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전직 주미대사 초청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photo 뉴시스
지난해 6월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전직 주미대사 초청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photo 뉴시스

정의용(72)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63) 외교부 장관의 ‘불화설’이 외교가(外交街)에 확산되고 있다. ‘정 실장과 강 장관 간의 의견 교환이 거의 없다’ ‘정 실장이 외교부도 알아야 할 정보를 잘 공유해주지 않는 바람에 강 장관의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 소문의 요지다. 정부 사정에 밝은 전직 고위 관료 A씨는 “두 사람 사이가 나쁘다는 얘기가 너무 많이 퍼져 청와대도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강 장관이 전화를 걸어도 정 실장이 받지 않고 부재중 전화에 ‘콜백’해주는 일도 드물다더라”고 전했다.

외교부 내에서는 작년 가을쯤 이미 정 실장과 강 장관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가안보실이 한·중 간 사드 문제를 풀기 위한 10·31 합의를 주도하고, 그 협상 과정에서 외교부가 눈에 띄는 역할을 못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강 장관은 양국 간 협상이 가닥을 잡은 뒤 국회에 나가서 소위 ‘3불’로 알려진 우리 정부의 사드 관련 ‘3가지 입장’을 밝히는 역할을 했을 뿐, 협상 내용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외교관 B씨는 당시 분위기를 전하면서 “강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외교부 입장을 개진해도 정 실장이 잘 수용하지 않는다”며 “무슨 말을 해도 정 실장이 듣는 척조차 하지 않을 때는 장관이 안쓰러울 지경”이라고 했었다.

정 실장 존재감 부각

이때만 해도 ‘정의용과 강경화’란 두 개인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본격적인 ‘불화설’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교·안보 현안을 직접 다루려는 청와대와, ‘적폐’로 몰려 별 힘을 쓰지 못하는 외교부의 관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았다. ‘정 실장이 강 장관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청와대가 외교부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로 여겨졌다. 정 실장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나 다른 참모들에게 밀려 그다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할 때였다. 외교관 C씨는 “정 실장 본인도 청와대 내에 자기 공간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할 때라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외교부나 남을 챙겨줄 여력이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수면 아래 있던 불화설이 확 퍼진 것은 정 실장의 존재감이 살아난 올해 3월을 전후한 시점이었다. 정 실장은 3월 초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평양에 가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을 만났고, 미국·중국도 잇따라 방문하며 ‘키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정 실장 본인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기자간담회 등에서 상당히 의욕적이고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 강 장관이 이끄는 외교부는 계속해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며 ‘외교부 패싱’이란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남북 대화가 미·북 대화로 연결되는 시점에서도 외교부는 주역이 아니었다. 정 실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강 장관은 그늘에 가리는 듯한 국면에서 더 살이 붙은 불화설이 외교가에 돌기 시작했다.

그 요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정 실장이 폭넓은 외교 활동을 전개하며 자주 외교장관의 영역을 침범해 강 장관이 불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에 있는 D씨는 “장관을 건너뛰고 바로 다른 외교부 간부들에게 지시가 내려간 뒤 강 장관이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이 꽤 있었다”며 “강 장관이 정 실장에 대한 불만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는데 정 실장이 바로 견제한 사례도 들었다”고 전했다. 외교관 E씨는 “4강 대사와의 교섭처럼 외교부에 시킬 법한 일도 정 실장이 직접 해버리곤 했다”며 “외교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당하는 데 불만을 느끼지 않을 장관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둘째로 정 실장의 ‘정보를 독점하는 스타일’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교관 F씨는 “정 실장이 외국과 소통한 내용들이 외교부에 전부 공유되지는 않았다”며 “강 장관으로서는 ‘상대국과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 밖에 나가서 활동하라는 건가’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로 정 실장과 강 장관의 ‘서로 너무 다른 배경’이 구조적인 간극을 더욱 벌려 놓았다는 견해도 있다. 외교관 G씨는 “과거에도 안보실장, 외교안보수석과 외교장관 사이에는 일종의 ‘긴장 관계’가 항상 있었다”며 “게다가 ‘정통 외교관 코스’를 밟은 정 실장이 보기에 비(非)외시 출신인 강 장관은 정책 측면에서 자신의 상대가 안 될 것이고, 그에 대해 강 장관이 ‘나를 무시하나’란 감정을 갖게 되면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명타 된 강 장관 미국 방문

이런 가운데 3월 중순 있었던 각자의 미국 방문이 두 사람 관계에 ‘치명타’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 논의에서 배제된 채 보낸 2~3월, 외교부는 강 장관과 렉스 틸러슨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열심히 계획했다. 외교부·국무부 라인에서 비핵화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3월 13일 드디어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강 장관은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16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틸러슨 경질 사실을 알렸다. 외교부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강 장관은 예정대로 워싱턴을 향해 떠났지만, ‘울며 겨자 먹기’ 같은 미국행이었다. ‘통상 문제도 중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라도 만나려 했으나 그는 워싱턴에 없었고, 미국에 도착한 강 장관이 굳이 로스 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그런데 나흘 후인 3월 19일 청와대에서 예상치 못한 발표가 나왔다. 정의용 실장이 3월 17~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과 비밀회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3월 16일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북한 문제를 논의하자마자, 정 실장이 미·일 정상의 최측근 외교 참모들을 만나 실질적 대북 로드맵을 그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교부 주변에서 “강 장관은 워싱턴에서 ‘맨땅에 헤딩’만 했는데 정 실장이 비슷한 시기 미국에 가서 ‘앙꼬’를 보여주는 바람에 장관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말이 돌았다.

이런 ‘불화설’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정 실장과 강 장관만이 정확히 알 것이다. 강 장관은 3월 말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안보실과의 소통은 잘 이뤄지나’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장끼리의) 직접 소통이 잦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안보실과 외교부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김진명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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