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83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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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것이 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의 정체다”

박광작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루이제 린저(1911~2002) photo www.Welt.de
소설 ‘생의 한가운데’로 널리 알려진 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1911~2002). 1980년대 루이제 린저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인기의 외국 여류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이름을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하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산문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학 졸업 후 1935년부터 교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39년 학교로부터 나치스에 가입하라는 독촉을 받게 되자 직장을 떠났다.… 1944년 남편이 러시아전선에서 전사했으며, 자신은 히틀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작품의 출판금지를 당하고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이어 반나치스 활동으로 투옥되었으며 1944년 10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종전으로 1945년 석방되었다.’
   
   박광작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지난 10월 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것이 루이제 린저의 정체다’를 4회 연속 게재해 지식인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2011년 무리요가 쓴 전기 ‘루이제 린저: 모순의 삶’이 출간되었을 때 ‘루이제 린저는 나치주의자였다’는 독일 통신기사를 받아 일부 신문에서 단신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위의 네이버 인물 검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루이제 린저에 대한 기술은 1980년대와 똑같다. 전혀 수정된 바가 없다. 박 교수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이유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대 후반에 독일 유학을 했다. 베를린자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성균관대 경제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쳐왔다. 오랜 기간 한독(韓獨)포럼의 한국 측 간사를 역임한 독일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박 교수는 무리요가 쓴 전기 ‘루이제 린저: 모순의 삶’의 주요 부분을 요약하고, 린저의 ‘북한여행기’를 참고해 주간조선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품위 있게 보이는 나이 든 한 여인이 오버바이에른 지방 마을 ‘베소브룬(Wessobrunn)’의 공원묘지에 묻혀 있는 아들 묘 앞에 서 있었다. 이 여인 곁에는 젊은 남자 한 명도 동행해 있었다. 이 젊은 남자는 갑자기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속에서 무언가 치솟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이 여인의 신음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 여인은 혼란스러운 말들을 중얼거리며 죽은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 후 그녀는 평생 마음속 깊이 숨겨 놓았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둘째 아들은 혼외자로 출생했다. 이 아들은 어릴 때 자기를 고아원에 맡겼던 그의 엄마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절망 속에서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하는 데 냉담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의 묘지에서 비탄과 회한에 빠져 있었던 여인은 바로 독일 좌파 소설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였다. 그녀의 둘째 아들 ‘슈테판 린저’(Stephan Rinser·예술감독으로 활동하다 1994년 사망)와 어머니 루이제 린저는 평생 갈등관계 속에 살았다.”
   
   
   1935년 히틀러 찬양시 발표
   
   1990년대 말 루이제 린저와 오랜 교우관계를 가졌던 철학자이며 수도회 신부 호세 산체스 데 무리요(Jos Snchez de Murillo) 교수는 루이제 린저와 함께 그녀의 둘째 아들 묘소를 방문한 후 위의 글을 남겼다. 무리요 신부는 린저 탄생 100년을 맞았던 2011년 린저의 일생을 밝혀주는 ‘루이제 린저: 모순의 삶(Luise Rinser: Ein Leben in Widerspruchen)’을 출판했다. 처음 루이제 린저의 전기를 쓰기 시작할 때 무리요 신부는 그녀를 신화적인 독일의 ‘잔 다르크’로 그리고자 기획했다. 그러나 자료를 연구해 가면서 ‘아! 이게 아니구나!’라고 탄식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한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란 사실이 밝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입증된 사실에 입각한 ‘린저’의 전기를 출판했다.
   
   이 전기는 루이제 린저의 첫째 아들 크리스토프 린저(Christoph Rinser)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다. 크리스토프도 어머니의 감춰진 ‘과거’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루이제 린저는 아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에 아들도 어머니의 감춰진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원래 이 루이제 린저 전기 발간은 그녀의 출생 100주년에 그녀를 기념비적 정의의 여신으로 만들어주는 팡파르로 의도되었으나, 이와 반대로 그녀의 모든 거짓말과 미화된 삶의 허구성을 밝혀줌으로써 그녀는 거짓말쟁이로 추락하고 말았다.
   
