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93호]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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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가상화폐는 시작일 뿐, 블록체인 3.0 시대가 오면…

photo pcmag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빅데이터(Big Data) 같은 IT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전망들이 넘쳐난다. 사물인터넷이 우리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빅데이터가 개인의 숨겨진 생각까지도 분석해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다. 블록체인이 어떤 기술인지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기술이 어떤 변화를 이끌고 올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제서야 점차 자리 잡는 수준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설명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단어들이 있다. 탈중앙화, 위·변조가 불가능한 높은 신뢰성이 대표적인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어떤 부분이 이런 성향을 이끄는 것인지를 조금 더 살펴보자.
   
   블록체인이 탈중앙화된 기술이라는 말은 블록체인에서 거래는 어떤 서버나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참여자들 간의 거래, 즉 P2P 거래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이 거래는 모두에게 공유되는 분산형 장부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10만원을 송금하는 상황이 있다. 지금은 은행이 A와 B 사이에 개입하고 있다. A가 10만원을 은행에 보내고 송금을 신청하면 은행은 B에게 돈을 입금하며 거래내역을 기록한다. A와 B의 거래내역은 거래당사자와 이 거래를 주관하는 은행 외에는 열람할 수 없다. A와 B 입장에서는 은행이 일을 대신해주니 간편하기는 하지만 위험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은행의 장부가 어떤 이유로든 왜곡이 된다면 A와 B의 거래는 엉망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에서는 A와 B가 직접 거래한다. 이걸 P2P(Peer-to-Peer) 거래라고 한다. 대신 A, B의 거래내역은 C, D, E의 장부에도 모두 기록된다. 누군가가 거래내역을 독점해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든 사람의 장부에 모든 거래내역을 다 적음으로써 섣불리 어느 한 장부 내역을 변경하지 못하게 지키는 것이다. 이때 한 거래내역은 하나의 블록으로 형성된다.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은 거래내역 하나하나, 즉 블록과 블록이 체인처럼 엮여 있는 거대한 장부를 말하는 것이다.
   
   한 블록이 생겨날 때마다 블록에는 기록시점이 표시된 타임스탬프가 찍힌다. 그리고 그 블록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한다. 다시 말해 A가 B에게 돈을 송금하면서 자신의 잔고에서 10만원을 뺀 기록을 새로 썼다고 해보자. C, D, E는 여러 경로로 A의 기록이 실제 이뤄진 거래내역에 대한 것인지 검증하고 만약 그렇다면 장부에 A의 거래내역을 적어 넣는다. 이때 ‘A가 B에게 10만원을 줬음’이라고 일일이 적어넣는 것이 아니라 기록은 타임스탬프와 함께 짧게 암호화된다. A가 다음 거래를 한다면 그때는 앞서 암호화된 거래내역을 또 암호화해 기록한다.
   
   암호화 과정에서는 비대칭 암호화 설정 방식이 사용된다. 비대칭 암호화 설정 방식은 ‘공개 키’와 ‘개인 키’로 나뉘어져 있는 암호화 방식을 말한다. 대칭적 암호화 설정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아이디(ID)와 비밀번호가 일치하면 암호가 풀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가 비대칭 암호화 설정 방식은 암호화된 내용에 대한 전면적인 접근 권한이 있는 개인 키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어 그 개인 키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공개 키로 나눈다.
   
   진위 여부를 검증하는 방식은 작업증명(Proof-of-Work)이나 지분증명(Proof-of-Stake) 같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이뤄진다. 작업증명 방식을 택한 것이 비트코인이고 이후 지분증명 방식, 지분권한증명 방식 같은 다양한 알고리즘이 등장했다. 블록체인은 이 지점에서 가상화폐(코인)와 연관된다. 모든 사람이 참여해야 블록체인이 완성되지만 사실 현실사회에서 거래 당사자인 A와 B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 장부를 유지하고 갱신하는 데 참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블록체인에서는 보상을 준다. 이 보상이 바로 코인이다.
   
   다시 설명해 보면, 블록체인에서 A와 B 간의 송금 거래내역은 어느 한 장부에만 적히면 C, D, E 모든 장부에 적히게 된다. 처음에 A와 B 간의 거래내역이 신뢰할 만한 기록인지 판단하고 장부에 적는 사람이 필요한데 만약 D가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검증해 장부에 기록했다면 D에게 코인이 주어진다. 누가 가장 먼저 장부에 적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해 코인을 주는 것이 ‘비트코인’ 방식이고, 더 많은 장부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기록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이더리움’ 방식이다.
   
   한 번 암호화된 기록은 되돌릴 수 없으니 블록체인은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참여자들은 블록체인을 공동으로 유지하고 보수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보다 민주적이다. 매 거래내역마다 검증해야 하니 실시간으로 감시가 가능하고 어느 하나의 거래장부만 고친다고 해서 모든 장부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공개된 신뢰성이 확보된다.
   
