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성정부는 지난해 12월, 235호 문건을 전 성(省)에 하달했다.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할 최저임금 기준을 공포한 것이다. 2016년 1월 1일부터 지난 2년간 적용했던 월 최저임금 1530위안(약 25만3500원)을 최대 1620위안(약 26만8400원)으로 올리는 내용이었다. 2년 만에 90위안 인상된 금액으로 인상률은 6%(2년간)에 조금 못 미쳤다.

눈길을 끄는 것은 최저임금을 4개 급지로 나누어 발표한 것이다. 랴오닝성 성정부가 있는 선양(瀋陽) 도심을 비롯해 동북3성의 최대 항만으로 소득이 높은 다롄(大連) 정도에 1급지 기준 최저임금 1620위안이 적용됐다. 그보다 소득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단둥, 안산, 푸순, 번시 등 도시에는 2급지인 1420위안, 그보다 소득이 떨어지는 3·4급지에는 각각 1300위안(약 21만5400원)·1120위안(약 18만5600원)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달했다. 각 도시는 시민들의 소득수준과 물가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된다.

하지만 중국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 1월 1일부터 적용된 랴오닝성의 최저임금(1급지 기준) 1620위안은 중국에서 가장 최저임금이 높은 상하이(2300위안)보다 680위안이나 낮다. 랴오닝성은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한 22개 성·직할시·자치구 등 성급 행정구 가운데 20위권에 불과하다.<표 참조> 랴오닝성은 중국에서도 낙후한 중화학공업지대로 꼽히는데, 그나마 낮은 최저임금 덕분에 기업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

심지어 랴오닝성의 낮은 최저임금을 노려 상하이에서 이주해오려는 수요도 있다. 지난해 상하이의 한 한국인 의류사업가는 월 2300위안(약 38만1100원)의 최저임금 등 인건비 부담에 못 이겨 상하이에 있던 공장을 랴오닝성 다롄으로 옮기려고 했다. 선양과 함께 1급지로 분류되는 다롄의 월 최저임금이 랴오닝성에서도 가장 비싼 1620위안에 달한다지만, 상하이의 최저임금(2300위안)보다도 680위안이나 낮다. 한국과의 비행거리도 다롄이 293마일로, 상하이(525마일)보다 훨씬 가깝다. 결국 법적인 문제가 생겨 이전은 무산됐지만, 최저임금이 기업을 유인하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

전국 동일 한국, 지역 차등 중국

연초부터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어수봉)는 지난해 7월, 올해부터 적용할 최저임금을 기존 시간당 6470원에서 7530원으로 무려 16.4%나 인상했다. 주 40시간, 월 209시간(주 5일제) 기준으로 환산한 월 최저임금은 157만3770원에 달한다. 7530원의 최저임금이 지난 1월 1일부터 실제 적용되면서 영세 자영업자를 비롯해 중소공장 등에서는 직원 수를 줄이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심지어 동네 병의원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해 간호사를 줄이고 진료시간을 줄이는 등의 후폭풍이 심각하다.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올려주겠다며 단행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근로자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7530원의 최저임금은 2018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1년 내내 의무적용된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장관 김영주)는 지난 1월 15일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의 명단을 일반에 공개하고, 신용제재까지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은 “경제적 사형선고”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의 80%가 범법자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각 부처에 “최저임금 인상을 안착시키는 데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속담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이에 ‘최저임금’을 중국과 같이 지역별로 차등화, 세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 무산계급 정당인 공산당이 집권하는 중국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3년이다. 전임 3세대 지도부(장쩌민)에 비해 좌클릭했던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집권 때인 2003년 12월 20일 공포됐고 이듬해인 2004년 3월 1일부터 시행됐다. 도입된 지 불과 15년 정도로 1986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돼 벌써 32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보다 역사가 일천하다.

하지만 전국 단일 최저임금제를 고수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철저히 차등 적용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이 지역의 소득수준, 물가수준에 상관없이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다. 일례로 중국에서 가장 최저임금이 높은 곳은 상하이로 월 기준 최저임금이 2300위안에 달한다. 2017년 이후 최저임금이 갱신된 22개 지역 중 가장 낮은 칭하이성(1500위안)보다 무려 800위안 가까이 높다. 이 밖에 중국 최초 경제특구인 선전, 저장성(1급지), 톈진, 베이징은 한 달 2000위안(약 33만2000원) 이상의 최저임금을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한국의 도(道) 단위 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성(省) 안에서도 소득수준과 물가수준에 따라 최대 5등급(푸젠성)으로 각기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의 성단위 행정구역 중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저장성의 경우 성정부가 있고 유명 관광지라서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항저우(杭州) 등 1급지에는 월 2010위안(약 33만3000원)의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그보다 소득과 물가수준이 떨어지는 다른 도시의 경우 1800위안(2급지), 1660위안(3급지), 1500위안(4급지)으로 차등 적용한다. 같은 성 내에서도 1급지(2010위안)와 4급지(1500위안)의 최저임금 차이가 510위안 가까이 벌어진다.

중국에서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곳은 면적이 좁은데 인구는 밀집한 직할시(상하이·톈진·베이징)와 경제특구(선전), 지역은 넓은데 농업·목축업 등을 제외하고 산업기반이 거의 전무한 변경지역(칭하이·티베트)에 불과하다. 직할시라도 면적이 넓은 충칭(重慶)은 최저임금이 이원화(1500위안·1400위안)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지역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최저임금 비교해 투자지 결정

자연히 기업들은 각 지역의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사업장 입지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일례로,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광둥성은 1급지인 광저우 1895위안(약 31만4000원)을 필두로 1510위안(2급지), 1350위안(3급지), 1210위안(4급지)으로 최저임금 기준이 철저히 세분화돼 있다. 심지어 광둥성에 속하는 선전과 주하이는 ‘경제특구’라는 이유로 각각 2130위안과 1650위안으로 별도의 최저임금 체계를 적용받는다. 사실상 광둥성 내에서만 최대 6단계로 최저임금이 구분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광둥성 광저우에 공장을 둔 LG디스플레이는 1895위안(1급지), 광둥성 둥관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는 1510위안(2급지), 후이저우(惠州)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는 1350위안(3급지)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된다.