   1933년 히틀러의 나치가 집권한 후 루이제 린저는 여러 번 히틀러 찬양 글을 발표했다. 그중 1935년 초 잡지 ‘아궁이 불(Herdfeuer)’에 발표한 6연(聯)의 시 ‘젊은 세대(Junge Generation)’ 중 마지막 연만 봐도 나치 찬양은 분명하다. 1~5연도 역시 구구절절 히틀러 독일을 위한 찬양문이다.
   
   “…우리는 죽음으로 충성을 다해 몸을 바치는 성스러운 이 땅의 감시자/ 위대한 지도자(히틀러)의 비밀을 지키는 파견인들/ 우리들 이마에 불꽃을 일으키는 그의 신호와 함께/ 우리 젊은 독일인들!/ 우리는 감시한다. 우리는 승리 아니면 죽음을 택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충성스럽기 때문이다.”
   
   루이제 린저는 자신이 쓴 히틀러 찬양 시가 알려졌을 때, 자기가 쓴 시가 아니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중에 루이제 린저가 그 시를 썼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녀는 공동으로 작성한 시라고 말을 바꾸었다. 나중에는 다시 말을 바꾸면서, 자신이 그 시를 썼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히틀러에 대한 풍자시’라고 변명했다. 루이제 린저는 히틀러가 집권했던 1933년 교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그녀가 봉직했던 학교의 교장은 유대인이었다. 그녀는 그 교장을 나치에 밀고하여 그녀 자신의 출세에 이용했다. 그녀는 나치 여성동맹(NS-Frauenbund)과 나치 교원동맹에도 가입했다. 무리요 교수는 루이제 린저가 보통의 나치 추종자들을 넘어서는 나치에 ‘꽉 엮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루이제 린저는 젊은 나치 기간요원으로 나치와 함께 성장하며 출세했던 것이다.
   
   유대인 교장을 고발한 지 1년 만에 그녀는 나치 청년여성 조직인 ‘독일소녀동맹(Nazi-Organization·Bund Deutscher Mädchen)’의 한 교육소 책임자가 되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나치의 주요 인물로 출세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후 악명 높은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영화부서인 UFA가 제작하는 선전영화의 대본작가로 활약하면서 6000라이히마르크의 보수를 받고는 ‘베를린 영화작가’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옥중기’ 등은 모두 자신을 미화하기 위한 거짓 이야기이며, 린저의 뇌 속에서 창조된 허구의 ‘소설’이었다. 그녀의 자서전 ‘늑대를 껴안다’(Den Wolf umarmen, 1981)도 사실에 입각한 기술이 아니고 전설 만들기였다. 나치 시절 그녀가 출판금지 조치를 당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치 패망 후 그는 히틀러에 저항해 목숨을 걸었던 저항 문학가로 행세하며, 독일의 ‘잔 다르크’가 되길 원했으나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소설가 클라우스 헤르만(Klaus Herrmann)이 남긴 유품(베를린 국립도서관 소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고가 남아 있다.
   
   
▲ 조선화보사가 일본어로 펴낸 ‘빛나는 생애’ 379쪽에 나오는 사진. 김일성(왼쪽)이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를 만나는 모습.

