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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6호]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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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대박 좇아 한탕 투자 퇴직금 쪽박 노인 빈곤층으로

우리에게는 금융공교육이 필요하다

김효정  기자 

▲ 일러스트 박상훈
“4년 전에 자산운용사 대표로 취임하면서 20년 만에 한국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사람도 환경도 많이 변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산운용사 직원 중에 펀드를 들어둔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경제학 박사, 교수들이 경제학 수업 시간에 ‘주식 사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놀랐습니다. ‘주식 한다’는 얘기를 어렵게 꺼내면 ‘왜 그 위험한 것을 하느냐’는 핀잔을 듣는다는 얘기에 더 놀랐습니다.”
   
   지난 2월 20일 서울 종로구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존 리(60)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한국 사회는 금융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꺼낸 말이다. 한국에서 금융은 일반 시민들과 먼 거리에 존재하는 어떤 ‘전문적인 것’이다. 당장 교과서만 봐도 그렇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는 금융을 별도의 단원으로 공부하게 돼 있지만 내용만 봐서는 금융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돼 있다. 교과서의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수입이란 일정 기간 동안 증가한 구매력의 경제적 가치를 말한다. 수입의 가장 큰 원천은 소득이다. 소득은 경상소득과 비경상소득으로 구분된다. 경상소득이란 예상 가능한 정기적 소득으로, 근로소득·재산소득·사업소득·이전소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금융을 설명하기 위해 소득의 종류를 지리하게 나열한 교과서에는 이후 20~30쪽에 걸쳐서 용어의 사전적인 정의와 각종 원칙들이 나온다. 보다 실용적인 정보가 제공돼야 할 ‘생애 재무 계획’ 단원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와 주요국의 가계부채 비율’에 대한 거시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일생에 걸친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입과 지출을 예상하여 꼼꼼하게 재무 계획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이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 사회 교사 김은주(가명)씨는 “학교에서 하는 금융교육은 마치 성교육 같다”고 말했다.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도 강조하니 학교에서는 요즘 성교육을 필수로 하거든요. 그런데 그 내용이라는 게 실생활에서는 전혀 쓸모도 없고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해소해주지도 못해요. 금융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용어만 한참 설명하는 데 그치거나 공부 좀 잘하는 학생이라면 곧바로 경제수학부터 배우죠. 주식이 뭔지, 펀드가 뭔지 알려주고 싶지만 저도 잘 알지 못하고 아이들도 별반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는 일반적이다. 존 리 대표는 우리나라 학교와 가정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돈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돈 얘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나중에 신경 쓰고, 일단은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잘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돈 관리는 그 이후에 하는 일이지요.”
   
   한국 학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금융교육이란 ‘돈 아껴 쓰라’는 말이 전부일 때가 많다. 통장을 개설해주더라도 적금은 부모가 대신 내준다. 요즘은 용돈 대신 카드를 쥐여주는 부모도 많다. ‘아껴야 잘살지’라는 오래된 말을 입에 담으면서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부모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4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서 은퇴한 지 4년이 지난 강태섭씨는 4년 사이 1억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사실 강씨는 회사를 40년 넘게 다녔지만 목돈을 만들지 못했다. “그냥 성실하게 일하고 번 돈 모아 집 사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 보냈습니다. 퇴직하면서 처음으로 목돈을 손에 쥐어봤어요.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강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람마다 말이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조언은 ‘올인’을 하지 말고 ‘분산투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씨는 일부를 주식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펀드나 지인의 프랜차이즈 사업에 골고루 투자했다. 어느 주식을 고를지에 대해서는 주식 투자를 오래 해봤다는 직장 후배의 조언을 구했다. 펀드는 아내가 아는 사람이 추천해준 것으로 들었다.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한 용돈벌이를 꿈꿨지만 결과는 1억원을 날리는 것으로 끝났다.
   
   강씨의 사례는 굉장히 흔하다. 성실하게 돈 모아 은퇴한 노인들이 평생 시도해보지 않은 ‘재테크’를 하다가 목돈을 잃는 사례는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실 재테크를 할 만한 목돈이 없는 사례도 많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46.5%에 달했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같은 연령대 중위소득보다 낮은 소득을 버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노인들이 딱히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빈곤해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못 배운 탓에 빈곤해진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를 현실에 맞게 불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대신 쉽게 유혹에 빠진다. 지난 한 해에만 수백만원을 잃은 30살 신재윤씨가 그렇다. 대기업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신씨는 내년이나 내후년쯤 여자친구와 결혼하려고 한다. 결혼을 위해 얼마 전부터 3년간 회사를 다니며 모은 6000만원의 돈을 가지고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다들 모르기 때문이죠. 마침 주변에서 가상화폐에 투자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1000만원 정도 여러 가상화폐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씨의 ‘투자’는 잘 풀리지 않아 원금의 5분의 1 이상을 잃었다. 그의 주변에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직장생활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잘나간다’고 하는 투자시장에 우르르 몰려가는 일은 매번 반복된다. 그렇게 돈을 잃고 난 후 사람들은 말한다. ‘주식 하면 안 된다’ ‘괜히 투자하지 말고 돈을 안 쓰는 게 현명한 거다’ ‘일반인은 투자시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2월 21일부터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찾아가는 금융교육’을 시작했다. photo 메리츠자산운용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
   
