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조양호 회장, 조원태 사장, 조현아씨, 조현민씨
사진 왼쪽부터 조양호 회장, 조원태 사장, 조현아씨, 조현민씨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범죄 혐의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상습 폭언과 폭행, 밀수와 세금포탈, 대학 부정입학과 1000억원대 상속세 탈루, 재산 및 자금 해외은닉, 횡령·배임, 위장계열사 운영, 출입국관리법 위반과 필리핀 연수생 인권유린 의혹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현재 조양호 회장과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자녀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조현아 전 칼호텔네크워크 대표, 조현민(본명 조 에밀리리) 전 대한항공 전무 겸 한진관광 대표까지 가족 다섯 명 모두 각종 혐의에 연루돼 있다. 특히 횡령·배임, 항공법 위반, 상습 밀수, 세금탈루 등 기업범죄 의혹들이 부각되면서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넘어 한진그룹 전체로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주주들과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안정을 위해 조 회장 일가가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목소리와 함께 주주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궁금증이 있다. 각종 범죄 혐의로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에 수시로 리스크를 몰고 왔던 조 회장 일가가 그동안 어떻게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비정상적 ‘황제경영’을 해올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다. 조 회장 일가의 황제경영을 가능케 한 구조적 문제를 제거하지 못한 채 이번 사태가 흐지부지되면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의 위기가 수시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주주들의 지적이다.

조 회장과 3남매를 위한 이사회

무엇이 조 회장 일가의 비정상적 황제경영을 가능케 했을까. 조 회장 일가가 장악한 한진그룹 주력사인 대한항공과 지주사 한진칼의 최고경영진 문제가 먼저 꼽힌다.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와 주요 계열사의 사내이사 등 최고경영진은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조현아·조현민씨로 대표되는 조 회장 가족 중심 체제다. 조 회장 가족이 장악한 최고경영진에 전문경영인으로 불리는 1~2명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추가돼 있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면 조 회장 일가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들이다.

현재 대한항공 사내이사, 즉 최고경영진은 4명이다.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이들의 최측근인 우기홍 부사장과 이수근 부사장이다. 최고경영진 50%가 조 회장 가족이다. 같은 사내이사 신분이지만 우기홍·이수근씨는 조양호·조원태 부자의 부하직원이다. 지금만 이런 구도가 아니다. 2017년에도 조양호·조원태 부자와 최측근인 우기홍·이수근 부사장으로 최고경영진이 꾸며졌었다. 2015년과 2016년 역시 조양호·조원태 부자의 최측근인 지창훈씨와 ‘금고지기’로 알려진 이상균씨까지 4명이 사내이사를 맡았었다.

2014년은 더했다. 조양호·조원태 부자와 ‘땅콩회항’으로 사법처리된 조현아씨, 조 회장의 매형 이태희씨가 사내이사로 대한항공 경영권을 휘둘렀다. 여기에 지창훈·이상균씨가 추가돼 대한항공 최고경영진 6명 중 4명, 즉 67%가 조 회장 가족들로 채워졌다. 2013년에도 조양호·조원태·조현아·이태희에 지창훈·서용원씨가 사내이사를 맡았다. 서용원씨가 특히 눈에 띈다. 서씨는 조양호 회장의 상속세 포탈 혐의를 무마하기 위해 진경준 전 검사장(징역 4년 선고)을 만나, 진 전 검사장의 처남 회사에 항공 청소일감을 몰아준 인물이다. 사실상 조 회장 일가의 해결사로 나서 뇌물공여 행위를 벌이다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을 정도로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불린다. 그리고 2013년 역시 대한항공 사내이사 6명 중 4명이 조양호 회장 가족이었다.

이렇게 철저히 조 회장 일가와 금고지기, 오른팔·왼팔로 불리는 최측근으로만 대한항공 최고경영진을 꾸며놨기 때문에 조현아·조원태·조현민씨 등 조 회장 일가의 비정상적 황제경영을 견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조 회장과 가족이 사내이사 67% 차지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더 심각하다. 조양호·조원태 부자가 0.1%에 불과한 지분으로 대한항공을 장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경영권 지렛대’가 한진칼이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 29.96%(보통주)를 보유했는데, 조 회장 가족과 특수관계인들이 한진칼의 지분 28.96%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조 회장 일가가 대한항공을 손쉽게 장악하는 구조다.