   反파시스트 저항작가로 미화
   
   린저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헤르만은 나치를 추종하는 그녀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주기 위해 당시의 정세를 설명하는 가운데 히틀러를 지원하는 대기업가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원 정치자금의 규모 등을 말해주었다. 린저는 2년 후 친구에게 이 말을 다시 전해주었고 그 친구의 남편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린저를 나치 게슈타포에 고발했다. 린저는 조사를 받기 위해 미결수 구치소에 구금되었다. 이 고발 사건으로 그녀가 국방력 와해 공작(Wehrkraftzersetzung) 혐의로 1944년 10월에서 12월 성탄절 전까지 구속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루이제 린저는 친구에게 “전쟁은 곧 끝날 것이며, 러시아 병정들도 그렇게 사악하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러시아 병정들과 적당히 지내는 것도 괜찮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고 고발되었으나 나치 소추 당국은 루이제 린저의 변명을 듣고 황당한 밀고 내용이라 판단했다. 그녀는 미결수 구치소 당국으로부터 휴가를 받고 출옥한 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그녀는 ‘옥중기’와 자서전 ‘늑대를 껴안다’에서 1944년 10월 국가반역죄(Hochverrat)로 구속된 후 악명 높은 나치 민족재판소의 프라이슬러(Freisler) 소장에 의해 증거를 근거로 사형에 선고될 처지에 놓였었다고 주장했다. “모두 석방되길 기다렸다. 저녁 늦게 변호사가 찾아왔고 나를 불러냈다. 나는 그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허사였다. 변호사는 ‘(석방) 청원이 거부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감방에서 성탄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변호사를 선임한 적도 없고 구치소에서 성탄절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국가반역죄로 ‘기소’되기는커녕 재판도 받지 않았다. 악명 높은 나치 프라이슬러는 이미 사망하고 당시에 이 세상에 없었다. 어떻게 국가반역죄로 재판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녀가 구치소 당국으로부터 휴가를 받아 1944년 12월 21일 석방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데도 궁색했다. 그러나 그녀는 1945년 4월 석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자신을 반(反)파시스트 여성 저항문인으로 미화하였다. 히틀러 나치에 협력했다가 전쟁에서 살아남은 모든 독일 사람들은 새로운 서독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가운데 여성들 중에서 반나치 깃발의 명예를 지킨 ‘잔 다르크’가 나타나주길 갈망하는 분위기가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이때 루이제 린저는 바로 ‘생의 한가운데’라는 작품을 발표해 자신이 반나치 저항작가이며 사형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양심이라고 미화하기 시작하면서 첫 거짓의 단추를 채웠던 것이다.
   
   1945년 패전과 함께 나치 선전 활동을 했던 그녀는 가톨릭교회에 똬리를 틀었다. 가톨릭 교인으로 신심이 깊어 나치에 협력하지 않았던 아데나워가 경제 기적과 새로운 서독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가던 시대였다. 그녀는 가톨릭 좌파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순진한 평화주의자들도 있었고, 교회에서는 과거를 따진다거나 신상조사도 하지 않는다. 루이제 린저는 기자 자격으로 로마에서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취재하여 이에 관한 기사도 썼다. 변신에 능한 그녀는 가톨릭교회 조직 안에 머물면서도 열정적인 가톨릭 비판가란 명성을 얻었다. 1968년 반권위주의 좌파 학생운동이 서독으로 번져나갔다. 극좌 테러단체인 적군파(赤軍派)가 대량소비사회를 극단적 폭력 혁명으로 극복하겠다는 이유로 프랑크푸르트 상업지구의 한 백화점에 방화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주범인 안드레아스 바아더(Andreas Baader)와 구드룬 에슬린(Gudrun Esslin)이 체포돼 슈투트가르트의 슈탐하임 교도소에 갇혔다. 이 사건은 루이제 린저가 돌출행동으로 자기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는 이 극좌 테러범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편지를 발표해 서독 사회를 놀라게 했다. 그 후 수감돼 있던 두 방화범은 다른 테러범들과 함께 형무소에서 밀반입했던 권총으로 자살하여 서독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 호세 무리요의 전기 ‘루이제 린저: 모순의 삶’ 표지.

   히틀러에 이어 김일성 찬가
   
   극좌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양심적 지식인’ 이미지를 남긴 후 루이제 린저는 1972년 서독 하원 총선에서는 갑자기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으로 변신했다. 정치적 ‘정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변하지 않는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깊은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강력한 독재자에 대한 ‘정신적 위탁과 열광’이었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는 루이제 린저의 종교이며 우상이었다. 그러한 ‘히틀러’가 사라진 후 방황하던 그녀가 새로운 대상으로 찾아낸 인물이 북한의 김일성과 이란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였다. 그녀는 현대 개발국가의 면모를 찾아가던 이란을 신정(神政)국가로 바꾸며 피 맛을 즐겼던 호메이니를 열렬히 숭배·찬양했다. 그녀는 호메이니를 가리켜 “제3세계 국가들의 빛나는 전범(典範)”이라고 했다.
   
