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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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 또 외국에서 수입하는 설비까지 무조건 내수로 처리해버리니 마치 한국의 내수가 대단히 성장한 것처럼 통계 지표가 부풀려지고 있습니다. 정책하는 사람들은 이런 통계 지표만 갖고 ‘내수가 성장하고 있다’며 ‘이제 수출만 생각하면 돼’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통계와 정책 오판이 결국 우리 내수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박살내버린 겁니다. 이게 잘못된 게 아니면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말입니까.”

지난 6월 14일 서울 여의도 한화투자증권에서 만난 김일구(51) 리서치센터장은 엉터리 통계와 이로 인한 정책 실패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 5월 29일 발표한 ‘GDP 유감(1) 소비통계가 잘못됐다’는 보고서를 통해 정책결정자들의 잘못된 경제 인식을 꼬집어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가 보고서를 발표하자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그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실물경제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소비통계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다는 것일까. 그가 지적하는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통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올 1분기 GDP 성장률은 지난해 동기 대비 2.8%다. 3.8%까지 올랐던 지난해 3분기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2%대 초반에 불과하던 과거보다 외관상 나아진 상황처럼 보인다. 더구나 지난해 3분기까지는 전체 GDP 성장의 절반을 건설투자가 차지했었지만 올 1분기에는 건설투자 성장기여도가 낮아진 대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성장기여도가 올라갔다. 이 통계를 근거로 “성장의 질도 나아지는 듯하다”는 정부의 설명만 들어보면 “한국 경제가 침체”라거나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때문에 이 통계 지표는 청와대나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이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종종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통계 지표와 해석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통계청이 만든 ‘취업자 수’, 특히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 취업자 수’의 증감 상황을 보자. 올 4월 기준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종의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약 9만명이 줄었다.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은 서민들의 주요 소득 통로이자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민간소비 통계’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지표다.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 취업자 수’의 감소는 전체 취업자 수가 연간 10만~12만명에 그치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소득 최하위 가계의 명목소득 역시 1년 전에 비해 8%나 줄었다.

‘전체 GDP 성장을 이끌 만큼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늘었다’는 한국은행과 기재부 등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별 문제없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은행의 ‘GDP 성장’ 및 ‘소비통계 지표’와 통계청의 내수 관련 ‘취업자 수’ 감소 지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비가 증가했다는데 대표적 내수 산업이자 서민의 취업·소득 통로인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이 침체됐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일구 센터장은 “소비통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 5월 29일 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해외 소비 실태”를 지적했던 김 센터장은 6월 14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해외에서 들여온 고액의 설비자산 문제”까지 지적했다. 이 두 요소를 한국은행과 정부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소비통계를 만들고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해외 소비 문제를 보자. 지난해 한국인이 해외에서 소비한 돈은 약 32조원에 이른다. 반면 외국인이 국내에서 쓰고 간 돈은 11조원쯤 된다. 외국인의 한국 내 소비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산술적으로 한국인이 외국에서 쓴 돈 중 21조원은 한국 소비 시장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만져보지도 못한 21조원을 ‘어쨌든 한국인이 쓴 돈’이라는 이유로 GDP상 한국 소비통계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 전체 가계의 1년 소비지출이 약 7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1조원은 GDP상 전체 소비통계의 약 2.9%에 이르는 수치다. 결국 이만큼 지표의 오류가 발생해버리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식 그대로 베껴

지난해 4분기만 따져보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은 5조6000억원으로 통계상 전체 소비의 3.1%에 해당한다. 이 3.1%는 한국은행과 정부가 “소비가 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잡히지만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 취업자 수’가 줄어드는 등 실제로는 내수가 망가지는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청와대와 정부, 한국은행은 현실보다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통계에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잘못 만들어진 소비통계를 바탕으로 ‘내수는 이제 괜찮으니 수출에 신경 쓰자’거나 ‘소득만 높이면 소비가 증가하고 내수도 활성화된다’는 잘못된 정책을 구상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일구 센터장은 “경제 개념과 현실 인식이 떨어지는 한국의 정책결정자들과 통계 엘리트들이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는 자세”가 이런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통계를 맹신하는 정책결정자들이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GDP 집계 방식과 개념은 193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미국처럼 큰 나라에서는 ‘해외’ 부문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1930년대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쓰는 돈만도 엄청난 내수 규모를 형성했는데, 당시 (극소수) 미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과 외국인이 미국에 와 쓴 돈까지 생각해 GDP 개념을 만들었겠습니까. 이렇게 미국적 사고로 만들어놓은 통계 방식을 우리나라 통계하는 사람들과 경제학자, 정책결정자들이 그대로 베껴온 겁니다.”