특수관계인을 합쳐도 한진칼 지분이 채 30%가 안 되지만 조양호·조원태 부자는 최고경영진과 경영권만큼은 대한항공보다 더 굳건하게 움켜쥐고 있다. 2018년과 2017년 한진칼의 최고경영진인 사내이사는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조 회장 일가의 오른팔로 유명한 석태수씨 등이 맡았다. 2015년에도 한진칼 최고경영진은 조양호·조원태 부자와 석태수씨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영학자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최근 5~6년간 최고경영진 구성과 면면을 보고 “어떻게 설명하기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지배 지분이 30%도 안 되는 상황이기에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조현아·조현민씨 등 조 회장 일가가 사내이사 같은 자리와 경영권에 더 집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지주사인 한진칼 사내이사와 최고경영진 구성을 가리키며 “어떻게 변명을 해도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양호·조원태 부자와 최측근으로 짜인 한진칼 최고경영진이 결국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비정상적 권력을 조 회장 가족에게 안겨준 요인”이라며 “이런 비정상적 권력이 오랫동안 견제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 회장 일가에게 ‘반사회적·비윤리적 일을 해도 우리는 경영권을 잃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주가 반대한 측근 교수 사외이사 앉혀

조양호 회장 일가가 장악한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최고경영진 구도를 견제할 장치가 전혀 없었을까. 아니다. 사외이사 제도라는 게 있긴 하다. 이사회와 사외이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했다면 계열사를 동원한 밀수와 출입국관리법·외환관리법 위반, 위장계열사 운영, 불법 일감 몰아주기 같은 기업범죄 의혹이 짙은 사안에 이의가 제기되거나 견제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물론 한진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절대적이다.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 한진그룹 사외이사들 역시 조양호 회장 일가와 ‘학연·친구·친인척과의 친분’ ‘정부 및 권력기관’을 통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대한항공 사외이사는 김재일 서울대 경영대 교수, 안용석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임채민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진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김동재 연세대 교수 등 5명이다. 법무법인 광장과 화우 소속 사외이사들이 눈에 띈다.

광장은 1977년 조양호 회장의 매형 이태희 변호사가 만든 법무법인으로 태생부터 조 회장 일가와 끈적끈적하다. 조양호 회장 일가인 이태희 변호사도 1998~2014년까지 대한항공 사내이사를 맡았었다.

대한항공 사내이사 겸 부사장이던 조 회장의 맏딸 조현아씨가 폭행과 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되자 조씨 변호도 광장 변호사들이 맡았었다. 현재 대한항공 사외이사인 안용석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는 광장이 조씨 사건을 맡았을 당시에도 광장 변호사 신분이었고, 동시에 대한항공 사외이사도 겸직 중이었다. 조현아씨와 함께 대한항공 이사회 구성원이었다.

법무법인 광장은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관련 일거리를 많이 맡았었다. ‘경복궁과 풍문여고·덕성여중고 옆에 호텔을 짓겠다’고 대한항공이 나섰을 때 이를 금지한 행정당국 상대 송사에도 관여했고, 대한항공의 한국항공우주(KAI) 인수전 법률자문도 맡았다. 심지어 광장은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그룹 소유 한진빌딩에 입주해 있기도 하다. 이런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와 고문이 대한항공 사외이사 자리를 맡고 있다.

법무법인 화우도 조 회장 일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우 측이 조현아씨의 직원 폭행과 땅콩회항 사건 2심을 맡았었는데 당시 집행유예를 받아내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후 2017년 정진수 화우 변호사가 대한항공 사외이사가 됐다.

김재일 서울대 경영대 교수의 경우 대한항공의 최근 사외이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고 돼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보다 훨씬 전인 2002~2011년에도 대한항공 사외이사를 맡았었다. 2011년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가 5년 만에 복귀해 지금까지 대한항공 사외이사만 11년째 맡고 있다. 2016년 김 교수가 사외이사 복귀를 시도할 때 일부 주주들이 나서 ‘오너와 경영진 견제가 불가능한 인물’이란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외이사가 됐다.