   독일의 저명 작가들 중 북한의 김일성을 몇 번이나 친견하며 국빈(國賓) 대우를 받았던 작가는 루이제 린저뿐이다. 독일은 친북(親北)작가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윤이상은 절친(切親) 관계에 있었다. 윤이상의 음악은 별건으로 하고, 종북·친북이란 공통분모가 있는데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같은 국빈 격으로 김일성의 환대를 받은 윤이상과 얼마나 친했던가는 그녀가 편찬한 책 ‘상처받은 용, 윤이상(Der verwundene Drache, Isang Yun)’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독문학자 전혜린이 번역한 ‘생의 한가운데’가 1960년대에 출판되었고, 1980년대 386세대 중심으로 루이제 린저의 책은 널리 알려져 있다. 좌파 운동권 인사들은 북한을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히말라야의 이상향 샹그릴라와 같다고 믿었는데, 여기에 루이제 린저의 역할이 컸다.
   
   루이제 린저는 1980년부터 10차례나 북한의 초대를 받았다. 그녀는 ‘북한 기행문’(1981)에서 북한 김씨 절대왕조를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위대한 지도자’ ‘범죄 자체가 없고 가난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는 형무소가 없다’ ‘교화소는 쇠창살이 없고, 교육생들은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시점에 교화소에서 출소할 수 있다’ 등 완전한 ‘김일성 용비어천가’를 썼다. 1986년 평양 방문 때에는 김일성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북한에는 교회의 탑이 없고 교회 종소리가 없어서 좀 섭섭했다는 말을 남겼다. 행간(行間)을 읽으면, 그녀가 믿는다고 말했던 가톨릭교회와 종교는 말살되었다는 말이 되겠다.
   
   루이제 린저가 ‘김일성 왕국’을 찬양한 기록 중에는 황당한 부분이 많다. “일본인 호텔 투숙객이 방문에 문을 잠글 수 없다고 불평하자 북한 호텔 지배인이 ‘공화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하면서 북조선은 전국적으로 자물쇠도 열쇠도 필요 없는 나라라고 했다.” “도둑도 없고 강간도 없다.” “약품도 (필요) 없다. 조선 의학은 예방으로 해결하므로 페니실린 등 항생제도 (필요) 없다.”
   
   “감기도 결핵도 좋은 영양과 예비검진 덕택에 전멸했다(ausgerottet). 암도 조기 발견되어 없다.” “신체 장애아에 대해 묻자 북한 의사는 놀란 표정을 짓고서 쳐다보며 ‘세상에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라고 답했다.” “나(루이제 린저)는 한 명의 장애인, 불구자( Krüppel)도 보지 못했다.” ‘루이제 린저’가 방문했던 평양 등에서 장애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김일성과 찍은 다정한 모습의 사진은 북한의 지상낙원 이미지와 정통성을 세계에 선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루이제 린저가 인간신(人間神)이 지배하는 북한에 체재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문화계의 여신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녀를 그렇게 인정해주는 나라는 북한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김일성 왕국에 최대의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과 린저의 ‘오고 가는’ 상호주의적 교환이었다.
   
   루이제 린저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영향력에 반비례하여 그녀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독일의 ‘문학 교황’으로 칭해지는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는 “루이제 린저의 문학성은 평가할 가치가 없으며, 그녀의 작품은 대중영합적인 저속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큰 영향이 있는 대표적 주간지 ‘슈피겔’은 그녀의 작품이 “나이브하고 재능도 없으며 어쩐지 쓴웃음을 자아내는 것(naiv, untalentiert und ein wenig lächerlichl)”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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