   블록체인 과학연구소의 설립자 멜라니 스완(Melanie Swan)은 블록체인의 기술 발전이 3단계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그가 ‘블록체인 1.0’이라고 부른 단계는 디지털 화폐와 관련돼 있다. 결제시스템을 바꾸고 송금 방식을 바꾸며 현재의 화폐 시스템에 혁신을 가져오는 것으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화폐로 대체 가능한지 논하는 단계다. 그리고 이 단계에 대한 논의가 현재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블록체인에 대한 논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 김태원 글로스퍼 대표 photo 글로스퍼

   블록체인이 현실에 구현된다면?
   
   그러나 스완의 발전 단계에는 2.0과 3.0이 남아 있다. ‘블록체인 2.0’은 금융과 경제 분야에서의 혁신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기술로 금융, 보험, 증권 같은 분야가 혁신적으로 변하게 된다. 은행이나 거대 보험회사, 주식 중개거래인의 개입 없이 개인 간의 거래가 더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분야에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어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식거래를 예로 들자면, 개인이 주식을 사기 위해서는 증권회사, 증권거래소 같은 기관을 필수적으로 거치며 신분을 인증하고 계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된다면 주식을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만 있으면 주식 거래가 성립된다. 이 상황에서는 중개거래인의 역할은 없어지고 대신 주식 거래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컨설턴트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증권회사의 인력 구조도 변할 것이다.
   
   특히 블록체인은 신분 인증 방식에 큰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블록체인 신분증을 생각해 보자. 블록체인의 암호화 방식을 사용한다면 암호화된 개인정보는 공개되지 않고도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신분증의 당사자는 블록체인 신분증에 이름과 연락처를 포함한 개인 정보를 모두 입력했다. 그리고 개인 키를 통해서 이를 암호화했다. 다른 사람은 블록체인 신분증의 진위 여부만 가릴 수 있을 뿐 내용은 결코 보지 못한다. 블록체인 신분증이 제대로 자리 잡기만 한다면 이 암호화된 내용에 자신의 모든 정보를 연결해 다른 신분 증명을 대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정부기관에서 필요한 신분증(주민등록증), 은행에서 필요한 신분증(공인인증서)을 따로 갖출 필요 없이 블록체인 신분증 하나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
   
   이 정도에 이르면 블록체인 발전 단계는 ‘블록체인 3.0’에 이르게 된다. 사회 전반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는 상황이다. 이때에는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사회 전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탈중앙화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대신 사회 구성원 모두에 의한 완전한 신뢰, 실시간 감시, 철저한 보안이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이 도입된 정부 시스템은 아마 지금의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완벽하게 공개돼 실시간으로 추적이 가능하다. 정부의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 주도 사업은 ‘정부 내부의 검토’를 통해 진행됐다. 블록체인 방식의 정부 사업은 매우 투명하고 공개적이며 불필요한 절차가 생략돼 간편하게 진행될 수 있다.
   
   마치 인터넷이 인류 사회에 새로운 소통방식을 도입한 것처럼 블록체인으로 인한 사회는 지금과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김태원 글로스퍼 대표는 변화를 믿는 사람 중 하나다.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보고 있는 김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단계는 1, 2, 3단계 차례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너무나 많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편으로는 기술을 보완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느 분야에 블록체인이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 일입니다.”
   
   글로스퍼에서는 서울시 노원구에 ‘노원화폐’를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컴퓨터로 연산을 하면 비트코인을 채굴하듯이 노원구에서는 봉사활동이나 기부활동을 하면 ‘노원화폐’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노원화폐는 안경점, 식료품점은 물론 공영주차장, 체육시설 같은 곳에서 화폐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지금까지의 복지사업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노원화폐는 정부의 복지사업에 블록체인 기술 개념을 병합한 것이다.
   
   “좋은 정책이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많이 일어나곤 합니다.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이럴 염려가 적습니다. 노원화폐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구청에 사업을 신청하고 승인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구청과 구민이 직접 연결되고, 구민이 획득한 노원화폐는 얼마나 지급됐으며 어떻게 사용이 됐는지 금방 확인이 가능합니다.”
   
   노원화폐 프로젝트는 작은 시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런 방식이 자리 잡는다면 사회 전체의 신뢰도와 투명도가 높아질 것이다. 글로스퍼에서 진행하고 있는 음악 저작권 시스템 ‘재미뮤직’은 대기업이 만든 음악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 저작권자와 사용자를 직접 연결한다. 자연히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늘어나고 저작권이 어디서 실시됐는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애플이나 구글이 음악 분야에서 블록체인 플랫폼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은 기술적 발전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것과 동시에 현실사회에서 구현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블록체인이 어떤 기술이며, 그 기술적 보완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로 논의했지만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김태원 글로스퍼 대표의 설명이다.
   
   “항상 블록체인의 기술에 대해 전문성을 갖출 필요는 없다고 설명해왔습니다. 1년 후에도 우리가 만약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고 있으면 그땐 이미 블록체인화되는 세계에 한참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얼른 블록체인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이고,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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