   소득과 지출, 투자로 이뤄지는 금융에 대해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 ‘건드리면 패가망신’이라고 말하는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주된 구성 요소 중 하나다. 회사의 가치를 보고 주식을 사 투자하고 회사는 그 돈으로 이윤을 창출해 주주들에게 이익을 나눠주고 다같이 성장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자본주의 원리 중 하나다. 금융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자본주의 구성 요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자본으로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으로 인식된다. “자본과 노동은 같이 일해야 합니다. 자본은 가만히 있고 노동만 열심히 움직이는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금융소득을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그저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선(善)’이라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말처럼 금융소득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무지(無智)는 다양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돈을 좇는 일을 경원시하지만 돈을 벌고 싶어하는 욕망은 크다. 금융시장에 참여해 돈을 버는 일은 부정적으로 보지만 로또 같은 요행으로 돈을 버는 일은 부러워한다.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부자에 대한 질시와 힐난이 공존한다.
   
   외국에서는 어떨까. 이태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도 늘어났습니다. 방향도 변화했어요. 이전까지는 지역, 기업을 중심으로 해서 생산성을 늘리는 데 있었다면 이후로는 금융소비자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행복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금융소비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비자의 의사결정의 질을 높여주는 겁니다.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체계적인 금융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고 정부·민간이 협력해 다양한 제도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면 합리적인 소비자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을 필두로 자리 잡은 ‘행동경제학’에서는 금융소비자의 비합리성을 강조한다. 비합리성을 제거하려면 금융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요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보자. 금융시장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많고 어렵다. 반면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식을 사고 싶다면 모바일 앱만 설치하면 된다. 거래소나 은행을 방문해 계좌를 개설할 필요도,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손쉬운 의사결정 방식에 비해 복잡성은 늘어났으니 비합리적인 소비자를 전문가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쉽게 손해를 보고 실패할 수 있다는 얘기다. TV홈쇼핑에서 파는 보험을 약관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비슷한 상품을 중복해서 계약하는 주부나 직장동료의 말만 듣고 앉은 자리에서 주식을 샀다가 큰 손해를 보는 직장인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금융교육을 받지 않은 비합리적인 소비자가 많을수록 사회적인 비용도 많이 든다. 소비자의 금전적 손실은 곧 부실한 가계경제로 이어진다. 근로소득만 겨우 모을 뿐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매번 투자에 실패하는 근로자는 부실한 노후대비 때문에 불안에 빠진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시민들이 모여 투기현상이 일어난다. 세금이나 연금 같은 금융정책에 대해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 비합리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호주나 캐나다 같은 서구사회에서는 금융소비자의 실패를 줄이는 일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한다. 특히 교육 방법에서 이전의 경제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태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학습자 참여형 교육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Project Based Learning), 시나리오 기법(Scenario Planning) 같은 심리학적 도구가 경제학에서도 쓰이는 이유는 이것이 소비자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지식만 늘어난다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지식과 정보를 현실에 적용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길러져야 합니다. 지식이 올바른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응용해볼 수 있는 참여형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최윤정 이화여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한 고등학교의 금융수업을 한 학기 동안 참관하고 그 결과를 논문 ‘금융이해력 향상을 위한 경험중심 경제교육’에 실었다. 그 내용을 보면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어떻게 금융교육이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미국 학교에서 금융교육은 이론수업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최 교수가 참관한 학교에서는 아예 먼저 체험학습부터 이뤄진다. 예를 들어 수입(income)에 대해 배우는 시간에는 직접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해오도록 시킨다. 자신의 진로와 소비계획에 맞게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아 실제 일하고 오면 그때서야 가처분소득이나 근로소득 같은 소득의 종류, 지방세 등 세금의 종류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단지 돈을 벌고 모으는 데서 금융교육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님께 추천 드리고 싶은 투자 상품 고르기’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금융 투자상품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투자상품을 고르기 위해 학생들은 펀드가 뭔지, 국채는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상품 하나를 고르는 데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토론을 통해 투자상품의 장단점을 공유하고 실용적이고 정확하게 투자상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최윤정 교수는 금융수업이 다양한 수행평가와 프로젝트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 중 ‘자동차를 살까? 임대할까?’는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를 살까 임대할까, 어떤 자동차를 고를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학생들이 어떻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 가르쳐주는 수업이다. 정해진 예산을 가지고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어떤 방식으로 구입할 수 있는지 다양한 대안을 두고 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토론하며 배운다. 만약 이런 결정 과정을 강의 형식으로만 전달받았다면 학생들이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직접 참여하고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일을 한 번 겪고 나면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연구원에서 금융교육 체험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받아쓰기만 하지 말고 주식을 한 주 사라
   
