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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498호] 2018.03.12

일본의 대졸자는 甲 신입직원 찾아나선 기업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일본에서 3월 1일은 ‘슈카쓰(就活)’가 시작되는 날이다. 구직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기업소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시작된다. 주로 대학 3학년생을 상대로 기업의 현황과 환경, 근무조건에 관한 설명회가 이뤄진다. 우리의 전경련과 비슷한 경단련(経団連) 산하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참가해 대학생의 ‘슈카쓰’를 돕는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 갑을(甲乙) 관계다. 직장을 제공할 기업이 아니라 취직을 원하는 대학생이 갑의 위치에 있다. 원래 기업이 우위에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대학생이 갑으로 돌변했다. 따라서 ‘슈카쓰’도 대학생을 위해서라기보다 을의 위치로 전락한 기업을 배려한 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기업이 대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기업을 선택하는 식이다.
   
   올해 슈카쓰 기간 중 화제가 된 ‘오퍼박스(www.offerbox.jp)’란 사이트를 보자. 구직 대학생이 자신에 관한 간단한 소개와 희망을 담은 동영상이나 텍스트를 이곳에 제출하면 기업은 이를 훑어본 뒤 취업을 제안한다. 대학생이 취직을 원하는 기업에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찾아다니면서 취업희망자의 면면을 살피는 식이다. 구직이 아니라 구인 공간인 셈이다. 가입비 역시 대학생은 무료, 기업은 고가의 유료다. 올해 이 사이트 가입 기업은 2300개사. 지난해에 비해 60%가 늘었다고 한다.
   
   
   구인난이 부른 새로운 채용제도
   
   기존 직원이나 입사 확정자의 소개를 통해 취직하는 방식인 ‘리퍼럴(Referral)’도 화제가 되고 있다. 필기시험이나 면접이 아니라 직접 소개에 의한 취업이다. 한국에 적용된다면 ‘복마전’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듯하지만, 일본에서는 올해 들어 5000명 이상 뽑는 대기업의 22%가 리퍼럴 방식을 활용할 전망이다. 서로 간의 신뢰에 기초해 기존 회사 직원이 인정하는 취업 희망자는 기업들이 전부 수용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이러한 일본의 새로운 채용제도는 시험 성적, 학벌을 통한 취직이 아득한 추억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업률 2.4%, 실업자 159만. 지난 3월 2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18년 1월 기준 통계다. 일본에서 실업률은 92개월 연속, 실업자 수는 61개월 연속 감소세다. 시기적으로 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집권기와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12월 아베 등장 이후 일본 경제는 줄곧 수직상승세다. 아베 집권 이후 주식시장도 100% 이상 급등했다. 일본에서 새로운 채용제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배경에도 수직상승하는 일본 경제가 있다.
   
   일본의 실업률 2.4%는 한국의 2017년도 실업률 3.7%에 비해 1.3%포인트 낮다. 작은 차이로 보이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양국 간 체감실업률의 차는 크다.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 자국의 실업률을 믿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해석은 180도 다르다. 일본인은 실업률 2.4%를 사실상 완전고용에 들어선 것으로 이해한다. 실제 실업률은 더 낮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3.7% 실업률이 체감실업률보다 훨씬 낮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 일자리가 넘치면서 일할 사람이 모자라는 곳이 지금의 일본이다. 구인과 구직의 비율인 유효구인배율의 경우 2017년 12월 기준으로 1.59에 접어들었다. 100명당 159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다. 2017년 대학 졸업생에만 한정할 경우 유효구인배율이 1.74에 달한다. 1974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고용주보다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가 큰소리를 치는 나라가 2018년 일본이다. 159만명의 실업자가 있지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따라서 2.4%의 실업률은 수치상 함정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일본인들이 체감하는 2018년 3월의 실업률은 제로나 마이너스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같은 현실에 근거해 “산업혁명 이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고용에 성공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말도 들린다. 자발적 실업을 제외할 경우 원하는 사람은 100%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30세대의 취업난에 고심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부러운 현실이다.
   
   그러나 ‘완전고용’ ‘실업자 제로’의 현실을 반드시 좋게 볼 상황만은 아니다. 구직난 대신 구인난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구인난은 한순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해결방법이 없는, 만성 구인난에 허덕이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일할 사람이 없어 개인, 기업, 사회,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중단되는 ‘희한한 현실’이 일본 열도 전체에 나타나고 있다.
   
   
   실업자 제로의 함정
   
   필자는 구인난에 허덕이는 일본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지난 2월 도쿄 방문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수치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노동력 부족의 현장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구직난에 찌든 한국인이 본다면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구인난은 구직난 못지않은 대재앙으로 와닿는다. 사실 일본에 닥친 완전고용 상황은 일본만의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선진국이 맞이할 공통적인 미래의 운명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경제가 호전된 상태에서의 완전고용이 아니라 경제활동인구의 절대 감소에 따른 실업자 제로현상이라는 점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생긴 구인난이 아니라 일자리는 그대로, 아니 거꾸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할 사람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나타난 실업률 제로가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앞으로 마주할 현실이다.
   
   어쨌든 2018년 일본에서는 고용인구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아베노믹스를 꼽는다. 미국 경제의 순풍도 결정적 이유다. 인구감소가 아닌 경제성장이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들은 아베노믹스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닥칠 완전고용의 함정에도 주목한다. 실업자는 없지만 적재적소에 사용할 일손이 모자라면서 흑자 도산하는 기업도 속출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 전체가 하향세로 돌아설 수 있다. 상식 선에서 볼 때 모두 직장을 가질 경우 경제가 호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노동력 부족에 따른 구인난은 그 같은 상식에 반한다.
   
