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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512호]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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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희의 혁신노트]英 옥스퍼드大 벌꿀 파는 사연

박란희  공익플랫폼 ‘더퍼블리카’ 대표 

▲ 영국 옥스퍼드대 루시 킹 박사(왼쪽 세 번째)와 케냐 농민들이 농장을 습격하는 코끼리를 막기 위해 ‘벌통 울타리’를 만들었다. 농민들은 코끼리도 쫓고 벌꿀을 팔아 추가소득을 얻었다. photo 옥스퍼드대
“코끼리 친화 꿀(Elephant Friendly Honey)이라는 브랜드를 아시나요? 케냐 농민들과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합작해서 생산한 벌꿀입니다.”
   
   웬 벌꿀 이야기? 레슬리 패터슨 옥스퍼드대학 PE(Public Engagement·시민참여)센터 총책임자의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이야기인즉 이랬다. 아프리카 케냐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코끼리. 개체수가 부쩍 늘어난 코끼리 무리가 농민들의 경작지를 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코끼리를 쫓아내는 과정에서 해마다 수십 명이 죽고, 코끼리 또한 창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코끼리를 쫓아내기 위해 주변에 고춧가루 뿌리기, 가시덤불 설치, 횃불 켜고 지키기, 냄비 두드리기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영국 옥스퍼드대 루시 킹 박사가 연구에 참여하면서 해결의 문이 열렸다. 루시 킹 박사는 코끼리가 꿀벌이 내는 ‘윙~윙~’ 소리를 듣기만 해도 도망치고, 동료에게 저주파 경고음까지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킹 박사는 코끼리가 자주 침범하는 농경지와 마을 둘레에 10m 간격으로 꿀벌 벌통을 설치하는 ‘벌통 울타리’를 고안했다. 코끼리가 줄을 건드리면 벌통이 흔들리면서 꿀벌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농민들은 코끼리도 쫓고 꿀을 팔아 추가소득까지 얻게 됐다. 킹 박사는 이 연구로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상까지 받게 됐다.
   
   
   사회적 임팩트 반영해 대학 평가
   
   킹 박사의 연구를 물심양면 지원한 것은 옥스퍼드대 PE센터다. 퍼블릭 인게이지먼트(Public Engagement), 우리말로 하면 ‘시민참여’ 정도로 해석될 이 용어는 지금 영국 대학에서 혁신을 이끄는 커다란 화두다. 쉽게 말하면 ‘유명 저널에 실리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푸는 ‘임팩트 있는 연구’를 하자는 것이다.
   
   패터슨 박사는 “수백 년 동안 연구와 학생교육에만 초점을 뒀던 옥스퍼드대가 2008년부터 시민참여를 새로운 축으로 세웠다”며 “이는 ‘대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인식전환을 통해 대학 문화를 바꾸는 큰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1985년 무렵 유전자변형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거셌고, 영국왕립학회에서는 대중이 과학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너무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후 2000년대부터 과학과 대중이 좀 더 밀접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났어요. 대학논문이 유명 저널에 발표되는 것도 좋지만, 사회에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커졌습니다. 정부에선 아예 ‘NCCPE(National Coordinating Center for Public Engagemnet)’라는 지원센터까지 만들었어요.”
   
   대학의 시민참여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자금과 웰컴트러스트(Wellcome Trust)펀드 등 기금도 늘어나는 추세다. 패터슨 박사는 “영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32개 대학에 120억원가량의 연구보조금이 지원됐는데, 연구보조금의 15%가 시민참여 분야”라고 설명했다.
   
   “보조금의 절반은 국가연구기금에서 지원되고, 나머지 절반은 대학평가를 통해 지원됩니다. 대학평가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논문 숫자만을 갖고 평가했다면, 지금은 연구를 통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사회적 임팩트를 6 대 4 정도로 봅니다.”
   
   실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국 요크셔주 북쪽마을에 매번 홍수 피해를 입는 지역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거대한 댐을 설치했는데, 이게 환경문제를 일으키자 주민들과 대립이 있었죠. 옥스퍼드대에서 환경학자 커뮤니티와 함께 홍수방지를 위한 연구에 돌입했고, 소규모 댐으로 홍수를 막을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2015년 폭우 때 주변에서는 대거 홍수피해가 발생했는데, 이 마을은 피해를 비켜갔습니다.”
   
   패터슨 박사는 “AI와 제4차 산업혁명이 등장하지만, 대학은 변화와 혁신이 더디다”며 “처음에는 외면하던 교수나 연구진, 학생들이 이젠 적극 참여하는 데 이어 민간 싱크탱크, NGO, 은행권, 정치권, BBC와 같은 방송국 등에서도 대학의 시민참여에 점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옥스퍼드대는 지난해엔 ‘시민참여’와 관련해 지역주민들과 학생들, 유럽 30개국이 참여하는 1만명 규모의 행사를 열었고, 오는 7월에도 성공과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 지난 6월 12일 SK행복나눔재단이 주최·주관하고 한양대, 영국문화원이 협력한 ‘2018 사회혁신교육자네트워크 포럼’이 한양대에서 개최됐다. 카이스트,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photo SK행복나눔재단

   한국 대학들도 시민참여형 연구 바람
   
   영국처럼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사회혁신에 관한 물결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난 6월 12일 패터슨 박사의 내한 행사를 주관한 ‘2018 사회혁신교육자네트워크 포럼(Educators’ Network for Social Innovation·ENSI)’이 변화의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 SK행복나눔재단이 후원하고 한양대와 영국문화원이 협력한 이번 포럼에는 국내 대학에서 사회혁신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계획 중인 대학 교수와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양대 성태현 전기생체공학부 교수(산학협력단장)는 이날 ‘야간 작업자의 사고 예방을 위한 자가발전 기술 기반 융합형 안전장비’ 개발과정을 소개했다. 영국국제인명센터의 ‘세계 100대 과학자’로 선정된 바 있는 성 교수는 ‘리빙랩(living lab·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사회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 방식을 강조했다.
   