조 회장 친구·동문 포진

2016~2017년 대한항공 사외이사는 6명이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전 회장, 이윤우 한국산업은행 전 부총재, 김재일 서울대 교수,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서강대 교수), 안용석 광장 변호사, 정진수 화우 변호사(2017년 선임) 등이었다.

김승유 전 회장은 조양호 회장, 조현아·조원태씨 등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MBA 동문이다. 김 전 회장도 2006년부터 2009년, 2012년부터 올해 3월까지 9년간 대한항공 사외이사를 맡았었다. 조양호 회장과 경복고 동기인 이윤우 한국산업은행 전 부총재도 2009년부터 올해 3월까지 9년 동안 사외이사였다.

2007년부터 2017년 3월까지 10년간 사외이사를 맡았던 이석우 두레 변호사도 조 회장과 경복고 동기로 친구다. 판사 출신인 이 변호사는 2017년 3월 23일 “일신상 이유로 대한항공 사외이사를 더 못 한다”며 임기 중 갑자기 그만뒀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 뜬금없이 ‘법률자문, 경영전략 업무 등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를 앞세워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의 사외이사가 됐다.

대한항공의 사외이사진은 오랫동안 조양호 회장 일가와 친밀한 안용석 변호사, 김재일 교수, 김승유 하나금융 전 회장, 이윤우 산업은행 전 부총재, 이석우 변호사 등 5~6명이 주도했다. 이들 외에 1년에 1~2명 정도 교체하거나 복귀시키는 형태로 수년째 운영돼왔다.

2013년 대한항공을 인적분할해 새롭게 지주사로 만든 한진칼의 사외이사는 3명인데 역시 조양호 회장 일가와 친하다. 2013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5년 연속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조현덕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의 경우 사외이사 자격 논란이 일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대한항공을 분할해 한진칼을 지주사로 만드는 데 그가 직접 자문용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 일가의 재산 이전과 경영권 승계 작업 성격이 강한 대한항공과 한진칼 분할 및 지주사 작업에 관여한 사람이 사외이사로 조 회장 일가의 경영을 견제할 수 있겠냐’는 것이 일반 주주들의 시각이다.

조 회장과 경복고 동문인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도 항공산업과 관련된 경력이 없지만 2016년 3월 한진칼 사외이사가 됐고, 앞서 말한 이석우 변호사도 2017년 대한항공 사외이사에서 한진칼 사외이사로 자리 이동을 했다.

한진칼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조양호·조원태 부자와 석태수씨, 사외이사 3명을 포함한 이사회 멤버 6명 전원이 조 회장 가족이거나 회장 가족과 친분이 두터운 이들로만 구성돼 있다.

재산·경영권 자문 변호사가 사외이사

기업의 오너일가·경영자들과 친하고 학연·지연 관계가 있다고 해서 사외이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사회 구성원으로 오너와 최고경영진의 잘못된 행보와 경영을 견제하고 발전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사외이사가 될 수 있다.

기자는 최근 6년간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전·현직 사외이사를 맡았던 12명에게 취재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찾아와도 만나지 않을 것”이라거나 “사외이사는 맞는데 아는 게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회의 중이니 끝나는 대로 연락하겠다”는 내용을 비서 혹은 문자메시지로 보내온 사외이사들도 있었지만 실제 연락해왔거나 취재에 응한 사외이사는 한 명도 없었다. 취재에 응한 대한항공 전 사외이사 A씨는 “(최근 일은) 조양호 회장과 일가의 잘못이 맞다”고 전제하면서도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사외이사를 할 때 이사회는 나름 민주적으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사외이사였던 B씨는 “법·금융 관련 일을 한 사외이사들로 구성돼 전문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시선은 차갑다. 한 대학 경영학 전공 교수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이사회 인적 구성을 보면 합리적 경영이나 범죄 혐의까지 제기되는 조양호 회장 일가의 일탈에 대한 견제를 말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것 아니냐”며 “건전한 상식 정도만 있어도 누가 왜 이런 상식을 벗어난 이사회를 만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 듯싶다”고 했다. 한 기업법 전문 변호사는 “윤리성이 낮고, 범죄 혐의가 자주 불거지는 조 회장 일가를 이사회를 통해 견제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며 “공사(公私)에서 조 회장 일가와 관련이 없고 이해관계가 자유로운 이들로 이사회를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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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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