   현재 일본은 기존의 노동력을 효과적·능률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외국인이나 인공지능(AI), 여성, 고령자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해 구인난을 돌파하는 방안들을 국가적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 불과 9개월 만에 다시 찾은 도쿄지만 일본 정부의 그 같은 노력을 곳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도쿄 외곽의 한 슈퍼마켓의 경우 사람이 아니라 자동기기가 계산대를 대체한 상태였다. 사람이 수동으로 계산할 경우 손님 1인당 평균 30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자동기기가 담당할 경우 업무능률이 대폭 향상된다고 한다. 100명의 손님을 기준으로 할 경우 30분 정도의 시간이 절약된다는 것이 슈퍼마켓 측의 설명이다.
   
   도쿄 긴자(銀座)의 히로시마(広島) 향토음식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종업원들이 주문한 음식만 갖다줄 뿐 물수건, 음료수, 아이스크림, 술, 커피, 디저트 모두 셀프서비스다. 30명 규모의 식당이었지만 서비스하는 종업원은 20대 청년 단 한 명뿐이었다. 도쿄 롯폰기(六本木)의 스시 식당도 노동생산성 향상의 현장이다. 자리에 앉는 즉시 눈앞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면서 주문한다. 2~3분 뒤 벨트를 타고 자동으로 주문한 스시가 전달된다. 다 먹은 후 스시를 담았던 접시를 테이블 아래 작은 구멍에 넣으면 접시 숫자가 모니터에 정확히 기재된다. 종업원을 부르면 접시 숫자를 재확인한 뒤 요금을 알려준다. 계산대에서 테이블 번호만 말하고 지불하면 된다. 150석 규모의 대형 패밀리스시점이지만 종업원은 5명에 불과하다. 5명 중 2명은 중국인과 몽골인이다.
   
   일본의 완전고용 상황에서 최악의 피해자는 3D업종이다. 청소, 간호, 경비, 물류, 요식업 등에서는 일할 사람이 아예 없다.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월급을 높이고 3개월 뒤 정규직 전환을 기본 조건으로 내걸지만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때문에 3일 정도이던 프리미엄 가입자에 대한 ‘아마존 재팬’의 무상 배달시간도 1주일로 길어졌다. 이사 비용도 지난해에 비해 거의 배가 올랐다고 한다.
   
   
   편의점 일손 점령한 외국인들
   
   일본에서 파트타임 급료는 시간당 1000엔 전후다. 하루 10시간, 한 달에 20일 정도 일하면 최하 20만엔 정도 벌 수 있다. 나름대로의 기술이나 자격증을 갖고 있다면 시급 2000엔도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 나고야(名古屋)에서 노인돌봄센터를 운영하는 필자의 친구는 정규직 조건을 내걸고 일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3개월째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일손이 없는 상황에서 병동 하나를 아예 처분할 생각도 갖고 있다. 결국 대안은 외국인 노동력이고, 실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미 일본에는 250만명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중국, 베트남, 네팔, 동부유럽 등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일본의 손발로 뛰고 있다. 5만7000개에 달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20%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편의점 종업원의 대부분은 아시아계지만 최근에는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동부유럽 출신의 백인들도 볼 수 있다. 지난 2월 도쿄의 한 편의점에서 한국인 종업원도 발견했다. 이들은 일본식 매뉴얼에 맞춰 유창한 일본어와 친절한 자세로 손님을 맞이한다. 거의 기계적인 서비스다.
   
   갑자기 일손이 달리면서 본의 아니게 불법행위로 치닫는 업소도 늘고 있다. 지난 3월 6일 보도된 라멘 체인점 ‘이치란(一蘭)’의 불법 고용 문제가 대표적이다. 전국에 70개 점포를 가진 이치란의 외국인 종업원 수는 1300명. 전체 종업원 6500명 가운데 20% 정도다. 라멘은 일본인이 만들지만 라멘집 서비스는 이미 외국인 손에 넘어간 상태다. 이치란은 일손 부족을 메우기 위해 베트남 유학생 10여명을 법을 어겨가며 장시간 일을 시켰다는 것이 보도 내용이었다. 법률상 외국인 유학생의 근무시간은 주당 최고 28시간으로 제한된다. 졸지에 파렴치한 불법 라멘집으로 전락한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 학대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노동력 부족이 불러온 사태다.
   
   지난 2월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청와대발 뉴스를 하나 실었다. 일본 유학 경험을 가진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과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이 인터뷰에서 김 보좌관은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않고, 한·일 청년 간의 취업교류를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했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관심을 끈 인터뷰였다. 필자는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청와대가 일본 노동시장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했다. 현재 일본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동력은 3D업종이다. 이렇다 할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는 한국 청년들이 일본에 일하러 갈 경우 청소, 배달, 간호 등의 영역에서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취업을 원하는 기술집약 첨단산업의 경우, 인도와 중국 젊은이들이 이미 차지한 상태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완전고용 창출에 성공한 나라의 잔칫상에 어쭙잖은 참견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과 한국의 실업률 2.4%와 3.7% 사이에는 수치보다 훨씬 큰 간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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