외국인투자(外投)기업들도 각 지역의 최저임금을 바탕으로 현지 인프라, 근로자 교육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장입지를 결정할 수 있다. 차등화된 최저임금은 기업의 지방투자를 이끌어내는 최대 유인이다.

현대차의 경우 베이징 1·2·3공장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2000위안(약 33만1300원)이지만, 지난해 새로 문을 연 충칭 5공장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1500위안(약 24만8400원)이다. 무려 500위안이나 차이가 난다. 공장입지를 결정 짓는 요인이 수십 가지가 있다지만 최저임금만 떼어놓고 보면 기업 입장에서 비싼 베이징을 마다하고 충칭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자연히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해외 선진 자동차 공장이 들어와서 일자리를 만들어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때 베이징에서 홀대받고 충칭에서 환영받은 것은 순전히 현대차 공장 덕분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른 만두 가격 인상 공고.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른 만두 가격 인상 공고.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2년 주기 갱신에서 3년으로

매년 최저임금을 갱신 적용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2년에 한 번씩 각 지자체가 최저임금을 갱신 적용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사업이 안정적인 셈이다. ‘세계의 공장’인 광둥성은 지난해 3월부터 기존 2년에 한 차례 갱신하던 최저임금을 3년에 한 차례 개정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꾸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최소한 3년간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없이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 그만큼 자금흐름 등 사업예측성을 높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다른 성에 비해 더디다고 해서 근로자들이 광둥성을 기피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음력설에 해당하는 춘절(春節) 연휴를 앞두고 광둥성 광저우역 앞은 매년 선물 보따리를 두 손 가득 싸들고 귀향하는 근로자 귀성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결국 근로자를 유인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높낮이가 아니라 일자리의 유무인 것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철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각 지역의 소득과 물가수준을 고려한 당연한 결과다. 2016년 기준 상하이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5만4305위안(약 899만원)으로 중국의 도시 가운데 가장 높다. 베이징(5만2530위안), 선전(4만8691위안), 광저우(4만6667위안)가 차례로 상하이의 뒤를 이었다. 반면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西寧)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2만1696위안(약 359만원)으로 상하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소득수준이 천양지차인 만큼 전체 물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집값을 포함한 물가수준 차이도 크다. 중국 최대 부동산 거래정보업체인 안쥐커(安居客)에 따르면, 상하이의 1월 평균 주택매매가는 ㎡당 5만376위안이다. 한국식 평(3.3㎡)으로 환산하면 16만6240위안(약 2754만원)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4번째로 아파트 매매가 높은 용산구(2772만원)와 엇비슷할 정도로 살인적인 집값을 자랑한다. 반대로 칭하이성 시닝의 ㎡당 주택매매가는 6492위안에 불과하다. 3.3㎡로 환산하면 2만1423위안(약 355만원) 정도에 그친다.

한국은 어떤가.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의 근로자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광주사업장에 있는 근로자는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서울 서초구와 광주 광산구의 물가 차이는 천지 차이다. 국내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3.3㎡당 3747만원으로 광주 광산구(625만원)의 6배에 가깝다. 3.3㎡당 전세가도 서초구 2045만원으로 광산구(494만원)의 4배가 넘는다. 시간당 7530원의 최저임금은 서초구의 근로자로서는 턱도 없는 최저임금인 셈이고, 광주 광산구의 근로자로서는 나쁠 것 없는 최저임금인 셈이다.

이처럼 소득수준이 다르고 집값을 포함한 물가수준이 다른데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난센스가 영세 자영업자와 근로자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다.

일본의 지역별 최저임금

한국보다 낮은 지역 절반 넘어

일본 역시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한다. 다만 중국처럼 성(省) 단위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최저임금을 나누는 것과 달리, 우리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도도부현(都道府縣) 단위로 최저임금을 별도 적용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10월 개정해 발표한 ‘지역별 최저임금 전국일람’에 따르면, 일본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곳은 수도인 도쿄도(東京都)로 시간당 958엔(약 9220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일본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요코하마(横浜)가 속한 가나가와현이 956엔(약 9199원)으로 그 뒤를 잇는다. 이 밖에 일본 간사이(関西) 지방의 상업중심인 오사카가 909엔(약 8745원), 일본 최대 자동차기업 도요타의 생산거점인 도요타시가 속한 아이치현의 최저임금이 871엔(약 8384원)으로 지역별로 각기 다르다.

반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홋카이도(北海道)의 최저임금은 810엔(약 7793원),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오키나와(沖縄)는 737엔(약 7091원)으로 지역별로 차등화돼 있다.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 848엔(약 8161원)은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보다 8.37%가량 높다. 2017년 기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8550달러로 한국(2만9730달러)에 비해 30% 정도 높은 점을 감안하면, 절대 높다고 할 수 없는 최저임금이다. 오키나와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이 737엔(약 7091원)으로 한국(7530원)에 비해서도 낮다.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약 782엔)보다 낮은 일본의 도도부현은 전체 47곳 중 절반이 넘는 25곳에 달한다. 한국은 이렇게 하고도 온전히 기업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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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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