   “야간 작업자들이 교통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요. 땀과 먼지 때문에 작업복을 매일 세탁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광 소재가 뜯어지는 게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의류학과와 협업을 통해 안전장비를 부착한 작업복을 만들었습니다. 2년간 60번의 리빙랩을 하면서 갖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작업복 어깨 부근에 자가발전 키트를 붙였는데, 밝은 불빛 때문에 오히려 사물이 잘 보이지 않고 뜨겁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이어 주머니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붙였더니 이번에는 무겁고 세탁하기 불편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야간 작업자들이 옷을 풍성하게 입는 것에 착안, 자가발전기를 분리하고 착용감을 위해 촉감이 좋은 소재를 활용했다. 성태현 교수는 “리빙랩을 하면서, 왜 기존 실험실에서는 성공한 연구가 현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김의영 교수는 ‘글로벌 리더십 연습’ 수업과정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정치가 여의도와 청와대만이 아니라 지역에도 있다는 생각으로, 2015년부터 풀뿌리 시민정치에 관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학생들과 함께 현장을 직접 찾아가 참여관찰과 인터뷰, 사례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사례연구를 하고 직접 제안서를 써서 시흥시장을 만났고, 시흥시민과 원탁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관악구와 협업해 지역매니저 5명이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을 엮어 ‘동네 안의 시민경제’ 등 3권의 책을 냈다. 김 교수는 “전국 20개 대학의 교수들을 설득해서, 정치학도들과 함께 지역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학 차원에서 사회혁신에 관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곳도 있다. 한양대는 지난 4월 글로벌 사회혁신 대학들의 네트워크인 아쇼카 U(Ashoka U)의 ‘체인지메이커 캠퍼스(Changemaker Campus)’로 최종 선정됐다. 동아시아 대학 중 최초로, 심사 기간만 2년이 걸렸다. 미 코넬대, 브라운대, 존스홉킨스대 등 전 세계 9개국 45개 대학만이 체인지메이커 캠퍼스로 승인받았다. 한양대는 학부 과정에 ‘사회혁신융합 전공’을 개설, 국내 대학 최초의 ‘사회혁신센터’를 설립한 바 있다.
   
   연세대는 지난해 10월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통해 SK와 사회혁신 인재 양성을 위한 MOU를 맺고 5년간 100억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연세대는 ‘고등교육혁신원’을 중심으로 현재 50개 강좌, 2500명 학생을 대상으로 ‘사회혁신 특화과목’을 확대 운영하고 있다. 연세 ‘소셜 엔터프라이즈 어워드’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며, 연세 사회혁신가 인증서를 통해 2022년까지 2000명의 인재를 양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카이스트는 2013년부터 ‘소셜 앙트프러너십 MBA’를 운영해오며, 매년 20명씩 사회혁신 기업가들을 양성해오고 있다.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며 필요하면 초기 창업지원금도 제공한다. 카이스트 이지환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50여개의 소셜 벤처가 창업했다”고 밝혔다.
   
   이화여대는 9개 학과를 융합해 ‘사회적 경제’ 석·박사 협동 과정을 만들었다. SK행복나눔재단과 MOU를 맺고 3년간 장학금을 지원한다. 조상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지역주민을 만나 ‘문제의 뿌리(root cause)’를 발견하고, 해결 전략을 짜고, 예산계획을 세우는 방법까지 배운다”며 “교육과 연구, 협동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마인드셋이 바뀌는 걸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학이 세계에 미친 영향
   
   대학들의 이 같은 흐름과 관련, 사회혁신 컨설팅기관인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현재 사회혁신을 둘러싸고 기금(돈)은 많이 투입되지만, 사람은 너무 부족하다”며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학들이 선제적으로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도 대표는 “미국과 영국은 사회문제 지도(map)와 리스트를 카테고리화해서 보유하고 있으며, 20년짜리 ‘임팩트 게놈 프로젝트’를 연구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고유의 사회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데이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 기업 수 총 3만9900개, 기업들을 통해 창출된 일자리 540만개, 기업들의 연간 매출액 2조7000억달러(약 3000조원).’
   
   2012년 10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윌리엄 밀러 교수와 공과대학원 찰스 이슬리 교수가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스탠퍼드대학이 세계에 미친 경제적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밝힌 수치다. 발표된 기업들의 총 연간 매출액은 우리나라 GDP(1조1900달러·2013년 기준)의 두 배와 맞먹는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야후 공동 창립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 등이 스탠퍼드대 출신들이다. 이뿐 아니다. 약 3만개의 비영리 단체 대표들이 스탠퍼드대를 졸업했다. 글로벌 비영리 임팩트 투자 기관 어큐먼펀드 대표인 재클린 노보그라츠, 70여개국에서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하는 비영리 기업 키바(kiva)의 대표 매트 플래너리,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스콜재단 설립자 제프 스콜도 모두 이 대학 인재들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과의 바탕에는 ‘혁신’과 ‘기업가정신’ ‘사회적 영향력’을 통합한 리더를 길러내는 스탠퍼드대의 학풍이 있다고 본다. 과연 우리나라 대학에도 이 같은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지 기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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