리는 아마존서점은 애플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은 인터넷 대형 기업 아마존이 아마존북스라는 아날로그 공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금시초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맨해튼 애플 매장 반대편에 서점이 있다고 하면 더 믿기 어려울 듯하다.

59번가 아마존북스는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아마존 자체 건물이 아니라 콜럼버스서클의 워너센터(Warner Center) 3층을 빌렸다. 워너센터는 CNN이 들어선 건물로, 바로 앞에는 트럼프호텔이 들어서 있다. 아마존북스는 맨해튼 지점이 문을 열기 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선보였다. 2015년 11월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현재 9군데가 문을 연 상태다. 올해 중에 4군데 더 생길 예정이다. 필자도 들러 분위기를 살펴봤지만 보통 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IT기업답게 최근 아마존이 주력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이나 환경 관련 서적 진열장이 인상 깊다고나 할까.

책은 아마존의 원형이다. 책을 사고파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통해 아마존의 의미와 가치를 확산해왔다. 1994년 문을 연 IT업계의 대선배로, 최근에는 홀푸드(Whole Foods)라는 유기농 농산물 체인점까지 인수했지만 그래도 출발점은 인터넷을 통한 책 판매에 있다. 그런 아마존이 새삼스럽게 아날로그 서점을, 그것도 세상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 개점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7년 여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아마존의 새로운 비전을 보면 아날로그 서점의 출현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올해 초 아마존은 내년 상반기까지 10만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자리 창출은커녕 원래 일자리도 못 지키는 것이 AI시대에 직면한 기업들의 현실이다. 18개월 만에 10만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21세기 그 어떤 기업도 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계획이다. 그러나 투자가들은 아마존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유는 2013년부터 시행된 ‘아마존 만족(Fulfillment by Amazon)’ 프로젝트에 있다. 일명 FBA로 불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간단히 말해 제3자가 물건을 아마존에 납품하면서 이익을 공유하는 체제다. 아마존은 제3자가 보낸 물건을 아마존 시스템을 통해 관리·배송하면서 도와준다. 아마존이 직접 나서서 물건을 구입해 파는 것이 아니라 상품 판매를 원하는 사람이 아마존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윈-윈(Win Win) 체제다. 아마존 상품 구입에 익숙한 사람은 알겠지만, 2013년 이후 아마존 내 판매 상품의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아마존의 올해 2분기 수익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5%가 증가했다. 특히 FBA에 의한 수익률은 같은 기간 40%나 증가했다. FBA를 통해 1년에 약 30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아마존 성장의 중추가 바로 FBA라 볼 수 있다.

판매 의뢰 상품들이 모이는 마이애미의 아마존 FBA센터. ⓒphoto AP
판매 의뢰 상품들이 모이는 마이애미의 아마존 FBA센터. ⓒphoto AP

드론기지 될 물류창고들

그러나 아마존에 FBA 확대는 시련과 도전을 의미한다. 제3자의 물건을 보관하고 배송할 물리적 공간의 확보가 급선무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보관할 상품들의 양이 엄청난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존으로서는 사활을 걸고 대규모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천문학적 규모의 물류창고가 필요한 셈이다. 최근 아마존이 가장 집중하는 비즈니스가 바로 ‘대형 쇼핑몰(Mall) 수집’이라는 사실은 FBA 확대와 관련된 당연한 결과다. 아마존은 올 한 해에만 무려 23개의 FBA용 대형 쇼핑몰을 구입했다. 미국의 쇼핑몰은 건물 하나둘에 그치는 규모가 아니다. 많게는 수십 개 초대형 건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올해 아마존이 구입한 오하이오주(洲)의 노스 랜달(North Randall)은 그냥 걸어다니면서 보는 데만 반나절이 걸리는 규모다.

아마존은 현재 미국 전역에 105개(9월 말 기준)의 물류창고를 확보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추가될 공간만 35개다. 아마존이 사들이는 쇼핑몰들은 대부분 인터넷 포식자 아마존 때문에 문을 닫았다. 아마존에 두 번 먹히는 셈이지만 결과는 모두에게 윈­-윈이다. 아마존의 10만명 고용계획은 바로 140개에 달하는 물류창고 운용을 위한 맨파워 확보에 대한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다. 맨해튼 59번가 아마존북스도 규모는 작지만 그 같은 물류창고로 해석될 수 있다. 초대형 쇼핑몰 스타일의 창고 겸용 아마존서점도 전국에 들어설 전망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마존은 드론을 통한 배송시스템 구축을 이미 끝낸 상태다. 하늘을 교통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한 법적인 문제가 남아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아마존 드론은 상용화될 것이다. FBA 창고는 드론을 위한 공간으로도 자리 잡을 것이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대형 쇼핑몰이 대도시와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수백수천 개의 드론이 동시에 뜨고 내릴 수 있는 광활한 주차 공간을 갖췄다는 점에서 FBA 창고로는 최적의 입지조건이다. 드론은 인간만이 아닌,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AI 로봇를 통해 운용될 것이다. 아마존은 이미 25개 FBA창고 안에서 8만개의 크고 작은 로봇을 활용 중에 있다.

먼 미래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곧 도심밖 쇼핑몰이나 가게는 드론만 웅웅거리는 삭막한 공간으로 변해갈 것이다. 텅 빈 건물의 지붕을 뚫고 상품을 실어나르는 기계의 움직임만이 IT 시대 교외(郊外) 풍경이 될 듯하다. 아마존의 FBA는 미국만이 아니라 해외로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에 자리를 잡은 아마존닷컴 재팬은 연매출 100% 성장을 기록 중이다. 일본에서도 FBA 창고 확보가 아마존의 최대 현안이 될 전망이다. 쇼핑몰과 같은 초대형 부동산 가격 인상을 조장하는 투기꾼이 아마존의 새로운 정체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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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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