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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514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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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스위스 추크처럼! 크립토밸리 한국에 들어설까?

김경민  코인와이즈 기자 

▲ 블록체인 특성화도시 ‘크립토밸리’인 스위스 추크는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세계 ICO 성지로 성장했다. photo 셔터스톡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은 지난 6·13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공약을 하나 내걸었다. “한국(부산)에도 스위스 추크와 같은 크립토밸리를 조성하겠다.”
   
   크립토밸리는 암호화폐를 뜻하는 ‘cryptocurrency’와 마을을 의미하는 ‘valley’의 합성어. 크립토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는 오 당선인뿐만이 아니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당선인도 도내 크립토밸리 조성을 공언했고,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 역시 블록체인 특구를 제주에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자도 박정오 성남시장 후보자와의 정책협약식에서 제3판교 테크노밸리를 크립토밸리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선거 과정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각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저마다 회심의 공약으로 크립토밸리를 내세웠다. 여기에는 암호화폐 관련 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되살려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크립토밸리를 조성하겠다고 나선 것은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이 이 산업을 통해 어떻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사례를 접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 추크(Zug)의 이야기다. 2016년 기준 인구 2만9000명,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가 안 되는 이 작은 도시는 현재 세계 금융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특성화 도시 크립토밸리가 조성되면서다.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블록체인 기업인 모네타스 창립자 요한 기버가 2014년 추크에 사무실을 차리면서 크립토밸리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뒤 추크는 지중해 연안의 몰타, 지브롤터, 아시아의 싱가포르 등과 함께 가상화폐공개(ICO)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2018년 5월 현재 250여개의 블록체인 기반기술 기업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렇게 해서 생성된 일자리 수는 약 10만9000개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만 전 세계 ICO 자금 39억달러(약 4조2000억원) 중 40%가 이곳에서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기반 로지스틱스 업체 CEO 리처드 에틀은 추크에 대해 “스위스의 작은 마을이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명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산업은 이런저런 말이 많다 해도 세계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화두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저마다 공약에 크립토밸리를 담고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거돈 당선인의 공약은 세계적 블록체인 전문 매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크립토밸리 조성 등 블록체인 기술에 우호적인 후보들이 지방자치단체장에 대거 당선되면서 ‘한국판 크립토밸리’의 꿈은 이제 손에 잡힐 듯 코앞으로 다가온 것일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크립토밸리에 대한 꿈만 있다고 이것이 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크립토밸리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적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위스 중앙정부가 크립토밸리를 위해 어떤 지원을 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리처드 에틀 대표는 추크의 장점으로 ICO 관련 제도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을 꼽는다. 실제 이 도시는 민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최적의 크립토밸리를 조성해왔다. 예컨대 스위스 금융감독기구인 금융시장감독청(FINMA)은 ICO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ICO 양성화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고, 추크 시의회는 지난해 10월 200스위스프랑(22만원 상당) 범위 내에서 암호화폐로도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정부지원 암호화폐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추크 시민들은 5월부터 정부 서비스 비용을 비트코인으로 지불할 수 있게 됐다.
   
   
   ICO 자금 외국에 뺏기는 한국
   
   스위스는 경제적으로 자유방임 기조가 강하지만 추크에선 이 경향이 더 강하다. 외국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기업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 파격적인 세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곳의 법인세율은 14.6%인데 외국 기업에는 9~10%까지 낮춰주고 있다. 글로벌 ICO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싱가포르가 법인세율이 15%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크가 더 친기업적임을 알 수 있다. 요한 슈나이더-암만 스위스 경제장관은 “크립토밸리를 뛰어넘어 크립토네이션(Crypto Nation)이 되고 싶다”며 ICO 유치에 적극 나설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추크의 기업인들은 바로 이런 실용적 접근이 크립토밸리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반면 ‘손톱 밑 가시’란 표현으로 익숙한 우리나라의 각종 규제는 스위스 정부의 지원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당국부터 국내 ICO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관이 접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9일 국내 ICO를 사실상 전면금지했다. 금융위는 이런 내용이 담긴 유사수신행위규제법 개정안을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마련할 방침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관련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린다. 예컨대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인 BOSCoin·ICON·HDAC는 스위스에, 메디블록은 지브롤터에, 글로스퍼는 홍콩에 재단을 설립해 각각 ICO를 진행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각각 자회사 라인파이낸셜과 그라운드X를 일본에 냈다. 이밖에도 올해에만 수백 개의 업체가 해외에서 ICO를 준비하고 있다. ICO는 전 세계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우리나라는 이를 금지하면서 오히려 돈을 해외에 빼앗기는 부작용을 자초하는 셈이다. 국내 ICO 허용과 함께 크립토밸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국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이 둘을 별개로 바라보지 않는 블록체인 생태계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암호화폐 정책에 있어서 사실상 수장 역할을 하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정책과 관련해 정부 입장이 바뀔 일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비협조적 환경 속에서도 추크의 사례를 참고해 크립토밸리를 조성하려는 시도가 지자체 차원에서는 진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곳은 부산이다. 부산 해운대가 지역구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도 6월 지방선거 이전부터 해운대에 ‘ICO 특구’를 유치를 위한 전문가 의견 청취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 역시 후보 시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T 분야의 메가 트렌드인 블록체인을 적극 활용해 부산에 크립토밸리를 꾸리고 마스터플랜을 세워 지역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회 회장(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은 “블록체인 암호화폐 산업의 낙후는 곧 4차 산업혁명의 지체를 의미한다”며 국내 업계의 위기감을 강조했다. 다음 세대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관련 산업의 성장은 연관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관련 학계와 부산시 등은 8월부터 부산 크립토밸리 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중앙정부나 입법기관의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크립토밸리 설립 시도는 우리나라의 손톱 밑 가시만 확인하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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