   한국의 금융교육은 이렇게 이뤄지지 않는다. 요즘은 초·중학교에서도 금융교육이 이뤄지곤 하지만 교과서나 특별강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김진영 강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이전에 비해서는 점차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금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금융당국의 주도로 금융기관과 학교가 일대일로 결연해 금융교육을 실시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대개 일회성 교육으로 끝난다. 지난해에 은행에서 진행하는 금융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사회 교사는 “아이들이 교육 내용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론수업만 했던 것은 아니에요. 영수증을 가지고 와 가계부를 써보는 활동, 모의주식투자 연습 같은 것을 해보기는 했지만 수업시간도 너무 짧고 의무적으로 수행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학생 개개인의 흥미에 맞게 금융교육을 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교육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날 금융지식을 쌓아봤자 금융시장을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마음은 가시지 않습니다. 학생에게 받아쓰기만 시키지 말고 학부모와 교사가 나서서 직접 아이를 금융시장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지지부진한 금융교육 실태를 보다 못한 존 리 대표는 아예 ‘찾아가는 금융교육’을 하겠노라며 맞춤 버스를 주문했다. 2월 21일부터 전국 곳곳을 다니며 ‘버스 투어’를 시작했다.
   
   학부모와 교사들을 앉혀놓고 존 리 대표가 설명해주는 가장 간단한 금융교육 방법 중 하나는 주식을 사는 것이다. 주식을 사는 것은 ‘투기를 조장하는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를 익히고 경제시민으로서 시민교육을 하는 일이다. 존 리 대표는 “게임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게임회사 주식을 사주는 게 아이의 창의력과 사고능력,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저절로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기르게 되며, 문제를 던지고 해결하는 과정까지 거치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배양된 금융역량은 금융지식을 쌓는 차원을 넘어서 자녀의 미래에도 도움이 된다.
   
   “창업교육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주식을 사기 위해서 회사의 비전, 경영방침, 전략 등을 공부하다 보면 저절로 창업교육이 됩니다. 노후대비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 있는 주식을 사서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저절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영국은 정부 주도로 이런 방식의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에서 2002년에 도입한 ‘어린이펀드(Child Trust Fund)’는 10살 어린이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펀드다. 어린이 한 명당 250파운드(약 45만원)의 신탁기금이 필요한데 이 돈은 해당 어린이가 18살이 될 때까지는 찾을 수 없다. 어린 나이부터 자산을 갖고 이를 관리하는 경험을 쌓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금융상품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게 된다.
   
   금융교육을 하면 단기적이고 비합리적인 투기성 행동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은 모든 금융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다. 애초에 ‘주식 하면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단기적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개인투자자들로 인해 생긴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보다 장기적으로 자신의 생애과정에 맞는 재무설계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서구 선진국에서는 생애주기별 평생 금융교육을 점차 활성화하는 추세다. 호주에서는 생애주기에 따라 겪을 수 있는 금융 상황에 따른 교육이 연령대에 상관없이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청년이 겪는 자산증식의 문제, 자녀 출산을 앞둔 부부가 겪는 자산관리의 문제, 은퇴를 앞둔 중년층이 고민하는 노후준비의 문제부터 실업, 이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금융교육을 언제든 받을 수 있다.
   
   해외 사례와 한국의 금융교육 실태를 두고 보면 해답은 명확하다. 지금까지의 방식 말고 더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단 어느 한 정부기관, 시민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태준 KDI 교수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금융교육을 통해 시민의 금융 역량을 기르게 되면 부와 자산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경제적·사회적 성장이 이뤄지게 됩니다. 이걸 교육 전문가 몇 명, 금융기관 한두 곳의 역할에만 맡겨둬서는 안 됩니다.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금융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실제 금융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논의도 시작되지 않은 셈입니다.”
   
   이태준 교수는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금융교육의 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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