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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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부터 맛보라.”

김지억(85) 전무가 말했다. 말간 국물에 면발이 새초롬하니 잠겨 있다. 어떻게 마주한 냉면인지 황송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7일, 서울 창경궁로에 있는 우래옥이었다. 원래는 인터뷰 시간보다 한참 전인 점심 때 일부러 찾았더랬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대기번호 109번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초복이었다. 혹시 겁을 먹고 기권하는 사람은 없을까 휘휘 둘러봤지만, 눈빛들이 형형했다. 일행과 깊은 논의 끝에 일단 후퇴했다. 오후 4시를 넘겨 2차 시도. 이날 점심 대기번호는 360번까지 갔다고 한다.

특유의 국물 맛은 여전했다. 심심한 듯한데, 고기의 맛이 옅고 깊게 일렁인다. 이상한 표현인데, 직접 먹어봐야 아는 맛이다. “별 맛 없지? 이제 면 위에 식초를 부어보라. 맛이 달라지지. 면을 먹어 보라. 원래 냉면 면발은 가위로 자르지 않고 후루룩 빨아올리며 먹는 거다.”

우래옥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냉면 명가다. 1946년에 문을 열었다. 처음엔 ‘서북관’이란 이름으로 열었다. 6·25전쟁이 터지고 피란 후 다시 돌아와 지은 이름이 ‘우래옥(又來屋)’. ‘다시 찾아온 집’이란 뜻이다. 평양냉면과 양념갈비, 불고기가 주 메뉴다. 김지억 전무는 1962년부터 우래옥에 있었다. 올해로 56년째다. 김 전무도 ‘이북’ 출신이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광복 후 홀로 남으로 왔다. 이후 군에 입대해 공군본부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엔 조달청에서 일했다. 그러다 우래옥 며느리였던 당고모가 ‘공무원보다는 나을 테니 오라’고 제안했다. 당시엔 일명 ‘조바’를 보통 남자들이 맡았다. ‘조바’는 상점이나 식당의 계산대를 뜻하는 말이다. 일본어에서 유래했다. “일하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창업주 할아버지와 싸웠다. 평양 사람들도 한 성격 하거든. 그날로 그만둔다 하고 집으로 들어와버렸다. 며칠 지나니 아내가 달래더라. ‘당신이 시아버지와 다투고 나왔으니 고모 처지가 어떻겠나.’ 그 길로 다시 돌아갔다. 참자, 참자 한 게 56년이 됐다.”

김 전무는 식당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2층 계단 옆에 앉아 손님들을 지켜보는가 싶었는데 주방에 가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의 그 ‘조바’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다. 김 전무를 지켜보며 느낀 인상은 세 가지다. 첫째, ‘한결같음’이다. “매일 같은 일과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읽어. 사설은 꼭 챙겨 읽지.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하잖아. 그런 후엔 운동을 하고 사우나를 가지. 10시면 출근해서 11시30분부터 손님들을 맞지. 밤 9시 반에 문 닫고 10시 되기 전에 퇴근해.”

한결같은 건 우래옥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그곳에서만 멈춘 듯 실내가 고풍스럽다. 1988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미국 분위기로 지었지. 로비를 널찍하게 꾸미고 옆에 바(Bar)도 있잖아. 외국 식당에 가면 으레 맥주 한잔할 수 있는 바가 있는 걸 보고 지은 거지.”

하루에 냉면을 몇 그릇이나 팔았을까, 최고 기록이 궁금했다. “창경원이 있었을 시절이야. 시골에서 서울 놀러오면 가는 데가 창경원이었지. 식물원, 동물원 다 있었으니까. 을지로4가가 전차의 종착역이었지. 창경원 구경하고 종착역에서 내려 냉면 한 그릇씩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 어느 사월 셋째 공일에 이천몇백 그릇을 팔았지.”

56년간 평양냉면만 바라봐

둘째, ‘장인정신’이다. “전엔 매일 아침 냉면 한 그릇을 먹었지. ‘냉면 장사하려면 매일 먹어봐야 한다’는 게 창업주 할아버지 말씀이었지. 육수가 어떤지, 김치가 너무 시어지진 않았는지 맛보는 법을 배웠어. 요즘엔 며칠에 한 번 먹지. 아침에 면만 한 줄 입에 넣어봐도 어떤지 아니까. 냉면 김치는 사계절 같지만 면은 절기 따라 달라져. 날씨가 추워지면 메밀을 많이 넣지. 따뜻해지면 전분 비율을 늘리고. 후덥지근해지면 면이 잘 끊기거든. 밀가루는 전혀 안 써.”

지겨울 법도 한데 김 전무는 냉면과 우래옥 얘기를 하며 내내 즐거워했다. 평양냉면은 먹는 방법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나뉜다고 한다. 민짜, 전서, 전동침 등등. 민짜는 얼추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민짜는 고명 없이 면을 더 얹은 냉면이다. “전서는 면에 순수한 김치 국물만 부어서 나가는 거야. 전동침은 동치미 국물에 고기 고명을 얹어 나가는 거고.”

우래옥은 본점 외에 두 군데 지점이 있다. 미국 워싱턴점은 창업주의 손녀가, 강남점은 손자가 운영한다. 더 넓힐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계획 없어. 맛이 같아야 하는데 관여할 사람이 더 이상 없어. 맛을 유지하려고 강남점은 냉면 포장도 안 해. 본점은 노년이 된 손님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냉면 포장을 하지만.”

세 번째는 ‘불가근 불가원’이다. 56년간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있었을까. “역대 대통령은 다들 오시곤 했지.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은 안 오셨고. 국무총리는 이북 출신이 많았으니 다들 단골이셨지. 이영덕 총리는 방자구이만 드셨어. 양념을 안 하고 소금만 뿌려 담백하게 굽는 게 방자구이야.”

김 전무는 단골들이 선호한 음식이나 먹는 버릇을 소상히 기억하지만, 사적인 얘기는 기억에 별반 담아두지 않는 듯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필 전 총리 얘기를 꺼내봤다. 오랜 단골 얘기가 나오자 그의 눈길이 잠시 먼 곳을 향했다. “참 운이 없었지. 유난스럽게 대통령이 못 됐잖아.”

저녁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말 없이 수인사를 나누며 백발의 단골들이 그의 옆을 지나갔다. 하루 12시간, 위아래 630㎡(190평) 공간을 누비며 보낸 56년이었다. 어느새 그의 삶도 냉면을 닮아버린 건 아닐까. 냉면 때문에 여름이 좋은 건지, 여름 때문에 냉면이 좋은 건지. 주식(主食)의 자리를 탐하지 않았지만 어느 시절의 주인공이 된 그 냉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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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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