김 센터장은 “기본적으로 가계든 기업이든 해외 비중이 큰 한국과 내수 비중이 큰 미국은 전혀 다른 경제구조”라며 “상황이 이런데 1930년대 미국이 만들어놓은 것을 그대로 베끼면 소비통계가 잘못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를 말하면 통계하는 사람들과 정책결정자들로부터 ‘통계가 잘못된 게 아니라 해석을 잘못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며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통계와 경제 인식에)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7년 한국 경제를 몰락시켰던 외환위기 당시 만들어진 그 어떤 통계와 지표도 우리 경제가 잘못돼 있다거나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며 “그때 역시 지금과 같은 잘못된 통계만 쳐다보면서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경제 실정과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통계와 지표가 “지표·통계상 경기가 좋은데”라는 식으로 경제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고 이것이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최저임금 문제도 결국 이 문제의 연장이다. 그는 “경제, 특히 내수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그에 따른 보완책도 함께 내놓든가 최저임금 인상 시기를 늦추는 식의 조절책이 있어야 했다”며 “그런데 정책결정자들은 통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지표만 보고 ‘소비가 좋은데 뭐’ 이런 식이다”고 했다. “통계를 거론하며 민간소비가 늘어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인식과는 달리, 자영업자들은 그들의 소득으로 연결돼야 할 민간소비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자영업자들이 비용(최저임금)만 올라가는 상황에 몰리면 안 그래도 힘든 밑바닥 내수가 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김 센터장은 가계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 부문에서도 소비통계가 잘못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과 정부는 설비투자가 늘었다고 합니다. 한번 보지요. 반도체산업(기업)이 1조원을 투자한다면 국내에 투자돼 생산으로 이어져야 내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진짜 내수가 얼마나 될까요. 사실 1조원 거의 대부분이 해외로 나가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기업은 설비를 해외에서 들여와 조립을 하는 데만 돈을 쓰지요. 기업의 설비투자에서 매우 큰 부분이 우리 내수에서는 구경도 못 해본 채 해외로 빠져나가버리는 겁니다. 그런데도 한은과 정부는 이 1조원마저 소비통계에 잡아버립니다. 그리고 내수가 1조원 늘었다고 발표해버리는 식이지요.”

그는 “이런 식의 반도체 설비투자라면 1조원 중 진짜 국내 내수에 남는 돈은 1000억원 정도”라며 “수입품을 들여와 ‘내수가 성장했다’ 식의 통계를 만들지 말고 우리 내부에서 정말 소비된 것만 보면 우리 내수는 이미 죽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잘못된 통계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해석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통계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고 했다.

‘취업자 수’ 기준 새 지표 만들어야

김 센터장은 잘못된 통계는 소비와 내수는 물론 취업과 고용의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소비가 늘어 내수가 나아지고 있다면 대표적 내수 산업인 음식·숙박 및 도소매업에서 취업자는 감소할 수 없다. 만약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면 청와대와 정부, 한국은행이 이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통계를 내놓은 통계청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해야 한다.

김 센터장은 “이런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 못 하는 게 현실”이라며 “통계청이 내놓은 해석이 한심하다”고 했다. “(인구) 고령화 때문이라거나, GM이 군산에서 떠나서, 또는 조선업이 힘들어서 같은 뜬구름 잡는 이유들뿐입니다. 고령화는 하루이틀, 1~2년 된 문제가 아닙니다. GM이 군산을 떠나서 음식·숙박 도소매업 취업자 수가 줄었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지요. 그냥 통계 숫자가 이렇게 나오니까 언론에 나온 이야기를 보고 ‘이거 이유로 넣어야겠다’고 하는 식입니다.”

그는 “취업자 수 통계는 주가지수처럼 사람의 심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절대 아닌데도 정부가 내놓은 해석을 보면 사람의 심리에 따른 것들뿐”이라고 비판했다.

김 센터장은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 현실에서 지금 같은 취업자 통계 방식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했다. “극단적으로 말해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돈 빌려 줄 테니 이걸로 취업하세요’ 하는 식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커피집 만들고 편의점 차리면 취업한 것으로 쳐버리니까요.”

그는 “소비통계 문제는 ‘왜곡’이나 ‘부정확’이 아니라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정책결정자들과 통계하는 사람들은 아프겠지만 고전하는 한국 경제를 위해 통계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해외 소비비중이 큰 네덜란드와 독일도 이미 소비통계와 지표를 개편해왔고 보조지표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취업률이나 고용률, 실업률 같은 비율 통계가 아니라 ‘취업자 수’를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사람 하나하나를 직접 세는 가장 원시적 지표로 가중치도 없고 인간의 심리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는 “복잡하고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 가공된 통계와 지표가 아니라 가장 원시적 지표와 통계가 우리 현실에선 필요하다”며 “정책결정자들이 이런 새 지표를 근거로 경제현실을 인식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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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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