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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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섭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망원경을 만드는 천문학자다. 그가 천문연 내 우주천문그룹을 이끌며 만든 우주망원경 NISS(근적외선 영상분광기)는 스페이스-X에 실려 오는 10월 지구궤도에 올라갈 예정이다. 나는 우주망원경은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연합과 같은 우주선진국만 만드는 줄 알았다. 지난 5월 14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만난 정 박사는 “NISS는 천문연의 세 번째 우주망원경”이라고 말했다.

천문연의 첫 번째 우주망원경은 FIMS(원자외선분광기·2003년 발사), 두 번째 우주망원경은 MIRIS(다목적 적외선 영상시스템·2013년 발사)이다. 세 번째 망원경 NISS에는 MIRIS에는 없던 분광 기능을 넣었다. 한 발자국씩 앞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첫 우주망원경이 ‘우주 관측 카메라’ 정도였다면 지금은 우주망원경에 근접했다. 정 박사는 “우주 선진국에 비하면 뒤졌지만 이렇게 역량을 축적하면 언젠가 대형 우주망원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대형 망원경을 만들어 관측하면 되지 왜 우주에 망원경을 올려 보낼까? 가령 천문연은 2020년대 중반 완공될 주경(主鏡) 25m급 초대형 망원경 ‘거대마젤란망원경’을 외국 대학 및 과학기관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천체는 여러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천체를 관측해야 참 모습을 알아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펙트럼은 지상에서는 잘 관측되지 않는다. 지구 대기 속 수증기와 같은 물질이 방해한다. 그래서 우주에 망원경을 올려야 한다.”

인류가 만든 첫 우주망원경은 1960년대 대형 풍선에 실어올린 형태였다. 제대로 된 위성 형태로 1983년 지구궤도에 올린 건, 유럽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동개발한 적외선 망원경 IRAS다. IRAS는 전천(全天·all-sky) 관측으로 적외선 천문학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 미국은 허블우주망원경을 1990년에 쏘아 올렸으며 허블망원경은 현재도 현역이다. 우주망원경에는 관측하려는 파장에 따라 감마선, X선, 자외선, 적외선 망원경이 있다.

정 박사가 만든 우주망원경 NISS는 적외선 망원경이다. 적외선 망원경은 우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적색이동(red shift)’이 큰 초기은하, 성간물질로 둘러싸여 별이 태어나는 영역, 갈색왜성과 같이 매우 차가운 별을 관측하기에 좋다. 또 적외선은 우주먼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멀리 볼 수 있다. 야간투시경을 쓰면 밤이라도 사물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적외선 우주망원경의 이 같은 특징 때문에 “NISS는 초기은하 생성과 은하 진화 연구에 도움이 될 적외선 우주배경복사(Cosmic Infrared Background·CIB) 관측을 하게 된다”고 정 박사는 말했다.

NISS로 초기은하나 별을 직접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 박사는 “간접 관측한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NISS는 지구궤도를 돌며, 광(廣)시야로 넓은 하늘 영역을 촬영한다. 허블망원경이 좁고 깊게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과는 망원경 특성이 다르다. 촬영한 그 이미지에서 알려진 별이나 은하와 같은 점(點)광원을 지워나간다. 그러면 남는 게 있다. 이게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빛이다. 이를 적외선 우주배경복사라고 한다. CIB는 초기의 별 혹은 은하가 만들어낸 ‘공간 요동’의 흔적이다. 특정 천체를 직접 관측한 게 아니어서 이런 관측을 ‘간접 관측’이라고 한다.

정 박사는 공간 요동이 얼마나 큰지, 즉 얼마나 큰 규모까지 은하가 분포하고 있는지를 NISS를 통해 연구하려 한다. 지금까지 적외선 망원경으로 ‘1도 이하(sub-degree)’ 규모로 관측했고, MIRIS나 NISS로는 1도 이상 규모로 볼 수 있다. 분광 기능이 추가된 NISS로 “1도 이상 스케일의 공간 요동에 기여하는 은하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게 이번 임무의 핵심이다.” 정 박사에 따르면 이론과 관측이 충돌하는 게 있다. 그는 “이론은 현재 관측되는 큰 규모의 공간 요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1도 이상 크기로 공간을 분광하여 보았을 때 적외선 파장에 따라 공간의 요동 강도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알면, 이론과 관측 차이를 줄일 수 있다. 정 박사는 서울대 천문학과 박사 1년 차 때 적외선천문학을 하기로 결심하고 일본 우주과학연구소(ISAS)에 갔다. ISAS의 적외선 망원경 AKARI 개발에 한국이 참여했는데 그 팀의 일원이었다. 정 박사는 적외선천문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적외선천문학이란 도구로 초기은하의 형성과 진화를 알아내고자 한다.

ISAS는 도쿄 서쪽 외곽의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있다. ISAS는 일본 우주과학 연구의 중심지이며, 일본의 NASA라고 할 수 있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산하기관이다. 정 박사는 AKARI 개발 과정에서 자료 해석, 관측 시뮬레이션, 적외선 우주관측기기에 대한 실험 설계를 배웠다. 박사과정을 포함해 박사후연구원 시절까지 5년 반을 ISAS에서 보냈다.

천문연구원에 들어간 건 2007년. 천문연의 두 번째 우주망원경인 MIRIS 개발에 참여, ‘근적외선 광시야영상기’를 만들었다. 정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적외선천문학이 여기까지라도 온 건 일본 천문학계의 도움이 컸다. ISAS에서 만난 나카가와 다카오(中川貴雄·도쿄대), 마쓰모토 도시오(나고야대) 교수에게서 배웠고, 지금도 배운다고 했다. 마쓰모토 교수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천문연에 온다.

한국 우주망원경의 현주소는 선진국 적외선우주망원경과 주경 크기를 비교하면 드러난다. 천문연이 쏠 NISS는 15㎝이고, 일본이 13년 전인 2005년에 쏘아올린 AKARI는 68㎝이다. 유럽항공우주국(ESA)이 운영 중인 허셀은 3.5m이고, NASA가 2020년에 쏠 제임스 웹우주망원경은 6.5m이다. 15㎝ 대 6.5m. 큰 차이다.

정웅섭 박사 방에서 나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는 ‘광학실험실’에 갔다. 2012년부터 NISS를 만든 방이다. 실험실 안 테이블 위에 NISS와 똑같이 생긴 모델이 놓여 있었다. 발사를 위해 보낸 ‘비행 모델’ 직전 단계인 ‘인증 모델’이다. 투명한 비닐로 막은 밀폐공간 안에 있어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다. 크기는 내용물을 잔뜩 채운 백팩 정도였다. 광학실험실에는 전선과 공구, 드라이버 세트, 커다란 공구상자, 회로기판, ‘경고’라고 써 있는 가스통이 가득 했다. 옆방에는 우주환경실험을 하는 대형 장비도 있었다. 천문학자가 우주망원경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기계과 나온 연구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정 박사는 “없다. 우주천문그룹 연구자는 모두 천문학과 출신이다. 이런 걸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천문학은 복합학문이다”라고 설명했다. 12명의 팀원은 광학 전문가, 광기계 전문가, 전자파트 전문가, 자료해석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NISS 다음 적외선 망원경 프로젝트는 SPHEREx. 전천(全天)을 탐사하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제이미 복 교수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NASA의 최종 프로젝트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또 한발 앞으로 디디게 된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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