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블록체인의 실리콘밸리처럼 되어가고 있다. 전 세계 블록체인 관련 CEO(최고경영자)와 CTO(최고기술자)들이 국내서 열리는 세미나에 5분 스피치를 하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을 찾는다. 과거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건 이런 위상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표철민(33)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암호화폐 열풍 덕분에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 대표는 IT업계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중학생 시절 온라인 도메인 등록 대행 사업을 시작해 업계 ‘최연소 CEO’로 불렸다. 당시 매달 수백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대학생 때 블로그 위젯과 소셜 게임 개발에 뛰어들어 차세대 인터넷 사업가로 주목받았다. 30살에 시작한 늦깎이 군(軍)생활은 2017년 초에 끝났다. 제대 직후 표 대표가 손을 댄 비즈니스는 블록체인 기술의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일이었다. 지난해 8월 공식 출범한 체인파트너스는 현재 10여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키우고 있다.

표 대표는 “블록체인이 인터넷을 탈(脫)중앙화된 미래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에 꽂혀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암호화폐 논란 속에서 한국 투자자의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이들이 보인 폭발적 관심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자를 보유하는 결과를 낳았다.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기업인들이 한국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청담동 라운지바 ‘디브릿지’는 외국 기업이 한국 투자자를 불러 IR(기업설명회)을 하고 애프터(After) 파티를 여는 바람에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한국 사람이 주목하는 기업이 된다는 것은 암호화폐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고 자금조달이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월 21일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모여 있는 서울 중구 대신파이낸스센터 12층에서 표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 체인파트너스가 하는 일은 뭔가. “대형 서버가 없어도 일반인이 유튜브처럼 큰 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이 바로 퍼블릭 블록체인이다. 이를 활용한 스타트업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나서 다양한 분야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컴퍼니 빌더’를 만들게 됐다. 대표적인 게 1월 초 출시한 코인덕이다. 암호화폐를 현실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이더리움 기반의 결제서비스다. 이더리움은 전 세계에서 한국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암호화폐다. 출시 후 2주째를 맞고 있는데, 현재까지 이 결제서비스에 가입한 상점이 100호점을 넘었다.”

- 자금 조달과 인력 충원은 어떻게 하고 있나. “기술력이 있으면 자금조달은 용이하다. 체인파트너스는 사토시 나카모토 다음으로 비트코인을 많이 가진 인사로부터 시드(Seed) 투자를 받았다. 작년 하반기에는 국내 VC(벤처캐피털) 3곳에서 추가 투자가 있었고 1월 말 IR을 시작한다.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고급인력 채용에 어려움은 없다. 지난 연말 10명의 직원을 채용할 때 1000명이 지원했다. 한국은행을 그만둔 지원자를 비롯해 고급인력이 많이 지원했다. 현재 회사 직원은 50명인데, 앞으로도 공격적으로 늘려나갈 생각이다.”

-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을 소개해달라. “블록체인 코어 기술, 즉 분산원장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운영 알고리즘, 파일 분산 장소, 채굴 방식 등 구성요소도 까다롭다. 국내에는 3개 업체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중에서 ‘더루프’라는 곳은 최근 스위스에서 ICO(암호화폐공개)를 해 대박이 났다. 현재 더루프의 시총은 4조원대로, 전 세계 퍼블릭 블록체인 업체 가운데 17위에 올라 있다. 앞으로 더루프 같은 기업의 등장이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더루프는 자체 발행 암호화폐 ‘아이콘’을 통해 각각의 개별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공공기관·기업·대학·은행 등이 수수료 없이 즉각적인 송금 및 결제가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도 포함된다. 더루프는 국내에서 ICO가 금지됨에 따라 지난해 9월 스위스 주재 아이콘재단을 통해 ICO를 발표했다. 당시 발행한 암호화폐는 1000억원 규모. 현재 시총은 그보다 40배가 오른 4조원대다. 그러나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한국이 아닌 스위스에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술력을 갖춘 국내 블록체인 업체의 경우 규제 논란에서 자유로운 해외 ICO 발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 대표는 “우리가 블록체인의 주도권을 가져간다는 차원에서 ICO를 풀고 암호화폐거래소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프라이빗과 퍼블릭 블록체인은 어떻게 다른가.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이를테면 은행 내부에서 등록된 사람들만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분산과 공유에서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퍼블릭 블록체인과 큰 차이가 있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들어와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보안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게 퍼블릭 블록체인이고 이 기술 위에서 인터넷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대기업도 데이터를 퍼블릭 블록체인에 태우는 시대가 오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마치 휴대폰이 나오기 전 시티폰처럼 사라질 것이다.”

- 정부가 내놓은 암호화폐 규제는 어떻게 평가하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분리할 수 없다. 정부가 암호화폐 투기를 잡으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만약 거래소를 폐쇄한다면 투자자들은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음성적 거래도 심화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이 시장을 통제권 안에 두고 세금도 부과하려면 현재의 거래소를 제도권으로 가져가는 게 낫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대기업들도 중소 거래소를 매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최근 수백억원에 거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 기업형 채굴업자 때문에 채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강하다. “채굴은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채굴, 즉 암호를 푼다는 것은 거래를 검증한다는 거다.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것과 거래를 검증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중앙기관이 없기 때문에 해당 거래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려면 많은 컴퓨터가 참여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개인도 채굴에 참여해 미미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코인을 받는 게 블록체인이다. 내 생각에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업자가 중앙화될 수 있다는 걸 개발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표 대표는 “비트코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완된 암호화폐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오스라는 암호화폐는 민주적 투표로 최상위에 오른 20개의 컴퓨터가 검증을 담당한다. 보통 수십만 대의 컴퓨터가 네트워크 속에서 검증을 하는 기존 개념과는 다르다. 이때 20개의 컴퓨터 중 제대로 검증하지 않거나 네트워크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탈락하고 21번째 대기 컴퓨터가 새로 검증에 합류하는 경쟁적 구조다. 20대의 컴퓨터에 포함되면 많은 양의 코인을 받게 되는데 이를 위해 컴퓨터 소유자들은 최신 컴퓨터 기종과 최상의 온라인 컨디션을 구축하려고 경쟁을 펼치게 된다.

- 구글이나 네이버처럼 큰 자본이 블록체인 시장을 석권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저항이 작은 분야부터 천천히 바뀌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구글, 네이버 등의 포털 업체들이 중계 역할을 했던 다양한 영역에서 지위를 잃거나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텐데, 공룡기업이 된 이들의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전개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향후 10년을 전후해 인터넷 판도가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한다. 블록체인계의 네이버가 새로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 블록체인의 한계는 무엇인가. “초기 단계에 있음에도 암호화폐 가격은 3~4년 뒤의 기대치가 선(先)반영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안정화가 된다. 시장에 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기관이 분석한 토대 위에서 평가금액이 제시되면 오히려 개미들도 괴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 투자를 할 수 있다. 기관 참여를 막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시장은 더 혼탁해진 측면이 있다. 암호화폐 가격이 당분간 하락한다 해도 길게 보면 기술발달에 따라 우상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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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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